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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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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23. 11:03 말씀 안으로/교리적 표현

존 미킨

성경의 가장 아름다운 장 중 하나에서, 바울은 화해 진리의 위엄을 요약합니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너희에게 간청하시는 것 같이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가 되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해하라.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0-21).

 

“화해” 단어가 흠정역에서 무엇보다도 레위기 6:30과 8:15과 같은 구절에서 나타납니다. 이들 구절에서 화해로 표현되는 특별한 히브리어 단어는 “속죄”(다비)로 더 정확하게 번역됩니다. 이에 비추어 우리는 신약 성경의 주제에 대한 언급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께 대한 화해의 교리뿐만 아니라, 또한 형제들(마 5:24) 사이에 그리고 아내와 그녀의 남편(고전 7:11) 사이에 화해의 주제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화해를 다루는 신약성경의 사도바울의 서신들에는 네 가지 문맥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로마서 5:10-11, 고린도후서 5:18-21, 에베소서 2:16, 그리고 골로새서 1:19-22입니다. 이 가르침은 세 단어의 사용하여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이것들은 “변경하거나 교환하는 것”을 의미하는 katallavssw(2644, 카탈랏소)와 katallaghv(2643, 카탈라게)입니다, 따라서 “완전히 화해하거나 한 조건에서 다른 조건으로 변경하다”를 의미하는 ajpokatallavssw(604, 아포카탈랏소)입니다. 이 변화는 그동안 원수였던 당사자 사이에 화해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화해의 의미는 적대행위에서 화합으로 적개심을 우호로, 적대를 일치로 바꾸는 것입니다.

 

화해가 요구됨

인류는 죄의 결과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골로새서 1:21에서 우리는 “너희가 사악한 행위들로 인해 멀리 떨어져 너희 생각 속에서 원수가 된” 존재로 묘사됩니다. 에베소서 2:16에도 원수 되게 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적개심이나 적대행위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5장에는 우리는 죄인(5:8)과 원수(5:10), 연약함과 경건치 아니함(롬 5:6)으로 설명했던 우리의 절망적인 상태의 전개를 발견합니다. 그 언급된 “경건치 아니함”은 우리의 사악함을 설명하고, “연약함”은 우리의 결점을 나타내며, “죄인들”은 우리의 비천함을 나타내며, “원수 됨”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에서 우리의 고의성을 나타냅니다. 화해는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멀어졌던 죄인들을 데려오도록 요구되었습니다.

 

화해가 실현됨

우리가 순수하게 인간의 수준에서 화해를 생각하는 경우 정치적 영역, 고용 환경, 또는 심지어 결혼 문제라도 상반된 관점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때 중재자는 양측을 하나로 모으는 공통점이 있는지 여부를 결정합니다. 그러나 화해에 대한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한쪽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화해될 필요가 없으시지만, 그분의 은혜로 화해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고린도후서 5:19에서 분명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그들의 범법을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해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맡기셨느니라.” 이 본문은 주 예수님의 신성을 확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신성의 교리는 분명히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보이는 대행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과 세상을 화해시키셨다”로 의역할 수 있습니다. 화해의 위대한 진행을 시작하셨던 분은 하나님이셨고 그분께서 죄인들을 받아들이는 근거는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화해가 드러남

이 기사의 시작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로 우리 주님의 부활을 나타내는 위대한 특권이 있습니다(고후 5:20). 이 자격으로 우리는 죄인들을 위해 간청하거나 하나님을 대신하여 죄인들에게 그들이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간청합니다. 고린도후서 5:18-21의 문맥에는 주 예수님의 죽음이 모든 사람의 화해를 가져올 수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성경에는 구주께서 갈보리에서 성취하신 것을 제한하거나 제한할 어떤 근거도 없습니다.

 

진정한 복음의 제공은 차별하거나 제외함이 없이 모든 사람에게 확장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메시지를 전파할 때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제시하는 방식에 품위가 요구됩니다.

 

화해를 받아들임

에베소서 2:14-16은 우리가 하나님께 화해되어 받은 높여진 지위를 나타냅니다. 이방인으로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누리던 민족적 특권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미래의 상속에 대한 전망이 없었고, “소망”도 없었고,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는”(엡 2:12) 자였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한 몸의 지체들로써 공통적인 입장으로 들어왔습니다(엡 3:6). 이것은 갈라디아서 3:28에서 확인됩니다.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 없고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으며 남자나 여자가 없나니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서 3장의 문맥은 다릅니다. 그러나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연합의 원칙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화해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동료 상속자들입니다.

 

화해의 결과

신자를 위한 화해의 결과는 화평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롬 5:1). 화평은 실제 화해의 상태이며 이것은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19-21에서 바울은 장차 온 우주, 곧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다 하나님의 마음에 따라 일치하게 될 것을 증거하면서 보편적인 화해의 위대한 진리를 제시합니다. 골로새서 1:20에는 “땅 아래 있는 것들”(빌 2:10)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으며 이는 지옥의 영역에 있는 것들이 정복될 것이지만 화해되지는 않을 것임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광스러운 구주께서 이루실 만물의 화해하는 그날을 기대하고 바라봅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