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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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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모임의 인도자들

엘튼 페어필드

디도서 1

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4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6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8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10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11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 12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라 하니 13 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이는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 14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16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제가 한국에 온다고 하니까 자매가 저한테 말하기를 우리가 얼마나 존경해 왔는지를 한국에 가면 꼭 형제자매들께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왜 자매가 이 말을 했는지를 말씀드리면 자매의 부모님이 캐나다의 밴쿠버에 사십니다. 30년 만에 본래 살고 계시던 곳에서 이사를 하셨습니다. 장인은 복음 전도하시는 분이시기에 여러 나라를 다니십니다. 그래서 집에 잘 계시지 않습니다. 집에는 오랜 된 것들을 치울 것이 많은데 치울 시간이 없답니다. 지금은 아일랜드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저한테 전화를 하셨습니다. 한국에서 온 자매님들에게 집 구석구석을 모두 정리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집에 치울 것이 많은 큰 집인데 그것을 하실 힘이 없으신 일흔이 넘으신 분들이십니다. 자매의 식구들이 생각하기를 한국 성도들은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라고 합니다. 한국으로부터 온 자매님들이 매우 친절하고 잘 대해 주셔서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시간에 말씀드린 것은 이 디도서가 그리스도인의 행실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어제 디도서 2 14절을 묵상해 오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어젯밤 계속해서 나를 위해서 나를 구속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앞 시간에 말씀을 전하신 형제님은 주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예를 충분히 보여 주셨음을 충분히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규정이나 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을 바로 따라간다는 것이 저희들에게 매우 중요한 기초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멈춘다면 마치 물속에 빠져들어가는 베드로와 같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시선을 멈추어 버린다면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이 매우 힘들어지고 고통스러워질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호칭을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1절부터 4절까지는 하나의 문장입니다. 매우 훌륭한 진리를 4절까지 한 문장으로 써 내려왔습니다. 이 서신을 통해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어떻게 행실을 가져야 될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에서는 바울은(우리성경에는 뒤에 나옴) 하고 시작합니다. 이것은 마치 집의 종이라는 종으로서의 개념의 말입니다. 앞 시간의 말씀을 전하실 때 히브리 종을 문설주에 귀를 못박는 것을 말씀하실 때 저는 이 종을 사도바울로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 주인에게 잘 충성하고 밀착되어 있는 종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사랑과 헌신으로 주인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종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에 대해서 생각할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전언자이자 사도라는 것입니다(사도라는 말이 전언자와 같은 뜻이기도 함). 사도바울의 신분은 종이요 그가 하는 일의 목적은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매우 높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인데 그 교육을 받은 것 때문에 충분히 유명해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 서신에서 성도들에게 쓸 때에는 자기가 가장 높게 여기는 가치가 주님의 종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이고 종입니다. 그리고 종과 사도로서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2 14절에 따르면 우리는 그의 소유입니다. 그렇다면 그 소유답게 행동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시고 그리고 주신 믿음에 의해서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택하심이라는 의미를 아십니까? 하늘의 택하심을 깊이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은 자기의 지도자를 선택을 합니다. 택하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택해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택하심과 세우심에 대해서 많이 접하게 되는데 여기서 함께 생각할 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가 가져야만 하는 책임이 믿음입니다. 세우심이라는 말과 믿음이라는 말은 함께 가야 할 단어입니다. 여러분이 세우심을 입었는데 믿음이 없다면 엉뚱한 가르침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믿음이 있지만 그러나 여러분이 믿음이 있고 세움을 받지 못했다면 또한 잘못된 가르침 가운데 들어갈 것입니다. 이 양쪽을 같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만 이제 이 두 가지를 어떻게 함께 가지고 갈 것인지를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예를 든다면 한국에 기차가 많이 있는데 레일은 두 개입니다. 이 두 레일이 붙었을 때 기차가 달릴 수 없습니다. 한 쪽 레일로도 다닐 수 없으며, 양쪽 레일이 다 필요합니다. 이 그림을 이해하시겠습니까? 둘 다 필요하지만 합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세우심이라는 것과 믿음을 어느 선에서 맞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생각해 보시면 레일 한 가운데 서서 쭉 뻗어가는 레일 끝을 보면 둘은 붙지는 않습니다만 멀리 지평선 쪽을 보면 붙지는 않았지만 붙은 것처럼 보입니다. 이 두 개를 어떻게 합칠 것인지를 저는 할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인 택하심 그리고 사람의 책임인 믿음 이 두 가지가 필요하지만 이것을 합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가운데 끝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이 둘을 합칠 수가 있습니다. 저의 예가 약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계속 진행을 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도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받았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받게 하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 믿음을 갖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여기서 무엇이 진리이겠습니까? 1절에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무언가를 가르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이 석가탄신일이라고 합니다. 제가 아는 불교신자는 가끔 절에 가는 것을 아는데 가서 기도를 하겠죠. 그러나 그 종교는 자기 자신의 행동과 별로 관계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사는 곳 주변의 절에서 스님이 한달에 한번씩 동네로 봉양을 받으러 옵니다. 아마 기도를 많이 하며 불공을 드려주면 그쪽에서 돈을 많이 주고 그러는 모양입니다. 그 스님이 거룩한 사람입니까? 제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거룩한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죄송한 말이지만 일본에 있는 스님들은 대부분이 매우 고약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캐나다에 있는 로마 천주교 신부들이 아마도 가장 못된 사람들일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경건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는 믿음이 우리의 행위에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을 경건하고 거룩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종교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안된 것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 가운데 매우 고약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되기를 원하십니까? 그 열매로 그들을 알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하는 선한 사람은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면서 패역한 삶 가운데 사는 사람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1절에서 사도 바울은 경건함을 따라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이 삶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영향의 특징이 바로 이 경건함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절은 미래가 나와 있는데 영생이 있습니다. 이 영생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언제 약속하셨나요? 이 말을 이해하려고 합니다만 저는 가끔 햇갈릴 때가 있습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약속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창세전에 누구에게 약속하셨습니까? 이 약속은 항상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있는 약속입니다. 거짓말 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품고 계시다가 언제든지 주실 수 있을 때에 이것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전에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품고 계셨던 이 약속을 주님께서 드디어 3절에서 복음을 통해서 나타내셨습니다. 3절이 이것을 전해주고 있는데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전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고 바울은 분명히 인식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복음을 증거할 때마다 항상 기도하는 것은 복음증거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잘 전달이 되게 해주십사고 기도를 합니다.

