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3. 7. 9. 16:13 횃불/1993년

고뇌하는 사역자

이춘원

 

현재 어느 지역 모임에서 사역을 하시는 모 형제님에게 이 서신을 드립니다.

형제님은 지난 번 저에게 보내신 편지에서 사역자로서의 몇 가지 기도 제목과 고민을 솔직히 말씀하셨습니다.

이젠 나 스스로 더 이상 사역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특히 형제 자매들을 인도하고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임을 절감합니다.”

형제님의 정직한 심령과 솔직한 태도가 우선 고결해 보입니다. 제게 교제하신 말씀들은 제 심정이나 상황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아져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사람, 그 후 믿음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절대적으로 순복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라”( 4:10)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모세는 애굽 왕국에서 무려 40년 간이나 최고의 세상 교육을 받아 모든 학문에 통달하였고( 7:22) 또 이어서 미디안 광야로 도피하여 고독한 중에 양무리를 치면서 40년 간이나 영적인 교육을 통하여 완숙해진 훌륭한 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막강한 애굽 제국의 바로 왕 앞에서 2,3백만 이스라엘 대군을 모두 해방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내기 위한 지도자로서의 말씀 사역을 어떻게 감당해야 될는지 전혀 자신이 없었습니다. 정말 모세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약하고 둔한 사람인 것을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바로 앞에서 절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형제님이 저에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임 안에서 쪽 전하고 나니 이젠 별로 가르칠 것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말씀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전하느냐 하는 기술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 보다는 우선 설교자 자신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문제가 더 크고 더 본질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은사와 그 부르심에 거룩하게 헌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근본적인 자질의 문제는 사람이 자의적으로 얻거나 세상 학문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은혜 안에서 택하시고 성령으로 불러내어 말씀의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강단에 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말을 잘하는 말장이가 설교자가 될 수 없고, 일을 많이 만들어내는 문제자가 사역자가 될 수 없습니다. 첫째로 중요한 것은, 설교자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지명하여 성령으로 불러내 세운 일꾼이냐 하는 것이요, 그 둘째는 그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소명의식과 신뢰를 가지고 광야와 같은 세상에 나아가 믿음으로 순종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세우심과 부르심에는 반신반의와 후회하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육체를 따라서 하시는 일이 아니라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약한 것들과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과 둔한 것들을 택하사 온전케 하시고 세상의 육체적인 자랑들을 폐하여 버리시는 능력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연약함과 두려움으로 뒤로 물러나려는 모세에게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말씀하시면서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4:11,12)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도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여호와께서는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 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1:6,7)라고 확언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도 연약한 제자들에게 핍박을 당할 때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12:11,12)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여! 문제는 우리가 인간적인 사역자로서의 자격을 세상적 종교적으로 갖추느냐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복음과 교회를 위한 사역자로서 부르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소명은 자격에 우선합니다. 소명 없는 자격은 위조 증명서와 같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지도자가 된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이 없고 세우신 일도 없으며 또 내보내신 일도 없는데 자의적으로 종교 지도자가 되고 교회 장로가 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 불행한 일일뿐더러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역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가 아닙니다. 설교나 전도를 유창하게 하느냐 못 하느냐도 아닙니다. 몇 사람을 구원했느냐, 몇 교회를 개척했느냐, 목회에 성공했느냐 등등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의 확실한 소명을 받고 그 소명의식을 일평생 버리지 말고 지속적인 믿음과 인내와 헌신으로써 최선의 봉사에 임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역자들이 그 은사와 직분이 어쨌든 간에 기도와 눈물로써 계속 섬겨 가면 오직 하나님께서 영혼들을 구원하시고 성도들을 성장케 하시며 모든 열매와 영광을 취하실 뿐입니다

그대의 자격과 노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번창케 하려는 교만한 자의적 무지를 버리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대를 부르시고 세우시고 내 보내셔서 그대 안에서 하나님의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대로 자유롭게 역사하시도록 그대는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고 성결한 심령으로 자신을 드리고 사랑으로써 종노릇을 하십시오. 그대가 하나님께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거나 지시하지 마십시오. 그대 스스로가 만들어낸 사역을 하지 말고 그대가 하나님께 사역을 당하고 하나님께서 그대 속에서부터 일을 시작하시도록 자신을 가난하게 비우십시오. 그대가 누구를 위하여 사역을 하기 전에 먼저 그대가 하나님께 사역을 당하십시오.

