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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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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21. 21:59 횃불/1984년

광야의 성막(3)

출입문

-. 리치

출입문 ( 27:6~17)

성막의 출입문은 동쪽을 바라보면서,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 장막 앞의 뜰 중앙에 나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동쪽은 떠오르는 햇빛과 연관됩니다. 유다 지파는 동방 해 돋는 편즉 동쪽에 진을 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2:3). 떠오르는 태양의 광선은 자연히 문 있는 곳을 맨 처음 비추게 되며 이것은 출입문의 색깔을 드러냄과 동시에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뒷문이나 옆문 따위는 전혀 없었으며, 출입문으로 들어가려 하는 자는 반드시 빛에 노출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악한 행실 때문에 천성적으로 어두움을 사랑합니다. 빛은 그러한 인간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드러냅니다. 죄인은 구원 받기 전에 반드시 이 빛에 노출이 되어져야 하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자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빛을 회피하거나 자신의 상태를 숨겨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스스로 의로워지려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방법을 거절하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 겸손히 나아와서 빛으로 밝히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으며, 하나님께서 이미 마련해 놓으신 구원을 취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만의 방법을 고안해 내는 것입니다.

 

가인은 이런 사람들 중의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타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슬쩍 지나쳐 버리고, 흘려진 피를 띠나 흑암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찾았습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내 그 뒤를 따랐습니다. 스스로 의로워지려는 수많은 영혼들이 지금도 가인의 길을 밟고 있으며, 그들은 어린 양의 피를 떠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의 결국은 영원한 흑암의 처소인 사망뿐입니다.

 

출입문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출입문은 왜 오직 하나밖에 없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른 문을 마련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며, 이것에 대해 아무도 흠잡을 권리가 없습니다. 문은 왜 동쪽에 나있었을까요? 그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그렇게 섭리하고 계시며, 그분은 주권자로서 자신이 기뻐하시는 대로 하실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방법에 회의를 품고 그것을 비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 말씀의 권위와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하나의 문만을 주장하는 것은 편협한 신앙으로 간주됩니다. 하나님의 진리만을 옹호하는 것은 좁은 마음으로 낙인이 찍힙니다. “사람이 만일 성실하기만 하면 무엇을 믿든지간에 그는 틀림없이 천국에 갈 것이다라는 것이 널리 퍼진 신조(信條)입니다. “회의주의자이거나 신자이거나, 죄인이거나 성도이거나 간에, 비록 신앙이 다르다 할지라도 모든 사람은 똑같이 해피 앤드(happy and)’를 맞을 것이다라는 것이 인기있는 복음의 요지입니다.

 

사람들의 구미에 가장 잘 맞는 이 우화는 거짓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설교 단상에서 전파되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탐욕스럽게 잘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가장 나쁜 이 거짓된 복음을 요술통에서 끄집어 내어 천국으로 가는 다양한 길을 보여주는 사람은 자비로운 사람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데에 반()해 죄인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으며, 잃어진 자들을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예수님 이름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러한 주장은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이며, 그것을 부인하거나 거절하는 사람은 조만간에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출입문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왕자나 거지나 반백(半白)의 할아버지나 어린 아이나 모두 다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보리의 강도, 성 안의 여자, 바리새인 사울 등 모두가 다 똑같은 문을 통과했으며, 모두가 다 똑같은 구원으로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출입문은 낮았지만 넓었습니다.

그것의 높이는 5규빗이었으며, 넓이는 20규빗이었습니다. 이것은 높이와 넓이가 각각 10규빗씩인 성소의 문과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두 문의 면적은 같지만 성소의 문은 출입문에 비해 높이가 두배이고 넓이는 절반입니다. 따라서 성소의 문 앞에 서면 처음 드는 생각은 높이이고, 출입문 앞에 서면 넓이입니다.

