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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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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18. 08:03 횃불/1983년

므비보셋(4)

-찰스.스탠리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안에 있는 은혜의 구원을 깨달은 사람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애쓰는 오늘날의 모든 사람의 모형인 이 두 사람의 역사를 잠시 추적해보고자 한다.

사무엘하 15장에서 우리는 압살롬의 반역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있다. 다윗 왕이 버림받아 예루살렘을 떠나갈 때, 버림받으신 예수께서 건너셨던 그 기드론 시내를 건넜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온 땅 사람들이 대성통곡하며 모든 인민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예수께서 버림받으셨던 그 밤에 그 시내를 건널 때 같이 건너갔던 몇 사람이 있었지만 그들은 단 한 시간도 그분과 함께 깨어 있을 수 없었다.

30절에는 이같이 기록되어 있다.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울며 올라가니라.”

예수께서도 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 죽임을 당하실 것을 내다보시고 그의 제자들을 이끌고 이 산으로 가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에서 일으키사 하늘에 올리심으로 세상에서 버림받은 그분을 영광으로 영접하셨다.

다윗왕이 버림받아 감람산 길로 올라간 후에 왕 앞에 나타난 시바의 성품을 사무엘하 16:1-4에서 볼 수 있다. 시바는 왕을 크게 섬긴 것으로 나타나는데 나귀에 떡과 건포도와 과일과 포도주를 잔뜩 싣고 왕께 나아왔다. 다윗은 그에게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 왔느냐?”며 므비보셋의 처지를 물었다. 시바가 왕에게 고하기를 그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며 자기 아비의 나라를 도로 찾으려고 한다고 하였다. 참으로 자기 의를 세우려는 종교를 가진 사람은 시바와 같다. 외관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 속의 비밀을 알고 계신다. 시바에게 있어서 그 겉모양은 대단히 열정적이고 헌신하는 것 같아 보였다. 아마도 그는 아름다운 말을 구사하며 근사한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위선이었다.

버림받았던 다윗왕이 돌아오는 날(삼하 19:24-30) 므비보셋은 왕을 맞으러 나갔다. 그렇다. 버림받은 사랑하는 예수께서 돌아오시는 날 그분의 모든 은혜의 자녀들이, 잠자고 있는 자들이나 살아있는 자들이 그분을 맞으러 공중으로 올라갈 것이다(살전 4:15-18).

므비보셋의 마음은 어떠했는가? 다음의 아름다운 말씀을 살펴보자. “므비보셋은 왕의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 발을 맵시내지 아니하며 그 수염을 깍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다윗의 은혜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그의 마음은 버림받은 그 왕에 대한 애정으로 고동치고 있었으며 사랑하는 그가 돌아올 때를 기다리며 애통하는 자리 외에는 세상의 다른 어떤 자리라도 취하기에는 너무나 그의 애정이 깊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도 버림받으시던 밤에 이것을 생각하지 않으셨던가?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16:19,20).

, 우리는 버림받으신 주님의 심정에 조금도 보답하지 못하고 있다. 므비보셋이 취하였던 자리, 우리가 사랑하는 주의 돌아오심을 기다리며 애통하고 있는 자리 외에 다른 어떤 자리라도 취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잊어버리게 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시바가 왕께 갖다 바친 그 실과와 떡과 포도주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뇨?”

이제 진실은 밝혀지게 된다. 나귀에 한 짐 가득 실과를 준비했던 사람은 므비보셋이었다. 그러나 그는 절뚝발이였던고로 시바가 그 나귀를 빼앗아 타고 왕 앞에 나타나 자신이 그 모든 것을 준비해 가지고 온 것처럼 위선의 가면을 쓰고 므비보셋을 모함했던 것이다.

그러면 은혜에 깊이 감동되었던 므비보셋의 말을 들어보자.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내 아비의 온 집이 내 주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셨사오니····.”

