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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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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적들과 끊임없는 개혁

나이토오 히데오

 

조금 전에 최형제님을 통하여 이 세상의 불법에서 구속하신 사실을 가르침 받았습니다. 우리를 구속하실 뿐만 아니라 하늘의 영광에 참예시킨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종교처럼 이 세상에 기반을 갖고 믿음은 일부만 가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침례를 받았을 때 우리 옛사람은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속 받은 자로서 새생명이 주어져서 산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늘에 가고 하늘을 중심으로 삽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영광에 동참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왜 곧바로 하늘로 부름을 받지 않고 있습니까? 첫번째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라고 하신 것을 따라 하나님께 구속을 받아서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은혜를 이 세상에 나타내기 위해서 우리를 이 땅에 두신 것입니다. 조금 전에 최형제님을 통해서 교제를 받고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전 중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부터 떨어진 결과였습니다. 어떡하든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처럼 이스라엘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전은 재건했지만 재건된 성전에서 실제로 예배는 드리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이국에 태어나 살면서 예루살렘에 산 적이 없지만 예루살렘에 마음을 두고 있었습니다. 친척 하나니가 와서 상황을 말했을 때 기도하고 그 일에 동참을 했습니다. 이제 건축에 들어가서 성곽 건축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대적들이 어떡하든 성곽 중건을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내부에서 불만이 분출되었습니다.

 

느헤미야 5:1-2

"때에 백성이 그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 형제 유다 사람을 원망하는데 혹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곡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이제 백성과 아내들이 나옵니다만 그 아내들의 남편들은 성곽 공사에 동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내들은 가정에 생활을 지킬 의무와 책임이 있었으며 먹고 살아야 하지만 먹을 음식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공사에 계속 남자들이 관여하고 있기에 생활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왔던 것입니다.

7 "중심에 계획하고 귀인과 민장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취리를 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저희를 쳐서"

느헤미야는 함부로 한 것이 아니라 중심에 계획을 하고 귀인과 민장들을 꾸짖었습니다. 귀인과 민장들은 성곽 건축에 동원된 가장이 있는 가정들에 물건을 빌려주거나 해서 이자를 취리했을 뿐만 아니라 그 집에 물건을 담보로 잡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각 가정의 자녀들을 종으로 팔지 않으면 안될 상태가 되었습니다.

8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속량하였거늘"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라는 말을 통해서 팔린 사람들에 대해서 속량을 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이자를 감해 주는 것과 그리고 백성들에게 잘못한 것을 돌려주는 것을 맹세하게 했습니다.

14절에 느헤미야는 총독으로서 받아야 할 녹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말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압박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즉시 맹세를 시켰습니다. 모임이 진행하다 보면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지역모임은 과부들의 공궤에서 헬라어를 사용하는 과부들이 그 공궤명단에서 빠졌습니다. 따라서 그 모임에서는 즉시 일곱 명의 집사들을 세워서 그 문제를 다루게 하여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느헤미야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시 처리하였습니다. 모임에서 문제가 생길 때 끌지 말고 즉시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그다지 강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나려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조금 전에 교제하신 것처럼 우리 마음에 세상을 사랑하거나 우리의 육을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그것을 모임 안에서 주장하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모임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문제를 즉시 처리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느헤미야 6:15-16

"성 역사가 오십이 일 만에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외부 대적을 저지하고 내부의 불만을 제압한 다음에 52일 만에 역사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놀랄만한 단기간에 공사 완성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은 성전을 재건할 때 중간에 한 번 중단 되었다가 4년이 지난 다음에 완성을 했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7년 걸렸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예루살렘 성곽 건축이 얼마나 단기간에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16절을 보면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대적들에게 분명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의 말에 반응하여 역사한 사람들을 도와 주셨습니다.

 

느헤미야 7:1-3

"성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로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위인이 충성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라 내가 저희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거민으로 각각 반차를 따라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

느헤미야의 성곽 건축이 설계도 대로 되었기 때문에 기뻐하고 만세를 불러도 좋을터이지만 그러나 축하의 자리를 열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했는고 하면 문지기와 노래하는 레위사람들을 세웠습니다. 성곽은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입니다. 밖에 힘이 안쪽으로 미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시설이기도 합니다. 성벽에 문이 통제가 되지 않고 열려 있으면 성벽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지기를 세웠습니다.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사람을 왜 세웠는고 하면 스룹바벨이 세웠던 성전에 노래하는 자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느헤미야의 목적은 성곽을 중건하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느헤미야는 마음을 두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레위와 노래하는 사람들을 세운 것입니다.

