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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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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2. 16:19 횃불/1982년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죤 리치

초태생의 죽음

마지막 애굽의 심판은 몇마디 안되지만 엄숙한 말씀으로 선포되었다.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12:12).

 

죄의 삯은 사망이다.” 다른 재앙에서 이스라엘은 면제되었지만 그러나 이 사실에 있어서는 차별이 없었다. 모두가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모두가 죽어야 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재판장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그에 해당하는 심판을 내리셔야 했다. 그들이 거의 예상하지 못한 때인 조용한 한밤중에 그 끔찍한 심판은 임하였다.

이 세상의 심판도 그와 같을 것이다. 오래 참으시는 자신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잠시 연기하신 것은 죄인이 멸망당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심판의 때는 오고야 만다. 오랫동안 참고 계셨던 진노는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을 잊고 있는 무리 위에 매우 맹렬하게 폭발할 것이다. 그날은 정해졌으며 선고문은 기록되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거의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그것이 집행될 것이다. 밤의 도적처럼 갑자기, 순식간에 번개 빛 같이 주 예수님께서는 불꽃 가운데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것이며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살후 1:7,8).

모든 것은 홍수 전의 날들과 같이 계속될 것이다. 하늘의 구름 가운데, 배척을 당하신 나사렛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완전 정지 상태에 이르게 될 때까지 이 세상은 사고 팔고 죄를 지으면서 계속 굴러갈 것이다.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12:30).

그것은 여호와의 징벌의 중량을 느끼는 백성들로부터 터져나오는 고뇌와 절망의 부르짖음이었고 보다 깊은 비탄의 메아리에며, 더욱 맹렬한 비명으로서 어린 양의 진노로부터 그리고 보좌에 앉으신 그분의 얼굴로부터 자신을 숨겨달라고 바위들과 산들에게 간청할, 그리스도를 멸시한 군중들의 입술로부터 머지않아 터져나올 소리이다( 6:15~17).

그러나 죄인들로부터 나온 그 울부짖음은 무시될 것이다. 굳은 바위가 그들의 호소를 조롱할 것이며 하늘에 앉으신 분은 그들이 재앙을 만날 때에 웃으시며 저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비웃으실 것이다( 1:26). 그리스도 없는 죄인에게 임할 이 끔찍한 미래사여!

 

그러나 여기,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손들을 위하여 한 속죄양이 준비되었고 구원이 이루어졌다.

 


 

유월절

출애굽기 12장은 구속의 그림책이라 불리운다. 그것은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은 구원에 대한 가장 충분하고 명료하고 단순한 구약 예표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에덴 동산 밖에 있는 제단 위에서 드려진 아벨의 어린양으로부터 예루살렘의 영문 밖 십자가에서 희생된 하나님의 어린 양까지 그것은 성경의 대 주제가 된다. 이에 관해서 선지자들은 예언했고, 시편 기자는 노래했으며, 또한 하늘에서 부를 영원한 새노래의 곡조는 어린 양의 피로써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구속하셨다는 것이 될 것이다.

피 없는 종교는 죄인을 멸망시킬 뿐이다. 그것은 살인자 가인에 의하여 먼저 세워졌고 그의 모든 씨에 의하여 계속 이어졌다. 20세기의 거짓 전도인들과 종교인들은 입을 비쭉거리며 기독교를 가리켜 도살장의 종교라고 부르면서 그것에 대하여 조소를 한층 더 높이고 있다.

기독교가 그들의 눈에 그렇게 보인다면 피흘림에 없으면 죄사함이 없음을그들에게 상기시켜야 한다( 9:22). 피없는 종교야말로 불못에 들어갈 분명한 대상임을 명심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이 귀한 모형들을 살펴 볼 것이다. 묘든 묘사가 완전하며 모든 부분이 가장 깊은 의미로 충만해 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고 기록된대로 우리는 그것이 예수님을 의미하고 있음을 안다.

 

1. 어린양

어린 양은 흠이 없어야 하고 일년된 수컷이어야 했다.

이것은 온유, 순결 그리고 강함의 상징이다. 예수께서 그러하셨다. 그분은 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양처럼 끌려 가셨고 그분의 피를 흘리게 만든 손들을 위하여 용서를 구하셨다. 그분은 흠이 없으셨다. 그분에게서 어떤 흠점이라도 발견된 일이 있다면 그분은 희생제물로서 적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하셨다. 그분은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벧전 2:22), 그분은 죄를 알지도 못하셨으며”(고후 5:21), 그분에게는 죄가 없으셨다”(요일 3:5).

그분은 베들레헴의 아기로서 온전하셨고 나사렛의 소년으로서도 온전하셨으며, 인자로서도 온전하셨다. 그리고 십자가 상의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도 온전하셨다. 그분은 남성적인 기력이 충만한 중에 죽으셨고 또한 구원의 능력을 가지신 하늘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죽으셨다.

 

이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6).

이것은 시험 기간이었다. 그것은 그 양을 시험해 볼 충분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으며 어떤 흠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찾아낼 수 있는 기간이었다. 예수께서는 시험을 잘 치르셨는데 이곳 땅에서의 그분의 삶은 시험받는 기간이었다. 하늘, , 그리고 지옥이 그분을 시험하였으나 그분은 흠 없는 어린 양이라는 한결같은 증거를 받으셨다.