나의 큰 죄악과 허물은 이런 것들임을 간증합니다. 곧 주님의 거룩하신 뜻과 그 부르심의 소망에 대한 확신과 감사와 찬양보다는 내 뜻과 내 소원과 내 삶에 대한 고뇌에 얽매일 때가 많은 것입니다. 주님보다 먼저 행하고, 의식주 문제에 얽매일 때가 없고, 경건의 시간보다는 잠자는 시간이 더 많고, 지혜와 계시의 정신보다는 세상 뉴스에 더 민감하고, 자식을 성경적으로 잘 양육하지 못하고, 물질적인 문제에 시험을 당하고, 근면하고 성실한 생활 태도가 빈약하고, 진리에 충실하려고 애쓰지만 자의적 교만이 나타나고, 주님과 같은 깊은 사랑이 없고, 온유한 인격과 청결한 양심이 흐려지고, 진정한 고난의 대열에 몸을 내놓지 못하고, 말에 실수가 있고, 주관적이고 자기적일 때가 많고, 세상을 바라보고, 남을 판단하고, 남의 말과 그 형편을 잘 이해치 못하고, 아내를 내 몸처럼 사랑하지 못하고, 세상 염려에 빠질 때도 있고, 소리없이 자기 몸을 쳐 복종을 못 시킬 때도 있고, 깨끗하고 선한 눈물이 뜨겁게 흐르지 않고, 무릎이 낙타처럼 되도록 기도와 간구 생활에 열정이 없고, 남에게 주는 것이 적고, 욕심을 초월하지 못하고, 온갖 정욕과 세상 물결에서 초연하지 못하고, 요나처럼 도망가려고 하기도 하고····이렇게 나에겐 무엇 하나도 온전한 것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러 지역 모임에서 모든 성도들과 함께 섬기시는 장로들과 집사들처럼 이렇게 한가지로 부족하나마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첫째로 주님의 긍휼과 자비에 넘치신 은혜 때문이고, 그 둘째는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인생임을 절실히 깨닫고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십자가를 붙잡고 의지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때로는 염체불구하고 달려나가 제단 뿔을 붙잡고, 때로는 시은좌 위에 들어 눕기도 하고, 때로는 도피성으로 급히 대피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백과 근신과 징계를 당하기도 합니다.

 

- 친애하는 형제여!

소제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많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항상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와 능력을 확신합니다. 은혜로 부르셨습니다. 나는 약하지만 주님은 강하십니다. 나는 미련하지만 주님은 온갖 지혜와 지식의 원천이십니다. 나의 입술은 둔하고, 눈은 흐리고, 귀는 여리며, 생각은 좁지만 우리 주님은 완전하십니다.

내가 주님의 전지 전능하심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그는 내 미약함을 그냥 용납해 주시고 도리어 강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니 무얼 좀 한 것 같아도 그건 부끄러움 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 주님의 위대하신 첫 창조와 영원하신 둘째 창조를 찬양하며 주님의 품에 안겨 그 얼굴을 경외할 뿐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을 받고 나 같은 형제가 거룩한 회중에 들고 나 같은 위인이 말씀 사역의 봉사자로 지명(指名)을 받았다는 것은 너무나 과분한 은사입니다. 받을 수 없는 것을 받았기에 은혜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사랑의 선물입니다. 감지덕지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크신 은혜를 믿고 기리고 찬양하고 전파할 뿐입니다.

