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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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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11. 16:15 횃불/1995년

이사야서에 나타난 그리스도

F. B. 메이어

5

나의 종을 보라”(이사야 42:1)

우리 주님께서 종의 형체를 취하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 시작하셨을 때 그것은 그분께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삶은 항상 섬김과 봉사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모든 것을 섬기기에 머든 것을 다스리신다. 영적인 영역의 영원한 질서에 의하면, 그분은 가장 높은 자인 까닭에 또한 가장 낮은 자이셔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께서 저 하늘 위에서 늘 살아오신 삶을 나타낼 것이었다. 그리고 일단 우리가 주님의 놀라운 지상사역 기간 동안 수많은 가정을 축복과 기쁨으로 채워준 그러한 삶의 원리를 배울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우리 자신의 삶을 위한 본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우리 주님의 삶과 사역은 섬김의 이상을 보여주셨다.

위의 구절이 우리 주님에게 적용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성령께서 마태라는 복음서 기자를 통해서 본문을 직접 주님과 연관시키며 말씀하시기를, 잠시 동안 그 광채를 이 세상에 비친 그 비할 데 없는 삶에 의해 본문의 의미가 완전히 성취되었다고 하셨다( 12:18). . 종의 형체를 취하신 분-제자들 중에 섬기는 자로 계셨고 훗날 그의 피곤한 일꾼들이 그의 나라에서 그의 식탁에 함께 앉을 때 저들을 섬기겠다고 약속하시는 분-께서 우리 속에 자신의 형상을 이루시기를!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령의 능력으로 덧입히실 수 있는, 그리고 그것으로 그분이 동역하실 수 있는 주님의 지상 사역의 특징들을 우리가 우리의 한도 내에서 다시 드러낼 수 있기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도다.”  내가 네 손을 잡으리라!”

그 특징들은 여호와께서 그분의 마음이 기뻐하는 택한 종에게서 보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귀한 자질들이니, 신적인 절제와 신적인 겸손, 그리고 신적인 인내가 그러하다.

 

(1) 최선의 작품의 자기절제-해가 가는 길을 인도하시고 이슬로 풀을 신선케 하시고 우리의 길과 눕는 것을 살피시는 등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언제나 일을 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분의 모든 일은 너무도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진행되므로 많은 이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다.

그분은 숲과 바다와 사람이 거하는 집에 아침마다 식물을 베풀어 놓으시고는 모든 것을 의존하는 그분을 우리가 보기 전에 조용히 사라지신다. 우리는 그분이 행하신 것을 알지만 그분은 소리 없이 발자국 없이, 다만 그 손길의 온기만을 남겨둔 채 가버리신다.

그리스도의 사역도 그러했다. 그분은 그분의 신성을 선포하거나 그분의 명성을 퍼뜨리는 이들의 입에 그 손을 대셨다. 그분은 그분의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 그분을 알려서는 안 된다고 거듭거듭 이르셨다. 그분은 베데스다 연못 입구를 가득 메운 무리를 조용히 빠져나가셨다. 고침받은 중풍병자가 자기를 고친 사람을 알지 못하도록. 그분은 할 수 있는 한 갈릴리 고지에 오래 머무셔서 급기야 육신의 형제들의 비난을 듣기에 이르렀다. 그분은 다투지 않고 외치지 않고 들레지 않고 그 목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않으셨다

이러한 자질이 최선의 작품에 대한 하나님의 증표이다. 그분의 최고의 예술가들은 그들의 그림에 그들의 이름을 새겨 넣거나 그들의 무리 가운데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우주의 진리와 아름다움을 증거한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들은 자연의 거룩한 영역(領域)과 인간 얼굴에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미()의 흔적에서 본 것을 드러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하나님을 위해 영혼을 얻는 것, 문둥병자의 상처를 깨끗케 해주는 것, 소경 된 눈을 보이게 하는 것, 죽은 자를 그 모친과 누이와 친구에게 돌려주는 것, 이것으로 충분한 보상이 되는 것이다. 완성된 작품에서 눈을 돌려 하나님의 낯을 뵙고 그분의 응답하는 미소를 감지하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로부터 상급을 받는 것, 이것이 곧 천국이다. 이것과 비교하면 인간의 칭찬은 인간의 책망만큼 무가치하다.

