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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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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24. 14:47 횃불/1995년

믿는 자가 더 나쁘지 않느냐?

 

친구는 장로인데 못된 짓만 잘하고 생활이 형편없는데 그 보다는 예수 안 믿어도 행실만 똑바로 살면 되지 않습니까?”

예수 믿으라는 나의 전도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한 말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들어왔고 또 들을 것이다.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물론 어떤 경우에 편견일 수도 있으나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인은 겸허한 마음으로 되새겨 보아야 할 말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호에는 이와 같은 말들을 생각하며 진실로 믿는다고 하는 것의 내면적인 면에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금일에 한국 기독교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생각들은 예수 믿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시인하고 교회당 출석을 잘하며 교회 생활 충실하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들의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이 엉망일지라도,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비방과 비웃음을 당할지라도 교회생활만 잘하면 된다는 가르침을 받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왜 이런 현상이 왔을까? 그것은 믿음의 가장 기본에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이 말씀은 거듭남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케 하는 말씀이다. 거듭남은 막연하게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만이 아니다.  물론 믿음은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함으로 시작되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내적, 외적인 변화가 뒤따르는 것이다.

필자는 단정코 말하거니와 거듭났다고 하면서 영적인 육적인 변화가 전혀 없는 사람을 천국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거듭남은 새로운 사람으로의 출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옛 사람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버리고자 하며 새 사람을 입는 것이요, 땅의 사람이 하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물론 단번에 변화되지 아니하였다고 슬퍼하거나 노할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신자의 속에 계신 성령님에 의해서 점점 변화되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첫째로 내적인 변화이다. 이 변화는 인격적인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구원받기 전에 맺었던 원한적 미움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조금도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 앞에서 그 구원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5).

신앙은 인격적인 변화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셨고 인격적으로 용서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은 십자가의 사역을 통해서 새로운 인격체로 변화됨을 거듭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창조주에 의해서 피조된 인간이 건방지게 하나님의 은혜를 업신여기고 뱀의 말에 미혹되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께 도전하였으니 어찌 인격적 파괴가 아닌가? 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시되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눈물겨운 사랑에 감동되어 그분을 주인으로 영접 하였다면 당연 그분을 통한 인격적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니 또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인격적 변화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느니라”(요일 3:10).

오늘날 예수 믿는다고 성경은 끼고 열심히 교회당에 출입하되 내적인 변화는 전혀 없이 천국 갈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슬픔을 금할 길이 없다. 교회에서 아무리 크고 높은 직책을 맡아 수십년 봉사하여도 확실한 내적인 변화를 경험한 거듭남 없이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할 것이다.

변화된 삶이 없는 거짓 그리스도인이 거듭난 사람보다 숫적으로 전혀 비교될 수 없이 많으니 이방인들이 볼 때는 성경책 끼고 교회당 출입만 하면 신자로 착각하여 교회를 비방하기에 이른 것이다.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2:24).

 

두번째 변화는 내적인 변화를 통한 외적 변화이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의 경우를 보아도 분명하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 죄용서받은 후 즉시 말하기를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고 하였다. 이것은 누가 시키거나 교육을 통해서 되어진 일이 아니고 예수님을 만나고 난 결과로 오는 내적, 외적 변화다.

금일에 수많은 기독교인이 거듭났다고 자처하면서도 도무지 변화된 생활이 없이 입으로만 하나님을 찾는 것을 보는 것은 탄식할 만한 일이다. 물론 즉시 번화된 사람도 있고 점진적으로 변화되는 사람도 있으나 분명한 것은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는 거듭남이 있어야만 참된 구원이라는 것이다. 변화는 세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시각이다.

하나님을 전혀 불신하거나 믿었다 할지라도 막연한 신앙의 대상으로만 알았던 사람이, 나를 사랑하시고 세상을 창조하신 능력으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사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나 개인의 구세주로 삼게 하신 살아 역사하시는 실재의 하나님으로 깨닫고 믿게 되는 것이다( 1:41,49). 이제는 성경이 답답하고 딱딱한 책이 아니라 나를 그토록 사랑하신 아버지의 인자하고 사랑스런 말씀으로 달콤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119:103).

둘째로 자신을 보는 시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제일 의롭고 정직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구원받은 자는 이와 다르다. 그는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질대로 더러워져 당장에 지옥에 던져져야 할 죄인인 자신이 십자가 속죄로 말미암아 겨우 지옥을 면하게 되었음을 깨닫고 이러한 은혜를 주신 주님 앞에서 겸손히 하나님을 여배하며 자신의 삶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는 이제 자신을 바라볼 때 초라한 모습에 떨며 연약한 자신을 바라보며 주님의 은혜와 긍휼이 아니면 자신에게는 전혀 소망이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평생을 주께 의지하며 주님만을 위하여 살기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세번째로 세상에 대한 관점이다. 

죄인은 세상에서 소망을 이루어 보려고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은 물질과 명예와 권세를 얻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되 부끄럼없이 죄를 짓는 자들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여기서는 본질적인 면을 논하는 것이다. 앞에 예를 들었던 삭개오가 좋은 본보기이다.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그냥 망하는 줄로 생각하는 것이 죄인의 사고방식이 아닌가?

그러나 성경을 통하여 내세와 영원한 생명에 관하여 깨달은 그들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말씀처럼 영원한 세상을 위하여 사는 삶이 시작된다(고후 4:18). 그들은 땅엣 것을 우습게 여기고 위엣 것을 찾게 된다( 3:1,2).

금일에 필자가 만나본 상당수 사람들도 구원은 받았노라고 하면서 실제는 땅에만 집착하여 살며 내세의 소망은 그들의 관심 밖이요 겨우 이론적이요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멸망의 자식이 분명한 것이다.  독자여 그대는 진정 거듭났는가? 진정 변화된 그리스도인인가, 아니면 말뿐인 쭉정이인가? 점검하여 보기 바란다.

 

(1995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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