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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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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11. 16:16 횃불/1995년

요한계시록 강해(28)

~ 22 ~

어거스트 반 린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22:1~5)

이와 비슷한 묘사가 에스겔 47:7~9에 이스라엘의 지상적인 축복에 대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하늘)서는 에스겔서의 많은 나무가 한 나무 -그 나무-로 감소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생명의 나무이신 주 예수님 자신입니다. 여기에는 강과 나무와 실과가 있는 천상의 낙원이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강은 창세기에 나오는 강처럼 네 줄기로 나눠지지 않습니다. 하늘에서는 모든 나뉨이 사라집니다. 여 기서는 강이 그 근원까지-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까지 추적됩니다.

생명수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영적 축복-많은 부수적인 기쁨과 만족을 지닌 구원 -을 가리키는 친숙한 비유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것이 어린양께서 아버지와의 완전한 교제 가운데 앉아 계시는 은혜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 그 영혼의 갈증을 채워주는 생명수를 마시고자 한다면 반드시 은혜의 보좌와 접촉해야 합니다

나무와 그 열 두 가지 실과와 그 잎사귀가 있습니다 이 생명나무-그리스도 자신-는 특히 그분의 신부인 교회의 기업으로, 실과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로, 그리고 잎사귀는 이방 민족의 축복을 가리킨다고 여겨집니다. 달마다 다른 실과가 맺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위()와 사역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무한히 다양한 은혜를 말해줍니다. 영혼을 얽매거나 무디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영원히 새롭고 항상 신선한 그분의 은혜에 대한 계시만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얼굴을 볼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이 우리의 이마에 있어 우리가 그분의 소유임을 모두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잠시 잠간 후면 그분께서 오십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22:6~9)

마지막 말씀을 마치고 이 놀라운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의 막아 내려지기 전에, 우리의 복스런 주님은 자신이 속히 올 것임을 세번이나 확언하셨습니다(7,12,20). 이것은 그분이 곧 오신다는 것을 의미한다기보다 때가 되는 즉시로 오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은 속히 오실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모든 성도들로 영광 중에 그분과 함께 거하도록 하기를 원하시는 그분의 간절한 소망을 암시해줍니다. 이것은 방금 결혼한 젊은이가 먼 도시로 전근(傳勤)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그곳에서의 근무가 끝나는 즉시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기 위해 최대한 발리 귀가 길에 오를 것입니다 우리의 복스런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강림을 염두에 둔 채 그분은 우리에게 먼저 자신의 분부를 지킬 것과, 그 명령과 요구에 순종할 것과, 그리고 복스런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며 이 악한 세상에서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 것을 당부하십니다.

둘째로 그분은 자신이 올 때 자신에 대한 모든 헌신에 대해 보상한다는 것을 상기시킴으로써 우리로 충성스레 봉사할 것을 독려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분께서 그분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충성을 평가하고 높이실 것임을 많은 성경구절들이 확증하고 있습니다.

세째로 이 책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단순한 말로 끝을 맺습니다. 본문에서 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분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충성이나 우리의 사랑의 수고나 순종이 아니라 그분 자신입니다. 다만 그분을 보는 것,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이 우리 마음의 최선의 소망이며 또 그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반응은 아멘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여야 합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하는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22:10,11).

다니엘은 당시에 그 책을 인봉하라는 명을 들었으나 요한은 때가 가까웠으므로 이 계시록을 인봉하지 말라는 명을 들었습니다. 계시록의 가르침은 하시라도 성취될 수 있는 것으로 신자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기독교 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서 바울은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 때는 연대적으로 말해서 밤이 시작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적, 도덕적 상태의 관점으로 보면 밤이 이미 깊었습니다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나 그 때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깊이 타락해 있었으므로 그린 관점에서 볼 때 주님의 오심이 이미 그때부터 가까웠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주인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충성된 종들처럼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모든 자질이나 능력이 동결되어 영원히 고정될 것입니다. 그 후로는 아무 변화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강림하실 당시의 모습이 영원히 그분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성장과 발전과 그분의 형상에로의 많아감은 지금 이곳에서만 가능합니다 그 때가 되면 의로운 자는 영원히 의로울 것입니다. 그 때 도달한 거룩이 영원히 자신의 거룩의 분량이 될 것입니다. 본 장 11절에는 얼마나 놀라운 사실이 나타나 있는지요!

