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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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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30. 06:32 횃불/1978년

하나님의 사람들

로버트 앤더슨

(1841~1918)

 

로버트 앤더슨경 유명한 법학자이면서 또한 신앙인으로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오늘날도 독일에 가면 유명한 검찰 고위층에 있는 형제가 말씀의 사역에 능하여 크리스챤 모임에서도 유명하다고 하는 말을 듣는데, 주님은 가끔 사회에 높은 분을 모임에 더하시고 쓰시는 것을 본다. 뉴질랜드에도 대법관 형제가 계신데 교회 일에 크게 쓰임을 받고 계신다. 앤더슨 형제는 스콧트 계통 사람이면서도 1841년 5월 29 더블린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 매튜 앤더슨씨는 아일랜드 수도에서 업무장관을 지낸 분이고 또한 데리 저항자들(캐톨릭과 끝까지 싸운 선교 저항가들) 항복하지 않은 자중의 하나인 선조를 둔 분이다. 학교를 졸업한 앤더슨은 큰 양조업계(술회사)에서 사업을 경영할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18개월 후에 이것을 떠나 더블린소재 트리니티 대학 에 입학하여 그곳에서 1862년에 법학사 학위를 얻고 1875년에는 법학박사 학위를 얻었다. 불론과 파리에서 공부한 후에 그는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에 들어 갔고 졸업 후 법원에 관직을 얻게 되었다. 1865년에는 아일랜드 정부에서 반란 사건을 처리하게 되었다. 반역음모에 대한 탁월한 처리방법을 체득한 그는 곧 치안국장에서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어 당대에 유명한 런던의 잭더리퍼사건을 처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1901년 까지 이 직책을 감당하였다. 그의 친구 중에는 런던의 유지들인 샐리스베리, 월셀리, 브리스우드, 하코트경, 그래드스톤 경 등 당대의 대 세도가들이 많다. “나의 공직생활의 밝은 면이란 그의 저서에서 그는 35년간의 공직 생활에서 많은 일들을 처리했음을 알게 한다. W. H. 스미스는 국회의원으로서 로버트 경에 대하여 자기의 책임을 큰 수완으로 감당하여 공중에게 완전한 신임을 얻었다고 말했다. 레이몬드 브래스웨이도 위대한 사상이란 책 중에서 로버트 앤더슨 경은 국가가 모르는 중에 국가에 큰 도움을 준 사람들 중의 하나라고 평하였다. 그는 법률서적도 많이 저작하여 범죄인과 범죄” “내무 규칙 운동에 관한 측면” “내 공직생활에 있어서의 밝은 면등 주로 범죄학에 관한 저서를 내었지만 이제는 품절 되었을지라도 그의 영원한 것들을 다룬 신학서적은 아직도 유명하 게 전승되고 있다. 그의 저서가 많은 중 복음과 이의 사역은 잘 알려진 것이고 인간운명이란 그의 저서 C. H. 스펄젼이 평하기를 내가 지금껏 본 주제에 관해 가장 가치에게 기여한 것이라고 했다. 그 외 하나님의 침묵” “종교적인 유럽을 놀래게 한 책등은 대전 중 많은 사람을 도왔다.

오실 왕자님은 다니엘의 70주를 다루었다. “다니엘의 시련” “히브리서 연구” “그의 이름의 존귀함성경과 현대비평” “오해된 성구등과 기타의 저서는 그의 펜이 얼마나 달필이고 그의 생이 부지런했는가 입증해 준다. 그의 최근 저서이며 탁월한 작품인 하늘로부터 오신 주님은 두어함 감독에게 크게 칭찬을 받은 책이고 또한 그리 피스 토마스 박사나 캐더린 마쉬여사 등 많은 유명한 분들의 추천을 받은 책이다. 그의 책을 읽을 만 하고 유익하게 만든 두 가지 점은 그 자신의 신앙과 그의 표현의 명료함의 힘에 있어서다. 휴즈 라이트 경은 말하기를 모든 연약과 당혹 중에서 일찌라도 당신의 강한 말을 읽는 것은 하나의 희망을 준다고 했다. 그의 오랜 친구 페리낙스고르 여사는 당신의 저서는 특히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각 장에서 그대가 수용하던 배척해야 할 것이 있고 그대가 멈추어 생각해야 하고 또한 돌보아지지 않은 채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라했다.

더블린에 사실 때는 메리온 교회에 출석하였다. 런던에서는 가끔 캠버웰과 기타 지역에서 신자들과 함께 모였다. 그가 죽기 몇 달 전에 그는 고백하기를 그는 형제들과 늦게서야 더 많이 교제하였는데 사역 문제 때문에 그렇게 하였다고 하였다. 공개집회는 그러한 질서존중의 마음을 가진 형제에게는 매력을 주지 못했다. 그라스코의 하프이 여리 집회에서의 그의 사역은 크게 인정을 받았다. 1873년에 앤더슨 형제는 드로게라 백작의 누이 레이디 아그네스 무어 양과 결혼했다. 그의 부인은 모든 선한 일에 그의 진정한 도움의 배필이 되어주었고 런던의 부녀사업의 지도자로서 크게 활약하였다. 이러한 유력한 분이 모임에 일어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그의 임종 전에 간증을 했는데 그 중에 아래와 같은 일이 있다. 그는 크리스챤 가정에서 자랐는데 그러나 구원의 염려 중에 있었다. 그러던 중 1860년에 J. 덴햄 스미스 형제가 더블린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 그의 누나가 구원받고 이로써 새로운 영적 깨우침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가 어느 날 누나의 권유로 집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참 빛은 그 다음 주일날 저녁 자기 교회에서의 설교 말씀에 따라 비춰졌다. 전도인은 존 헐이라는 분이었는데 그는 담대하게 죄의 용서와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영생의 선물을 증거하였다. 그의 설교는 크게 감동을 주었지만 그의 교리는 비성서적이라고 판단하였다. 집회가 끝나 헤어져 집으로 오는 중에 길에서 다시 그를 만나 그와 얘기했는데 길거리에서 그는 엄숙하게 내가 하나님의 종으로 당신에게 엄숙히 말하는데 당신이 지금 여기서 주를 영접만 하면 당신에게 생명이 주어진다고 역설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겠소? 배척하겠소? 그 후 몇분 후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가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영접합니다하고 외쳤다. “다른 말도 없이 그저 손을 흔들어 악수하고 서로 헤어졌는데 집에 오면서 하나님의 평강이 내 가슴에 넘쳐 남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1918 11 15 77세를 일기로 그가 사랑한 주님 존전으로 조용히 불리워가서 영민 하였으니 그는 유명한 법학자요 성서학자였다.

 

(1978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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