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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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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2. 12:51 횃불/1993년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1)

-O.J. 깁슨

 

이 글은 1992 8 8~10일 까지 동대문 교회에서 강연한 내용을 지면에 옮긴 것입니다.

 

시편 16편 말씀을 읽겠습니다.

1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여기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자기의 분깃이고 자기의 필요한 전부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오늘날도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 예수님으로 만족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님으로 만족함을 배우게 될 때 우리는 다론 방법으로 만족하기를 구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기쁨의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미국의 헌법만이 행복을 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행복을 추구함에 있어서 이 헌법의 보장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행복을 얻지 못한다는 보장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헌법은 우리가 행복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취업을 하게 되면 당신이 인생에 있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합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에 게 질문합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생애를 통해서 구하는 전부가 무엇입니까? 아마 90% 이상은 행복을 원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여러분이 비참한 삶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나가 버리는 것을 통해서 행복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게는 두 손녀가 있습니다. 저는 어느 날 코끼리를 태워주기 위해서 공원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나이는 4살과 6살이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그 일을 즐거워했습니다. 10분 동안 참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을 더 지속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이 세상 사람들이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것으로 행복하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실례로 잘 보여줍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구하고 있는 행복은 대체로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편 기자는 행복의 비결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주로 만족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남녀 사람들이다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몸과 혼과 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은 여러분이 삶에 있어서 최고의 수준에 있는 것입니다. 영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하나님과 접촉하는 그런 영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적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최고의 삶을 살게 하는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적 생활에 있어서 만족을 얻고자 해야 합니다. 내적인 평화를 얻고자 해야 하며,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 완전한 만족을 얻고자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게에 가서 산 어떤 물건 때문에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어느 장소에 가서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떠나신 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고 팔고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그들은 만족하고 있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 사람을 막론하고 누구나 해외 여행하기를 좋아합니다. 여행도 잠시는 재미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만족을 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상업적인 향락을 통해서도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행복은 항상 환경에 의존되어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이 모든 것을 다 해보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다 누려보았습니다. 또한 그가 볼 수 있는 많은 돈을 써보았습니다. 그의 왕궁에는 금이 얼마나 많았는지 길거리에 돌과 같이 흔했습니다. 그는 많은 것을 저축하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예술과 음악을 위해서 많은 돈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는 700명의 아내와 또한 300명의 후궁을 두었습니다. 만일 그가 성적인 것에 만족하기를 원했다면 만족했을 것입니다. 그가 그것에 만족하고 있었는가는 전도서를 읽어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그 모든 생활을 통해서 찾고자 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손에 모래를 쥐었을 때 모래가 흘러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초대하면서 내게 오는 자는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10). 이것은 부유하고 넘치는 풍성한 삶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기쁨과 평강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과 평강을 말씀하셨습니다. 환경이 어려울 때도 이와 같은 기쁨은 지속되는 것입니다.

저는 핍박을 당하는 성도들을 만나본적이 있습니다. 북한에도 핍박 받는 그리스도인이 있을 지 모릅니다. 또한 더 심한 핍박을 받는 나라도 있습니다. 신자들은 거기에서 쉬운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 예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침상에서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환경을 통해서는 기쁨을 누릴 수가 없지만 그는 고통스러우면서도 주 예수님 안에서 커다란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을 모르는 다른 세계에서 그와 같이 죽어가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주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주 예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주님과의 교제, 주님과의 교통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이러한 물질을 추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생에서 부자들은 대체로 공허한 사람들입니다. 또한 이 부자들은 별로 영적인 사람들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질만 풍요로운 것은 영적 삶에 있어서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신자들에 있어서 이 물질은 저주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이 계속해서 발전한다면 그물질은 한국 사람에게 저주가 될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그 마음 속에 공허를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영혼 속에 무언가 텅 빈, 공허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얻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불안하고 공허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이런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만족을 구하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질문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매일 같이 예수님 안에서 만족을 누리고 계십니까? 시편 기자는 이 비결을 배웠습니다. 1절과 2절을 보십시오.”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

