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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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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7. 14:49 횃불/1995년

인물 중심 성경공부(3)

발 람(3)

W. W. 페러데이

메소보다미아에서의 방황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12:4). 에덴에서 추방당한 이래로 인간은 줄곧 불안한 존재였다. 환란 중에 있을 때, 혹은 환란이 닥쳐온다고 생각될 때 인간은 가장 불안해 한다. 그러할 때 그는 으례 도움이나 피할 길을 찾아 사방을 둘러본다.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이 변방에 이르른 것을 보고 황급히 이웃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동맹을 맺고자 했다. 그는 메소보다미아에도 사자를 보내어 발람이란 유명한 예언자를 오게 했다 그는 마땅히, 그분을 필요로 하는 자들의 간구를 결코 저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앞에 문제를 가져갔어야 했다. 오늘날 우리는 정치인들이 혈육 있는 사람들과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목숨을 건채 수천 마일을 비행기로 넘나드는 것을 볼 수 있다. , 그분을 신뢰하는 모든 자에게 신실하신 분으로 잘 알려진 하나님보다 그 변덕스러움으로 악명 높은 육신을 택하는 그 소경됨이여!( 2:22)

발락의 사자들은 손에 복술의 예물을 가지고메소보다미아로 갔다( 22:7). 그 거짓 선지자가 불의의 참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벧후 2:15) 발락은 선불을 보내어 그 마음을 안심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믿을 수 없는 기만자는 그 문제에 여호와의 이름을 개입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사자들을 유숙하게 했다. 그가 당면한 과제는 매우 중요했는데 이는 한민족 전체의 멸망을 초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가 온 밤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보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그저 잠자러 갔을 뿐이다. 이 모든 행동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고 계시던 하나님께서 그에게 오셔서 너와 함께한 이 사람들이 누구냐?”고 도전하셨다

그러면 전체적인 상황을 주의깊게 살펴보자, 광야 여정 동안 내내 감사할 줄 모르고 불순종했던 여호와의 백성들이 이제 큰 위험에 직면했다. 그들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하나님께 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친히 그 문제를 떠맡으셨으며 여기서 우리는 그분의 변함없는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모든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백성들을 사랑했으며 이에 대적이 그들을 상해하게 내버려두기를 원치 않으셨다. , 이것은 우리 자신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 사실인지!

발람이 그 날 밤 그에게 말씀하신 이가 누구인지 알았을까? 그가 보이지 않는 세계로부터 소리를 듣는데 익숙한 사람이란 점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가 그를 상대하신 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것을 처음에 이해했든 못했든 간에 그는 발락이 애굽에서 나온 그 두려운 백성을 저주하라고 부탁했노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세가지 짧은 문장으로 주어졌다.

(1)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이것으로 그 문제는 완전히 종결지어져야 했다. 진정 하나님을 아는 자는 다시 그러한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2)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그러므로 아무리 그의 탐심이 발락의 은금을 탐했을지라도 발람은 발락이 원하는 것을 행하려 해서는 안되었다.

(3)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결코 그 사실을 뒤엎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신할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 전체가 있다.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 그리고 후에 발람은 나는 그것을 뒤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 22:13,18,38)

다음 날 아침 방문객들에게 한 그의 말은 그들에게 실망을 주었다.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여호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느니라.” 그의 마음은 그분의 백성에 관해서 하나님과 사귐 가운데 있지 않았다. 그는 보상금을 바라고 그들을 저주로 위협하고자 했으나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을 느꼈다

발락의 사자들이 모압에 돌아오자 왕은 그 문제를 그대로 방치해 두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앞서 보낸 자들보다 더 신분이 높은 귀족들을 보내어 발람이 오기만 하면 보상금을 더 올리겠다고 제안했다. 발람은, 발락이 그 집에 있는 은금을 가득히 채워서 줄지라도 여호와의 말씀을 어길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것은 좋게 들린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 보리라”( 22:18,19). 이러한 태도는 매우 악한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이미 그분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셨으며 이에 더 이상 그 문제를 가지고 그분께 여쭈어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발람은 가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실은 그는 가말리엘처럼( 5:39) 그분과 드러내 놓고 다투기를 원치 않을 만큼 하나님을 알고 있었던 반면에 가급적이면 여호와를 자신의 뜻에 굴복시키고자 했다! 얼마나 가증한 생각인지! 우리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 소치인지!

하나님께서는 그 밤에 다시 발람에게 말씀하셨다.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20). 이제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를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하고자 하셨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혼란에 빠뜨리고 그러한 사단적인 계략으로부터 그분의 백성을 위한 큰 축복을 끌어내기로 결정하셨다. 이 사람이 그 문제에 관해 하나님께 대해 취한 악한 태도는, 예레미야 시대에 갈대아인을 두려워하던 중 유대인 군장들이 취한 행동을 생각나게 한다. 그들은 온 무리와 함께 애굽으로 가기로 이미 마음에 결심을 하고 서선지자 예레미야에게 그들의 길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를 받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바 있다( 42). 이미 마음에 결정을 해놓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항상 유의하자. 그것은 하나님의 엄위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

