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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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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1. 08:59 횃불/1996년

가장 사랑하는 나라

0. J. 스미스

저는 여러 나라를 가 보았습니다. 제가 여행한 나라 중에는 여러번 가본 곳도 있고, 단 한번 여행한 나라도 있습니다. 그 중 몇 나라는 저에게 참 즐거운 인상을 남겼고 어떤 나라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마음 놓고 여행 할 수 있었던 나라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제가 어디에 가든지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어떠한 기후나 경치를 원하는 대로 택하여 살 수 있고, 모든 것이 풍족하여 걱정이라고는 거의 없는 나라가 몇 곳 있습니다. 유럽과 다른 대륙에 사는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이런 나라에 가서 살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궁핍과 정부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우리 중 그 누구라도 그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나라일지라도 그곳에는 범죄, 불법, 술취함, 방탕과 이기주의가 어찌나 범람하는지 우리는 언제나 보다 나은 사회를 원하는 것입니다. 전쟁과 피흘림, 가난과 질병, 그리고 죽음 등은 우리가 나그네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리만큼 슬픔과 가슴 아픔을 가져다 줍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눈물과 고통이 없는 나라, 질병과 아픔과 죽음이 없는 나라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 나라는 전쟁과 피흘림이 없으며 귀천의 차이도 없습니다.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피곤 함을 모르며, 근심도 없고 늙지도 않습니다. 아무도 이별과 슬픔을 맛보지 않는 것은, 이곳에는 이별이란 단어가 없기 때문이며 실망이란 없는 나라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그 나라에는 죄가 없는 데, 아무도 악을 행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종류의 사고도 없습니다. 수천리 길을 여행하여도 무덤이나 장례식 행렬을 볼 수 없습니다. 그곳에는 장의사도 없고 화장터도 없습니다. 그곳에는 무덤지기가 필요 없으며 상복을 입은 사람도 없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썩지 않으며, 꽃들이 향기를 잃지 않고, 나무들이 언제나 푸르른 나라를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폭풍이나 화산의 폭발이나 지진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아름다운 강가에는 모진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곳에는 병균이나 열병, 혹은 어떠한 종류의 전염병도 없습니다.  해가 비취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밝은 것은 밤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후는 너무 춥지도 너무 덥지도 않아 살기에 꼭 알맞은 곳입니다. 하늘을 가리는 구름이나 사나운 바람이 부는 일도 없습니다.

그 나라에는 술주정뱅이를 볼 수 없는 데 이는 술 마시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며 담배도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방탕한 사람이 없으며, 모두가 깨끗한 생활을 하는 곳입니다. 사생아도 생기지 않습니다. 감옥, 형무소, 교도소 등이 세워지는 일이 없습니다. 문에는 자물쇠가 필요 없고 유리창에는 창살을 끼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도적이나 강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 들어보십시오. 그곳에서는 불구자를 볼 수 없습니다. 반신불수나 절름발이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눈먼 사람이나 귀머거리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환자를 위한 요양원이 필요없는, 모두가 건강하고 튼튼한 사람들뿐입니다.  길거리에 거지들이 방황하지 않는데 궁핍한 사람이 없어 모두 풍족한 생활을 하는 까닭입니다. 문둥병, , 중풍병, 폐병 등의 단어는 들어볼 수 없습니다.  병원도 필요 없으며, 의사라는 직업도 없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어떻게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지 이상하게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그곳에 가보았느냐고 물으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이 아름다운 나라에, 저는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다른 분들은 많이 갔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서 오랫동안 살던 한 분이 오셔서 저에게 그곳에 관하여 여러가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분은 지금 그곳에 돌아가 계시는데,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그분은 몹시 외로웠고 자주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분이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올 뿐 아니라 그분의 나라로 저를 데려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그 약속을 하신 이후로 지금까지 저는 언제나 그곳에 가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저에게 약속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제가 그곳에 간 다음에는 이 세상으로 돌아오기를 원치 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저는 그 나라를 제 고향으로 정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미 필요한 수속을 다 마치고 그 나라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저는 왜 많은 사람들이 그 나라에 가기를 원치 않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여간 사람들이 원치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많은 사람이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나라를 더 좋아하며, 그 죄의 결과로 슬픔과 고통과 실망을 가져오더라도 그 습관화된 죄에서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그 나라에 대하여 말하면 그들은 코웃음 칩니다. 그들은 제 말을 믿지 않습니다.  믿는다고 할지라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을 설득시킬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는 때가 늦을 터인데 그들의 어리석음을 어찌 하겠습니까?

 

놀라운 도시

제가 말씀드린 그 나라에는 한 놀라운 도시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가 본 그 어느 도시보다도 훨씬 크고,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 도시의 폭은 2,200km이고, 길이도 2,200km이며, 가장 놀라운 점은 높이도 2,200km 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평면의 도시인지, 입체형의 도시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 한 도시가 카나다로부터 멕시코만까지 미국을 뒤덮은 것이며, 대서양 밑바닥에서 산꼭대기까지를 차지할 것입니다. 또 그 도시가 어찌나 높은지, 도시 전체를 층으로 나누어서 한 층대를 3m 50cm로 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세대의 사람들을 수용하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넓을 것입니다. 그 도시를 둘러싼 성벽의 두께는 65m이고 그 벽은 벽옥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벽의 기초석은 12가지 온갖 아름다운 보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도시입니까?