지금까지 한 말을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마음속에 구원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 구원의 메시지를 전할 책임을 사도바울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그 전해진 구원의 말씀이 저희들에게 믿음을 주고 삶을 바꿉니다. 이것이 경건에 따른 진리입니다.

4절에는 이 편지의 수신자 이름인 디도가 나옵니다.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이 디도는 성경의 다른 부분 즉, 고린도후서, 사도행전에서도 나옵니다. 이 디도는 진리를 아주 이해하고 있는 매우 충성된 이방 성도로 보입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알고 고린도교회로 갔습니다. 바울이 위치한 곳에서 오랫동안 함께 거하며 가르침을 가르쳤습니다. 그레데 섬에 바울과 함께 갔을 때, 어떻게 함께 갔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아마 로마로 가는 길에 그레데를 지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때 바울은 죄수의 신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로 간 다음에 다시 복음을 전하러 갈 때 디도를 데리고 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에 바울은 다시 체포되어서 로마로 두번째 압송되고 거기서 처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사도 바울의 행적의 앞 부분만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5절에서 디도가 다른 복음전도의 일을 맡았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두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른 일꾼들과 함께 일했으며 항상 혼자 일하는 그런 일꾼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실로와도, 디모데와도, 디도와도 일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믿음을 갖고 있는 다른 일꾼들을 신뢰해서 함께 일했습니다. 디모데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같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바울 자신도 믿음에 강하지만 디도의 믿음도 강하다는 것을 인정했고 알아보았습니다. 이 신약 성경 가운데 이러한 믿음을 가진 분들이 항상 함께 일했다는 것을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자기 자신의 것만을 혼자 전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4절 처음에 같은 믿음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서로 공유가 가능한 믿음을 말합니다. 나는 진리를 붙들고 있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나는 진리를 세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말보다 더 나은 방법을 말씀드리면 내가 진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나를 붙들고 계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설령 믿지 않는다 할지라도 진리는 진리입니다. 진리는 저의 바깥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진리 쪽으로 돌아가면 진리가 내게 복이 됩니다. 진리가 저에게서부터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진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성경책을 가지고 있지만 이 성경책 안에 있는 말씀이 저를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도를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은 디도가 이 같이 같은 지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디도는 사도바울로부터 임무를 하나 선물 받았습니다. 디도야 보아라 이 여러 섬들 가운데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주님의 이름 아래로 하나씩 하나씩 모아라. 양무리처럼 모아라. 그러나 이리들이 그 가운데로 들어갈지 모른다. 거짓교사들이 이미 그들 가운데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이러한 섬들 가운데서 지역교회를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디도는 말씀듣기를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감독과 장로들을 택하신 분들을 알아보고 세우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태도를 보아서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들을 알아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증거를 위해서는 지역모임 내에서의 태도와 행실이 매우 중요한 핵심입니다. 사람들의 양무리가 있으면 이들 가운데 인도자가 필요합니다.

