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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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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일에 열심하는 백성 삼으심

엘튼 페어필드

디도서 2 11~14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디도서의 주제를 저희들이 방금 읽었습니다. 이 서신서에는 구원이 자주 나오는데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또한 이 서신에는 경건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오는 것을 보는데 이것은 여러분의 구원의 목적입니다. 여러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신 목적은 여러분의 특성이 경건함,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건으로 여러분의 특징이 지어지기를 목적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의롭게 되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의 구원자이십니다. 13절에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크신 하나님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크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주셨는지에 대한 목적이 여기 들어있습니다. 14절에 너무나 명확히 나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놓칠 수 없습니다.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이것은 모든 부정적인 것에서 우리를 건져 올리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나오는 장면인데, 죄와 불법에서 나오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백성이 되어 가는 장면이 또한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의 행동을 보십시오.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법정에 갈 일이 있다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법정에 고소를 당한다면 선한 일에 열심하는 것이 질투가 되어서 고소하는 그런 정도의 표현입니다. 법정에 충분한 증거가 제시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법정에서 증거가 너무나도 충분해서 질투가 날만큼 열심하는 것에 유죄다라고 증거 될만합니다. 그래서 그 법정의 재판장이 이러이러해서 증거가 명백하니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틀림없다고 판결이 내립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 도전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바꾸셔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이웃이 어떻게 표현해 주고 있는 모습입니까? 이 서신은 행동에 대한, 생활에 관한 부분입니다. 1장은 하나님의 지역교회 지도자들의 태도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2장은 그리스도인 각자의 행동에 관해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3장에는 세상에 있는 사회에서의 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실질적인 책입니다. 만약에 에스겔서를 읽으면 원하시면 밤새도록 할 수 있습니다만 에스겔서에는 많은 것들의 해야 될 것들이 있지만 그러한 교제는 그대로 두고, 매우 단순하면서 실제적인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계시를 말씀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를 실제로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경건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매일 매일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여러분의 삶이 바뀔 것입니다. 여러분을 순수한 형제 자매로 만들기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기억하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주님께서 어떤 희생을 치르신 것을 기억한다면 여러분은 바뀌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은 소중한 재산입니다. 여러분들은 택하신 백성입니다. 성경에서 다른 것을 보셨습니까? 물론 여러분이 가지신 것에 있을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신명기 7 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이스라엘에게 내가 택한 백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너희들이 대단하기 때문에 너희를 택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것은 순전히 은혜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 앞에 선 것도 온전히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만약에 거듭나지 않았다면 오늘 어디에 있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마 죽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죄는 종종 이런 죽음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어디론가 갈 것입니다. 어디선가 책을 집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 어떤 즐거움을 추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평범한 일본사람이나 캐나다 사람처럼 TV앞에 앉아 시청하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과는 상관없이 주님께서는 은혜스럽게도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저를 구속하시고, 택하셔서 저를 거룩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셔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가나안 땅을 종종 천국으로 생각하실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수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물론 천국에는 전쟁이 없습니다. 제가 천국에 간 때에는 육신과 마귀와 싸움이 끝난 뒤입니다. 구약성경의 가나안 땅의 모습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의 실제 삶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죄로부터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신명기 7 1절을 보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가서 얻을 땅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이라는 것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현실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얼마나 많은 땅을 점령하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디도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백성들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이 행동해야 할 태도가 있음을 사도 바울은 쓴 것입니다. 거룩한 삶, 경건한 삶, 그리고 선한 일이 가득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치르며 가나안 땅을 취하면서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 증거에 관해서 지역교회가 어떤 모습을 가져야 되는지는 내일 좀 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강조드리고 싶은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매일의 삶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타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10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그들에게 요구된 품행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감당해야 되는 전쟁들이 물론 그 앞에 있었습니다. 죽여야 되는 거인들도 있었습니다. 무너뜨려야 되는 엄청난 성들도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서를 보면 종종 실수들이 나오는데 이런 실수들은 우리들이 종종 겪는 것입니다. 기브아의 왕과의 여호수아가 싸우는 장면도 있습니다. 마치 먼데서 온 것처럼 곰팡이가 슨 떡을 만들고 다 헤어진 옷을 입고 나타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과 언약을 세웠습니다. 그들을 죽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바로 옆 동네 사람들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실수한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여호수아는 그 실수를 가지고 평생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가나안의 모습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모습과 아주 유사합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경험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죄의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의 삶 가운데도 거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이 힘이 세고 강력한 우리들의 죄가 거인처럼 우리의 삶 가운데 자리할 수도 있습니다. 절대로 외면할 수 없는 강력한 성처럼 여러분의 삶을 장악하고 있는 그런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디도서로 돌아와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바울을 통해서 권면하시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2 11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읽었으며 알고 있습니다. 12절에는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라고 합니다. , 좀 문제가 있는데요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근신하고 의롭고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됩니다. 여기서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거인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부분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있습니까? 제가 좀 무례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을 보자마자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엇이 있다고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왜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지 아시겠습니까? 그 사람이 바로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 마음을 잘 압니다. 저의 삶 속에 있는 거인을 제가 압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성들이 있다는 것을 제 마음 속에 압니다. 희망적인 것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그 구속자께서 저희들과 함께 그 가나안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입니다. 저희를 구속하시고 주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그 그리스도께서 지금 저희들과 함께 계시다는 것이 힘입니다.

