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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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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20. 19:36 횃불/1989년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제기하는 질문들

어떻게 하면 기도를 잘할 수 있을까요?

- 데이비드 뉴얼 -

오래 전에 어떤 젊은 그리스도인 숙녀가 저에게 고백하기를, 자기는 개인적인 기도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 제가 그녀에게 했던 대답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저의 대답 속에 저도 역시 그렇습니다!”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믿는 자들이 은혜 안에서 자라가면서 배우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서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바로 기도, 성경공부, 믿는 자들간의 교제, 복음증거와 같은 기본적인 사항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어렵다고 생각하며, 성경을 통해 더욱더욱 발견되는 것은 그것들이 앞으로도 결코 쉬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일들을 쉬지 않고 수행해 나갈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 중에서 한 사람은 효과적인 기도를 드리기 위해 어떠한 조건들이 필요한지를, 단순하면서도 도전적인 예를 통해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8장에서 우리는 소돔성을 위하여 기도드리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23-32),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모셔 섰습니다(9-21)

자칫하면 우리는 창세기 18장의끝부분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기도가 저절로 터져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그 기도는 여호와를 따르는 삶을 통해 배운 것들을 숙고한 결과로 생겨난 것이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삶에 관한 기록을 창세기에서 살펴본다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만큼 하나님께서도 세 번 정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발견하고 아마 놀라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말씀드리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기도와 성경공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려고 애를 쓰기만 했더라면 우리가 주님의 뜻이라면이라는 말과 더불어 드렸던 기도들 중에서 많은 기도들이 분명하면서도 확신있는 간구들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확실히 분별하지 못하고 드리는 많은 기도들이 응답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과 더불어 구체적으로 드려질 것이라는 뜻임 - 역주).

아브라함은 창세기 18장의 초반부에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그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몹시 축복하고자 하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10-14). 우리의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동일하십니다. 주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축복하신 다음 승천하여 영광으로 들어가셨으며( 24:51), 바로 이것이 자기 성도들을 대하시는 그분의 특성입니다( 1:3). 우리는 이상의 사실로부터 격려를 받아 우리의 유익을 몹시 바라시는 하나님과의 교제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둘째로, 그는 하나님이 심판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17-21).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복음들 중에서 많은 복음들이 심판의 진리를 빼버리거나 혹은 약화시킴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에 관한, 신약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을 희석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장차 반드시 심판하시리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I-16)! 그리고 이것 때문에 아브라함은 타락의 길로 빠져 들어가는 자기 조카 롯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이것 때문에 구원받지 않은 친구들이나 세상적인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셋째로, 그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상기했습니다(14). 누가복음 1:37에도 언급되어 있는 이 영광스러운 진리는 기도에 있어서 중추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으로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기 때문입니다( 3:20).

넷째로,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전지(全智)하심을 실제로 목격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10-13)! 믿는 자들의 생활 가운데에는 기도를 말로써 표현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만 우리의 천부께서는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알고 계시며( 6:8),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8:26-27).

창세기 18장에는 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랑, 곧 하나님이 자신의 심중과(17), 그의 자손들에 대한 계획(18), 그리고 자신의 말씀을 신실히 지키신다는 것을 그에게 다 털어 놓으실 정도로 그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배운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기도가 성경에 대한 이해도(理解度)만큼 밖에 유효하지 못하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기도란 인간의 뜻을 하늘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강력한 도구이다.”

 

[2] 아브라함은 여호와께로 나아갔습니다(23)

성경에 관하여 좋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실제로 기도하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실제로 행동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을 가지고 곧장 그분께로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두 천사가 떠나자 오직 하나님과 아브라함만 남게 되었습니다(22). 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만의 교제의 가치를 마태복음 6:6에서 강조하셨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세상과 사단은 우리가 주님과 더불어 갖는 교제를 방해하려고 갖은 수단을 다해 우리를 산만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골방에 갇힌채 안식없는 세상을 떠나 높이높이 올라가려고애써야 합니다. 놀라운 사실 중의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도 우리를 가까이하신다는 것입니다( 4:8).

 

[3] 아브라함은 여호와께 구했습니다(23-32)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 이것이 기도의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면 특별한 장소로 가기나 또는 적당한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거나 또는 기도 하도록 인도를 받는다고 느끼거나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저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11:9)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분에게 단순히 말씀드리는 대신 염려하면서 머뭇거리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기도는 단순하고, 진지하며, 짤막하며, 분별 있으며, 구체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것을 근거로 하여 기도했습니다. 오늘날의 믿는 자들은 훨씬 더 충분한 계시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이 되시는 주 예수님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1-2). 따라서 우리는 존귀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을 기도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16:23).

제가 어렸을 적에 저의 어머니는, 기도를 다 드리고 나서 꼭,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라고 말하라고 저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그 이유를 묻자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런 맞을 듣는 것을 무척 좋아하시기 때문이란다.” 저는 이것보다 더 나은, 신학적인 대답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기 아들의 이름을 하늘에서 어찌나 귀히 여기시는지, 그 이름으로 경건하게 드려지는 모든 기도를 받으시고 응답하시기를 지극히 기뻐하십니다.

 

[4] 아브라함은 응답을 기대했습니다( 19:27-29)

창세기 19:27-29에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기도했다는 증거가 나와 있습니다( 21:22).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과거에 여호와와 대화를 나누었던 곳으로 갔던 것입니다. 소돔 성에는 열 명의 의인조차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구체적인 기도를 들어주시지는 아니하셨지만( 19:15) 심판이 임하기 전에 그의 조카 롯을 그 성에서 구해 주심으로써 아브라함의 마음의 소원은 만족시켜 주셨습니다( 19:16). 그 응답은 아브라함의 기대와는 다른 것이었으면서도 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실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아브라함을 기억하사”( 19:29), 이 구절을 22절과 비교해 보십시오. 우리말 성경에는 생각하사로 나와 있음- 역주). 이것은 그의 기도가 얼마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는지를 얼마나 잘 증거해 주는 표현입니까! 오늘날 우리도 역시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많은 필요들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로우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천부와 더불어 정기적인 대화를 나누는 특권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즈음 여러분의 기도생활은 어떻습니까?

 

(1989 9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