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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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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교회들에 관한 예언적인 구절들

 

현재의 세대는 구원의 날”(고후 6:2)이라고 불립니다. 또한 현재의 세대의 목적을 생각할 때 우리는 현재를 성령님의 세대혹은 교회시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 세대는 성령님의 강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오시는 순간에 마감될 것입니다. 주님은 공중에 오시어 그분의 교회를 본향으로 데려가신 다음 영원히 그분의 곁에 두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에서, 그분의 이름을 위할 한 백성을 취해내는 것이 현재의 세대에서 하나님이 갖고 계신 뜻입니다( 15:14). 따라서 놀라운 은혜로 구원함을 얻은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것입니다.

영원 전에, 삼위일체 하나님(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동등성과 하나됨과 거룩함과 생명과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 중 아버지의 사랑은 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17:24).

 

 

아버지의 그 사랑은 현재의 교회시대에서 분명하게 나타났고 이 세대의 그리스도의 신부는 다시 오실 그분의 아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창세 전부터라는 표현을 우리는 성경에서 세 차례 발견합니다.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17:24).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벧전 1: 20).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1:4).

 

창세 전에라는 표현은 교회시대 동안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25:34)는 말씀은 이스라엘과 열국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관련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분의 지상백성으로 택하셨고 교회를 천상백성으로 택하셨습니다.

성령님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에게는 교회시대를 계시해주지 않으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우리는 교회에 관한 예증들을 발견할 수 있으나 교회에 대하여 예언한 말씀은 한 군데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예언적인 관점은 연이어진 산꼭대기들을 보지만 그 산 꼭대기들 사이의 골짜기들은 볼 수 없다는 것에 비유되어 왔습니다.

교회시대에 관한 유일한 예언 구절들은 마태복음 16장과 18장에 나오는 주 예수님의 말씀들입니다. 이 두 군데의 내용을 살펴볼 때 우리는 주님께서 서로 다른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셨음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6:15-20절은 교회(the Church)에 관한 주님의 예언의 말씀을 담고 있는데 나중에 가서 바울은 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 1:23; 4:12)이라고 불렀습니다.

마태복음 18:15-20절은 지역교회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담고 있는데 나중에 가서 바울은 이 지역교회를 하나님의 교회”(고전 1:2) 라고 불렀습니다.

 

마태복음 16:15-20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 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를 받아서 베드로는 주 예수님에 대해 엄청난 증거를 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주님은 베드로의 증거를 언급하시면서 그분이 지금 자신의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고 계심을 알려주셨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베드로 (페트로스)를 기초로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이 반석(페트라)을 기초로 했고, 베드로의 증거는 그것을 가리켰습니다.

다음의 강력한 진술을 들어보십시오.

지옥의 문들이 이기지 못하리라”(흠정역).

악한 세력은 주님의 사역을 절대로 가로막거나 저지하거나 망쳐 놓을 수 없습니다. 그분의 교회를 세우는 주님의 사역은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성취한 그분의 구속 사역만큼이나 완벽한 것입니다.

문들이라는 표현은 권위의 자리, 즉 악한 자의 지배력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감독하고 계시며 오늘날 그분의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행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마지막 산 돌이 하나님의 이 영적인 건축물에 더해질 때까지 진행될 것이며 그 때가 되면 주님은 지체함 없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교회가 황폐한 상태에 있다는 가르침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성경 교사들은 교회를 기독교계의 일부로 보고 있고 따라서 그들은 교회가 황폐하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어떻게 기독교계의 일부가 되는 것이 가능합니까? 많은 교파 교회들과 조직들을 거느리고 있는 기독교계는 황폐한 상태에 있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계의 모습은 예루살렘에 세워졌던 1세기 교회의 영적 상태와 전혀 안 닮아 있는 것입니다( 2). 기독교계는 엄청난 혼란 속에 빠져 있고 따라서 그것(기독교계)은 그리스도께서 건축물이 되시는 그 교회의 일부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몸인 그 교회가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스런 교회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건축물이며 여기에 산 돌들이 끊임없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세워가고 계십니다. 이 사역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지속될 것이며 그러한 때가 이르면 주님은 그분의 교회를 데려가고자 친히 공중에 강림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과정은 이미 오순절 날에 성령님의 강림으로 시작되었고 그것은 그분이 재림하시는 순간에 마감될 것입니다.

교회는 지역교회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인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현재의 교회시대 동안에 구원을 얻은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이 신자들 중 상당수는 벌써 천국에 가 있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이미 죽어 있는 그 신자들의 썩는 몸들은 부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3).

구속함을 받은 거대한 무리가 영광스러운 몸을 입을 그 때에 우리 는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영원무궁토록 그분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소망인지요! 휴거의 때에 교회는 처음으로 한 무리로서 함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전에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일입니다. 심지어 오순절 날에 조차도 말입니다( 2).