그 도시를 밝게하는 빛은 벽옥의 광채같은 것입니다. 그 도시는 매 문마다 천사들이 지키는 열두개의 문을 통해 들어가게 됩니다. 이 문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이름을 따라 이름 진 것이며 사방에 세개씩 세워져 있습니다. 모든 문이 하나의 보석입니다. 그 도시 자체가 순금으로 되어 있으며 그 도시의 한 복판을 통하는 넓은 길이 있는데 투명한 유리를 보는 듯한 순금으로 된 길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에 가득찬 도시입니까?

그 도시에는 왕의 보좌로부터 사방으로 흘러가는 아름다운 강이 하나 있습니다. 그 강의 깨끗하고 순수한 물은 결코 소독된 인공수가 아닙니다. 그 강 좌우에는 나무가 서 있는데 그 나무에는 소성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 도시는 저주가 한번도 내린 적이 없고, 아무것도 쇠퇴하거나 부패하지 않는 곳입니다.

그 도시의 한 복판에는 눈부신 궁전이 있습니다. 궁전의 왕좌는 에머럴드와 비슷한 휘황찬란한 무지개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 왕좌 밑에는 스물네개의 자리가 있는데, 각 자리는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쓴 거룩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왕좌로 나아가는 길은 깨끗하고, 수정같은 유리로 된 길입니다. 네 생물이 왕의 보좌를 지키는데 그 광경을 충분히 설명하여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이 직접 보시지 않으면 모르실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놀라운 도시를 새 예루살렘”, “거룩한 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떤 때는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입니까? 여러분이 기억하시겠지만, 다윗은 그곳을 주의 집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곳에는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곳은 천국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성경의 마지막 책 마지막 두 장에 그곳에 대한 완전하고 만족한 설명이 있습니다.

이 두 장의 설명을 보면, 이 아름다운 도시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 금빛나는 성안으로 거짓말쟁이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모든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금지 되었습니다. 살인자, 어떠한 종류의 부정한 생활과 비도덕적 생활을 한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이처럼 아름다운 도시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사야 65:17, 66:22, 베드로후서 3:7,12,13을 찾아보시면 곧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언제인가 한번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지구와 그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불에 의하여 멸망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후에 새 땅이 대치될 것은 확실한 것입니다. 몇 가지의 예언을 들어보겠습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같이.”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새 땅에는 바다가 없습니다. 바다는 서로 떨어지게 합니다. 이 때 땅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떨어져서 사는 일이란 없습니다. 그곳에는 바다란 없는 것입니다. 그 새 땅은 의로운 곳입니다. “의가 거하는 곳!” 오늘날 이 세상에는 의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땅을 다시 창조하시면 그곳에서는 의가 승리할 것입니다. 죄가 사라지고 의가 이긴다는 것을 아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이 새 땅 위에, 즉 바다가 없고 의로움 이 넘치는 이 새 땅에 제가 이미 설명한 도시가 있습니다. 이제 예언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또 나 요한이 가 보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21:2,3).

새 땅에 있는 그 도시에는, 왕 자신이 그분의 백성과 함께 계십니다 그의 얼 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22:4).

가장 기쁜 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곳에 계실 것인데, 이 세상에 계실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계십니다. 제가 요한의 표현에 더할 수 없는 것은 그는 주를 영광 중에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1:1316)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승리에 가득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1:17,18). 할렐루야! 이것이 우리의 승리가 아닙니까? 

오 친구여! 이것이 천국입니다. 이것이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나라에 있는 도시, 하나님의 거룩한 성입니다. 여러 분은 그곳에 가기를 원치 않습니까? 기억하셔야 할 것은, 그곳은 준비된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저의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14:13)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약속된 안식과 행복을 즐기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은 주 안에 있어야 하며 주 안에서 죽어야 합니다. 만일 주를 떠나서 죽으면 천국이 결코 여러분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주 안에서 죽으려면여러분들은 주를 영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생활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주 안에 있고 주 안에서 살 면 언젠가는 주 안에서 죽게 될 것입니다. 먼저 이 세상에 있을 동안에 그분이 여러분의 주가 되셔야 하고 여러분은 그 분의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야 여러분은 그 나라에서 영원무궁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따금씩 이미 이 아름다운 나라에 간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곤 합니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알고 있을까? 그들이 이 세상에 있는 우리를 기억하고 있을까? 또 우리가 서로 만날 때 알아볼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 중에는 여러분보다 먼저 주님께로 간 사람, 즉 어머니나 아버지나 남편이나 혹은 아주 친한 친구가 생각날 것입니다.

제가 먼저 말씀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것 이외에는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밖에 다른 것은 모두가 추측이요 부정확한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증거의 말씀을 좇아야”( 8:20) 합니다.

 

그들에게는 의식이 있는가?

