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2. 11. 7. 12:02 횃불/1985년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 윌리암 윌리암즈

3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딤후 3:13)

제 나이가 15살에 이르자 저는 제가 원하던 선장이란 직업에 적합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충분한 지식을 쌓았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그만 배와 기관 만들기를 좋아하여 그것을 소일거리로 삼았습니다. 여왕의 기차는 제가 다니던 학교가 있는 마을로 일 년에 두 번 통과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빅토리아 여왕과 군인들을 보러 갔지만, 저는 기차의 기관을 보러 갔습니다. 제가 10살쯤 되었을 때 언젠가 기차가 멈추었습니다. 기관사가 연기 통을 열었을 때 물이 보일러에서 밖으로 쏟아지지 않는 것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제가 기관차에 관해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저는 멋있는 교장 선생님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만약 제가 그분의 노고의 진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지혜롭기만 했다면 그분은 저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그분은 저의 부모님께 저를 그분의 친구에게 견습 목수로 보내라고 조언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저의 아버님께 저를 목사로 만들라고 조언하시면서 최선을 다해 저를 도와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제안 중 어느 것도 제 흥미를 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백부님은 저에게 대수(對數), logarithm)를 가르쳐 해상 생활에 더 적합하게 만들 목적으로 저를 스털링셔에 있는 목사관으로 데려 가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저를 너무 풀어 주셨습니다. 그분이 아주 많은 장서를 가지고 계셨던 관계로 저는 그분의 책들을 한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다른 성직자들과 학생들을 교환할 때 저를 데리고 가곤 하셨으므로 그 결과 저는 그 일의 속 내막 중 일부를 알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제가 그분의 서재에 있을 때 그분의 친구 한 명이 찾아와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죠오지, 일요일에 내가 쓸만한 거 뭣 좀 없나? 이러저러한 일 때문에 바빠서 쓸 시간을 내지 못했다네.” 그러면 저의 백부님은 그분에게 설교를 둔 책장으로 가서 적당한 것을 찾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적당한 것을 하나 택하면 그 친구분은 이것을 사용할 수 있겠군하고 말씀하시며 그것을 상의의 뒷자락에 있는 포켓 속으로 집어 넣으셨습니다. 일요일이 되면 그분의 회중들은 종종 오늘 우리 목사님의 설교가 좋지 않아요?”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들 모두는 그분이 저의 백부님이 준비해 놓은 설교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휘스트(카아드 놀이의 일종)와 커얼링(얼음판에서 둥근 돌을 미끄러뜨려 과녁에 맞히는 놀이)에 많은 시간을 소비했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하나님 말씀의 신빙성에 관해 토론하는 것을 듣도록 결코 용납되지 못했습니다. 어떤 성직자는 고래가 요나를 절대로 삼키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그것이 허황된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감수성이 강한 제 어린 마음에는 소위 목사라는 사람에 의해 성경의 신적인 영감성(靈感性)에 관한 첫 의심이 심어졌습니다. 때때로 제가 그 도시를 방문했을 때 저의 백부님이 유명인사라는 것과 그분의 동료 성직자들이 그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호텔의 은밀한 방에서 이 존경 받는신사들은 술을 먹곤 했습니다. 저에게는 주로 레몬수가 주어졌습니다. 저의 좋으신 백부님이 그것보다 더 독한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 성직자들은 선하고 존경 받을 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설교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직업이었지 열망으로 말미암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전해야만 하는 것들을 믿지 않았으며, 가장 거룩한 것들에 관해 농담을 했습니다. 나중에 저의 백부님은 그분의 견해를 바꾸어 복음적으로 되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18년을 베네주엘라에서 보낸 후 그분을 방문했을 때 그분은 저에게 자기는 자기 영혼을 구원하시는 주 예수님의 피를 온전히 의지하고 인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제가 그분의 교회에서 설교하기를 바라셨지만 제가 그것을 거절하자 실망해 하셨습니다.