2절에 있는 것처럼 하나니와 하나냐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하나냐는 위인이 충성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라고 했습니다. 이 때는 이방인이 예루살렘에 자유롭게 출입을 해서 장사가 자유롭게 행해졌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다스려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위인이 충성되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냐와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 소식을 전했던 하나니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3절을 보면 해가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문을 닫을 때도 파수할 때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라고 했습니다. 각각이 자기집 맞은 편에서 바깥의 힘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파수하라고 명했습니다. 성벽이 완성된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성벽이 기능하도록 느헤미야는 생각을 했습니다.

 

8:1에는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고 했습니다. 2절의 7 1일은 나팔절로서 나팔을 부는 날이었습니다. 이것은 민수기 29장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이 그 말씀을 충성스럽게 지켜오지 못했습니다. 이 때 느헤미야의 인도로 말미암아 성곽이 중수되고 완성이 되었으며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 있어서도 느헤미야를 통해서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율법을 기억했습니다. 여기서 행해진 것은 3절에 있는 대로 율법책을 낭독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새벽부터 오정까지 성경이 읽혀졌습니다. 여러분들은 새벽부터는 아니지만 오늘 하루 종일 이스라엘 사람들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8: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 낭독한 것을 깨닫게 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게 낭독이 되고 그것이 올바르게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8:18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칠 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제 팔 일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이 절기라는 것은 초막절을 말하며 마침 초막절 절기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책을 낭독하는 것을 듣고 깨달음으로 그 말씀을 실행한 것이었습니다.

17절에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며"

이들의 즐거움은 정점에 다달았습니다.

10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이것은 성경을 낭독하고 해석한 다음에 그것을 지키는 것은 좋은 일이기 때문에 근심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어 성경은 근심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으며 우리 성경의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가 일본어에 난하주로 나와 있는데 정말로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느헤미야 9:1-3

그 달 이십사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고 이 날에 낮 사분지 일은 그 처소에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1절은 구약성경 율법의 없는 것이었습니다. 724일에 이런 일을 행하라고 하는 율법 기록은 없습니다. 그들은 8장을 통해서 금식하고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썼습니다.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쓴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습니까? 자기의 죄를 부끄러워해서 하나님 앞에 몸을 낮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여기까지 올 때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크게 뉘우쳤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절에 보면 낮 사분지 일은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는 일을 하며 하나님을 경배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낭독이 필요합니다. 이는 어떡하던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바울이 사도행전 20:32에서 에베소 장로들과 이별 인사를 했을 때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바울은 너희를 주와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 은혜에 맡겨진 자들입니다. 어떡하든 간에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에 의지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라고 했습니다. 다음에는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이야말로 우리들을 견고케 하며 우리들을 가르칩니다.

디모데후서 3:16에 있는 것처럼 우리들을 고치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교훈과 책망을 받는 것만 아니라 바르게 함을 얻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의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시련을 당하는 것은 즉 훈련을 받기 위한 것이며 교육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말씀에 의한 것입니다. 느헤미야 9장을 돌아갑니다.

그들은 참으로 메마른 땅에 물이 흐르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10장에는 맹세의 도장을 찍었습니다.

느헤미야 10:30-31

우리 딸은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 아들을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며 혹시 이 땅 백성이 안식일에 물화나 식물을 가져다가 팔려 할지라도 우리가 안식일이나 성일에는 사지 않겠고 제 칠 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하리라 하였고"

이들이 맹약한 10가지 정도 항목은 대부분이 율법에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 하나는 30절에서처럼 이방인과의 결혼이었습니다. 이방인과의 결혼하게 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가장 독특한 특징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맹약의 항목 가운데 이 항목을 기록했습니다. 안식일이 무시 당해서 안식일은 본래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인데 이것을 무시하며 이 날에 장사를 했던 것입니다. 13장에 나와 있지만 이스라엘 장사 뿐만 아니라 두로 장사꾼도 여기에 출입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로는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항구 도시로서 무역으로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두로 사람들은 장사에 능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실로 세상적인 마음을 자극하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아마 두로 사람들은 그 당시 유행하는 물품을 가져와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자극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보다도 그들이 가져온 물건에 마음이 옮겨갔다고 봅니다. 이러한 것들을 폐지하도록 느헤미야는 맹약 속에 항목의 하나로 넣었으며 그들은 이 맹약에 인을 쳤습니다. 인을 치지 않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1절에 그 인친 자는 하면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 11:1

