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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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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10. 19:26 횃불/1991년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에 대한 고찰

여호사밧의 승리

여호사밧이 북쪽 이스라엘의 두 왕과 맺은 동맹들 중 하나는 그가 아합의 아들 여호람 및 에돔 왕과 제휴하여 모압에 항전한 것이었는데, 이 전쟁 동안 분별없이 뒤섞인 연합군은 하마터면 진멸당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왕하 3:4~27). 이 사건에서 역대하 20:1~30에 기록된 사건으로 눈을 돌리면 유쾌한 변화를 볼 수 있는데 거기에서 우리는 모압 족속과 여호사밧 사이에 있었던, 이전(以前)의 전쟁에 관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전쟁은 아합의 사망 직후, 그의 첫 후계자인 아하시야의 짧은 통치기간 중에 있었으며, 이 전쟁의 발발 시각(時刻) 1절의 그 후에”(after this)라는 표현과 35절의 그 후에”(after this, 우리말 성경에는 나중에로 나와있음-역주)라는 표현을 주목함으로써 추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에 침략자는 분명히 모압 족속이었으며, 자기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연합군을 결성한 것도 역시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암몬 족속과 에돔 족속이 함께하고 있었으며, 유다 왕이 위협을 자각하기 전에 벌써 그를 향하여 진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압 족속은 아합왕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었는데 이는 아마 아합의 부친 오므리에게 정복당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이 사망하자 그들은 반역했고(왕하 1:1), 여호사밧과 유다를 향한 그들의 원정은, 그를 먼저 쳐부숨으로써 그로 하여금 반역군을 진압하려는 북쪽 이스라엘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게 하기(왕하 3장을 보면 그는 나중에 그렇게 했습니다)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여호사밧에게 스스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면 아마 그는 아하시야의 도움을 청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은 그로 하여금 자신을 하나님께 직접 내던지게 만들었고, 그 결과로 놀라운 구원이 그에게 주어졌으며, 이 사건에 관한 기록은 지금까지 남아 오늘날 우리에게 격려를 주고 있습니다. 전쟁사에서 그처럼 쉽게 승리를 거둔 전쟁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왕과 그의 친구들은 적군이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는 것을 그냥 보고 있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의 흥미로운 특징은 6~l2절에 제시된 여호사밧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비슷한 상황 아래 있던 그의 부친 아사의 기도보다 훨씬 더 긴 것이긴 하지만 서로 엇비슷하며, 각 기도의 주제는 우리 자신에게는 아무 힘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은 그것과 아무 상관없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6~9절에서는 여호사밧 왕이 자신의 호소에 대한 근거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는 우리 열조(列祖)의 하나님이시며, 열국(列國)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6).

(2) 여호와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이 땅 거민을 몰아내시고 그것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셨나이다(7).

(3) 이 전(殿)은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해 지었으며,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도와주시기로 약속하셨나이다(8-9),

그 다음 10~12절에서 그는 상기(上記)한 탄원들과 자기 자신들을 일일이 연관시키면서 현재의 필요를 여호와 앞에 제시했습니다:

(1) 그 열국(列國)들 중에서 몇 나라가 지금 우리를 침노했나이다(10).

(2) 그들은 우리의 기업(基業, 유업)에서 우리를 몰아내고자 하나이다(11).

(3)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아무 힘이 없다는 것과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한다는 것과 우리의 눈이 주님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생각하면서 이 전(殿)에서 여호와께 부르짖나이다(12).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응답을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여호와 앞에 서 있는 동안 그분의 성령님이 그들 중 한 사람에게 임하여, 그들의 구원과 그 방법을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목할만한 또 다른 특징에 접하게 되는데 그것은 곧, 레위 사람들에게 주어진 존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달할 도구로 택함을 받은 사람은 아삽의 자손 레위 사람 야하시엘이었으며, 또 물론 예견되었던 대로, 그 때와 그 다음 날 아침에 적군을 대항하려고 행진해 나아가는 동안 여호와를 찬송하는 일을 인도한 사람들도 역시 레위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의 반역 이후에 레위사람들은 자기 소유를 그대로 두고 유다로 넘어옴으로써 여호와와 그분께 경배드리는 일에 충성을 나타냈었습니다(대하 11:13~14). 하지만 그들에게 성소를 섬기는 합당한 직분과 백성을 가르치는 직분을 솔로몬 이래로 처음 주었던 왕은 여호사밧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통치 초기에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유다의 모든 성읍으로 다니면서 가르치게 했으며(대하 17:8~9), 그 후에 그들 중의 일부를 백성의 재판장으로 삼았습니다(대하 19:8~11).

역대하 20:25에는 여호사밧의 승리의 결과들 중 한 가지가 언급되어 있는데 그것은 곧, 그와 그의 백성들이 노략물로부터 심히 많은 재물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통치 초기부터 심히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으며(대하 17:5), 나중에도 그에 관한 묘사가 동일하게 주어져 있는 것을 우리는 이미 주목해 보았습니다(대하 18:1). 그 위에다 방금 전에 추가된 재물까지 합한다면 여호사밧 왕은 이제 넘칠만큼 풍성히 가졌다고 생각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아하시야와 더불어 해상운송 사업에 손을 댄 것은 바로 그 후였으며(35), 그 목적은 열왕기상 22:48에 제시된 대로 오빌로 금을 취하러 가는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은 자기 조상 솔로몬처럼 신명기 17:17에 주어진 명령 곧 이스라엘 왕은 은금(銀金)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는 명령에 불순종한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흔히 사용된 탐욕(pleonexia-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심”)이라는 단어는 여호사밧에게 있었던 문제가 무었이었는 지를 잘 표현해줍니다. 그리고 왕들 뿐만 아니라 후세의 사람들도 그것으로 인해 고통을 받아오고 있다는 사실은, 그 죄에 대하여 성경이 자주 경고를 발하고 있다는 점과, 지니고 있는 것을 족한 줄로 여기라고 권면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명백해집니다( 13:15, 딤전 6:8). -다음 호에 계속-

 

(1991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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