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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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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7. 14:52 횃불/1995년

잊혀진 명령-거룩하라

윌리암 맥도날드

 

7 : 하나님의 몫과 우리의 몫

거룩에는 하나님의 몫과 인간의 몫이라는 신비로운 혼합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다 거룩하기를 원하신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를 거룩케 하실 수 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동참없이는 그 일을 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축복의 장소에 두어야 한다.

거룩에 대한 조건 충족이 없이 거룩이 기적적으로 우리에게 임하기를 기대하거나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셔서 우연히 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푸른 초장으로 이르는 길에 대한 안내판은 아주 분명하다. 우리 다 같이 그 길을 가도록 하자. 예를 들어 거룩하기를 원하면서 기도와 헌신을 등한히 하는 것은 동쪽으로 가기를 원하면서 걷는 것은 서쪽을 향하는 것과 같다.”

오직 믿음으로만 거룩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성도들을 잘못 인도하는 것이다. 이는 그저 아무런 노력 없이 가만히 앉아 있어도 그리스도를 많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이는 신약 성경에 나와 있는 의지적인 순종에 대한 수백 구절이 넘는 많은 말씀들을 그저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기는 것이다.

승리의 삶은 소명의 제단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도 성도들을 잘못 인도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그 자신을 그리스도께 재 헌신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제단에 드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사실 일시적으로 제단에 드린 자신의 의지는 지속적인 노력의 뒷받침이 없이는 곧 그 열정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 하나님으로 그 일을 하시게 하자라든지 약속을 믿으면 충만을 받는다또는 노력하지 말고 신뢰하라는 등 아주 그럴사한 구호들에 조심해야 한다. 도날드 캄벨(Donald Campbell)이 말한 것과 같다. “성령은 신자들 안에서 자동적으로 혼자 역사하시지 않고 그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신다.”

 

순간적인 거룩은 없음

하나님께서는 한번 먹기만 하면 자연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거나 거룩해질 수 있는 약을 만드시지 않으셨다. 그분은 거룩에 대한 묘약이나 지름길을 만드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거룩을 일생동안 이루어야 하는 것으로 말씀하시고 그에 필요한 능력을 예비하시며 우리가 매일매일의 삶에서 그것을 이루시기를 원하신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거룩은 믿은 바 행위로 이루어진다. 우리 모두는 다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심술을 부리는 자이거나 신경과민, 급한 성격, 참지 못함, 무뚝뚝함, 사랑치 않음, 신경질, 자기중심적, 속임, 헤픈 맹세, 신성을 더럽히는 인행 그리고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지 못하는 습관이 있다고 하면 우리는 변화되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으시다. 사실 그분은 그렇게 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나 그분은 그것을 우리의 동참으로 이루어지기를 원하신다. 그분이 우리의 동참을 유도하시는 방범은 우리를 율법 아래 두시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아래 두시는 것이다. 신자들은 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거룩해지기를 원한다. 이것이 우리가 다음 장에서 다를 주제이다.

 

8 : 사람이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는가?

사람이 구원받은 후에는 어떻게 그가 거룩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죄와 세상으로부터 성별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만일 프로그램에 대한 구상의 책임이 사람에게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여러 가지 규칙과 법칙들을 만들어 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그 법 아래 두어 지키게 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인이 그 법을 지켜 그 법이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면 그는 거룩해진다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이것이 바로 율법을 지킴으로 얻는 거룩이다. 율법은 십계명을 포함해 안식일 준수, 술과 마약을 금하는 것, 영화나 담배, , 음행 등을 금하는 것이다. 하라고 하는 것과 하지 알라는 계명은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형벌이 없는 법은 하나의 권고일 뿐이며 법에 따라 살지 못하는 자에게는 형벌이 가해져야 한다. 대부분 법을 지키지 못한 형벌로는 구원상실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못하면 영생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율법준수를 통하여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의 곧은 믿음을() 지켜주는 것은 형벌에 대한 두려움뿐이라고 믿는다. 거룩에 대한 이같은 접근은 치명적인 결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성경 어디에도 우리가 어떤 법을 순종하거나 피해서 거룩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반대로 바울은 그와 같은 개념을 도입하는 갈라디아인들을 책망했다. 그는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 육체로 마치겠느냐?”라고 물었다( 3:3), 다시 말해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면 율법을 지킴으로 어떻게 거룩하여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거룩에 대한 이같은 접근은 비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제임스 데니(James Denney)가 말한 것처럼 성도를 낳는 것은 시내산이 아니라 갈보리 산이다 율법은 힘이 없는 자에게 힘을 요구하면서 그 힘은 공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요구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저주한다. 그리고 율법아래서는 죄가 살아난다( 7:8~13).

사람은 타락한 본성으로 인하여 금한 것은 더욱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이것은 율법의 잘못이 아니라 사람 속에 거하고 있는 죄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거룩

하나님의 거룩은 다르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거룩은 율법이 아니라 은혜를 통한 거룩이다. 주님은 사실 내가 내 은혜로 너희를 구원하였다. 이제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가 이에 맞는 삶을 살라. 내가 너희에게 내주하도록 성령을 주었으니 그가 너희의 부름에 합당하게 생활하도록 능력을 주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시험을 물리칠 때마다, 죄에 대하여 아니오라고 말할 때마다 그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상을 주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물론 자연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그 부름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라는 의문이 일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신약성경에 내가 너희들을 위한, 즉 의로운 삶에 대한 교훈들을 가득 기록해 놓았다 이 교훈들 중 더러는 심지어 계명들이라고도 말하지만 그것들은 나를 기쁘게 하는 삶이 어떤 삶인가를 보여주는 실질적인 예들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구원받는 순간 신분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자들이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거룩하신 분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책임 또는 임무는 우리의 실질적인 삶이 신분에 맞게 하는 것이다

 

두려움이 아닌 사랑

은혜 아래서는 거룩에 대한 동기가 두려움이 아닌 사랑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주님이 지불하신 값을 생각할 때 본능적으로 거룩해지기를 원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갈보리 동산에 대한 기억은 경건하고 의롭게 살고자 하는 강한 동기가 된다. 신자는 묻고 이에 곧 대답한다. “저를 사로잡아 당신께 이끌 법이 필요합니까? 포로는 제 마음이며 즐거움은 절대로 자유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은혜 아래만 거하게 하면 곧 나가서 무엇이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고 말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은혜의 교리는 죄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스펄젼은(Spurgeon)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죄를 지으려고 하나님과 싸우는 것은 그 본성이나 은혜에 맞지 않는다. 하나님이 내게 선하시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미워한단 말인가? 그분이 나를 축복하시기 때문에 그분을 저주한단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남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선하신가? 그렇다면 나는 그분을 근심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분이 내 죄를 기꺼이 용서하시는가? 그렇다면 나는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로 모든 악을 미워하고 하나님께 헌신케 하는 데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끌리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설득력은 없다. 우리가 다른 어떤 것을 가지고 설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모든 것처럼 은혜도 오용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 중에는 자기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죄를 짓는 기회로 사용하는 자들도 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무법자들은 아니다. 오히려 바울이 고린도전서 9:21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법 아래 있는 자들이다. 신자들에게는 율법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가 삶의 법이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지만 이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옛날과는 다른 것이다. 우리는 거룩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시험을 피하고 이를 대적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기를 원한다. 오늘날 교회들에는 여러 부분에서 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들 자신의 계명 중심으로 하는 자들이 있다.

이제 우리는 잠시 시간을 내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신자가 전혀 죄를 짓지 않는 완전한 거룩에 이를 수 있는가? 성경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1995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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