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2. 10. 10. 15:31 횃불/1983년

애굽에서 가나안까지(17)

매 맞은 바위

죤 리치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42:2).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63:1).

 

이것은 광야에 있는 하나님의 성도들의 열망이다. 즉 살아계신 하나님 안에서 흘러나오는 거룩하고 신령한 생명의 표출이다. 진실로 하나님으로부터 그것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성도 안에 내재해 있는 새 사람에게 참된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없을 것이다.

종교의 죽은 형태와 의식 등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상태로 있는 생명 없는 영혼을 만족시킬 뿐이다. 진정 하늘로부터 태어난 영혼은 목마른 사슴이 냇물을 사모함 같이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개인적이고도 직접적인 교제를 사모할 것이며,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대적하는 어두움의 세력들을 격파할 것이다.

 

이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 참된 사실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와 세상 사람을 구별하는 표시 중의 하나이며, 그리스도의 생명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죄로 인해 죽은 사람들 간의 구별이다.

 

출애굽기 17장의 첫 부분의 몇 구절을 읽으면서 한 방울의 물도 없이 메마른 광야 가운데서 불평하고 있는 이 무리들의 영혼을 생각해 본다. 그들을 불평하게 만든 것은 불신이었으며 그들의 실패는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있었음에도 그들의 시선은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애굽 사람들이 그렇게 불평했다거나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의 강변에 앉아 있는 동안에 불평했다는 사실을 읽어볼 수가 없다. 이제 그들은 믿음의 시련을 받고 자주 실패하는 장소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불평에도 불구하고 주께서는 거기 계셨으며 물이 없어 기갈을 당하는 무리들을 충족시킬 준비를 하고 계셨으니, 마치 만나로 굶주린 무리를 충족시켰던 것과 같다(16).

길을 함께 가는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도 그렇게 우리의 광야생활을 시작한 후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애굽의 강을 피로 변하게 하였던 그 지팡이를 들어 호렙의 반석을 치라고 모세에게 명령하셨다. 반석을 쳤을 때 물이 터져 나왔다. 애굽 사람들에게 심판을 내리는데 사용되었던 그 지팡이가 이스라엘의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물을 공급하는 은혜의 지팡이로 사용되었다.

이에 대한 영적 의미는 매우 분명하다. “그 반석은 그리스도였다”(고전 10:4). 그리스도는 우리의 축복을 위하여 십자가위에서 심판의 매를 맞으셨다. 물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완성된 사역의 열매로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의 모형이다. 반석이 매맞음을 당하지 않았다면 샘물은 그 안에 고여 있었을 것이다. 또한 복되신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서운 심판의 고통을 당하지 않으셨다면 구원도, 성령의 소유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비길 데 없는 이름에 복이 있을진저! 그분은 한때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하셨고이제는 가장 높은 하늘에서 영광을 얻으시기 위하여 승천하셨다. 그리질 그분의 높아지심의 증거로, 그리고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하시는 증거로 성령께서 내려오셨다( 7:39, 10:15). 또한 그분은 힘을 주시는 분이시며 지지자로서 모든 성도들 안에 내주하신다.

 

이스라엘에 관하여 그들은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고 기록되었다(고전 10:4). 또한 현재 성도들에 관하여는 그들 모두가 한 영으로부터 마셨다고 한다(고전 10:4). 이것은 하나님의 권속의 각 가족이 갖는 출생권과 유업이다. 그리스도 안의 성도로서 그 영을 받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랑도 없다. 우리가 알기로는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어떤이들은 성령의 인치심을 받지 않았다고 가르치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말씀에 위배되는 가르침이며 하나님의 성도들의 체험과도 위배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배우는 바는 이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2).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4:6).

이것은 너희가 이것 혹은 저 교리를 알기 때문이 아니요, 또는 너희가 이런 헌신의 정도 혹은 거룩의 정도에 도달했기 때문도 아니요, 오직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인고로”, 또한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3:2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8:16),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8:9).

다만 다음 사실은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성령을 받은 성도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를 구별하고 있다(고린도전서 2 12절과 에베소서 5 18절을 보라). 또한 생명과 성장간에 구별이 있다. 생명은 모든 성도에게 다 있지만 그러나 그 생명의 성장은 각자에게 다를 수가 있다. 하나님의 영은 모든 하나님의 아들 안에 거하신다. 그러나 이의 나타남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다를 수가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아이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졌다. 그 외에 다른 생명은 전혀 없다. “더 높은 생명이라든가 더 거룩한 생명이라는 것은 잘못된 명칭이다. 그들은 비성경적 사고를 표현하고 있다. 비록 성장이라 나타남에 있어서는 각기 다를지라도 생명은 모두에게 같은 특성을 지닌다. 성경은 약한 것과 강한 것에 관하여 말하며( 15:1),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말한다(고전 3:1). 그러나 문제는 여기 성장에 있는 것이지 받은 생명의 특징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성도들은 세상적이며 거짓된 가르침 때문에 고린도나 갈라디아 성도들처럼 퇴보하며, 또 어떤 성도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같이 놀랍게 성장하고 성령의 은혜 안에서 풍성하다.