내가 내 속 곧 육신을 볼 때, 남이 나를 꿰뚫어 볼 때 정말 나는 자격 미달임을 깨닫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미충이 같은 나에게 고귀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 천부적인 은사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의 선물로써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위대한 특권이자 사명입니다. 주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충성해야 할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이것은 내가 자의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그 누가 내게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줌으로써 된 것도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소명이기에 반드시 지명을 받은 은사자 내지 직임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말씀사역은 하늘의 천사나 땅 위의 사람이나, 그렇다고 믿는 그리스도인 누구나가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시고 지명하여 세우심을 입은 일꾼들이 할 수 있는 거룩하고 영광스런 사역이기 때문에 전도자들이나 설교자들은 신명을 다하여 그 성 직에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임명한 것이 아니고 교회가 투표로 결정한 것이 아니며 자의로 택한 사업도 아닙니다. 사람의 뜻대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로 된 것이기에 항상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계시하신 말씀대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입을 열어 전하고 가르치고 권계해야 마땅합니다 사람의 힘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 같이 권위있게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는 것은 세상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장에 입각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을 각 사람에 게 심어주고, 그분의 생명을 나누어주고, 그분의 진리를 소유케 하고, 그분의 평안과 자유를 누리 게 해주는 것이 말씀사역의 주요 임무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령으로써만이 증거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완전하신) 말씀을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세상의 자료로 보충하고 사람의 좁은 머리에서 짜 낸 학문적인 신학으로 설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 속한 것이므로 위로부터 거듭난 성도가 성령의 계시하심을 따라 깨닫고 전하고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사역자들은 항상 어디서나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있고, 착념하고, 기도와 묵상 중에 말씀의 계시를 받게 되고, 성령님의 깨우쳐 주심과 비춰주심으로 인하여 영원한 진리의 복음을 담대히 증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정신을 차리고 믿는 도리를 굳게 하여 연약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시다( 4:14~ 16).

 

- 나의 형제여! 지금까지 우리는 복음으로 살았습니다. 세상 기준으로 보수다운 보수나 보너스도 없고 퇴직금도 없지만 주님이 우리의 기업이시고 주님 나라에 가서 몇 배의 상금을 받게 되니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사도 바울이 손으로 일하여 자신과 동행들의 쓸 것을 돕고 모본을 보였듯이 형제님 스스로 부업을 가지고 근면히 살아가시면서 연약한 교회를 섬기고 계시니 이 얼마나 보람있는 사역입니까!

사도 바울이 동족과 거짓 형제의 핍박을 받았으나 인내하신 것처럼 형제님 역시 불신자들보다 신자들로부터 받는 불평과 비난은 참기가 더 어렵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 역시 형제님의 봉사의 사역에 교훈이 되고 우리 일꾼들의 자만과 주장을 다스리는 막대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일꾼들이 분명 한 하나님의 뜻대로 소명을 받았다면, 그 사역 중에 당하는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그것이 세상의 멸시거나, 형제들의 비난이거나, 지역 모임의 연약이거나, 자녀들과 아내를 잘 돕지 못하는 윤제이거나, 영혼들이 빨리 구원을 못받거나, 진리를 거스려 일어나는 문제들이 거나, 심지어 세상의 지식과 문벌과 견문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거나, 다른 지역 모임들이 점점 대형화 되어 가는 추세에 있거나 간에, 전혀 구애를 받지 말고 오직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믿음대로 초지일관하여 죽던 살던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내 생애가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여지도록 계속 위를 향하여 나아가십시오. 믿음의 선한 싸움을 계속하십시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온 생명을 걸어 주십시오( 20:23,24).

