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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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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2. 09:52 횃불/1993년

그리스도의 승천(1)

복음서 및 사도행전에서

- 시드니 멕스웰 -

우리의 영광스런 주님의 하나님 보좌에로의 승천은 구주와 그분의 백성과의 관계에 있어 하나의 신기원을 이루었습니다. 그분이 그들 가운데 나타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의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20:19). 그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했습니다. 그분이 영광스런 부활의 능력으로 죽음의 영역에서 나오신 그 때로부터 40일간에 대해서 각 복음서마다 다양한 관점에서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사랑 받는 의원이자 신망 있는 역사가인 누가의 기록은 그 기간에 일어난 사건들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24). 요한도 그 기간의 일을 첨가하고 있으며( 20,21), 종의 복음의 기자인 마가도 그 영광스런 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 가운데서 올리워 가실 그 마지막 이별에 앞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확증하셨습니다. 부활 후 40일간의 그분의 행적에 대해셔 누가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1:3).

그러면 우리 마음과 영혼에 복된 깨달음을 가져다 툴 우리 주님의 승천을 다음 몇몇 제목 아래 살펴보기로 합시다.

 

승천에 관한 예표와 예언들

구약의 영감받은 기자들에게로 눈을 돌려 그 영화롭게 된 몸에 갈보리의 흔적을 지니신 영광 중에 계신 인자에 대한 상징적이고 예언적인 그림들을 본다는 것은 커다란 확신을 줍니다. 그것을 경이감을 가지고 바라보노라면 우리의 심령으로부터 예배의 향기가 피어오르게 될 것입니다.

이삭은 제단에 올려졌으나( 22) 살았습니다. 이삭이 그 산에서 내려온 것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가 들판에서 묵상하고, 그런 다음 그의 사랑의 대상, 즉 광야를 지나서 오는 신부를 맞으러 가는 모습을 볼 때까지 다시는 그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없습니다(24:62).

속죄일( 16)의 핵심 장면은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생명이 바쳐졌음을 증거하는 피를 가지고 지성소 안에 들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베드로의 표현을 봅시다.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벧전 3:22).

끝으로, 시편과 선지서들을 통해 우리는 그분이 승천하시고( 2:6), 또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대적을 멸하기 위해 나타나신다(9)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승천하신 주님께서 이제 하나님 우편에 있는 그분의 자리를 취하시기 위해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110:1). 이사야 40:3은 주님의 선구자를 묘사하지만 이어서 9~11절은 그분이 베들레헴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늘과 아버지의 존전으로부터 권능과 영광 중에 오실 것을 묘사합니다. 이사야 63:1에서, 우리는 다시 그분이 어린아이가 아닌 정복자로, 구유가 아닌 그 승천하신 위엄의 보좌에서 영화로운 옷을 입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약의 역사적인 기록들에서 그 성취를 발견한다는 것을 우리가 의심할 수 있을까요?

 

승천에 관한 주님 자신의 선언

요한복음은 주님의 승천에 관한 주님 자신의 선언들을 보여줍니다. 이 선언들은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아버지께로서 오신 분의 말씀입니다( 6:57). 무리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에 관한 말씀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41). 그 때 주님은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하려느냐?”( 6:62). 그분을 체포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하속들에게 그분은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33). 잘 알려진 요한복음 14:1~3에서도 이 진리가 발견됩니다. “내가···· 가노니···· 내가 다시 와서····16:28에서 다시 그분은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 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끝으로, 요한복음 20:17,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는, 비밀한 승천(a Secret ascension)으로 오해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은, 주님의 승천이 곧 일어날 것이며 그때 그녀와 주님과의 관계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 올라간다고 말씀하신 대로, 그것은 더 이상 육체적인 가까움이 아니라 영적인 임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40일 후에 일어날(속죄절의 상징을 성취하기 위한) 그분의 공적인 승천에 앞서 그분이 하나님 보좌 앞에 올라가 어떤 가치있는 사역을 미리 이루어 놓았음을 증거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약의 나머지 부분과 일치되지 않습니다. “단번에성소에 들어감과( 9:12), “두번째나타남(28) 만으로도 주님의 승천이 한번뿐인 사건임을 증명하기에 충분합니다.

 

승천과 관련된 구주의 위치

마가복음은 주 예수님의 승천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16:19). 여기서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은 그분의 제자들에게 목격되었으며 하나님 우편에 않은 장면은 시편 110:1을 통해 믿음으로 받아들여지고 확증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여기에 여호와의 종으로 오셔서( 42:1~3)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며( 2:8,9) 지금은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분이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 그 복음서의 성격에 걸맞게 제자들이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라는 기록을 대한다는 것은 주목할 만 합니다( 16:20). 그분께서 거룩한 권능의 자리에서 지금도 수고하는 종으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은 얼마나 격려가 되는지요!

