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4. 10. 6. 11:22 횃불/1998년

레위기의 다섯제사(2)

 

2. 번 제

※ 참고 구절 : 레위기 1,6 813, 78, 신명기 33 810, 시편40, 에베소서 5 1,2

번제는 이미 많은 신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용어입니다. 그러나 정작 레위기 맨 처음에 언급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인성과 사역이 여러 각도에서 깊이 다루어 진데 대해서는 대부분 연구하지 않는 편입니다.

번제가 레위기의 다섯 제사 중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은 번제가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것이므로 우리에게도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4복음서가 놀랍게도 4가지 피의 예물과 관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업적 중 속건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속건제는 죄인이 하나님께 빚진 자임을 처음으로 깨달을 때, 그리스도의 필요함을 안 순간 가장 먼저 만나는 제사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죄를 사람이 마땅히 갚아야 될, 그러나 결코 사람의 능력으로는 갚을 수 없는 빛으로 말했으며, 죄를 하나님의 권능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마가복음은 죄의 불결한 면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 우리의 속죄제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친교(교제)의 초석인 화목제로서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4,15,16장에는 하나님이 무한한 은총 가운데 죄가 있는 인간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하나님과의 교제로 이끌어 내시고자 하는 뜻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비를 거부하므로 하나님과의 평화를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요한복음에는 번제로서의 예수님이 나타나 있습니다.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향기로운 제물이 되신 예수님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고뇌의 울부짖음이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영화롭게 되지 못하고 거역한 이 땅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 온전히 영화롭게 되셨다는 부분까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소제는 4복음서에 골고루 들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이스라엘의 메시아로서, 마가복음은 여호와의 고난받는 종으로서, 누가복음은 완전한 인자로서, 요한복음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각각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를 실제로 즐기는 때는 이런 소중한 일들에 대하여 묵상할 때입니다.

저는 신앙생활 초기에 하나님과의 교통이 기분이 매우 경건한 가운데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저는 많은 신앙 서적들을 읽고 경건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늘 일기장에 적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그 일기장을 다시 대하게 되었을 때 제가 그런 이상스럽고 자만에 가득찬 생각들을 품었던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런 것이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했던 저의 그릇된 오류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저의 경건한 기분이나 감정이 아니라 저의 영혼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들어가는 것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를 방문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 아기 엄마와 당신은 어떻게 마음의 친교를 맺습니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서로 나눌지라도 당신이 어린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비로소 그 아기 엄마는 마음으로 화답을 할 것입니다. 즉시 아기 엄마는 밝은 표정이 되어 얼마나 놀라운 아이인지를 당신에게 말할 것이며 당신과 그녀는 곧 마음의 화합이 이루어져 그 어린 것에 온 마음이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여인의 아이는 그녀가 잠시 동안만 맡고 있을 뿐이나,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은 영원토록 그분의 독생자에게서 즐거움을 얻으십니다. 지금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를 이끌어 나의 아들에 관하여 너와 교제하고 싶다. 내 아들에 관하여 네게 들려 주고 싶다. 내가 그로 인하여 얻는 기쁨을 네가 더욱 잘 알기 원하여 그의 한 일과 희생이 나 여호와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너희가 좀더 알기를 원한다. "

이러한 연유로 모세를 장막 밖으로 불러내신 하나님의 음성이 레위기의 첫장을 엽니다. 하늘로부터 발해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3:17)는 음성은 아드님을 통해 하늘 아버지께서 온전한 영광을 받으셨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시는 시은좌가 있는 지성소로부터 여호와의 음성이 모세에게 임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1:2).

이 말씀 중에 사람의 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이미 언약의 관계를 맺고 있는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이며 이들은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을 자원하여 가져오고 싶어했습니다. 이들이 가져오는 모든 예물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이며, 하나님이 축복하신 아드님에 대한 것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그 무엇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예물을 드림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누구든지"라는 말씀의 넓이를 주목하여 보십시오. 이는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있는 언약의 백성이라면 "누구든지" 자격이 있으며 "누구든지" 독생자의 하신 일을 가져와도 좋다는 말입니다.