그러한 구별들은 역시 하나님의 영에 대해서도 관계가 깊다. 스데반과 바나바는 성령에 충만한 사람들이었고( 7:55, 11:24), 고린도의 어떤 이들은 단지 어린아이로서 서로 다투고 시기하였다(고전 3:1-3). 그럴지라도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사람들이며 그들의 몸은 성령의 전이라 기록되었다(고전 1:2; 6:1). 같은 물일지라도 하나는 도랑을 이루고 다른 하나는 둑을 넘는 큰 시내를 이루는 차이를 우리 모두는 잘 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5:8), 성령 안에서 걷자( 5:16). 이것은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이며 또한 은혜를 통하여 이 복된 체험의 대부분을 아는 사람은 적어도 그것에 관해 말했을 것이다. 모세처럼 얼굴에 빛나는 광채를 내며 산에서 내려올 때 그것은 모두에게 나타날 것이며, 우리가 이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은, 그 빛나는 광채가 말하는 것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막을 통과할 때 접촉하게 될 지치고 갈한 영혼들은 그로부터 유익을 얻을 것이니 만일 우리가 스스로 그 샘에서 깊이 물을 마시면 그 생수는 우리에게 넘쳐 흐르는 강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7:37,38).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또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크게 필요한 것이다. 주께서는 우리를 건전하고 옳은 가르침으로 깨우치시며,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의 능력을 상실하지 않도록 만족을 주시면서 우리를 보전하신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를 섬기기 위하여는 아래와 같은 엄한 경고를 받을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말라”( 4:30).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살전 5:19).

 

아하!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슬프게 해드리는가! 이것이 우리의 연약함과 빈약함의 원인이 된다.

 

민수기 20 7-11절에서 반석에 관해 더 언급된 것을 본다. 여기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반석에게 말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물을 낼 것이니라.” 지팡이로 두번 치라고 명령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단 한번만 치도록 되었고 그 다음은 반석에게 말하도록되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에게 말을 했고 명대로 아니하고 반석을 쳤다. 그는 하나님에게 불순종했고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우리의 반석은 한번 맞으셨다. 또한 그 결과로 성령이 오셨다. 우리는 그분에게 내려오시도록 요청할 필요도 없거니와 하나님께, 그분을 보내어 우리 안에 거하시도록 간청할 필요도 없다. 우리 죄의 완전한 정결의 증거로( 10:15) 현재의 우리의 구속의 인()으로, 또한 우리 미래 영광의 보증으로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신다.

정원 안의 우물이 식물들에게 수분을 공급하는 것 같이, 또한 농장을 통하여 흐르는 시내가 씨앗으로 싹을 내게 하고 자라게 하며 열매를 맺도록 함과 같이 하나님의 영은 성도 안에서 역사하신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이끄시고 반석에게 말하시는그분은 수분공급에 부족이 없으시다. 그분의 잎사귀는 푸르를 것이며 또한 종려나무처럼 그분은 생기와 영양이 충만할 것이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은 연약한 성도를 새롭게 하며 주위의 심령이 가난한 죄인들의 삶에 생수를 흐르게 한다. 그분을 의지하는 영혼은 물댄 동산 같고 물이 마르지 않는 샘과 같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젊은 성도여,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함을 알도록 간구하라. 경건케 하며 열매를 맺게 하는 샘물을 깊이 들이마시라. 또한 생명의 근원이 되신 그분의 상한 옆구리로부터, 만족을 주지 못하는 세상의 깨어진 물통에게로 당신을 유혹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피하고 멀리하라.

 

(1983 2월호)

 

'횃불 > 1983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노래  (0) 2012.10.10
이스라엘의 노래 - 시편 칠십이편  (0) 2012.10.10
이란에서 두번 태어난 어느 알미니아 사람  (0) 2012.10.10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을 알았더면....  (0) 2012.10.10
예레미야  (0) 2012.10.10
하나님의 지혜  (0) 2012.10.10
여성의 사역  (0) 2012.10.10
주 교사샘터 - 에디오피아 내시  (0) 2012.10.10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