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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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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28. 09:44 횃불/ 2000년

노아 - 그의 생애와 그 시대

사무엘 W 제밍스

28: 한 세대적인 그림

이제 노아와 그 홍수의 역사에서 보여진 세대적인 그림의 본질에 대한 마지막 장에 접근할 시간이 되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홍수의 기록에서 세대적인 구성이 있음이 분명하다.

 

베드로는 홍수 심판과 마지막 날의 최후의 심판(벧후 3) 사이에 유사성을 끌어낸다. 주님은 노아의 날과 같이 인자의 오심에 앞서 나타날 현상이 유사할 것임을 말씀하셨다. 민족들과 그들의 미래의 특성들이 노아의 역사를 마감하면서 다루어진다( 9,10).

그 날들의 체계가 방주와 홍수의 전체 이야기에서 주목된다. 그 모든 사실은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 마지막 책은 처음 홍수 역사에서 주목된 많은 것을 언급한다. 말세에 나타날 하나님의 목적된 프로그램이 계시록뿐만 아니라 창세기 69장에도 드러난다. 성경은 시작된 것처럼 끝나게 된다. 창세기와 계시록 사이에는 많은 비교점들이 있고 종종 그렇게 구성되어진다. 우리의 주제를 완성하기 위해 홍수의 기록과 계시록 사이의 연결점을 비교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1) 방주와 그 치수가 처음으로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기록된 마지막 치수가 계시록 21장에 발견되는데, 새 예루살렘에 있는 것들이다.

(2) 노아의 시대의 폭력과 부패는 짐승의 난폭함( 13)과 붉은 여자의 부패함( 17)에 앞서 보여진다.

(3) 만일 우리가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들로 본다면, 그들의 사람의 딸들과의 혼인은 계시록 89장과 상대가 될 것이다. 수액만의 마귀들은 타락한 천사들로서 대체로 지상에 있게 될 것이다. 다른 것 사이에서 그들은 여자들처럼 긴 머리카락을 가질 것이다. 또한 여자들로 인하여 더럽히지 않고 주님께 순결을 지킨 144,000인이 있게 되는데, 물론 그것은 도덕적인 신실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14).

(4) 방주의 문과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는 음성은 계시록 4장과 상응할 것이다. 하늘의 문이 열리고 요한을 그곳으로 올라오라는 음성이 들린다.

(5) 하나님이 그 홍수를 통하여 불경건한 자들을 쓸어버리시는데 성공한 것은 용의 입에서 나온 홍수로 인하여 경건한 자들을 쓸어버리는데 실패한 것과 대조가 된다( 12).

(6)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는 초청은 다음과 같은 성경의 마지막 초청과 연관지을 수 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22:17). 두 초청 다 신성한 것이며, 그것은 성경의 처음이자 마지막 초청이다.

(7) 이와 비슷하게 성경의 최초의 제단은 창세기 8장에 있고, 마지막은 계시록 8장에 있다. 그 두 제물은 다 향기로운 것이다.

(8) 홍수에 익사한 사람들의 시체를 먹기에 만족하여 가버린 까마귀는 왕들과 장군들의 고기를 먹도록 초청된 공중의 새들과 병행을 이룬다( 19). 두 일화가 다 하나님의 심판 후에 일어난다

(9) 끔찍한 홍수를 불러일으킨 그 하늘로부터 내린 비는 일 달란트나 되는 돌덩이 만한 우박과 비슷하다( 16). 둘 다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비는 성경에서 보통 하나님의 축복과 연관되어 있다.

(10) 처음과 마지막의 포도밭이 나타나는데, 노아가 지은 포도밭( 9)과 땅의 포도밭이 발견된다. 포도의 피는 말굴레까지 터져 나온 포도주 틀의 피와 병행을 이룬다( 14:19,20).

(11) 노아는 성경에서 술 취한 최초의 사람이며, 그 붉은 여인은 성도들과 예수의 순교자들의 피로 취했다.

