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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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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23. 06:04 말씀 안으로/교리적 표현

존 미킨

속죄에 대한 이교도의 개념은 신들로부터 달래기를 얻거나 신들의 호의를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화해”를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이교도 신들은 심술궂고, 변덕스럽고, 경박함으로 제시되었으므로 그들은 달랠 필요가 있었습니다. 속죄에 대한 성경적인 표현은 매우 다릅니다. 인류는 그분의 호의를 얻기 위해 하나님께 무언가를 제공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주 예수님에 의해 성취된 것을 통해 하나님은 화해하셨습니다. 그분의 거룩과 의로운 성품은 죄에 대해 만족하셨고, 인류를 향한 그분의 진노는 가라앉았습니다.

 

“속죄”이라는 단어는 종종 LXX라고 불리며 70인역으로 잘 알려진 구약성경의 헬라어 버전에서 발견됩니다. 이 중에 한 가지 예는 출 25:18에 있는 그것이 “속죄소” 용어의 장소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가 정확히 “화해하는, 또는 화해하는 곳”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신약의 헬라어 본문에서 속죄란 용어가 여섯 번 나옵니다. 이들은 누가복음 18:13; 로마서 3:25; 히브리서 2:17; 9:5, 요한일서 2:2; 4:10에서 있으며 누가복음 18:13과 히브리서 2:17에서 동사 iJlavskomai(2433,힐라스코마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호의를 가지거나 자비로움에 대해, 또는 “…에 대한 속죄를 하기 위해”를 의미합니다(바인).  명사 iJlasthvrion(2435,힐라스테리온)은 히브리서 9:5에 사용되고 있으며 “속죄나 속죄의 장소”를 의미하며, 로마서 3:25에서 그리스도(화해 헌물로-역자주)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2:2과 4:10에서 우리는 “죄가 포함되고 용서되는 그것에 의한 의미, 보상”을 의미하는 명사 iJlasmov"(G2434,힐라스모스)를 발견합니다(바인).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부터 받으신 만족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화해헌물이 “만족하신 하나님의 자비”로 간결하게 정의할 수 있다고 제시되었습니다.

 

화해헌물과 속죄

일부의 영어 번역에서 “속죄” 단어가 화해 헌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들 두 단어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까? 영어 단어 “속죄”가 라틴어 expiare 단어에서 파생되었으며, 그 어원은 “경건하게 하다”를 의미하며, 죄와 범죄를 제거하거나 깨끗케 함을 내포합니다. 속죄의 목적은 하나님이 아니라 죄입니다. 하나는 사람을 화해시키고 하나는 문제를 속죄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와 관련하여 화해하셨습니다. 십자가의 크기와 구주께서 이루신 것은 이 속죄와 화해 헌물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화해 헌물(속죄)과 화해 사이에도 구별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2:17에는 “백성의 죄들로 인해 화해를 이루려 하심이라”(다비)로 더 나은 번역이 있습니다. 이전 기사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하나님은 화해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분의 진노와 죄에 대한 그분의 요구와 관련하여 화해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화해 헌물 : 칭의의 근거

바울은 화해 헌물에 관련한 하나님의 목적이 공개적으로 입증되었음을 선언합니다. “그분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한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참으심을 통해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심으로써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려 하심이요, 내가 말하거니와 이때에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사 자신이 의롭게 되며 또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게 만드는 이가 되려 하심이라”(롬 3:25-26). 우리가 이 구절을 생각할 때 그것은 구약성경에서 화해 헌물의 장소나 속죄소를 생각나게 합니다. 주님은 속죄소가 만남의 장소가 될 것임을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긍휼의 자리 위 곧 증언 궤 위에 있는”(출 25:22).

 

이것은 레위기 16장에 있는 속죄일에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날에 두 염소가 취해졌고, 이들 두 염소는 하나의 속죄제물이었습니다(레 16:5). 그것들 중 하나가 죽임을 당했고 그 피가 하나님의 임재에 드려졌으며 속죄소 앞에 대제사장에 의해서 뿌려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속죄였습니다. 다른 염소는 대속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의 죄들과 불법은 그것의 머리에 고백되었습니다. 그 다음 적합한 사람의 손에 맡겨져 무인지경의 땅으로 보내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사람들이 회개하여 그들의 영혼을 괴롭게 했다면(레 16:29), 그들은 하나님이 이 속죄제물을 받아들이신 것을 선으로 삼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분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라는 확실한 구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본문에 쉼표를 추가하면 의미가 명확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해 헌물로 세우셨으니”(ASV). 피가 그리스도의 죽음의 희생적 측면을 말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가 하나님께 속죄하셨고 죄에 관해서 그분에게 충분히 최종적인 만족을 얻으셨기에 그분은 죄인들을 의롭게 하는 근거가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분의 피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리스도, 살아계신 구주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의롭게 됩니다(행 13:38-39, 롬 10:9).

 

가족들을 위한 화해 헌물

요한일서의 배경은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썼습니다,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죄를 짓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지어도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분은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 우리의 죄들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라”(요일 2:1-2). 죄는 결코 신자의 삶에서 습관적인 버릇이 될 것으로 기대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죄가 없는 것이 아니며(요일 1:8) 여전히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백은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필요합니다(요일 1:9). 그래서 아버지와의 친교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경우 우리는 아버지 앞에서 변호자가 있습니다. “변호자”라는 단어는 “다른 사람의 사유를 변호하는 사람”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우리 죄의 자백에 의존하지 않으며 주 예수님께서 우리 실패의 순간에 우리의 사유를 아버지 앞에 중재하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이것을 행하실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은 우리의 죄를 위한 화해 헌물”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화해 헌물의 범위가 가족들을 위할 뿐만 아니라 또한 “온 세상”을 위한 제공도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속죄됨을 받으셨으며 그분의 요구는 충족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이여, 죄인인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눅 18:13)라고 세리처럼 부르짖었다면, 우리 역시 구주의 말씀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의롭게 되어 자기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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