사역자는 지역 모임에서 세운 일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셔서 세우시고 내보내시며 쓰시는 종입니다. 목회자는 자기의 뜻대로 회중을 지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주님의 양들을 돌보는 책임을 대목자장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목사는 훌륭한 능변가가 아니라 본을 보이는 온유하고 겸손하여 어린 아이의 손에 끌리는 사람입니다. 설교자는 회중 앞에 군림하거나 청중을 들었다 놓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성직자는 일부러 종교적인 경건과 겸손을 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자아를 성찰하고 자기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강론자는 세상 학식과 전문 지식을 구사하면서 원어와 주석을 인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그대로 순수하게 전하고 분변하는 사람입니다 전도자는 기독교 종교를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과 성품을 보여주고 그리스도의 구원과 그 영생을 알려주는 전도자입니다 교역자는 자기의 교구를 율법적인 테두리 안에 묶어놓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은사로 주어진 구원과 평안과 자유를 누리도록 돌보는 사람입니다. 교사는 성경적인 지식과 그 이론을 전개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따스한 심정과 깨끗한 인격을 학생들이 많도록 모범을 보이는 사람입니다. 감독은 자기의 의지대로 회중을 다스리는 권세자가 아니라 총감독자의 뜻하신 설계도 대로 건물이 지어져 가도록 조심스럽게 근신하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장로는 영육 간에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모든 언행심사와 삶에 있어서 어른답고 인격이 주님의 성품을 많고 양들에게 평안함을 주는 한 가정의 모범이 되는 인도자입니다. 집사는 재정과 인원과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깨끗하고 순전한 심령으로 밑바닥에 내려가 기쁨으로 조용히 섬기는 봉사자입니다. 구도자들과 신자들을 위한 할례의 수종자 노릇을 하는 사람이 바로 참된 집사입니다. 모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밑에서 조용히 봉사하는 집사들입니다. 비록 집사의 직분을 특별히 받아 행하는 은사자들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섬기는 집사의 정신과 태도를 가지고 충성을 다 할 때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교회가 충만해 집니다. 사역자란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라 섬기고 일하고 본을 보이고 함께 동고동락하는 머슴입니다.

- 나의 동역자 형제여!

형제님은 이젠 기진맥진하여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되어야 이제부터 형제님 속에 계신 주님께서 일을 새로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설교를 하기 위한 말씀과 주제가 점점 없어져 간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되어야 이제부터 어절 수 없어 형제님이 주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끊게 되고 이어서 위에서 주시는 신령한 만나와 깨달음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불신자들을 구도자라고 흔히 간주하지만 사실은 우리 사역자들이 매일 구도자와 같은 갈급한 심정으로 매일 매시간 주님께 엎드려 호소하고 간구하면 놀라운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경건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사람들의 불평과 비난에 육신적으로 상심하지 말고 심지어는 혹시 염소 같은 형제나 여우 같은 자매가 있다고 해도 도리어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교훈적인 선생님이 되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 형제들을 더욱 사랑하고 더욱 이해하고 동정하며 그들의 입장으로 내려가 그들과 심령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형제들이 기 때문입니다.

자녀 교육의 재정적인 어려움과 영적 교육의 미약함을 말씀하셨는데, 현실적인 문제로써 저 자신도 경험하고 있습니다만, 피상적으로는 돈의 문제 같으나 우선 내적인 영의 문제 내지 믿음의 문제로 전제하시고 기도와 말씀 안에서 응답과 해결책을 찾으십시오. 의인의 자식이 결식하는 일이 없고 부모의 기도와 눈물에 자식의 생명의 씨가 발아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 삼십년 간 보아 내려왔지만 전도인들의 자녀들이 일반교육을 못시켰다거나 지옥의 자식으로 전락한 적은 없습니다.

지역 교회를 섬기시는 일에 계속 매진해 주시되, 특히 가정 교회를 이루는 일에 마음을 기울여 주십시오.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어찌 돌볼 수 있겠습니까?

 

친애하는 형제여!

이상의 서신은 형제님을 위한 것인 동시에 저 자신을 위한 편달의 말씀이었습니다. 무지하고 무정한 것들이 있었다면 전부 제게 돌려 주십시오.

끝으로 저의 둔한 붓글씨로 쓴 말씀액자 한 폭을 선물로 우송해 드립니다. 디모데후서 4:5~8의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평안을 빕니다.

 

(1993 7,8월호)

 

 

'횃불 > 1993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0) 2013.07.12
교육보험증서  (0) 2013.07.12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1)  (0) 2013.07.12
인간의 상태에 대하여(2)  (0) 2013.07.09
다림질  (0) 2013.07.09
요한계시록 강해(7)  (0) 2013.07.09
소녀 아김  (0) 2013.07.09
전도지를 통해 구원받은 바크씨  (0) 2013.07.09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