누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은 영적인 암시로 가득합니다. 그분은 목자로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셨습니다”( 24:50). 이곳은 아름다운 기억들이 스며 있었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서는 거절을 당하셨지만 이곳에서는 사랑과 경배를 받으셨습니다. 그분의 마지막 행동은 그분의 백성들이 그분을 갈보리로 보낸 세상 조직과 더 이상 관계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했습니다. 그분은 제사장으로서 저희를 축복하셨는데이는 그분께서 곧 위엄의 보좌 우편에서 그 놀라운 사역을 다시 행하실 것임을 저들의 마음에 일깨워주었습니다. 그분은 후사로서 저희를 떠나새로운 상황에서 신적인 영광을 취하실 하늘로 올리우셨는데”, 이는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하신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17:5).

주 예수님의 승천은 경배를 가져왔으며, 이는 우리에게도 그러해야 합니다. 또한 그것은 기쁨을 가져왔으며,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우리에게 동일한 영향을 줄 것입니다.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24:52).

사도행전 1:6~8에서 누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즉시로 세워질 것이라는 제자들의 기대가 현재의 권능에 대한 약속과, 그들의 봉사를 위해 준비된 계획, 그리고 그분의 영광 중의 재림에 대한 전망으로 그 빛을 잃었음을 알려 줍니다. 그분은 그들이 그분의 초림기간 동안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을 때 그분이 당연히 이루실 것으로 생각하던 일을, 재림시에 이루실 것입니다. 그분은 영광의 구름(쉐키나)에 싸여 올리워 가셨는데, 이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영광을 가리우셨던 그분께는 진실로 영광스런 퇴장이었습니다( 1:9).

 

승천에 관한 메시지들

사도행전, 혹은 적절한 표현인바 성령행전은 신약의 복음전파 기록을 풍성히 담고 있습니다. 그 거룩한 원리들은 오늘날의 전도 계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인위적인 장식물들을 떨쳐버리고 영적인 단순함을 좇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이 아니며,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부활의 위대한 사건을 확증하는 세 사람의 메시지를 대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으로 높임을 받으셨으며 그 결과 성령의 약속이 성취되었다고 전파합니다( 2:33), 다시금 이스라엘 지도자들 앞에서 그는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선언합니다( 5:30).

스데반의 마지막 메시지는( 7) 하나님의 이스라엘 섭리에 대한 통찰력 있는 설명으로 대단원을 이루며 영광 중에 계신 인자에 대한 위대한 사실로 절정에 이릅니다. 이 첫 순교자의 확신에 찬 증거는 얼마나 큰 격려를 주는지!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7:56).

끝으로 바울의 복음전파에 귀 기울여봅시다. 그의 메시지의 중심에는 승천하신 인자에 대한 복스런 사실이 자리합니다. 바울도 스데반처럼 그분께서 영화롭게 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18:9, 26:15, 고전 9:1). 열왕기하 2장에서 엘리사는 승천한 자(엘리야)의 능력을 입고 자신의 사역을 시작해 나갔습니다. 확실히 사도행전의 기록은 이와 유사한 반면 한결 영광스럽습니다.

 

승천을 통해 재확인된 성도의 전망

이것은 확실히 이 놀라운 사건에 대한우리의 묵상을 결론 내리는데 적합한 항목입니다. 사도요한은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라고 우리에게 확증해 줍니다(요일 4:17). 그분은 그 위()와 사역의 모든 족속으로 인해 영광 중에 계시며, 우리 또한 그분 안에서 그러합니다. 실로 놀라운 보증입니다! 사도행전 1:11은 그분의 재림의 약속을 보증하며, 요한일서 3:1~2은 우리가 그분께서 오실 때 그분과 같게 된다는 것을 확증해 줍니다. 이 위대한 진리가 신자 안에 실질적인 성화를 이뤄냅니다(3).

그분께서 하늘로 가시는 것을 목도했고 우리에게 그분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베드로는, 이 땅에서 그분이 아버지 집에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는 나그네와 행인인 우리에게 권고하기를, 그분의 영광이 나타나서 우리가 그분과 함께 즐거워할 때까지 기꺼이 그분의 능욕을 지고 고난을 당하라고 합니다(벧전 1:13, 4:13). 모쪼록 그날을 기다리면서 우리의 마음이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늘로 올리워 가셨다는 확신 가운데 영광 중에 계신 인자에게 사로잡히기를 소원합니다.

 

오 주님, 눈을 들어

주님께서 보좌에 계신 것을 뵙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사랑의

높이와 깊이를 헤아리고

주님의 복스런 이름을 부르고

주님의 피의 효험을 노래하는

그 기쁨이 어떠할지요.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1993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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