"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그 구분은 다른 성읍에 거하게 하였으며"

하나니와 하나냐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도록 임명이 되었지만 예루살렘 거민이 적었습니다. 열 명 중에 한 명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하게 했습니다. 거기에 살면서 거룩한 성을 지키게 했으며 거기에 누가 사는지를 적었습니다. 성곽이 완성된 다음에 예루살렘을 지키는 것, 충성되고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섬길 것에 대한 분명한 맹세를 느헤미야가 시켰습니다. 이렇게 한 다음에 12장에서 성곽 봉헌식을 했습니다.

 

느헤미야 12:31,38

"이에 내가 유다의 방백들로 성 위에 오르게 하고 또 감사 찬송하는 자의 큰 무리를 두 떼로 나누어 성 위로 항렬을 지어 가게 하는데 한 떼는 우편으로 분문을 향하여 가게 하니, 감사 찬송하는 다른 떼는 저희를 마주 진행하는데 내가 백성의 절반으로 더불어 그 뒤를 따라 성 위로 행하여 풀무 망대 윗길로 성 넓은 곳에 이르고"

우선 노래하는 무리를 두 무리로 만든 다음에 한 무리는 에스라가 인도하면서 성곽 위를 행진했습니다. 또 한 무리는 다른 편에서 행진하게 했는데 그 무리에 맨 마지막에 느헤미야가 위치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느헤미야를 송사할 때 네가 왕이 되고자 하느냐고 했지만 느헤미야가 맨 뒤에 섰기 때문에 그 비난은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43 "이 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이 날에 기쁨은 커서 그 기쁨의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의 목적은 성곽을 중수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그 자세를 정리시키는 일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3장에는 느헤미야가 총독생활 12년 하는 동안에 성곽을 중수하고 성전의 기능이 되도록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를 잘 정비하고 정돈해서 하나님 앞에 준비를 시켰습니다.  느헤미야는 12년간의 총독생활을 마치고 다시 수산 궁으로 돌아갑니다.

4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을 맡은" 이전에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느헤미야가 일단 수산 궁에 갔다가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받아 다시 돌아 온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5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갖추었으니"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그 사이에 도비야가 침투해서 성전의 한 방을 차지했습니다. 7절까지 보게 되면 느헤미야는 너무 화가 나서 도비야의 모든 물건을 성전 바깥으로 던져내었으며 성전을 깨끗케 했습니다. 10,12절에는 레위인들이 도움을 받지 못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처소로 가 있는 레위인들을 다시 불러 모았습니다.

15절에는 다시 장사를 금했는데 그 말은 느헤미야가 없는 사이에 안식일에 장사가 다시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16-18절을 보면 안식일에 두로의 장사꾼들이 예루살렘에 출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21절에는 문지기도 없어졌기 때문에 다시 문지기를 불러들여서 다시 장사를 못하도록 단속하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사꾼들이 문 앞에 와서 문 여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문을 열어서는 안된다고 명했습니다. 문을 열지 말라는 명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장사꾼들은 문 앞에 모여 있었습니다. 만약에 다음 안식일에도 오면 내가 손을 보겠다고 느헤미야는 말했습니다.

23절부터는 연혼에 문제가 있습니다.

28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30 "내가 이와 같이 저희로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그 일을 맡게 하고" 했으며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기간이 제 개인적으로는 9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만 역사적으로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가 귀환 후 9년 지난 다음에 죽어서 왕이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왕후와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신뢰를 받았기 때문에 사임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사랑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와 규정을 모두 회복시키고 돌아갔던 것입니다.

31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라고 하는 것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늘 유혹하는 것은 사단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세상을 사랑한다든지 자기의 생각이나 욕망을 따라 가 버릴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를 끊임없이 고쳐야 되지 않겠습니까?

느헤미야서가 여기서 끝나는데 갑자기 끝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이후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마지막 끝나는 부분과 매우 닮았습니다. 사도행전 마지막에도 보면 전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앞으로 계속 진행될 것처럼 보이는데 갑자기 거기서 끝나버립니다. 사도행전이 거기서 끝나는 것은 계속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느헤미야도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고쳐야 하고 계속해서 지켜야 하고 계속해서 자기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구약성경 역사에서 맨 마지막은 이러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라기의 기록은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에 있던 그 시기에 말라기가 기록되지 않았나 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 5 5일 강서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