 

번제물의 종류

번제물은 세 종류로 뚜렷이 구분되고 있습니다. 번제물 중에 소가 언급되어 있는데 39절을 보면 이것이 황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번제물로는 1013절에 나와 있는데로 양이나 염소이며, 1417절에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예물로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예물의 종류는 드리는 자의 능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황소는 부유한 사람의 경우였으며 황소를 가져올 수 없는 사람은 양이나 염소, 더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예물은 다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이 예물의 영적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중 몇몇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아주 조금밖에 깨닫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분의 가치에 대해 알고 사랑하며 의지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새의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옵니다. 그리스도를 하늘에 속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새가 하늘에 속한 자를 표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땅 위를 날아다닙니다.

조금 더 깨달은 사람은 양이나 염소를 예물로 가져옵니다. 이들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53:7)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희생양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입니다. 죄인의 자리에 서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염소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업적을 보다 높고, 보다 충만히 깨닫습니다. 이들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기쁨을 두신 그리스도에게서 강하고 참을성 있는 황소의 모습을 봅니다.

 

번제물을 드리는 규례

  황소나 양이나 염소의 예물을 드리는 규례는 거의 차이점이 없으나 새의 예물은 앞의 두 예물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39절을 살펴보면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의 번제에 대해서 좀더 살펴보면, 황소는 앞서 말했듯이 인내하는 종의 모습입니다. 모세의 법에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두지 말지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하나님의 사역자에 적용시켜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자들이므로 이들의 육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하는 것을 금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은혜로우신 주님은 곡식을 밟아 떠는 인내하는 황소같은 분이십니다.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오신 분으로, 자기의 생명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러 오신 흠 없고 점 없는 종이였습니다.

이 황소 예물은 흠이 없는 것이어야 했음을 주목하십시오. 여성이 순종을 상징한다면 남성은 의로운 독자성을 상징합니다. 이 땅을 스쳐간 인생들 중 유일하게 독자적 위치에 서 계셨던 분은 우리 주 그리스도였으나 오히려 죽기까지 순종하심을 택하셨습니다. 그분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었으며, 부족함도, 죄도, 실패함도 없으셨습니다.

예물을 드리는 자가 자기를 위해 흠없는 번제를 드릴 때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는 아무 것도 없으며 죄와 실패함으로 가득찼으나, 흠 없는 것, 하나님이 축복하신 아드님의 가치를 들고 아버지 앞에 나아갑니다. "

비록 예물을 드리는 자는 보잘 것 없어도 흠 없는 희생 예물로 말미암아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를 받으셨으며"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해석하면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를 힘입어 우리를 받으셨으며"라는 뜻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신 것은 우리의 믿음, 간절함, 희생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공로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받은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 가치도 없음을 알고 그리스도 안에 그 가치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예물을 드리는 자가 번제 예물의 머리에 안수한 채 제사장 앞에 선다는 점을 레위기 1 4절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잡혀 죽을 번제물과 자신이 동일한 존재임을 나타내는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의 머리 위의 손은 믿음의 손이며 그리스도는 나를 대신하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분의 모든 것은 나를 위한 것이며 하나님은 그분 안에 있는 나를 보십니다.

이 일은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고 그분이 죽으심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5절은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황소를 잡는 예식 속에는 우리도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의 죽음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이 사실을 인정은 하지만 이 사실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실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나 외에 다른 죄인이 아무도 없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내 대신 희생물로 나를 위해 바쳐진 것입니다. 그분의 소중한 피흘림이 나에게 이루어질 때, 즉 믿어질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또 그분이 하신 일들 안에서 나를 받으십니다.

