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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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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23. 11:03 말씀 안으로/교리적 표현

존 미킨

“모든 세대는 거듭남이 필요합니다.” C.H. 스펄젼의 적절한 진술은 영국 런던의 대주교 성당에서 그의 설교를 들으려고 가득 찼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사실입니다.

 

“거듭남”이라는 명사는 신약 성경에서 두 번 나옵니다. 첫 번째 마태복음 19:28과 두 번째는 디도서 3:5입니다. 이 말은 구약 성경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서 언급하는 것은 미래에 있고 민족적입니다. 주님은 그분의 제자들의 관심에 대답하셨고 그들에게 천년 통치와 그분의 왕국의 영광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곧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의 왕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왕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재판하리라”(뉴베리 난외)라고 상기시키십니다. 디도서의 언급은 믿는 이들의 경험을 가리키며 그 초점은 개별적입니다.

 

거듭남 - 새로운 상태

거듭남은 신약성경에서 적어도 세 가지 다른 용어인 “되살아남”, “새 피조물” 그리고 “새로운 출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네 가지 모두 같은 경험을 언급하며, 우리는 그것들을 동의어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각각은 구원에 대한 약간 다른 강조점을 제공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엡 2:5)라고 썼습니다. 되살아남은 이전의 영적 죽음 상태와 대조적으로 신자에게 부여된 새 생명을 강조합니다. 고린도후서 5:17에서 우리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는 말씀을 읽으며 우리에게 새로운 신분을 제시합니다. 변화되기 전에 우리는 “아담 안에”(고전 15:22) 속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셋 번째 용어인 “새로운 출생”(요한 3:3)은 우리의 새로운 생명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과 가족에 속한 다른 사람들과의 새로운 연결을 의미합니다. 거듭남은 우리를 새로운 상태로 소개하므로 이 모든 것들과 구별됩니다. W.E. 바인의 주해처럼, “새로운 출생과 '거듭남'은 영적인 경험의 연속적인 단계를 의미하지 않지만 다른 측면에서 그것을 보는 것을 가리킵니다. 새로운 출생은 선행하는 영적인 죽음과 대조되는 영적인 삶의 소통을 강조합니다. 거듭남은 옛사람과는 대조적으로 새로운 상태의 시작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19:28에서 이 단어의 사용과 이스라엘에 대한 적용의 연관성이 있습니다.”

 

거듭남 - 삼위일체 하나님의 행위

디도서 3:5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 거듭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그”에 대한 선행어는 4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입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목회 서신에서 다섯 번 그분에게 주어졌으며, 유다서 25절에는 이 칭호가 직접적으로 나오는 유일한 다른 곳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구주 하나님이심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이 시대에 그분은 경건치 않은 자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원하십니다(딤전 2:4).

 

우리는 또한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 우리에게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딛 3:5-6)에 주목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날로 거슬러 올라가는 언급으로 간주하며 6절에 있는 “흘리다”라는 단어가 사도행전 2:33에서 사용되고 있는 사실로 이를 뒷받침합니다. 또한 사도행전 2:17-18에서 “붓다”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디도서 3:5-7의 문맥은 “새롭게 함”을 회심에 연결하므로 “우리에게…풍성히 부어 주셨으니”라는 문구는 같은 순간으로 연결됩니다. 성령님은 각 신자에게 그들의 구원의 순간에 풍성히 또는 풍부하게 주어집니다(엡 1:13, 갈 3:2). 이것은 우리가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풍성함을 받기 위해 회심 이후에 또 다른 경험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주 예수님은 또한 디도서 3:5-7에서 성령님을 보내시는 책임있는 대리자로 언급됩니다. 다락방에서 그분은 그분의 제자들에게 성령님의 오심을 밝히셨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니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위로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내가 떠나면 내가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리니”(요 16:7). 성령님의 강림은 주 예수님의 승천 이후 10일만에 일어났습니다(행 2:1-4).

 

거듭남 – 내적이고 영적인 정결

믿는 죄인은 “다시 태어남의 씻음”(딛 3:5)으로 자신의 죄들을 씻는 것을 경험하며 우리가 고려하는 새로운 상태로 그를 인도합니다. 이 씻음의 예는 요한복음 13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위해 그분의 옷을 벗으시고 몸을 굽히셨습니다. 이에 대해 반대하는 베드로는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나와 함께할 몫이 네게 없느니라”(요 13:8)는 말을 듣습니다. 즉시로 베드로는 지나치게 다르도록 반응했습니다,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요 13:9). 주님은 “이미 씻긴 자는 모든 곳이 깨끗하므로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요 13:10)고 대답하십니다.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씻김이 이 구절 안에 보입니다, 처음의 단어가 온몸을 씻는 것을 의미하며, 두 번째는 몸의 일부를 씻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복될 필요가 없는 단 한 번의 씻김이 있습니다(레 8:6), 이것이 디도서가 “다시 태어남의 씻음”으로 언급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어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매일 접촉하는 더럽힘을 씻어내는데 필요한 목욕을 제시합니다. 회심으로 우리는 우리의 죄들로부터 내적인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개인적인 책임(요 13:10)은 하나님의 말씀의 적용을 통해 매일의 더럽힘에서 깨끗이 자신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거듭남 - 미래의 상속유업을 기대함

디도서 3:4-7은 헬라어 본문에서 한 문장을 형성하는데 그 문장에는 일곱 가지가 우리를 위해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것들 중 마지막은 우리에게 우리의 상속유업을 제시합니다 “즉, 그분의 은혜로 의롭게 된 것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다비). 이 구절 디도서 1:1-3과 2:11-14로 이들 각각에서 우리는 과거,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각 장의 소망의 주제는 “영원한 생명의 소망”(딛 1:2) “복된 소망”(딛 2:13), 그리고 우리가 고려하고 있는 그 구절에서 “영원한 생명의 소망에 따라 상속자”(딛 3:7)들을 언급합니다. 거듭남은 새로운 상태로 우리를 인도했고, 우리는 상속자로서 미래 영광을 기대하고 있습니다(벧전 1:4).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