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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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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6. 09:17 횃불/1996년

한 영혼의 가치는 크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9:10).

만약 당신이 5,000만원의 돈을 어떤 사람에게 떼였다고 생각하여 보자. 자취를 감춘 그 사람을 찾을 길이 없어 애가 타고 있었다. 수소문하고 알아본 결과 그는 강원도 산간 어디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그는 그곳에 숨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정보를 입수한 당신은 그곳을 즉시 찾아갈 것이다. 아무리 바쁘고 중요한 일이 있어도 그를 먼저 찾아 나설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자의 이 말에 동의할 줄 믿는다.

당신에게 있어 5,000만원의 돈이 그토록 중요하여 만사를 제쳐두고 찾아 나선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하늘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한 영혼을 찾아 이 세상에 오셨다면 그 한 영혼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이것은 한 영혼의 가치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일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도 천하만국의 부귀영화와 좋은 것을 다 뿌리치시고 한 영혼을 건지는 일에만 몰두하셨지 아니한가?( 4:1-11).

억지로 왕 삼으려 할 때에도 거절한 이유는 무엇인가?( 6:15) 한 영혼을 건지려는 일을 위함이 아닌가? 그대가 5,000만원 때문에 직장을 휴직하고 찾아 나섰다면 왕의 자리를 버리고 그대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생각하여야 하지 아니한가? 한 영혼의 가치는 어떤 직책이나 어떤 물질의 가치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하셨다( 16:26).

주님은 이 지구를 회복시켜 살기 좋은 낙원으로 만들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다. 세상의 제도를 바꾸거나 나라를 개혁시켜 발전시키기 위하여 오신 것도 아니다. 오직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천하를 주고도 살수 없는, 즉 물질적 가치를 온전히 초월한 것이 영혼의 가치이다.

바울은 구속의 진리를 상업적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

너희는 값으로 사진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 6:20, 7:23).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이 값을 지불하고 사셨다. 모든 물건의 가치는 값으로 정해진다. 500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은 500원의 가치를 지닌다. 그 값이 정상적인 것이라면 그 가치는 그 이상을 결코 넘지 못할 것이다. 물건 중에는 5,000만원이나 50억을 주어야 하는 것도 많다. 그 가격은 그 물건의 가치이다. 그렇다면 한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지불하신 댓가는 무엇인가? 그것은 물질로써 대체될 수 없는 것이었다( 49:7,8). 이 일을 생각할 때 다음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16).

한 영혼을 건지기 위하여 치루신 값은 자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사 비참하게 죽게 하신 것이었다.

독자도 생각해 보시라. 우리가 그만한 대접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초라하고 하루살이 같은 가치없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한 영혼의 가치를 자신의 외아들을 희생시킬 만큼 크게 인정하셨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 안에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한 영혼을 귀히 보시고 아들을 주신 까닭은, 그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투자되었다는 것이나. 만약 여러분이 평생 모은 재산 중 절반을 어느 학교 재단에 기부하였다고 하자. 여러분이 그 학교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아니하겠는가? 그 학교가 잘 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흙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만드심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기가 인간에게 불어넣어져서 인간이 만들어졌으니 물질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동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사람은 존귀하다. 그러나 존귀한 가치를 깨달을 때 존귀한 것이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49:20).

 

둘째로 영혼의 가치를 존귀하게 보시고 아들을 주신 까닭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닳았기 때문이다. 아비가 자식을 귀하게 여기듯 하나님이 한 영혼을 귀히 보시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 103: 13),

부모가 자식을 잊지 못하고 사랑한다면 하나님은 어떠하시겠는가?( 49:15) .

창세 이래로 하나님은 사람을 귀히 보셨고 사랑하셨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까닭이다.

세번째로 한 영혼을 귀히 보시고 아들을 주실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불신 영혼이 가는 지옥이 너무도 끔찍한 까닭이다. 말이 쉽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영원히 죽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보통 생각할 문제인가? 독자들은 이 글을 읽는 순간 놀라야 한다. 심장이 뛰어야 하고 충격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실체이다. 정직한 반응이다.

만약 그대의 아들이 범죄하여 사형선고를 받게 될 상황이라면 당신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리려고 노력할 것이다. 몸부림을 칠 것이다.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할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을 닮은 존귀한 인간이 멸망의 지옥에 영원히 던져지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는가? 얼마나 고통스러우시겠는가?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선뜻 내어주실 수 밖에 없었음이 당연한 것이다. 한 영혼을 위하여 주님께서 죽음을 지불하시므로 구원하셨지 아니한가?

이러한 사랑을 받은 우리가 죽음을 각오하고 전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성도가 전도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고 상 받을만한 일도 아니고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것은 첫째 내가 받은 사랑을 나누는 일이요,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일인 것이다. 주님이 벌레같은 나의 영혼의 가치를 이토록 크게 보아주셨다면 내가 다른 영혼의 가치를 무시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전도하지 않는다면 한 영혼의 가치의 귀중함을 잊어버렸거나 무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선진들의 헌신적인 삶은 한 영혼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였다.

독자여, 당신의 한 영혼이 가치를 깨달은 다른 전도자에 의해서 건져짐 같이 당신도 다른 영혼의 구원을 위한 해산의 수고를 시작하지 않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일은 전도하는 일이다.

 

(1996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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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