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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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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18. 10:54 횃불/1983년

의사의 눈을 통해 본 병 고치는 기적

-아더 c.

저자인 아더 c. 힐 박사는 캐나다에 있는 현직 의사로서 수십년 동안 의료사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또한 주님을 위한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성경을 깊이 공부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육체를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병 고치는 기적에 관해서는 의사의 눈을 가지고 수 십년 동안 탐구 조사를 해왔으며, 이 어려운 주제에 대한 저자의 명쾌한 해설은 여러 독자들의 궁금증을 시원히 풀어주게 될 것입니다.

 

머 리 말

 

"병 고치는 기적"이라는 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진실성을 알고 싶어합니다. 저는 이 문제에 관해서 거의 45년 동안이나 탐구 조사를 해왔으며 많은 생각을 한 끝에 그 결과를 지상(紙上)을 사용하여 다른 분들과 나누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병 고치는 기적에 관하여 쓴 많은 책과 기사를 읽었습니다. 또한 병 고치는 기적으로 소문이 난 여러 곳을 찾아 다니면서 면밀히 조사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이 문제에 관한 주님의 뜻이 어떠한지를 옳게 분별하려고 많은 애를 썼습니다.

이제 저는 이 주제에 관하여 저의 견해를 신중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가.

말씀을 드리기 전에 먼저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싶은 것은, 첫째로 제가 무엇을 말하는 데에 있어서 일인칭 단수인 라는 표현을 부득불 많이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제가 쓰고자 하는 많은 부분이 저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독자께서 병 고치는 기적에 대한 저의 진정한 견해를 이해하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저의 글을 끝까지 읽어 보시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이 주제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다른 여러 경우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실상을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부정확한 관찰을 하거나 자기가 믿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서는 먼저 선입관을 갖고서 대하는 경향이 있음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항상 진실을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허위란 그것이 아무리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일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 아직도 모든 진리를 완전히 알고 있지 못하며, 만일 저에게도 실수나 잘못이 있다면 언제든지 고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가장 위대하신 의사

기적으로 병을 고치시는 주님의 능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즉시 그리고 완전히 병을 고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또한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이 기록된 대로 사실인 것을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병자를 고치셨을 뿐만아니라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셨으며, 죽은 자를 살리셨으며,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폭풍우를 잠잠하게 하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심으로써 온 세상 사람들에게 기적 중의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병을 고치실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기적으로 병을 고치시는가?”하는 문제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 문제에 대해 몇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병 고치는 기적이란 이름 아래 우리 주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성경에서는 주님이나 혹은 제자들이 병을 고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스스로 선전하고 다닌 예가 나와있지 않으며, 병 고치는 특별집회 같은 것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요즈음 텔레비젼에서 병 고치는 기적에 관한 프로그램을 자주 방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침 일찍 여러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을 두루 시청한 어느 시청자는 그 신빙성을 확인해 보지도 않고 병 고치는 기적에 대해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어댔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한 시청자로부터 방송국으로 전화가 걸려 왔는데, 그는 자기의 눈이 실명해서 유리로 만든 눈을 끼워놓은 자리에 주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셔서 정상적인 눈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나운서는 즉시 방송으로 그 소식을 알리면서, 모든 시청자들에게 이 기적을 일으키신 주님을 찬양하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병 고치는 사역에 대한 주님의 태도를 살펴봄으로써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과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기적으로 병을 고치심으로써 얻게 되는 명성을 피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1:23-39에서 주님의 병 고치시는 사역을 주의깊게 공부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러한 모범은 다른 곳에서도 계속 되풀이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주님께서는 기적으로 병을 고치십니다.

2. 그 후 주님의 소문은 널리 퍼지게 됩니다.

3. 이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지만

4. 주님께서는 자꾸 몰려드는 군중을 피하여 그 지역을 떠나십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38)

1:45에서는 그 이유가 나와있는데, 주님의 기적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호기심 많은 군중들은 주님의 말씀의 사역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더라도 오늘날에 일어나고 있는 소위 병 고치는 운동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병고치는 일을 공공연하게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특정한 교리나 또는 육체적인 훈련같은 것을 주장하는 여러 종파나 단체의 대표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과 선교사 연합이나 오순절파와 같은 단체들이 병 고치는 사역을 대단히 중시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게다가 최근에 들어와서는, “성공회로마 카톨릭” “크리스챤 사이언스뿐만 아니라 종교 단체의 이름을 갖지 않은 돌팔이 병 치료자들도 동일한 주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공통분모를 찾아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점차적으로 그것들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에 있어서 기적적인 병치료가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병 고치는 기적에 대해서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대부분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아닙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다음과 같은 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이나 사람들과의 관계가 온전하다면, 당신은 온전히 번창할 것이며, 육체적으로는 온전히 건강할 것입니다라는 가르침입니다. 이와 같은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알버트 E. 클리프 박사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는 팔에 감염된 병 때문에 일 주일 후에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서적인 교회의 경험은 그러한 가르침을 결코 지지하지 않습니다. 의학 분야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의 육신의 가시”(고후 12:7)가 어떤 종류의 눈병이었다는데 동의합니다( 4:13-15, 23:1주목하여 5절을 비교, 6:11큰 글자등을 참조하십시오). 바울은 어느 성도와 못지 않게 주님을 섬겼던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육체적인 질병을 늘 몸에 지니고 다녀야만 했습니다. 실은 그의 육신적인 외모도 연약했습니다. 바울의 서신서에는 그의 육신의 연약함이 자주 언급이 되고 있으며, 그는 아직 60세도 안된 사람이었는데 자신에 관하여 빌레몬에게 기록하기를 나이 많은 나 바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아주 훌륭한 하나님의 일군이었는데도 그는 자주 나는 병을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딤전 5:23). 바울은 병든 드로비모를 밀레도에 남겨놓아야만 했습니다(딤후 4:20). 또한 바울은.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던 에바브로디도를 돌보아야만 했었습니다( 2: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모든 사람들은 훌륭한 주님의 일군들이었습니다.