발람은 여호와의 허락을 얻은 다음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발락의 사자들과 함께 출발했다 그는 여행을 시작할 때 주 예수님이 요한일서 2:6에서 말씀하신대로 빛 가운데 행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발람은 자기 길을 가다가 그 악행에 대한 풍부한 보상을 거둘 것을 바라고 어둠 가운데 행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관심사와, 사람들의 축복을 위해 하나님께 쓰임 받고자 하는 바램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그는 아무 멧세지도 없었다. 그가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족속을 목도랄 때 과연 그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이 것은 교훈을 위한 여행이며 그 교훈은 세상이 존재하는 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보다 더 사단이 저주하기로 단단히 결심한 적이 없으며, 이보다 더 하나님께서 축복하기로 단단히 결심한 적이 없으시다! 이보다 더 사단이 자발적인 종을 소유한 적이 없으며, 전능자께서 그를 그 손에 취하셨을 때 발람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없었다! 우리 하나님의 길에 대해 묵상한다는 것은 영혼에게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

 

선지자의 미친 것

디모데전서 6:10에 대한 흠정역(KJV)의 번역은 결함이 있다. 사도는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이다라고 말한 것이 아닌데, 사실 많은 악()이 돈을 사랑하는 병에 전혀 오염되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개정역(RV)돈을 사랑함이 모든 종류의 악의 뿌리이다라고 그 의미를 보다 정확히 옮기고 있다. 그 유해한 뿌리로부터 시기와 거짓과 살인(다른 죄들은 물론이고)이 쉽게 생겨난다. 그러나 동일한 가증스런 죄들이 다른 뿌리에서도 나을 수 있다. 돈을 사랑함은 가룟 유다와 다른 많은 이들의 경우처럼 발람에게도 멸망을 초래했다. 15세기가 흐른 후에 성령께서는 발람의 행위에 대해서 해설하면서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했다고 지적하셨다(벧후 2:15).

우리는 발람이 발락의 은금으로 그의 영혼의 그릇을 가득 채운채 메소보다미아를 떠나 모압으로 향하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오로지 보상금을 바라보며, 그리고 그 아무 잘못이 없는 백성에게 애꿎게 저주를 퍼붓는 일에 대해 아무 죄책감도 없이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에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으며 그는 그들과 직접 다툰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한 민족 전체-남녀 어른 및 아이들 모두-를 멸절시키려 했다!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이 있겠는가! “그가 행함을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셨다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22:22).

한 천사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을 가로 막고 싫다. 그는 여호와의 사자로 불리운다. 그는 단순한 종이 아니었다. 그는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 그 이름이 기묘” (Wonderful)라고 밝힌바 있는 그 사자이다( 13). 마노아의 아내와 발람 두 사람 모두에게 그는 신적인 권위로 말했다. 발람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보라 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22:32,33). 여기에 말하는 자는 다름아닌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알고 있는 그분이셨다. 나귀는 그 사자를 보고 칼날을 피하려고 곁길로 돌이켰다. , 짐승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보다 더 지각이 있었다니!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랄지 못하는도다”( 1:3), 다른 어떤 백성에게보다도 더 큰 자비를 베푸신 백성의 도덕적 무감각에 대한 여호와의 탄식이 그러했다. 말 못하는 짐승이 그들을 부끄럽게 했다!

발람은 그의 나귀를 세번 채찍질했다. 사자는 그로 인해 그를 꾸짖었는데 이는 짐승에 대한 일체의 잔인한 행위는 하나님의 주목을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처음 나신 자와 더불어 영광 중에 나타날 때 신음하던 피조물들이 궁극적으로 해방될 것이다( 8:19~22) 한편, “여호와께서 나귀의 입을 여셨다.”  이에 대해 아무도 의심하지 말기 바란다. 성경의 모든 책의 진정한 저자이신 성령께서는 민수기에서만 아니라 훨씬 뒤에 기록된 베드로후서에서도 그렇게 말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법을 배우는 이들에게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되어 준다. 어찌 나귀가 말해서는 안되는가? 인간에게 언어를 주신 분께서는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짐승에게도 확실히 언어를 주실 수 있다. 쇳덩이가 물 위로 떠올랐다(왕하 6:6).

태양이 멈춰 섰다( 10:13). 왜 기도하지 않는가? 여호와께서 하시지 못할 어려운 일이 있겠는가? ( 18:14) 모든 문제를 그분께 가져가라, 그러면 모든 어려움이 사라진다.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4:35).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하였느니라”(벧후 2:16). 그분의 백성에 관한 여호와의 선포된 목적을 철회 내지 변경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실로 미친 것이여! 인자하신 창조주께서 한 예언자가 돈을 벌 수 있도록 수많은 영혼들을 멸절당하게 허락하실 수 있다고 상상하는 미친 것이여!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어떤 미친것인들 못하겠는가? 오늘날 우리 시대의 세상의 황폐함은 지혜의 증거인가, 미친 것의 증거인가? 만일 발람이 조금이나마 하나님에 대한 마음의 지식이 있었다면 그는 사자를 만난 뒤에 더 이상진행하기를 거절했을 것이다. 물론 사자는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앞서 보라 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라고 말한바 있다. 그 모든 말씀을 듣고도 발람은 자기 길을 진행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는 그의 고백은 사울의 입술에서 나온 같은 고백처럼(삼상 15:24)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자각된 양심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다.

머지 않아 발람은 발락을 만났으며, 발락은 처음 초청할 때 오지 않은 것에 대해 발람을 질책했다. 그러나 메소보다미아에서 부름받은 그 비극적인 일을 떠맡을 때 발람의 마음은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 두 사단의 종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그들을 멸하려고 가공할 능력으로 세상과 지옥을 옮겨보려 노력할, 그러나 오래전에 발락과 발람이 그러했듯이 성공을 거두지 못할 말세에 나타날 짐승과 거짓선지자를 예표해 준다. 실로 그들은 산채로 유활 불 붙는 못에 던져질 것이다”( 19:20). 누가 능히 하나님을 대적하리요!

 

(1995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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