5절에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레데 섬에는 서울처럼 이렇게 큰 도시들이 아니라 작은 성들이 여러 개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로는 그레데 섬 전체를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마을의 성들을 관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장로들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2명 또는 그 이상을 말하는 것이며, 그리고 각 성마다 있어야 합니다. 장로를 세우라고 했는데 흠정역에서는 지명하다(ordain)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을 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디도가 자신의 권위로 형제님, 당신이 장로입니다 했을 때 디도로부터 무언가 능력이 들어가서 그렇게 말할 때 장로가 되어버리는 그런 것입니까? 만약 이런 식으로 했다면 사도 바울은 정말로 다른 표현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ordain(지명하다)라고 말씀했는데 지목하다, 알아보다라는 것은 그 나타나는 것을 실제로 분별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5 19절에 나오는 세우다라는 말과 동일한 말을 한번 보겠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여기서 죄인되다의 되다라는 말이 장로를 세우다 할 때의 영어에서는 지목하다, 지명하다 했을 때, 이 되다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죄인으로 만드셨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하나님께서 알아보신 것입니다. 아담이 범한 죄가 아담으로 하여금 죄인이 되게 만든 것입니다. 디도서 1장으로 돌아와서 어떠한 특별한 능력을 가진 디도가 성도를 장로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 된 것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죄인 된 것이기에 그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으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죄인으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디도가 사람들을 장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책임이 그 사람 안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 모임에 인도자들이 될 그 사람들의 생활을 본 것입니다. 모임의 인도자들의 생활의 기준은 매우 높습니다. 6~9절까지를 보면 매우 높은 기준이 요구됨을 알 수 있습니다. 다아비가 말하기를 이 기준은 너무 높아서 오늘날 장로가 될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다아비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는 틀린 것 같습니다. 이 기준은 물론 높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각 모임 가운데서 이 기준을 맞추는 장로가 있기를 바라십니다. 좀 어렵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장로들에게 어떠한 기준을 요구하시는지를 보겠습니다.

책망할 것이 없고 비난 받거나 비판 받을 일이 없음을 말합니다. 한 모임에 장로가 있는데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는 아 저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이 말이 듣기 어렵겠지만 하나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어떤 청년형제가 20세 때에 범죄를 저질러서 모임에서 출교가 되었습니다. 30년 후에 그 청년이 장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장로는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이 실패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양무리를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이제 가족을 보게 되면 믿는 자들 가운데 장로는 개인적인 그 가정의 삶도 바르게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에서는 그 이유가 아주 명백하게 나와있습니다. 자기 집을 돌아보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집을 돌아보리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특성을 말합니다. 한 아내를 둔 남자입니다. 다른 여자를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 가운데서 다른 여자로 인하여 부정하게 되는 일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의 아내에게 철저하게 헌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평생의 모든 삶 가운데서 그러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 아내에게 집중하고 헌신함으로써 다른데 흔들리지 않으므로 또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아내에게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주님께도 충실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의 아이들이 11, 9살 두 아이가 있는데 매우 시끄럽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해서 집회시간에는 얌전히 있습니다. 힘이 넘쳐나는 보통 아이들과 똑같습니다. 모임의 인도자로 계시는 분의 자녀는 통제된 가운데 있어야 됩니다. 디모데전서에서 장로들에 관한 내용들에서 그 대상이 되는 장로들의 자녀들이 매우 어렸던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그러나 디도서에 나오는 장로들의 자녀들은 조금 나이가 들어 보입니다. 아주 어린 자녀들은 불순종한다고 해서 송사될 일이 없을 것입니다. 혹시 불법이나 무리하게 불순종하는 일로서, 10대 정도의 자녀들이라면 불순종하는 일이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모임을 인도하는 분은 믿는 자녀를 갖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는 자녀를 가지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여기 디도서 1장에서의 자녀는 이미 믿음을 갖고 있는 믿는 자녀를 두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저한테 불만이 있는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성도님들이 계실 수 있겠습니다만 당신의 자녀는 아직 어리니까 그렇게 말할지 모른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이 두렵습니다. 집에서의 아버지의 책임이 그렇게 크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이 집 안에서 자녀들과 함께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집에서 자녀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에 실패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에서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기준이 참 높습니다. 만약에 자녀가 다섯이 있는데 넷은 잘 믿는데 하나가 말을 안 듣는다고 한다면 문제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습니다. 이 자녀들을 잘 키우는 가운데서 네 명이 믿기 때문에 부모가 다 좋은 분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혹시 하나가 잘못 될 수는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의 지역교회의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기준은 집에서 먼저 바르게 하고 그 다음에 지역교회로 기준을 옮겨오는 것입니다. 장로가 될 일이 전혀 없는 그러한 아버지들일지라도 집에서 자녀를 하나님께 인도하는 책임은 모두에게 있어서 공통적으로 중요합니다.