20년 전에 제 마음 속에 있는 어떤 거인에 대해서 제가 기도를 한 것을 기억합니다. 오 주님 제가 이것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러 가는데 이 문제를 가지고는 만나러 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기도를 드려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어떤 거인 때문에 문제를 갖고 있는 상태에서 지금 당장 천국에 간다는 것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바는 경건입니다. 이 경건이라고 하는 말의 원 뜻은 선한 것과 예배라는 말입니다. 이 두 가지 선함과 예배가 합쳐서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께 향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표현이 구약성경에는 많이 나옵니다. 구약성경의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이 말과 지금 여기서 보고 있는 경건이라는 말은 같은 뜻입니다.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죄로 인한 거인과 죄로 인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성이라는 것이 있는 삶 가운데서 어떻게 거룩하다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땅에 들어갈 때 이스라엘에게 여호와께서 하신 약속을 기억하십니까? 계속, 계속 거듭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에서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약속하신 말씀이 이와 똑같다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똑같은 약속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삶 가운데서 이 거인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정욕들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내 삶 가운데서 패역한 부분을, 그 성이라는 부분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의로운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른손이 범죄하거든 끊어버리라, 만약 네 눈이 범죄하거든 빼어버리라. 주님께서 정말 손을 자르고 눈을 빼라고 말씀하신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실제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예를 든 것입니다.

주의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한국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라도 세상의 다른 곳에서는 이미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보는 것이 여러분들의 생각을 패역하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플러그를 뽑든지 아니면 전원 선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패역한 것들에서 멀리 도망 나와야 되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일본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인터넷을 해지하라고 한 것이 그 이유입니다. , 그것은 너무 심한데요. 오늘날에는 인터넷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저는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는 분들을 제가 압니다. 핸드폰. 핸드폰으로 무엇을 봅니까? 요즘 스마트폰 같은 것들 하는데 취소, 해지해야 하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나는 핸드폰 없이는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어요. 이 핸드폰을 떼기 위해서 주님께서 손을 자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을까요? 여러분들은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을 수 있겠습니다마는 저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만약 오늘 여러분들의 눈에 이런 거인이 있다면 집에 가셔서 이 거인과 대면하십시오. 관계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관계는 마치 가나안 땅에 있는 처리되어야 할 성과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이기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이 문제와 대면하셔야 합니다. 왜요?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심하게 못되게 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끊고 관계를 정산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왜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경건을 바라시는 것일까요? 왜 여러분이 의롭기를 주님께서는 바라시는 것인가요? 왜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경건하기를 바라시는 것일까요? 주님께서는 여러분들을 값주고 사셔서 주님의 특성을 나타내시는데 사용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구원 받으셨을 때에 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셨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을 구원하신 것을 인식한 날이 정말 괴로운 날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여러분들의 죄에 아직도 매달려 계십니까? 죄 가운데서 여전히 가고 싶어합니까? 여러분들이 구원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죄인을 원했습니까? 구원자를 원하셨습니까? 여러분이 구원받으신 그 날에 단번에 영원히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지금 와서 말하기를 , 불공평한데요. 죄를 조금은 허락해 주셔야 되는 것 아닙니까? 조금은 즐거움을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씀하겠습니까? 제가 아주 고약한 태도로 화를 내면서 저의 아내에게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형제는 자매에게 안 좋은 태도로 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서 말씀드리는 것이니 자매에게 절대로 화내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질문 1. 하나님께서 옳으십니까?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옳으십니까?