사랑하는 형제여, 당신의 영혼의 성향은 어떠하며 당신의 작품의 질은 어떠한가? 위에서 말한 천상적인 특질이 주장하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만일 당신이 영혼 깊숙이 인간의 달콤한 칭찬의 소리를 구한다면, 만일 당신의 수고의 결과가 사람들 중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욕망을 의식한다면, 가을에 맺는 과실이 썩어 들어 가듯이 당신의 사역이 급속히 부패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럴 때는 당신의 밝은 영혼을 어둡게 만든 불순물이 제거될 수 있도록 속히 외딴데로 피신해야 한다. 그리하면 무수한 별들이 펼쳐있는 짙푸른 하늘만이 비쳐질 것이다.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영원하고 결실이 풍성하고, 또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을 드러내는 유일한 작품은 선전을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 작품이다.

 

새는 지저귀는 것으로 만족하고 꽃은 아름다운 것으로 만족하고 어린아이는 그 천진난만한 모습을 부모의 따스한 눈길에 보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리고 진정한 일꾼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2) 최선의 작품의 겸손함-하나님의 최선의 섭리는 앙무리 가운데서 취한 목동들, 이름 모를 어린아이들, 인적이 드문 산골 마을에서 티없이 자란 소녀들과 함께 했다. 그분은 강한 자를 끌어내리고 온유하고 겸손한 자를 높이셨다. 우리 주님도 그러하셨다. 그분은 헤롯의 궁궐을 지나치고 베들레헴과  말구유를 택하셨다. 그분은 세상 제국들을 거절하고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다. 그분은 가난한 계층에서 사도와 제자들을 택하셨다. 그분은 어린아이들에게 최고의 비밀을 계시하셨다. 그분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사회를 떠나사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를 돌보는 심정으로 죽어가는 강도와 타락한 여인과 갈릴리  농부들을 위해 자신을 바치셨다.

상한 갈대!” 이 얼마나 매정함과 폭압으로 부서진 상한 심령을 잘 나타내주는지! 아무 아름다움도 없는 누런 깃털과 아무 힘도 없는 가는 줄기, 그리고 그것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아무 관심도 끌지 못하는 황량한 늪지대를 보라.그리고 갈대 숲을 지나노라면 얼마 안 가서 하마의 거친 뒹굴음과 농부들의 발길로 인해 상처투성이인 줄기들을 본다.

그렇게 마음이 상하는 것이다. 거센 이기심의 압박과 무정함의 발길에 저항하기에는 너무 힘이 없어서 그들은 소리 없이 부서지고 그런 다음 쓰레기마냥 무참히 버려진다.

꺼져가는 심지!” 그 길은 얼마나 미약한지! 그것은 큰 불꽃을 지피기에 얼마나 무기력해 보이는지! 어떤 이들의 마음 속에는 이렇게 사랑이 미약하게 타는 까닭에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만이 그곳에 사랑이 있음을 아실 수 있다. 심히 불안하고 심히 불규칙스럽고 심히 힘이 없는 그런 사랑의 불씨가 말이다. , 제 경우는 어떠한지! 독자들이여, 여러분과 저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아니라 꺼져가는 희미한 불씨가 우리의 사랑의 진정한 모습이었던 시절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겉모양을 중시하는 일꾼은 그런 순간들을 무시해 버린다. 그는 그의 능력에보다 상응하는 대상을 찾아 그렇게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내가 강하고 고결하고 영웅적인 영혼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을 달라고 그는 외친다! “나와 견줄만한 적군을 만날 수 있는 영역을 달라! 내가 쌓아둔 지식이 적절히 활용될 수 있는 임무를 달라!”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을 때 그는 자신이 제 위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최선을 할 수 없는 한 아무것도 못해!” , 그것은 어리석은 말이다! 최선의, 가장 고상한 것은 세상이 무시하는 자들에게 거룩한 겸손으로 허리를 굽히는 것이다. 거룩한 재능, 신성한 창의력을 사용하여 상한갈대로 훌륭한 피리나 새 예루살렘을 위한 측량자를 만들 수도 있고, 꺼져가는 심지의 불씨를 지펴서 극기야 베드로의 마음에서 거의 사라져간 그것이 그 가물가물한 상태로 머문지 7주만에 3천의 영혼에게 불을 지피도록 하게 한 것처럼 할 수도 있다.