7절에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입니다. 이러한 삶 가운데 있다면 모임의 인도자가 되지 못합니다. 8절은 긍정적인 해야 될 부분들이 나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이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 육신적인 그리스도인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모임의 인도자는 이러한 일에 있어서 특별한 예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그레데라는 환경 가운데 추가로 요구되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9절에서 요구 받는 것은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가르침 받은)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모두를 믿을 것을 가르침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설명할 능력이 요구됩니다. 이것을 힘있게 그리고 스스로 확신하면서 가르쳐야 됩니다. 왜냐하면 10,11절에 보면 거짓 교사들이 그들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따르라고 하면서 그들 가운데 들어온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을 가르치는 가족들 가운데 묻혀서 들어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역모임에 장로는 칼(실제적인 칼이 아님)을 차고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장로는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역모임의 장로는 성경을 들어서 사람들을 지목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한국의 지역모임들에 이러한 사람들을 아십니까? 이와 같이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는 사람을 보신적이 있습니까? 의롭고 거룩하고 절제하는 삶을 사는 분들을 아십니까? 자기 아내에게 충실하고 자기 자녀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사람을 아십니까?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 바로 그분이 지역 모임의 장로입니다. 다른 여러 모임들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지역 모임 안에서 찾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장로를 각 모임마다 요구하십니다. 일본에서도 캐나다에서도 한국에서도 각각 따로 주님께서는 요구하십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주님의 이름을 지키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존중해야 됩니다. 왜 이러한 사람들이 필요한지를 환경을 통해서 일 수 있습니다.

12그레데인들은 거짓말쟁이며 게으름쟁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이러한 전통적인 자기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책망해야 합니다. 저는 다른 생활권에서 왔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혹시 책망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를 아 저 사람은 우리를 이해 못해, 저 사람은 한국에 살고 있지 않잖아. 내가 갖고 있는 이 스트레스를 이해 못 할거야. 이 서울 사회에서의 유혹이 얼마나 심한지 저 사람은 이해 못 할거야. 그러나 지역모임의 인도자는 그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도 같은 유혹가운데 시달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유혹을 이겨냈을 것입니다.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여러분의 문화를 저는 잘 모르지만 여러분의 지역모임의 인도자들은 여러분의 문화를 아시기 때문에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지의 방법을 알 것입니다. 이 거짓교사들은 거짓된 것으로 그들의 특징이 주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유대인들과 사람들의 명령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럽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오염된 더러운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흔히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오염된 더러운 생각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만, 그리고 하나님의 지역모임에 있는 사람들은 깨끗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겠습니다만 그러나 이 두 사람이 똑 같은 말을 듣게 됩니다. 같은 말을 들었을 때 구원받지 않은 더러운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농담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임 가운데 경건한 사람은 사랑의 생각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마음의 생각이 깨끗한 사람은 항상 깨끗한 생각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마음이 오염된 사람은 항상 마음이 더러운 것으로 쏠리게 되어 있습니다. 15절의 말씀이 그러한 뜻이라고 봅니다. 만약 여러분이 거룩하신 분이라면 거룩하고 깨끗한 것들을 좇아가려는 마음의 생각이 연결될 것입니다. 15절 마지막에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이렇게 더러운 마음과 양심을 가진 사람은 깨끗한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을 더럽게 연결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거짓교사는 내가 하나님을 안다. 그러나 진정한 참된 교사는 나는 하나님을 보여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나는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열매를 보니 하나님을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이 틀렸기 때문에 그 결과로 그들의 행실이 틀려버렸습니다. 여기에 있는 장로의 예로 한 사람을 들겠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백성의 인도자로서 매우 좋은 예입니다. 여호수아의 삶을 통해서 여기저기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만 그도 사람이며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이 말씀이 한 분을 생각나게 하지 않습니까? 밤낮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던 자였습니다. 네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지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서 시작에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인도자로 나가는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디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여호수아 5:13~15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여리고 성을 공격하기 직전에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거룩한 곳에 있었습니다. 6장에서 여리고성을 공격하게 되는데 여리고성에는 유혹들이 많이 있습니다. 실패한 아간을 보게 됩니다만 여호수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곳에 있었던 여호수아는 거룩한 방법대로 공격해 나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1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거룩하신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5장에서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인도자의 모습이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여호수아 24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기에 나와 내 집은 이라는 표현을 볼 수 있는데 흥미롭지 않습니까? 이 백성을 인도하는 인도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섬김을 집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디도서에서 가르치는 가르침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집을 섬기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가운데서 자신의 시간을 사용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진리 가운데로 확신하여 인도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을 함께 찾을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이 이 지역모임의 인도자입니다. 여러분들 마음 가운데 이러한 기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나도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 5 21 의왕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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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