하늘 아버지께서 하늘로부터 증거하셨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3:17). 귀신은 외치기를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1:24)라고 하였다. 또한 광야에서 마귀가 그분을 대항했을 때, 다시 말하면 가장 불리한 환경 중에서도 그분은 흠을 잡히지 않으시고 시험을 통과하셨다( 4:11).

사람도 증거하였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18:38)고 말했다. 가룟 유다는 내가 무죄한 피를 팔았다”( 27:4)고 말했다. 예수님의 고통스런 죽음을 지켜보던 백부장은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23:47)라고 말했다. 그분의 옆에서 죽어가던 강도는 고백하기를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음이 없느니라”( 23:41)고 했다.

이와같이 그분의 원수들까지도 흠 없는 어린 양으로 예수님을 증거하였다. 그분은 흠이 없고 점이 없는, 귀하고 온전하며 결백한 하나님의 어린 양이셨던 것이다.

 

2. 양을 잡는 시간과 태도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12:6).

든 죄인은 그리스도를 죽이는데 동조한 입장이다. 세상은 주님의 십자가 주위에 진치고 있었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4:27)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분의 십자가 위에 히브리, 헬라, 라틴 말로 된 죄패가 증거하듯 인간의 지혜, 인간의 힘, 그리고 인간의 종교의 대표들이 각각 그를 대항하여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많은 점에서 서로 달랐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같았다. 헤롯과 빌라도는 전에는 서로 원수였지만 주님의 죽음에 관해서는 동의의 악수를 나누었다( 23:12).

어린 양은 저녁에 죽임을 당했으며 심판은 한 밤중에 내려졌다. 겨우 피를 뿌릴 시간만 있었을 뿐 그 외의 시간은 없었다. 지금은 은혜로 다스리는 날이며 심판과 함께 어두운 한 밤중이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3. 피의 사용

피는 그릇에 담아서 한 뭉치의 우슬초를 준비하여 그것으로 바르도록 하였다. 이제 한 죄인의 구원의 그림을 보라.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12:7,13).

그 끔찍스런 밤에 이스라엘의 초태생의 구원을 보장해준 것은 문 설주와 인방에 발려진 그 피, 바로 그 피뿐이었다. 그것은 문간에 매놓은 살아있는 양이 아니었고, 그릇에 담겨있는 피도 아니었으며, 오직 우슬초 뭉치로 발려진 그 피뿐이었다. 그 초태생을 심판으로부터 구원한 것은 피와 쓴나물이 아니었고, 또는 피와 무교병도 아니었으며, 오직 어린 양의 피, 그것 하나였던 것이다.

그리고 구원을 확실케 해준 것은 그들의 기쁜 감정도 아니요, 그들의 여행복장도 아니었다. 그들의 확신은 이같이 변하는 것들 보다는 무한히 더 좋은 어떤 것에 의존하였다. 그들은 바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을 확신하게 되었는데 그분께서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마치 이미 가나안 땅에서 있는 것처럼 그들은 멸하는 천사의 칼로부터 안전하였던 것이다.

당신의 영혼은 어떠한가? 당신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아래로 피신하였는가? 그 피가 당신을 위해 흘려졌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그 희생제물을 받아들이셨다는 것을 믿는가? 하나님께서 그 피를 보시고 그 가치를 아시며, 그 피를 의지하는 모든 사람에게 죄로 말미암는 심판에서 넘어가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진리를 말씀하시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안전하다. 이제 의심과 두려움, 그리고 자주 변하는 기분이나 감정은 버리라.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바른 이스라엘인이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두려워했었는가 등이 무슨 문제가 되었겠는가!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넘어가리라고 하신 그 자신의 말씀에 진실하실진데 말이다.

그의 두려움이나 느낌들이 그분의 말씀을 진실이 아닌 것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리스도의 피만이 구원의 근거가 되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확신의 근거가 된다. 피는 하나님 편이요 말씀은 사람 편인 것이다.

 

한 방울의 피라도 문지방(문턱) 위에 발라지거나 마루바닥에 뿌려지지 않았다. , 그렇다. 그것은 발에 밟히기에는 너무나 값진 것이었다. 아직도 죄인들은 하나님의 아드님을 발로 밟고 그의 피를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10:29). 예수께서 죽으신 그 사실을 가지고 지옥으로 가는 돌계단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부패한 기독교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그 사실 위에 세워져 있다. 로마 카톨릭, 거짓 개신교 및 구원받지 못한 성직자들은 다 같이 그 피를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릇에 담겨져 있는 속죄양의 피와 같은 것이다. 그것을 믿음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적용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뿌리지 않았고 그 피의능력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피를 어떻게 대하는가? 당신은 안전한가, 아니면 위험 가운데 있는가? 당신은 그것을 머리로만 영접하였거나 혹은 당신의 발 밑에 놓고 배척하고 있지는 않는가? 당신은 어떠한가?

 

(1982 1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