이 것도 진정한 사역에 대한 시험이다. 당신은 어디서 그것을 발견하는가? 당신은 보다 큰 영 역을 원하는가? 무지한자들에게 복음을 풀이해주고, 약한 자들의 끊임없는 퇴보와 침체를 돌봐주고, 심약하고 의심 많은 자들의 두려움과 더불어 싸우고, 새로운 신자들간의 늘상 일어나는 논쟁과 다툼을 조정해주고, 무리 중 가장 미약하고 어린 자들과 더불어 보조를 맞추는데 요구되는 수고를 아까와 하면서 말이다. 조심하라! 당신의 사역은 그 최고의 가치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 그 빛깔이 여름실과의 빛을 잃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드러운 색조가 당신의 그림에서 흐려지고, 그 날의 은혜가 사라지고 있다. 너무 늦기 전에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러면 가장 훌륭한 영혼들은 때때로 상한 몸 안에서 발견되며 가장 훌륭한 작품은 종종 가장 희미한 불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배우게 될 것이다.

 

(3) 거룩한 인내-비록 우리 주님은 주로 상한 심령과 꺼져가는 심지에 관심이 있으시지만 그분 자신은 상한 심령도 꺼져가는 심지도 아니시다. 그분은 쇠하지도 낙담하지도 않으신다. 세상이 처음 창조될 당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한 중에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장중하게 펼쳐졌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창조주의 입에서 참 좋구나라는 탄성과 함께 현재 존재하는 이 세상이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셨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그러하다. 갈보리의 놀라운 희생이 있은 후의 오랜 역사는 혼돈에서 조화로, 무질서에서 질서로, 혼란에서 문명으로의 변화들을 증거했다. 특히 8~10세기에는 마치 지난 시대의 눈물과 순교와 전도의 결과가 완전히 사라진듯했다. 그러나 주님은 한번도 낙심하거나 그 끈을 느슨하게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런 중에도 자신의 목적을 꾸준히 추진하셨다.

이 것이 또한 최선의 작품의 특질이다. 육신에서 나오는 것은 욕망과 격분과 충동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애굽인을 죽여 모래 속에 묻는 그런 충동적인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한다. 그러나 곧 탈진하고 무기력 가운데 주저 않는다. 어떤 일이 쉽게 시작되었다가 쉽게 포기된다는 것은 그 일이 성령이 아닌 육신에서 나온 것임을 입증한다. 반면에 어떤 일이 조롱과 비방과 위협을 당한다는 것은 그 일이 하나님께로서 말미암았으며 그 일을 맡은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필요한 힘을 공급받고 있음을 입증한다. 만일 당신이 인내 가운데 있다면 당신의 일이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인지 아니면 당신 자신이 선택한 것인지 생각해 보라. 만일 후자일 때는 그 일을 포기하라. 그러나 만일 전자일 때는 당신의 힘이 소생할 때까지 주님을 기다리라. 그러면 낙심하지도 쇠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특질들은 아무리 훌륭해도 적어도 성령의 능력 부으심이 더해지기 전에는 우리에게 유효할 수가 없다.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줄 것이라.”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이 약속이 이루어졌다. 그분이 물에서 나오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육체적인 모양으로 그분께 내려와 거했다. 그런 다음 그분의 입술이 열렸고 그분의 공사역이 시작되었다. 30년 동안 그분은 나사렛의 조용하고 드러내지 않은 삶에 만족하셨다. 이제 그분은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셨다( 61:1, 4:17~19).

그 장면이 주님의 생애에 있어서 지니는 위치는 오순절이 교회에 대해서 지니는 위치와도 같다. 오순절 때에 교회는 사람들 가운데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기름부음을 받았다. 이 기름부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믿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특히 주님의 일을 하도록 우리를 무장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당신은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성령의 도움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을 때까지 기다리라.

이것으로 전부는 아니다.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란 표현 속에는 성령께서 모든 참된 하나님의 종과 함께 일하신다는 뜻이 암시되어 있다. 우리가 말을 시작할 때 성령께서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임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영광을 증거할 때 성령께서도 각 사람의 마음과 양심에 증거하신다. 하늘로부터 오는 소리가 우리 입술에서 발해질 때 그 때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것은 그 거룩한 동역자인 성령께 자기 짐을 맡김으로써 과도한 긴장에서 풀려나게 할 뿐만 아니라 측량할 수 없는 능력으로 강화시켜준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말한 성령의 교통하심(communion, 함께 소유하다는 뜻)의 의미이다. 이렇게 성령과 더불어 목적과 방법을 공유함으로써 성령의 도우심으로부터 가능한 최대의 조력을 얻어낼 줄 아는 사람은 복 있는 자이다.

봉사의 거룩한 원리들은 이상과 같다. 그리고 우리의 분량 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는 평가를 들으려면 우리 모두 그러한 원리들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1995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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