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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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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7. 11:05 횃불/1979년

주 교사 샘터

 

48. 압살롬의 반역

(삼하 15:1-21 / 14:25/18:38)

압살롬의 반역은 다윗의 말년에 있었던 다른 반역과 마찬가지로 11장의 범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단 선지자가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비유로 다윗의 죄를 책망했을 때 (12) 다윗은 4배나 갚아야 하리라고 선언하였다(12:6). 그런데 이러한 다윗의 선고는 바로 자신에게 임하게 되었다.

1)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들을 잃게 되었고(12:14~18)

2) 암논이란 그의 아들도 잃게 되었으며 (13:28,29)

3) 압살롬이 살해되었고(18:15, 33)

4) 아도니야도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왕상 2:23-25)

이 후에”(15:1) 이것은 14:33의 화해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 때에 왕은 압살롬과 입을 맞추었다. 압살롬 측에서 이 화해는 위선적이었다. 이는 그가 화해 직후에 부왕의 위를 노리고 있음을 보아 알 수 있다. 압살롬의 회심은 말뿐이었다.

성문길”(15:2) 당시에 성문은 백성들이 모여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재판하기도 하는 곳이었다. 명기 16:18, 21:19, 25:7, 4:1을 비교해 보라. 압살롬은 그의 부왕 다윗이 송사나 재판에 관해서 아무런 대비도 없다고 비난하였다(3) 그러나 8:15에서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할새라는 말씀을 볼 수 있고 이어서 이를 담당하는 자들의 명단을 읽게 되고 그 중에는 다윗의 아들들도 포함되어 있었다(8:18). 그러므로 압살롬은 이상의 말씀을 완전히 번복(飜覆)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이 공무 담당자를 임명함에 있어서 살인자인 압살롬이 사형에 해당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무를 맡겼다는 것은 큰 실수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하니라”(15:5, 6).

이것은 유다가 그리스도께 그러했듯이 기만적인 처사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얼마나 무모하게도 압살롬 맹종했던가를 주목해보라. 압살롬의 외모는 대단히 화려했지만(14:25) 중심은 사깃꾼이었다. 사무엘상 16 7절에 보면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붓게 될 때 압살롬의 숙부들에 관하여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니라고 말씀하셨다. 압살롬의 중심도 그 숙부들과 한가지로 악할 뿐이었다.

“4년 만에난외주에 보게 되면 어떤 기록에는 40년으로 되어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다윗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후 40년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삼상 16). 아니면 14:21-23의 기록한대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후 4년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여호와를 섬기리이다”(5:8). 여전히 그의 기만은 종교의 그늘에 감추어져 있다. “정탐”(10)이란 현대적으로 오열분자(五列分子)를 가리킨다.

아무 뜻없이 저와 함께 갔으며”(11). 아직도 백성들은 그들을 파멸가운데로 끌고 갈 거짓된 지도자에게 속아 따르고 있다.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12), 시편 3 1절에서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라고 그때의 광경을 기록했다. 3편의 제목을 보아 이를 알 수 있다.

이처럼 극심한 환난 중에서 진정한 벗과 그렇지 못한 친구가 드러나게 된다(12-21). 아히도벨은 다윗이 신뢰하던 조언자였지만(16:23) 압살롬에게 가담해 있었고 잇대(15:19)는 블레셋 땅에서 온 나그네였지만 어떤 역경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떠나지 않았다 (21).

다윗은 압살롬을 구출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했으나 수포로 돌아갔다(18:12). 압살롬과 형제간이었던 솔로몬은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기록했다( 11:21). 압살롬이 그의 죄 가운데 죽었을 때 부왕 다윗은 통곡했다. 반면에 다윗은 밧세바에게서 낳은 갓난 아이가 죽었을 때에 눈물을 거두었다. 그는 이 아이를 다시 만나리라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12:20-23).

*기억해 둘 말씀 / 11:21

 

(79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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