그리고 죄인에 대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이 나타나 있는지요! 불의한 자는 여전히 불의할 것이며(나무가 쓰러지면 쓰러진 곳에 그대로 누워있듯이), 더러운 자는 여전히 더러울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잃어진 영혼들의 영원한 상태를 말해주는 몇몇 안 되는 구절들 중하나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의 경우에는 변화가 있음을 우리는 성경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 신자의 몸은 그의 복스런 주님의 영광의 몸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본 절이 말하는 바는 죄인의 몸은 변화되지 않은 채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지상에서 지니던 그 죄와 고통과 질병의 몸을 영원히 지닐 것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운명 인지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22:12~l7).

다시 한번 축복받은 자들과 저주받은 자들이, 성 안에 있는 자들과 성 밖에 있는 자들이 나옵니다. 인간의 영원한 운명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그리스도 안에있는 자들은 그 때에 하나님의 성 안에 있을 것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의 복스런 주님은 모든 인류에 대한 마지막 호소 없이는 그분의 종과 우리에게 주시는 이 놀라운 계시를 마감하실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다시 한번 그분이 누구신지 주목하게 됩니다. 그분은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으로 다윗의 뿌리 (그분의 신성을 가리킴 )요 다윗의 자손(다윗 왕의 직계 자손으로서 인간의 몸으로 출생하신 그분의 인성을 가리킴 )이십니다. 또한 그분은 광명한 새벽별이신데 이는 그분의 신부를 그분과 함께 있도록 본향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그분의 장래 오심을 가리킵니다.

이재 교회가 성령에 이끌리어 그분과 함께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께로 나오라고 초청을 합니다. 세 차례 반복된 오라는 초청 문구는 죄인들이 나아와 값없이 생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는데 합력하고 있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오라!” 이 아름다운 말은 성경에 초청의 형태로 약 700회나 발견됩니다. , 장차 그 말은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라는 그 무서운 말로 바뀔 것입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2218,19)

이 말씀이 계시록에만 적용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모든 기록된 말씀에 적용되는 것인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의 모든 신자는 모든 성경이 인간의 손질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죄에 대한 두 가지 저주가 선언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무엇을 더하는 것은 성경에서 무엇을 제하는 것과 똑같이 악합니다. 전자의 죄는 특히 로마 카톨릭이 범하는 죄인데 저들은 공적으로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한 가르침에 잡다한 교훈을 끊임없이 추가함으로써 그 권위와 위력을 실추시킵니다. 우유잔은 거기에 물이 더해지면 더 이상 우유잔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 점을 염두에 두신 것입니다( 15:6). 후자의 죄, 즉 성경에서 무엇을 제하는 죄는 현대주의로 그릇 알려진(이것은 사단이 처음 그것을 소개한 에덴동산의 사건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고등비평이란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 기독교의 중요한 진리들을 부인하는 죄로서 특히 배도한 개신교가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이같이 임의로 손질하는 자들이 받을 분깃은 영원한 손실과 고통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저들의 몫을 생명책에서 제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때때로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한번 그곳에 새겨진 이름이 생명책에서 제해질 수 있느냐고 염려스레 묻는 사람들을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름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참여함”(part)에 대해서 말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모든 영혼을 위한 부분, 혹은 몫이 있으나 그 말씀의 진리를 부인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원히 밖에 쫓겨나 있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본문에 언급된 사람들은 신자들이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거절하거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방법을 부인하는 인간의 유전을 성경에 혼합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한 자들입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22:20,21)

이 위대한 책은 그분의 오점에 대한약속으로 끝을 맺습니다. 모든 신자는 이 약속에 대해 한결같은 바램으로 이같이 화답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모쪼록 주님께서 사랑하는 독자들을 축복하사 이 우리 앞에 펼쳐진 엄청난 사건들을 마음에 두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벧후 3:11). ()

 

(1995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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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