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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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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1. 09:02 횃불/1996년

영적 실제의 회복

이 원 재

주님이 오셨을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

주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과 특별히 서기관, 제사장, 바리새인들의 영적 상태를 보셨습니다.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성전 안에서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돈을 쏟으시고 상을 엎으시며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2:1317).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며 구제하였고 자신들의 믿음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기 위하여 회당이나 큰길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였습니다( 6:15).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영혼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또는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여 주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육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주님을 따르다 그들의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자 주님을 떠나갔습니다. 주님은 너희도 가려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믿고 따르기 보다는 표적 보여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들은 표적 중에 표적이신 주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안식일에 병든 자들을 고치시는 것을 보고 안식일을 범하는 자라고 그들이 만든 법으로 주님을 판단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가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8:19). 이 모든 잘못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버린 언약궤 (삼상 4)

제사장 엘리 시대는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하였으나 이스라엘 군대가 4천명 가량 죽고 전쟁에 지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나아가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언약궤를 실로에서 메고 와 전쟁터에 나아갔지만 언약궤마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하심이 떠나버린 언약궤였습니다. 왜 언약궤를 메고 나갔는데 승리하지 못했습니까? 그 언약궤는 광야에서 제사장들이 메고 요단강물을 밟았을 때 요단강 물을 갈라지게 했습니다. 그 언약궤를 메고 여리고성을 돌았을 때 성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능력이 함께한 언약궤였습니다. 그러나 엘리 시대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그 언약궤는 아무런 능력도 없었고 언약궤마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삼상 4:22),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 언약궤 자체는 아무런 능력도 없고 영광도 떠난 것입니다. 

 

안식일의 실제를 상실( 2:2328)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를 지나실 때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었는데 이것을 본 바리새인들이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합니다라고 판단하였으며 주님을 안식일을 범하는 자라고 정죄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들이 만든 법을 지키려 무거운 멍에를 메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습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을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며 십계명중 한 계명으로 안식일을 지키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 31:16,17).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에 일하지 않고 쉬면서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음을 기억하며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언약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람을 위하여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오히려 안식일을 위하여 사람이 만든 무거운 멍에를 메고 지키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려고 자기들 판단으로 주님을 정죄했으나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믿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일의 참 의미를 모르고 안식일의 실제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영적 실제가 상실된 것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찬양, 기도, 헌금, 은사활용 등에서 영적 실제가 마치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능력이 떠나버린 언약궤를 메고 나가는 것처럼, 상실된 채 행하여질 수 있습니다.

찬송경연대회를 한 후 1,2,3등을 정하여 상품을 주거나, 사회자가 집회시간에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도록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집회를 진행시키기 위한 순서 용으로 찬송을 부릅니다. “형제 자매님들이 아직 많이 참석하지 않았으니 기다리기 위하여 몇 곡 더 부르겠습니다.”

마음을 다해 주님께 찬양을 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을 달래기 위해 찬양을 하며, 흥에 취하여 자기를 즐겁게 하기 위한 찬송을 부르고, 내가 좋아 하는 찬송을 어느 형제가 택하면 좋고 흥이 나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찬송을 택하면 별로 좋지 않아 마음에 거부 반응이 일어납니다. 순전히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부르는 종교 오락으로 전락 하고만 것입니다. 찬송의 실제를 상실한 것입니다. 그러한 찬송을 통하여는 주님께서 찬양을 받으실 수 없고 찬양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또 교회 행사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퀴즈를 만들어 많이 맞추는 자에게 상을 주는 일들이 행하여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사단과의 전쟁에서 성령의 검으로 사용되어야 됨을 잘 아는 바입니다.

예배시간은 인간이 무엇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입니다. 때로는 예배시간에 찬송을 통해서, 형제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를 통해서 내가 감동을 받고 축복을 받으려는 마음 때문에 내 마음에 감동이 되지 않는 감사를 드릴 때 못마땅하게 여기곤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배시간마저도 내가 축복을 받으려 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예배의 실제를 상실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배시간에 주님의 떡과 잔을 대하며 주님 자신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형편 없는 나, 구원받은 나, 축복 받은 나를 기념할 수 있습니다.

만찬의 실제인 주님 자신을 기념하는 대신에 누룩없는 떡을 사용해야 한다, 만찬은 밤에 드리는 것이 성경적이다, 남은 떡과 포도주는 땅에 묻어야 한다는 등의 분별의 차이로 변론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원리와 적용이 있습니다. 만찬의 원리가 주님 자신을 기념하는 것이라면 만찬예식을 적용하는 문제는 분별의 차이에 따라서 다를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간구하기 위해서 말씀드리는 것인데 특별히 공적인 기도시간에 기도하면서 가르치려 하고 사람 들으라고 책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께 헌금하면서 내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처럼 생각하고 많은 축복을 기대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은사 활용과 봉사를 하면서 온전히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보다는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열심을 내며 봉사할 수 있습니다. 결혼 전에 주일학생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던 어느 자매님이 결혼 후 생각해 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형제에게 잘 보이려고 열심을 내었다고 고백한 일이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들로부터 영적 실제들이 회복을 받지 않으면 성령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역사하지 않으며 주님의 임재하심이 함께 하는 교회가 아니라 영적 실제를 상실한 죽은 교회, 예배, 찬양, 기도, 헌신의 모양은 있어도 영적인 능력이 없는 형식적인 종교의식으로 타락하고 말 것입니다.

 

영적 실제의 회복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예배, 찬양, 기도, 봉사의 영적 실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 지어다”( 150:1), 찬양은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또한 집회를 진행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의 향을 내가 맡으려 해서는 안되고 내가 감동을 받고 축복을 받으려 해서는 안됩니다. 죄와 멸망에서 구원받은 나, 영적으로 형편없는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을 기억하며 주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뿐이니이다”(대상 29:14). 주님께 드리는 물질은 주님의 것을 다시 주님께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공적인 기도는 사람이 들으라고 하는 기도나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기도로부터 회복받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여러 모양으로 주님과 성도들을 섬기는 봉사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고 자신이 드러나거나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5:39).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4:27).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행하는 찬양, 예배, 기도, 은사 활용의 실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이 모든 것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신다면 하나님의 교회 안에 영적 실제가 회복되고 주님의 임재하심이 충만하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115:1).

 

(1996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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