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3. 9. 13. 10:49 횃불/1994년

나실인의 서원(3)

도날드 노비

이 글은 1994년 노량진교회에서 강연한 내용을 지면에 옮긴 것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3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4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5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6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7 그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인하여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

8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 6:1~8).

 

히브리 말로서 이 나실인이라는 말의 뜻은 구별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구별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 부정적인 면에서 이해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목적으로 하나님 앞에 자기를 구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밖에 있는 세상사람들은 경건치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없이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저녁 기차를 타고 오면서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이 세상의 것들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학생들은 아마 자신들의 교육문제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졸업한 학생들은 그들의 직장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결혼한 분들은 자신들의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 가운데 몇 사람이나 하나님을 진정으로 생각하고 있을까요?

하늘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의 생각 속에 가장 중요한 분은 하나님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또한 창조주라는 분이 계시다고 한다면 나는 진정 그분을 알고자 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를 하나님 앞에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 구별이라고 하는 것은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을 우리 구주로 또한 주님으로 영접할 때 이러한 구별을 했던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나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이나 동일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영접할 때 우리 주님을 우리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신성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 그분을 하나님으로 모시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전 생애를 통해서 이러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헌신으로써 거듭거듭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또한 구별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부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여기 3절을 보면 무엇으로부터 구별해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별된다는 것은 다른 것으로부터 구별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무엇으로부터 구별되어야 할 것 중에 포도주와 독주를 말씀했습니다. 이 포도주는 이 세상의 쾌락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욕적인 쾌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104:15).

사도 바울은 우리가 술 취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행복하기 위해서 마약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주 예수님은 '내가 네게 충분치 않느냐'고 우리에게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10:9,10).

이 말씀의 앞 구절은 아론의 자손인 나답과 아비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불에다가 향을 뿌려가지고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분향 방법이었습니다 이 불은 놋제단에서 꺼내가지고 사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른데서 취한 이상한 불을 갖다가 하나님 앞에 드렸던 것입니다. 이때 불이 나와서 그들을 삼켰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그들은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 이후에 제사장들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금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나답과 아비후가 이와 같은 분향을 하기 전에 술을 마시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면밀한 분별력을 상실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할 수 있다”(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네 마음과 생각을 주장할 수 있는 정상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나를 섬기려고 들어올 때에는 꼭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네 생각이 맑아야 하기 때문에, 너희는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 때에 너희들이 하나님의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포도주는 우리의 감지력을 둔하게 만듭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그가 마땅히 생각해야 할 생각을 다 하지 못합니다. 술을 마시면 그가 생각하지 못하던 것을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희 동네에 시험을 받은 한 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술이 얼마만큼 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가 하는 것을 시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장애물이 있는 코스를 운전하도록 시험해봤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모두 비디오에 담았습니다. 먼저 술을 마시지 않고 그 코스를 돌도록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술을 한 잔 마시고 다시 그 코스를 돌도록 했습니다. 이것을 거듭거듭 반복했습니다. 놀라운 일은 그가 술을 마실수록 더 잘 운전하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고 했습니다. 술을 마실수록 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비디오를 봤을 때 그는 술을 많이 마실수록 자주 장애물을 부딪치며 운전해 갔던 것이 드러났습니다. 다시 말해 포도주가 그의 사고력을 둔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않도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간곤한 백성에게 공의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31:4,5),

지도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생각이 맑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술을 마시게 되면 법을 잊어버리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의 판사 친구는 증거하기를 대부분 범죄자들의 범죄 원인은 술과 연관되어 있다고 증거했습니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쓸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23:29~35).

포도주가 어떻게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지를 여기에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인에 박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가 술이 깬 다음에는 내가 또 언제 술에 잠길까 한다고 했습니다. 이 포도주라고 하는 것은 세상의 정욕적인 쾌락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음주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마약으로 사는 것이 아주 흔하게 되었습니다. 마약 중독이 된 많은 젊은이들은 처음에는 술을 마시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더 그들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강한 술을 마시게 됩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에는 마리화나나 다른 마약을 피우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헤로인 중독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사람을 예로 만드는 무서운 것입니다.

주님 앞에 구별되고자 하는 사람은 이모든 술로부터 자기를 구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기쁨과 행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또한 여기에 건포도와 포도도 말씀했습니다. 왜 구별하는데 있어서 생포도와 건포도도 포함시켰을까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건포도를 제 자신이 좋아합니다만 또한 신성한 생포도를 좋아합니다만, 건포도를 생각하면 그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어떤 사탕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건포도는 우리 인간의 자연적인 쾌락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건전한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구별된 사람은 이와 같은 일이 자기의 삶을 지배하기를 원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우리자신을 구별했을 때 우리에게 죄가 되지 않은 건전한 것일지라도 자제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한 친구가 있습니다. 어떤 친구가 그로 하여금 배를 하나 사라고 했습니다. 배타는 것이 그렇게 잘못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배를 타러 다니는 것은 주말에야 보통 다닌다'고 했을 때 '주말에는 내가 주님의 자녀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는 시간이어서 주말마다 배를 타러 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원하는, 배타는 즐거움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가 할 일이 그 보다 더 좋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합법적인 일이 가장 선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들은 이와같은 문제에 있어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일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키를 즐깁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말마다 스키를 타러 갑니다. 스킹은 건전한 운동입니다. 또 흥미가 많습니다. 위험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말만 되면 스키를 타기 위해서 산에 올라갑니다. 다시 말하면 스킹하는 것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나는 그런 일을 위해서 살 수가 없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스킹을 가끔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자기의 삶을 지배하도록 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경우를 많은 생활 영역에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죄가 되지 않은 이러한 문제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이것이 무슨 잘못이냐 이렇게 말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저의 한 친구는 TV를 없애 버렸습니다. '주말이 되면 풋볼 게임을 시청하는 것이 중독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가장 합당한 일은 이것을 없애야만 시험을 받지 않기 때문에 없애는 길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풋볼 게임을 구경하는 것이 그렇게 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에게 있어서 이것은 자기의 많은 시간을 빼앗아 갔던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있어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텔레비젼을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에게는 해결책이 텔레비젼을 끄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아 간다면 그것을 옷장에 치워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할 때에만 꺼내다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주님에게만 구별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주님으로부터 내 시간과 내 힘을 빼앗아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어떤 영역에서 이와 같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 하나님께로부터 시간을 훔치는 것이 여러분의 어려움이 될지 모릅니다. 우리는 정당한 쾌락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드리기 위해서 그것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1994 7,8월호)

 

'횃불 > 1994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의 재림(2)  (0) 2013.09.13
비판  (0) 2013.09.1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0) 2013.09.13
내 일생에 최고의 기쁨의 날을 감사하며!  (0) 2013.09.13
「작은 여인」을 읽고  (0) 2013.09.13
쓰임받는 성품과 그 개성(3)  (0) 2013.09.13
인물 중심 성경공부-베드로  (0) 2013.09.13
새 계명  (0) 2013.09.13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