은혜가 주는 놀라운 확신이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순전한 은혜로 당신을 그분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신 것을 온전히 확신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님의 오심을 큰 기쁨으로 기다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이에 대한 므비보셋의 대답은 매우 아름답다.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셨으니 저(시바)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므비보셋이 원했던 것은 그 밭이 아니다. 이제 그가 몹시도 원했던 것이 이루어졌다. 그것은 바로 자기에게 은총을 베푸셨던 분을 맞이하는 것이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께 사로잡히게 했다. 그 밭이 문제가 아니다. 바울은 확실히 말한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3:8).

우리는 더욱 므비보셋과 같아야 하며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 강림하심을 기다리던 데살로니가 성도와 같아야 한다. 므비보셋은 절뚝발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왕의 그 은총을 온전한 확신으로 받아들여 그의 사랑의 실재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그가 돌아올 때까지 많은 비난을 참아가며 큰 인내로 그의 올라옴을 기다렸다. 데살로니가의 성도들 역시 능력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기쁜 소식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받아들여 큰 확신 가운데 인내해 가며 오히려 기쁨으로 그들의 원수들에게서 오는 모든 모욕과 환란을 참았다. 그같이 인내할 수 있었던 능력의 비결은 무엇인가? 그들은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는 예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참 자녀는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비방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놀라운 날이 오고 있다. 우리가 기다리고 계신 그분이 속히 오실 것을 누가 전할 수 있겠는가? 그분의 마지막 말씀이 여기 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22:20).

다윗왕이 돌아왔다면 다윗의 주가 되시는 예수께서 돌아오시지 않으시겠는가! 우리의 눈이 곧 그분을 보게 될 것이다. 오오, 빛나는 복된 소망이여! 우리의 소망은 예언의 말씀이 모두 이루어지는 천년왕국이 아니다. 그것은 그 때에 해당한 자들에 대한 축복이다. 다만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피로 씻음받은 신자들이 보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소망은 주 예수님의 친히 나타나심이다.

이 아름다운 그림은 사무엘하 21장에 한폭이 더 펼쳐져 있다. 사울의 집에 내린 심판의 날에 대한 그림이다.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여기에서 이 은혜의 자녀의 역사는 끝난다. 그러면 머지않아 예수께서 돌아오셔서 그분의 왕국을 세우실 때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의 영광을 누릴 것이다. 더욱 크고 흰 보좌가 설치될 것이며 아담의 타락한 모든 자손이 그 보좌 앞에 설 것인데 은혜의 권속에 들어간 자는 한 사람이라도 그 영원을 결정짓는 자리에 서지 않을 것이다.

지각없이 구원을 스스로 이루려고 애쓰는 죄인이여, 그 날에 어떻게 될 것인가? 율법을 지켰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가 바로 율법을 범한 자가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는 감히 우리의 행위로 그 보좌 앞에 설 수 있는가?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자기 이웃보다 낫다고 자처하는 사람은 위선자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단 한 사람도 예외일 수 없다. 어떤 사람도 자기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이 만일 나는 죄인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그대로 해보라고 하라. 그러나 죄인은 사함을 받아야 한다. “피흘림이 있은즉 사함을 받았느니라.”

,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 예수여,

당신은 당신의 백성이 죄로 말미암아 받을

그 진노와 저주와 심판을 다 가지고 가버리셨기에

이제 아무것도 가로막을 수 없는 그 은혜와 영원한 평강은

당신 안에서 안식하는 모든 영혼의 행복한 분깃이니이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라. “내가 반드시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그러면 그 은혜에 보답하는 행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 참으로 구원받은 믿음에서 얻어진 열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영의 봉사가 있을 것이다.

사람 앞에서 선하게 보이는 그 수많은 일들이 실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사람이 자기 의를 세우려는 행위의 무거운 짐을 스스로 잔뜩 짊어지고 있지만 실상은 그것이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총을 거절하는 것밖에 안되는 것이다.

보잘것없는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의 확신이 깊어질수록 더욱더 죄에 대한 당신의 증오도 깊어지며, 그리스도를 향한 당신의 온전한 믿음의 헌신은 가득하게 될 것이며, 더욱 진지하게 하늘로부터 그분의 돌아오심을 인내로써 기다리게 될 것이다.

 

(1983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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