질문2.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복 주시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여러분들을 해하시기 위함입니까?

질문 3. 여러분은 누구에게 속해 있습니까?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 자신에게 속해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변화될 것이 있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바꾸고 싶으십니까? 성경의 여러가지 놀라운 부분들은 저희들은 밤새도록 말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놀라운 예언들에 대해서 밤이 새도록 말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 대해서 밤이 새도록 열띤 토론을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결혼을 했다 안했다를 가지고 2시간 넘게 싸울 수 있는 형제님도 아마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들어보십시오. 그러한 것 말고 여러분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어하십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내일 아침에 그냥 다시 돌아가야 될 것 같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어라 하지 않는다면 저희가 말씀집회를 가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실제 행하는 습관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들로부터 나와야 됩니다. 12절을 설명하면 14절이 바로 이러한 것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구속하신 것을 알기 때문에 또한 주님께서 저를 삶 가운데서 인도하실 줄을 분명히 압니다.

짧은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어떤 남자와 여자가 말씀집회에 갔습니다. 토론토 주변에서 그 당시는 거의 주말마다 말씀집회가 있었습니다. 일년 중에 때가 있는데 매 주말 마다 말씀집회를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 이제 지쳤다. 이번 주말에는 집회에 못 가겠다. 나한테는 아무 도움이 안되는 것 같애. 나는 아무 것도 배우는 것이 없는 것 같애. 말씀 전하시는 분은 이만큼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요만큼밖에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애. 그래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나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애.

이에 좋은 자매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차를 타고 그 집회를 가세요. 당신이 직접 말씀집회에 가서 말씀을 들으면 집에 올 때는 더 좋은 태도로 오게 될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읽고 배우면 여러분들의 태도가 좋아집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아는 만큼 여러분의 삶을 바꿉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닙니다. 그것을 믿으셔야 됩니다. 믿음이 오게 됩니다. 왜 그러한가 간단한 예를 드리겠습니다.

만약에 내가 길에 나갔는데 버스가 저기서 달려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분명히 차에 치일 것을 분명히 안다면 제가 하고 있는 행동을 바꾸지 않겠습니까? 버스가 지나갈 때까지 제가 멈추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이 나의 삶과 행동을 바꿉니다. 여러분들의 삶이 바뀌지 않고 있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실제로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이 바꾸셔야 될 무엇이 이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의 방법으로 여러분들에게 바뀌어야 되는 무엇이 있습니까? 오늘밤에 무언가를 위해서 기도를 해야 될 것들이 기억나십니까? 오늘밤 형제에게(자매에게) 사과해야 되거나 개선해야 되는 관계가 떠 오르십니까? 부모님은 혹시 자녀들에게 심하게 이야기 해서 자녀들에게 사과해야 되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무례하게 굴어서 혹시 자매님들이 남편에게 사과해야 되는 것은 없습니까? 여러분들의 의로움이 해방되도록 여러분의 눈을 패역한 것들이 자극하고 있지 않습니까? 경건하게 사는 것은 순수한 자유 가운데 사는 것이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누군가가 ! 하고 발견하는 그런 부분이 전혀 없는 순수한 자유 말입니다. 누군가가 옆에 와서 물어보려고 하면 혹시 무슨 두려움이 생기는 그런 것은 없습니까? 여러분이 거룩한 삶을 살고 계신다면 당당하실 것입니다. 순수한 자유라고 말씀드린 것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디도서 서신은 패역한 도성에 살고 있는 한 사람에게 보내진 서신입니다. 1 12절을 보면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라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엉뚱한 것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있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사람은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데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디도는 가증하고 복종치 아니하고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있는 사람입니다. 이 디도서는 그러한 곳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반대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소유로 삼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자신을 주시고 우리를 구속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들이 이 2 14절을 통해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나의 머리가, 나의 생각이 그리스도로 가득 차 있으면 내가 바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그리스도로 채우고자 하십니까?

2010 5 20 저녁 의왕모임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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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