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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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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23. 11:04 말씀 안으로/교리적 표현

존 미킨

의라는 주제를 생각할 때 의로움과의 연관성을 주목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칭의가 사람을 의롭다고 선언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칭의는 나의 입장에 영향을 미칩니다. 한 때 죄가 있었으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우주의 최고 법정에서 의롭다고 선언받았습니다(롬 8:1). 헬라어에는 히브리어에서처럼 우리가 영어로 번역하는 의와 칭의라는 단어는 같은 그룹에 속합니다. 문제의 히브리어나 헬라어 단어들을 그것에 상응하는 단일한 영어로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 W.E. 바인의 언급했듯이, “dikaiosuvnh(1343, 디카이오쉬네)는 옳거나 의롭다는 특성이나 본질입니다. “의로움”과 “의”라는 단어에는 하나님 앞에서의 올바른 관계와 입장에 대한 개념을 포함합니다. 이것은 나의 삶에서 올바른 행동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옳고 의로운 사실 그대로 이어질 것입니다.

 

의 -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

의는 친숙한 시편 97:2처럼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구름들과 어둠이 사방에서 그분을 두르나니 의와 공의는 그분의 왕좌가 있는 거처로다.” 하나님의 의는 그분의 인격처럼 영원합니다(시 119:142). 그분의 행하심(단 9:14), 통치(렘 9:23-24), 신실하심(느 9:8), 공의(창 18:25), 그리고 율법(롬 7:12)은 모두 의로우심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기도하셨을 때, 하나님을 “아버지”(요 17:1) “거룩하신 아버지”(요 17:11), 그리고 “오 의로우신 아버지”(요 17:25)라고 부르셨습니다. 종종 그분의 본성에 있어서 거룩하시며 그분의 성품에 있어서도 의로우신 하나님을 가리켰습니다. 구주께서 하나님을 부르셨던 방식은 우리에게 모본이 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같은 하나님께 말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최고의 경외심으로 그분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의 - 주 예수님 안에서 나타내심

구약성경에는 주 예수님의 의가 제시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사야 같은 그러한 선지자들로부터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리니”(사 53:11)라는 말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분은 “의의 가지”(렘 33:15), 그리고 “의로운”(슥 9:9)이라고 불립니다. 신약에서도 그분에 대한 증거가 주어집니다. 빌라도의 아내는 “당신은 그 의로운 사람과 아무 상관도 하지 마소서”(마 27:19)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를 보고 백부장은 “이분은 확실히 의로운 사람이었도다”(눅 23:47)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의로운”(행 3:14; 벧전 3:18), “의로우신 재판장”(딤후 4:8), 그리고 “의로우신”(요일 2:1)이라고 언급되고 있습니다. 신자들로서 우리는 더럽혀진 곳에서 하나님을 위해 활동하셨던 분을 생각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분 자신의 인격은 본질적으로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의 - 복음으로 드러내신 바와 같이

에덴 동산의 바로 그 처음부터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를 얻기 위해 노력하거나 인간적인 노력으로 힘썼습니다. 로마서 3:10-18에서 인류에 대해 제시된 14개의 기소 중 첫 번째는 “의인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라고 우리에게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는 죄로 더럽혀졌고 우리 자신의 모든 노력은 결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신분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사 64:6, 롬 10:3). 우리는 구원이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딛 3:15)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로마서에 강조된 주요 주제 중의 하나는 의입니다. 명사 형태 dikaiosuvnh(1343,디카이오쉬네)는 책에서 36번 나옵니다. 이 책은 바울의 세가지 개인적인 확언으로 시작됩니다. “나는 빚진 자이다”(롬 1:14), 나는 준비한다(15절),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16절). 그리고 나서 그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를 계속 말합니다. 이 메시지에 내포한 것은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메시지에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습니다(롬 1:17).

 

 “하나님의 의”라는 이 구절은 여러가지로 해석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 자신이 실행하시는 의를 의미하거나 하나님의 속성이나 본질로서의 의를 의미한다고 제시했습니다. 이것들은 로마서 1:17이나 3:21-22의 문맥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기원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이며 하나님에 의해 제공되는 의입니다. 레온 모리스가 언급하는 것처럼, “그것의 전체적인 표현의 경우에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의미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올바른 지위’를 의미하며 로마서 3:21-22; 10:3 등에서 요구했던 것을 의미합니다, 빌 3:9에 전치사의 사용에 의해 매우 명백해집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롬 3:22) 받는 것입니다.

 

개혁주의자들에 의해 가르쳐진 오류 중 하나가 여전히 오늘날 지속되고 있으며 믿음에 의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받았으며 그분의 삶의 의가 믿는 죄인에게 전가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의”라는 말이 성경에 언급되지 않으므로 비성경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삶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대속적 죽음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회개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의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개인적인 의는 다른 사람에게 양도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운 신분을 받았습니다.

 

의 -​​ 신자의 삶을 나타냄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의를 나타내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현 세상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딛 2:12)라고 기억하게 합니다. 의로운 생활은 모든 믿는 자들의 삶의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딤후 2:22). 그러한 결과는 어린양(계 19:8-9)의 혼인 잔치에서의 때가 다가오는 날에 분명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의 - 천년왕국과 영원한 상태에서

의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의 특징이 될 것을 언급하지 않고 결론 내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 천년 시대에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입니다”(사 32:1). 천년왕국에는 의의 통치가 있을 것이지만 영원한 상태에서는 의가 거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의 약속에 따라 의가 거하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는도다”(벧후 3:13). 신자들은 죄와 불의의 세상에 살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요한의 감성으로 반향합니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계 22:20).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