어느 날 글래스고우에서 온 순회 판매원 한 분이 저의 백부님을 방문하셨습니다. 저는 두 분이 오랜 친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조용한 가운데서 책을 읽으려고 다른 방으로 갔습니다. 꽤 대화를 나눈 후 저의 백부님은 그분에게 제가 조카라는 것과 제가 선장이 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들은 그것이 처음에는 저에게 아주 어려운 생활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 순회판매원은 백부님께 자기 아들 하나가 선박 기관사가 되려고 공부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은 큰 대서양 정기선들에서 점점 중요해져 가는 직업이 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기 생각에는 저의 백부님이 저를 보내 훈련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인접한 방에 있다는 것을 모르셨지만 저는 그 모든 말을 귀너머로 다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저를 불러들여 제가 선박 기관사가 되고 싶으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저는 그러면 제가 바다로 가야 할까요?”하고 되물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당시 선박 기관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그렇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 선박의 기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감으로 인해 몹시 기뻤습니다. 제가 처음 보았다고 생각했던 기관은 건축중인 공장의 거대한 받침 위에 놓여 있던 강력한 펌프 종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셨으며 그분의 놀라운 방법으로 장래의 섬김을 위해 저를 적합하게 만드시고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기관 공장과 조선소에서 받은 훈련은 철학과 그 비슷한 과학들의 강의 한다스 만큼이나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흑암 가운데 있는 로마 카톨릭 교도들에게 제가 교훈과 행위에 있어서 그들의 신부들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교사에게 있어서 세우고, 건축하고, 일하는 재능은 보잘것없는 자산이 결코 아닙니다. 저는 언젠가 우리를 태운 기차의 조그만 기관차가 베네주엘라의 팔마 솔라에서 고장나 얼마 동안 꼼짝 못하고 있었던 때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저는 앞으로 가 정상으로 회복하는 일을 도와 준 후 승객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 복음적인 전도자들은 우리의 신부들과 같지않아요. 기관차를 고칠 수 있는 신부를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요?”

1898 5 9은 저의 이력 가운데서 기념될만한 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날 저는 견습 기관사의 자격으로 애버딘에 있는 홀 앤드 코 조선소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저는 그 사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배웠습니다. 저는 약간 나쁜 기질을 가지고 있는 영국인의 조수로 배당되었습니다. 얼마 있어서 저는 절단기 뿐만 아니라 그 영국인에게 비눗물을 교묘히 뿜는 일에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저는 점차로 승진하여평면 탁자(surface table)”에서 일하는 조수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 탁자에서 기관의 각종 부품들이 구멍이 뚫려져야 한다든지 평삭(平削) 되어져야 한다든지 하는 등등의 표시를 받았습니다. 케네쓰 맥케이라 불리는 더 오래된 도제(徒弟)가 그것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재치 있는 도시 청년이었던 그는 세상의 방식에 관한 저의 순진과 결백을 보고 몹시 비웃곤 했습니다. 감독자가 밖에 나가고 없을 때면 평면 탁자는 모든 남자들의 집합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동, 여자, 술에 관한 대화가 거침없이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제가 들었던 것들 중에서 많은 부분들이 저에게 새롭고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저는 그 소년들의 언어를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입만 열었다 하면 거의 욕을 했으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었습니다. 저는 때때로 그들에게 충고를 했으며 그들이 그렇게 신성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질문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제가 종교적인 소년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다고 대답했으며, 곧 그 종교를 저에게서 두들겨 내쫓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그들의 말과 행동들을 조금씩 조금씩 배워갔으며 교제를 잘 하는 사람이 되자 이내 많은 친구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맥케이는 가수였고 저도 어느 정도 부를 줄 알았으므로 우리는 회전 선반의 전단기(剪斷機) 위에 앉아 노래를 불러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곤 했습니다. 그 조선소에는 수 백 명의 남자들이 있었지만 저는 그들 중에 그리스도인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저의 영혼에 대해 염려해 주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중에는 주님의 겁많은 제자들이 몇 명쯤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공개적으로 시인하거나 우리의 영혼에 관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마귀는 그의 훌륭한 대사(大使)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용하고 상냥한 모모 기관사는 다윈의 진화론의 훌륭한 옹호자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헉슬리 교수의 책 몇 권을 읽어 보라고 주었습니다

일요일이 되면 저는 한 교회 또는 다른 교회로 가곤 했었지만 제가 집에 있을 때 들었던 것과 똑같은, 무미건조하고 냉랭하고 직업적인 설교가 거기에도 있었습니다. 이 때쯤 성직자들에 대한 저의 신뢰감은 아주 약해져 있었습니다. 언젠가 한 번 어떤 친구가 저를 데리고 가 글래스고우의 W.D.던 씨의 말을 듣게 했습니다. 그의 스타일과 진지함은 저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계속)

 

(1985 10월호)

 

'횃불 > 1985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험의 때  (0) 2012.11.07
나를 기념하라  (0) 2012.11.07
하나님의 시간표  (0) 2012.11.07
하나님의 대답  (0) 2012.11.07
그리스도인의 모임 - 특징  (0) 2012.11.07
그리스도의 심판대  (0) 2012.11.07
당신의 짐을  (0) 2012.11.07
누가 그리스도인인가?  (0) 2012.11.06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