그는 어떠한 즐거움에 의지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또는 그의 소유물에 의지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가족을 통해 만족을 얻는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2절 말씀을 보면 나는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굉장히 놀라운 고백입니다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제게 만족한, 또한 복된 것이 전혀 없다는 고백입니다. 5절에 보시면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산업이라는 것, 또한 기업이라는 것은 부모가 돌아가신 다음에 여러분이 얻는 재산입니다. 때로는 이와같은 유산 때문에 친척끼리 싸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기업은 썩지 아니하고 없어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늘나라에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같이 주님과 교제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경험하게 될 때 우리는 이와 같은 기업을 매일의 생활에서 누리 게 될 것입니다. “그는 나의 잔의 소득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분은 나를 만족케 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시편기자는 17 15절에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과 얼굴을 맞대고 인간적으로 몸소 교제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 예수님으로 만족하고 계시는지, 그것으로 충분한 것인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내게 필요한 것은 주님뿐이고 다른 것은 필요 없다고 그렇게 고백하고 계십니까? 제게 그리스도인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는 지금 전심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 때는 시카고에서 은행에서 일하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큰 은행의 부총재였습니다. 매일 아침 은행에서는 리무진을 보내서 그를 모셔가고 모셔다 드리고 했습니다. 그는 돈을 많이 벌뿐더러 얼마 있으면 총재가 될 그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삶에 뭔가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따라 그의 부총재직을 사직했습니다. 그는 멕시코에 가서 선교의 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는 자비량하면서 그와같은 전도자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직업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은행의 부총재였던 사람이 어느 직장엔들 자격이 없겠습니까? 그는 은행에 금전출납부원으로도 취직이 안되었습니다. 그는 자격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는 직업을 구할 수가 없어서 식료품가게에 가서 일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식료품을 싸서 차에다 실어주는 일이었습니다. 특별히 나이 많은 노인들을 위해서 그와 같은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어느 부인의 트렁크에 물건을 실어 주고 있었는데 그 부인이 그를 향해서 미소를 지으면서 팁으로 25전을 손에다 쥐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차를 몰고 가버렸습니다. 그는 자기 손바닥에 있는 25전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과거 자기가 벌던 돈을 생각하면서 이 25전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쳐다보면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 주님 제게 필요한 것은 전부 당신뿐입니다. 나는 지금도 주님으로 만족합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와 같이 이야기하실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일에 대해 여러분은 마음이 슬퍼지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이에 대해서 분개해 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다루실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그 속에 역사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교만을 부셔야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법을 가르침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자신을 부양해주시는 것을 경험해야만 되었습니다. 주 예수님은 그가 주님으로 만족히 여겼기 때문에 그의 사역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는 은행에 돈을 저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저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3절에는 주님께서 땅에 있는 성도들로 만족하고 계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로 즐거워하신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서로 간에 기뻐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비판적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의 백성들로 즐거워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모든 즐거움은 땅에 있는 성도에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지니는 사명은 하나님 앞에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등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어제 한 사람을 기적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는 젊은 사람이고 얼마동안 켈리포니아 모임 청년회에 나왔던 청년이었습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때 그는 한국 여자와 결혼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는 저와 만났을 때 결혼하지 않고 동거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다음에는 이 여자와 이혼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한국에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000 형제도 그를 알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는 그 청년에 대해서 서로 얘기를 했습니다. 전화를 한번 걸어보자고 했습니다. 000 형제는 말하기를 형제님 보기를 두려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가 나를 두려워했겠습니까? 그것은 제가 주님을 대신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등지고 사는 삶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제가 얘기할 것을 그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제 그가 있을 만한 곳을 잠시 들렀습니다. 이 서울에는 천만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도시에는 아마 수십만개의 가게들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청년을 바로 만났습니다. 그는 갑자기 날아온 총알에 맞는 듯 했습니다. 그는 저를 봤을 때 흥분함과 동시에 두려워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은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뜻 가운데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얘기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잘 지내고 있지 못하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는 교회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라고 하는 것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완전히 등진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경고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님을 안 후에 떠난 것은 차라리 알지 못한 것보다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저녁에 그 말씀으로 여러분을 경고합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알고 주님을 떠나는 것은 주님을 한 번도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제게는 일반적인 청중입니다 조만간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 가운데는 주님을 떠나게 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것은 그에게 하나의 재앙이 될 것입니다.

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여기에는 그렇게 번역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더한다는 것은 교환하다라는 뜻입니다. 돈을 건네지 않고 물건끼리 교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것을 선택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른 신을 선택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여러분에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여러분에게 괴로움이 더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을 도와달라고 하는 기도를 듣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괴로움을 더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1993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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