허다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12:1). 이들은 누구이겠습니까? 두말할 것 없이 11장에 나오는 신앙의 용사들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잠자고 있겠습니까? 만일 그들이 우리의 신앙의 경주를 주시하고 있다면 어찌 그들이 잠을 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증인이라면 자고 있는 자들이 아닐 것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모든 순교자들은 죽음 후에도 살아 있었고, 활동하였고,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2:32). 그분은 살아계셔서 그분을 아는 모든 사람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죽은 자들은 복이 있나니(행복하다)”라고 하였는데, 그들이 의식없이 잔다고 하면 어떻게 행복하거나 괴로울 수가 있겠습니까? 행복을 체험하려면 깨어서 의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932을 읽어 보십시오.

요한계시록 6:911을 읽어보면 죽은 자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의식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이것이 더욱 좋으나”( 1:23).

만일 죽은 사람이 의식이 없다면 이런 고백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들이 자고 있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들이 잠잔다면 어찌 그것이 더욱 좋겠습니까? 이곳에서 그분을 섬기는 것보다 더욱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미 떠나간 친지들은 잠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살아 있어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14:3).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으리라”( 17:24). “네가 후에는 따라 오리라”( 13:36).

이 얼마나 귀한 약속들입니까? 그들은 지금 주와 함께 있으며,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곳에 있을 가치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그분과 같이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23:43).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 5:8).

문제는 해결됐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와 함께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그는 주를 떠나서 육체에 거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갔습니다. 그의 몸, 그가 살고 있던 집은 차디차고 조용합니다. 그 이유는 그 안에 살던 주인이 떠나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덤에 갈 때, 아버지가 여기 누워 계신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낯익은 겉모양만이 발 밑에 묻혀 있을 뿐입니다. 그 자신은 떠나 갔습니다. 이제는 보다 더 영광스러운 생활로, 새 세계에서 건강하고 행복스럽게, 그가 평소에 사랑하던 구주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몸을 떠나서 주와 함께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잠자는 것이 아닌데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기때문입니다. 그들은 전에 맛보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면 왜 희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우는 것입니까?

 

그들은 우리를 기억하는가?

요셉이 바로의 궁전에 있을 때 그의 아버지나 형제들을 잊어버린 적이 있었습니까? 모세가 바로 딸의 아들이었을 때 그의 형제인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잊었습니까?

이스라엘의 작은 계집아이가 아람인의 궁전에 있을 때 그의 친지들과 선지자 엘리사를 잊었습니까?

어떻게 그들을 잊어버릴 수가 있었겠습니까? 사랑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간다고 사랑하기를 중지합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구름같은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고 권고 받지 않았습니까?( 12:1) 도대체 우리의 경주에 그렇게도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그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모든 세대의 성도와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은 먼저 간 우리의 친지들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을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여러분을 잊을 수 없을 뿐더러 여러분이 목적지를 향하여 달려가는 동안 지켜보기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들이 여러분과 함께 있게 되기까지 어찌 만족하겠습니까?  그들이 여러분을 안다는 것은 의심없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신앙의 승리를 함께 기뻐하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공의 소식을 듣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떠나온 고향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오래 전의 일이었던가 말입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놀던 곳과 소년 시기에 사귄 친구들을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주 그들을 생각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간 사람들이 우리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알아볼 것인가?

여러분도 기억하겠지만 다윗이 그의 어린 아이에 관하여 말할 때 내가 그에게 가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말이 그가 천국에 갔을 때 수천 수만의 어린이들 중에서 자기의 아들을 찾아낼 수 있고, 또 그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다윗은 그에게로 갔고, 지금도 여러 세기 동안을 아들과 함께 있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이 간 장소에 가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로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다윗이 며칠 동안 함께 했던 그 아이를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면, 떠나기 전에 오랫동안 함께 있는 우리 사랑하는 사람들을 알게 될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는 것입니다.

변화산상에 있던 세 제자가 모세와 엘리야을 알아 보지 않았습니까? 비록 제자들이 그들의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하여도 곧 그들을 알아보았습니다.

마리아가 부활하신 후의 예수님을 알아보지 않았습니까? 스데반도 영광 중에 계신 주를 보고 알았던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그의 백성에게로 모으라는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문장 그대로의 뜻입니다. 이삭과 야곱이 그들의 가족들과 모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그의 아들에게로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조심해야 할 것은 그가 무덤으로 가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여러분! 죽은 사람들, 이미 떠나간 우리의 친지들을 위하여 울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에 가득찬 그 눈동자를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부드러운 그 음성을 다시 듣게 될 것입니다. 땅에서 같이 거닐던 사람과 다시 천국에서 어깨를 같이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시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21: 3,4).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22:35)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 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가운데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임이러라”( 7:16,17).

이것이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나라입니다. 당신은 그곳에 가고 싶지 않습니까? 그곳으로 갈 여행의 준비를 하지 않으시렵니까?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당신의 마음 문을 열고 그 나라의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면 됩니다. 그러면 당신도 그 나라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언제인가 나그네 길이 끝날 때 당신은 그 아름다운 도시의 보석문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1996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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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