 

 

마태복음 18:15-20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지역교회에 대해 예언적으로 말씀하면서 주님은 죄 문제를 언급하셨습니다. 이는 우선적으로 모임이 완전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모든 모임은 완전하지 않은 신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근본적인 원리들을 보존해야만 합니다.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모임 안에서의 성경적인 질서가 어떠한지를 배웁니다. 여기서 주님은 죄가 범해졌음을 말씀하셨는데 죄는 감추어둘 수 없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한 가운데에 주님을 모신다고 고백한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장로들은 모임의 거룩을 유지해야만 하며 따라서 사람들을 의식함 없이 죄를 처리해야만 합니다.

 

마태복음 18장에 언급된 죄 다룸에서 우리는 세 가지의 단계들을 확인합니다.

잘못의 대상이 된 형제는 자신을 향해 잘못을 저지른 형제에게 갑니다. 그리고 두 형제 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이렇듯 초기에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징계의 목적은 신자를 내쫓는 데에 있지 않고 그를 얻는 데에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슬픈 진전의 경우를 대합니다. “만일 듣지 않거든이럴 때에는 다음 단계를 밟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한두 사람은 누구일까요? 신자들 중 아무나 이 문제를 다룰 권한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들은 오도록 특별히 청해진 친구들일까요? 증인으로 간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이 한두 사람이 지역교회의 장로들이라고 말씀하실 수 없었는데, 이는 당시 유대 회당들에 장로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장로들을 언급한다면 혼란이 초래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두 사람, 두세 증인이 책임을 맡고 있는 형제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그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 시점부터는 더 이상 범죄의 문제로 그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장로들을 향한 불순종의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되었기 때문 입니다.

 

장로들은 이 문제를 교회로 가져가지만 당사자인 그 형제에게 아직까지는 회개의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이러한 어구를 대합니다.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혹은 듣기를 거부하거든

이렇게 되면 징계가 행해집니다.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이는 무슨 의미일까요? 주 예수님이 계시던 당시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다른 한 부류는 이방인들과 세리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과 세리들 가운데서는 회개가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이 어구에서 은혜가 드러납니다. 아직 회개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이 부분에서 우리는 지역교회의 장로들이 징계를 실행하는 일에(16-18) 또 모임의 복지를 위해 기도하는 일에(19) 책임을 지고 있음을 배웁니다. 우리는 19절이 아무 상황에나 적용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지역교회의 간증과 관련되어 있고 따라서 합심 기도가 드려지는 그 문제들은 지역교회와 관련된 문제들입니다. 뒤에 이어지는 구절과의 관련성을 주목해 보십시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죄 문제를 다루는 한두 사람”, 함께 기도하는 두 사람”, 모이는 두세 사람은 장로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커다란 책임이 따르며 장로들이 모임의 복지를 위해 이런 일들에 책임을 지는 것은 성경적인 모본입니다( 20:28). 각 모임이 장로들에 의해 인도를 받아야 함은 사도의 가르침입니다(딤전 3:1-15; 5:17; 1:5-9).

 

이제 우리는 잘 알려진 이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나도 거기에 그들의 한 가운데 있느니라”(흠정역).

 

이 구절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 하나님의 장소-“

* 하나님의 간증-“두세 사람이

* 하나님의 모임-“모인

* 하나님의 교제-“함께

* 하나님의 권위-“내 이름으로

* 하나님의 임재-“나도

* 하나님의 중심되심-“그들의 한가운데 있느니라

모임이 함께 모여서 어떠한 성경적인 집회를 갖든지 거기에는 주님의 임재의 약속이 있음을 우리는 확언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요구되는 바가 이행되어야 하는데 그 요구는 곳에라는 단어에서 발견됩니다. 신자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모이는 곳에, 그분께서 그들 한가운데에 계실 것입니다. “곳에”(where)가 먼저이고 거기에” (there)가 나중입니다. 먼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자신들 한가운데에 계시다는 그분의 약속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in my name”(“내 이름으로”)에서 “in”에 해당히는 헬라어 단어는 둘입니다. 그런데 한 단어는 위치상 정지를 나타내며 다른 단어는 움직임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단어는 에베소서의 그리스도 안에 서”(in Christ)에서 위치상의 진리로 사용되었습니다. 두 번째 단어는 본 절에서와 같이 움직임을 가리키며 이를 영어 단어로 옮겨본다면 “unto”가 적절할 것입니다. 성도들이 모일 때, 모든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야 합니다. 그분은 모임 위에 계신 또 모임 안에 계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백성의 마음속에서 그분은 매력적인 분이셔야 하며 마땅히 뛰어난 위치를 차지하셔야 합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