69절은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는 일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내용물은 각을 뜹니다. 가죽을 벗기는 일에 관하여는 잠시 후 살펴 보겠습니다. 그 행위 속에는 중요한 진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각을 뜬 후에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깨끗이 씻어 판 위에 올려 각과 머리와 기름과 함께 불사릅니다. "불로 사른 예물은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로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물로 깨끗이 씻는다는 것은 예수님에 관한한,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함께 임재한다는 상징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은 모두 성령의 힘이 내재되어 있는 말씀의 권능 아래서 행한 완전히 거룩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19:11)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깨끗케 하시는 말씀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유일하게 거룩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셨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서 불살랐습니다"(9). 여타 제사 의식에서는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이나 예물을 드리는 자를 위해 예물 중 얼마를 남겨놓았습니다. 그러나 이 특별한 제사 의식인 번제의 경우는 전부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십자가의 경륜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7 8절을 살펴보면 한 가지 분명한 예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물의 모든 부위는 단 위에서 불살라지지만 가죽은 제사장에게 주어집니다. 이는 참으로 귀중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 분깃을 찾았다. 그는 나의 모든 것이다.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 그에게 나의 즐거움이 있다 이 양털은 네가 취하기를 원하노니 그것을 네 몸에 두르라. 번제물의 가죽을 입으라. "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시는 놀라운 장면입니다. 우리가 번제의 가죽으로 덮어 씌워진 것입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3:36,27)는 말씀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양이나 염소 예물에 관하여는 더 구체적으로 언급할 것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황소 예물과 거의 동일한 예식으로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새의 예물에 관련된 두세 가지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머리를 비틀어 끊고 단 위에 불사르고 피는 단 곁에 흘릴 것이며 멱통과 그 더러운 것은 제하여 단 동편 재 버리는 곳에 던지고"( 1:15,16).

새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는 것으로, 이는 하늘에 속한 분이시지만 은혜를 인하여 아래 땅으로 내려오신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새의 예물은 그리스도의 업적을 다른 예물의 경우만큼 충실하게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죽으심이 충실히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물은 단에 올려지고 멱통과 깃털은 뽑아 재 버리는 곳에 던집니다. 제가 믿는 바로는, 깃털을 제하여 버림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버리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예표이며, 새의 멱통을 제하여 버림은 논의할 바 없이 그분이 누리실 모든 것을 자원하여 버리신 예표입니다.

우리는 다음의 찬송의 의미를 얼마나 알고 부르고 있는지요?

그분이 모든 것을 버리셨네.

그분이 모든 것을 버리셨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나의 소중한 구원자시여,

그분이 모든 것을 버리셨네.

 

레위기 6 813절은 제사장이 번제의 예식을 행할 때 지켜야 할 지침입니다.

1장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그분의 일을 묘사한 보다 객관적인 것이라면, 제사의 규례는 보다 주관적인 것으로 이러한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며,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그것에 합류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기 6장을 보면 제사장은 흰옷을 입습니다. 이 예복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것이 된 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재를 취하여 버림은 재는 더 이상 생명이 없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단 옆에 버림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났다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일이 완성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하나님이 온전히 영화롭게 되셨고 향기로운 냄새는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제단 위의 불은 항상 타고 있었습니다. 이 불은 결코 꺼진 적이 없이 번제는 화목제로 이어지고 속죄제로 이어져 이 예물 또한 단 위에서 타고 있는, 같은 불속에 드려졌습니다. 이 예식은 끊임없이 행하여졌으니, 어느 것도 하나님을 흡족케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제단 위의 불은 소멸되고 예식이 끝났습니다. 완성된 예식은 영생으로 이어지고 우리의 영혼은 기뻐하며 그 안에 안식합니다.

시편 40편은 분명히 번제를 노래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사함으로 찬양하는 시입니다. 이 찬송이 우리의 것이 되어 모든 것이 충만한 그 곳에 거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들이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번제를 올리는 일임을 신명기 33장에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새 소명을 받은 거룩한 제사장된 우리들은(벧전 2:5,9) 그리스도의 하신 일에 기쁨으로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1998 6월호)

 

'횃불 > 1998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좁은 문  (0) 2014.10.14
그리스도를 만난 윌리  (0) 2014.10.14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에(10)  (0) 2014.10.06
죄의식이 사라지던 날  (0) 2014.10.06
말씀의 올바른 해석(18)  (0) 2014.10.06
노아 그의 생애와 그 시대  (0) 2014.10.06
영적인 지도자 상  (0) 2014.10.06
믿음의 발자취-그리스도를 만난 윌리(8)  (0) 2014.10.06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