성경이 기록된 이후에 다른 많은 주님의 훌륭한 일군들도 병과 신체적 연약 때문에 고생을 했고, 더러는 일찍 죽었습니다. 그와 같은 분들의 이름을 들자면, 죤 캘빈,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프랜시스 리들리 해버걸, 로버트 머레이 맥치니, 찰스 해던 스펄젼, 훼니크로스비 등 이루 헤아릴 수없이 많습니다. 반면에 많은 세상적인 그리스도인들과 경건치 못한 불신자들은 최상의 건강을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건강한 것이 결로 육체적인 건강을 보장해준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한다면 결코 병들지 않는다고 가르치므로 많은 악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많은 선한 사람들이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번민과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면 나이 많은 크리스챤 여성이 중한 심장병으로 매우 고생하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결혼한 딸이 그녀를 돌보고 있을 때, 한 크리스챤 친구가 그녀의 딸에게 만일 어머니를 위해 믿음의 기도를 할만한 영적인 능력이 있다면 어머니는 고침을 받게 될 것이라고 계속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국 그 어머니는 죽었고, 그 젊은 딸은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그와 같은 정신적인 고통에서 해방될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병을 고치는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할까요? 물론 관심을 가져야만 하며, 자신이나 가족 중에서 누가 병이 들면, 하나님께서 고쳐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는 하늘의 모든 축복들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밑에 믿음으로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서 시인하고 영접한 모든 사람은 어떠한 죄도 다 완전히 씻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영접함을 받았으며, 모든 영적인 필요가 채워 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 살 동안에는 우리의 육체적인 필요가 다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고후 5:4)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우리의 몸을 구속하실 때까지 배고픔과 질병과 사별의 슬픔을 당해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입니다. 그 때까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어찌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병 치료자라 할지라도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크리스챤 사이언스의 창시자 에리 에디 베이커는 89세까지 살았지만 결국 그녀도 죽었습니다. 그녀가 죽은 후 며칠 동안은 그 사실이 숨겨졌는데. 그것은 그녀의 추종자들이 혹시 그녀가 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녀도 모든 육체가 가는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추종자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부 통계로는 병 치료를 선전하는 어느 종파의 추종자도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았다든지 혹은 더 건강했다든지 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캐나다의 퀘백 주에는 다른 데에 비해 성당과 성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메리카 대륙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병 고치는 일이 널리 유포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병과 사망률은 수년 동안 다른 데에 비해 높았었습니다. 요즈음에 들어와서는 퀘백 주의 환자 수와 사망률이 다른 지역과 비슷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성당이나 성지가 많아서가 아니라 좋은 병원과 의료적인 처우가 개선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축복들을 풍성히 주셨습니다( 1:3). 그러나 그러한 축복들은 본질적으로 하늘에 속한 영적인 것이며 현세적인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육신의 가시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했던 것처럼, 우리들이 이 땅 위에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는 주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그러므로 우리도 바울과 같이 기쁨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하므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량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하나님의 원리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동안 합리적이고 적절한 방법으로 최대한의 노력을 하여 문제들을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몇 개의 떡과 물고기를 사용하여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수천명의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음식이 공급되는 것을 기대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며, 오히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살후 3:10). 성경 시대 이후로 그 누구도 성경 시대와 같은 기적으로 음식을 공급받았다는 사실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어느 곳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재난이 닥치게 되면,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가지 물질들을 함께 모아서 재난 당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의복을 공급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에 대한 좋은 실례가 행 11:27-30에 잘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병이 들었을 때에도 오늘날 주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그 병을 치료하기를 원하신다고 믿어집니다. 수년 전에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적도지방으로 파송된 어떤 선교사들이 말라리아에 감염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말라리아 치료제인 키니네 약을 복용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기 위해서는 어떤 약도 먹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으며, 오로지 주님께서 건강하게 해주실 것을 굳게 믿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가 지나자, 임신중인 부인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반면에 키니네를 복용한 다른 선교사들은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그때의 회생자가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선교부에서는 결국 필요한 경우에는 키니네나 또 다른 말라리아 치료제를 복용하도록 선교사들에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선교사들은 지금 필요한 때면 약을 복용하면서 주님의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에 대한 그들의 헌신이 약해졌다든지, 또는 그들이 주님의 뜻을 덜 순종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말라리아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키니네를 복용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주신 방법이라는 것을 우리는 사실로서 받아드려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약을 사용하기를 기대하신다는 말입니다. 저는 눅 5:31에있는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많은 격려와 위로를 받고 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다음 호에 계속)

 

(1983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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