 

이것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 성소는 오직 제사장들만을 위한 것이었으며 다른 사람은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금지 되었으므로 그 출입구는 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들이 지닌 특권은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변화받지 못한 죄인은 하나님의 가족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땅 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의 문은, 하나님께서 거기에 있도록 부르신 성도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보다 더 넓어서는 안됩니다. 변화받지 못한 자와 더럽힘을 받은 자가 들어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뜰로 들어가는 문은 넓으며 누구든지 그리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는 갈망하는 죄인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 마음에 나도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없을까?”라는 의문이 일어날 때, 그것에 대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축복스런 대답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하나님께서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오라라고 말씀하실 때에 그것은 진정으로 하신 것입니다.

 

어떤 설교자들은 택함을 받는 것에 대해 잘못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깨달은 사람을 당황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택함을 받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택함에 관한 문제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보이지 않는 진리의 사슬에 잘 정돈된 채로 놓여져 있으며, 하나님의 성막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특별한 축복과 위안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인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것은 하나님의 집 안에 들어와 있는 가족만이 가진 기업의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출입문 위에 굵고 분명하게 새겨진, 죄인들 앞에 빛나는 글씨는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오라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죄인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따뜻한 환영을 받고 안심하게 될 것입니다. 택함의 문제는 그에게 더 이상 제기되지 않을 것이며, 노인의 탕자 아들처럼 입맞춤과 제일 좋은 옷과 가락지는 모두 그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이 만일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길로 들어가는 것을 거절한다면, 그는 자신에게는 구원이 베풀어지지 않았다고 결코 변명할 수 없으며,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에 빠진 영혼이 나는 택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고 여기에 와 있다라고 결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 문은 모든 사람이 들어가기에 충분히 넓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예수님의 한탄은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정말 가치없는 존재야. 나는 그 문으로 들어가기엔 너무나 악해.” , 죄인이여, 그 문은 선한 사람들을 위해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 사람들을 위해 열려 있습니다. 복음이란 죄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기쁜 소식이며, 하나님의 구원은 잃어진 자를 위한 것입니다. 열려진 문안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십시오. 당신의 죄악이 당신의 여권입니다. 하나님의 초청이 당신을 환영한다는 확실한 보증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길을 벗어나게 하려고 당신을 조롱하며, 현재는 아무도 구원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하는 몰지각한 무리들을 무시하십시오. 모순되고 시끄럽기만 한, 세상의 모든 소리와 인간의 모든 궤변에 당신의 귀를 막고 오직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말씀은 확실한 약속입니다.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나 불확실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문으로 들어갔으며, 그들은 모두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당신도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출입문으로 들어가는 데는 단 한발자국이면 되었습니다.

한 순간 범죄자는 출입문 밖에 있었고, 세마포장이 그를 거슬러 그를 밖에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안에 있고, 세마포장은 그를 위하여 모든 주위를 둘러싸서 그를 안에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것은 길게 끄는 지루한 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개월 또는 수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순간에 이루어집니다. 그 순간이란, 죄인이 자기 자신과는 더 이상 손을 떼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자신의 의를 통해 하나님께 받아들여 지기를 기대하는 것을 그치고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들어갈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변이(麥移)를 일으키겠습니까!

사망에서 생명으로, 흑암에서 광명으로, 사단에서 하나님께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에 있게 됩니다. 그는 더 이상 원수가 아니요 아들입니다. 한 때 그를 밖에 두었던 세마포장은 이제 그를 안에 두는 것입니다. 그는 은혜 안에 서며, ()는 그의 쪽에 있습니다. 그는 세마포장이 은()에 어떻게 매달려 있으며 놋받침 위에 세워진 기둥들이 세마포장을 어떻게 지지하고 있는지 보게 됩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의를 통해 자신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확실하고 화평스럽습니까!

 

이 얼마나 안전하고 만족스럽습니까!

죄인이여, 너무 늦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시지 않겠습니까?

활짝 열린 그 문으로 오늘 들어가시지 않겠습니까?

 

(1984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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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