(12) 노아의 문자적인 벌거벗음은 계시록 3 18절에 나오는 도덕적인 벌거벗음과 병행된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사람들이 그들의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기 위해 입어야 할 흰옷을 공급하실 수 있다. 창세기 9장의 가리움은 아들들로부터 주어진 것이지만 계시록 3장의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두 경우 다 벌거벗은 것을 가리웠다. 계시록 16 15절의 다음과 같은 참고구절은 또한 중요하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 이것이 바로 노아가 실패한 점이다.

(13) 구름 속의 무지개( 8)와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둘러있는 아름다운 에머랄드 무지개( 4)는 둘 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말해준다.

(14) 바벨론의 발달은 창세기 1011장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절정은 계시록 1718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여기서 사단의 종교 왕국의 시작과 종말을 보게 된다.

(15) 노아의 역사에서 세 번이나 언급된 저주는 마침내 제거된다( 22:3).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5:29).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8:21).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9:25). “다시 저주가 없으며”( 22:3).

 

대부분이 동의하는 사실로서 계시록은 미래의 때와 관련된 세대적인 책으로 유대인과 이방인과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의 정점을 이루는 책이다. 홍수 이야기와 이 예언적인 책 사이에 있는 많은 연관들을 보며, 혹자는 홍수 또한 세대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바르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홍수의 역사 속에 담긴 이러한 특징들을 요약해 보고자 한다.

 

(1) 유례없는 규모로 만연된 당시 세상의 부패와 폭력은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율법을 오만하게 대적하며, 몹시도 난폭했던 라멕의 출현은 말세에 일어날 짐승같은 왕의 그림자이다

(2) 악이 완전히 드러나기 전에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은 들림(휴거, Rapture)을 받았다. 이것은 들림 받을 교회의 모형이다. 아마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4장을 쓸 때, 에녹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는 그 장을 시작하면서 에녹에게 사용된 말로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권면했다. 그 장의 끝에 교회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기 위해 휴거 할 것을 계시하는데, 이는 이미 에녹이 먼저 경험한 일이었다. 그 장의 중간에는 에녹과 노아 시대같이 불경건한 자들의 삶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3) 노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의 그림자이다. 그는 의의 전파자였다. 말세에 남은 자들의 임무가 바로 왕국의 속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는 홍수 심판에서 보존이 되었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대환난에서 보존될 것을 암시한다. 소수의 남은 자가 아라랏 산 꼭대기에 선 것처럼 144,000명이 시온산에서 주와 함께 설 것이다.

(4 ) 노아를 통하여 다른 이들이 구원받고 복을 받았다. 그의 세 아들들과 자부들은 이방민족들의 조상이 되었다( 10,11). 그와 같이 이스라엘을 인하여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으며 지상의 모든 백성들이 왕국 안으로 들어가는 복을 받을 것이다.

(5) 미리 계획된 심판의 기간이 그 날까지 정해졌다( 7:4,1012). 그처럼 환난기도 하나님에 의해 1260일간 지속될 것이 정해졌다. 홍수와 그 환난의 기간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

(6) 홍수는 백성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응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 베드로는 이것으로 주의 날에 임할 미래의 불심판을 확신했다.

(7) 방주 외에는 피할 길이 없다. 이에 동의하면서 바울은 말세의 죄인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2:3).

(8)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새 세상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제단을 세운 것은 이스라엘이 대환난으로부터 나와서 천년왕국의 축복과 번영으로 들어가는 것의 모형이다. 노아의 포도원은 또한 다가올 세대의 축복을 말해준다.

(9) 노아는 모든 열방들의 머리로서 이스라엘의 합당한 위치를 보여준다. 파종과 수확은 그 왕국의 번영을 예시한다. 그 정부의 수립은 의로 다스릴 주 예수님의 통치를 가리킨다. 영원한 언약이 이스라엘에게 세워질 것이다. 그렇지만 노아와 함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심판이 곧 실행될 것이다. 모든 것은 모형이나 실제에 있어서 제물이 그 기초가 된다. 주님은 모든 것을 위해 죽음을 맛보셨다. 현재로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유에 이르기를 탄식하면서 기다린다. 모든 것이 이 절정의 순간을 고대한다( 8).

(10) 창세기 9장 끝의 가나안의 운명, 야벳 자손의 양도, 그리고 셈의 후손의 최상이 됨은 천년왕국 끝에 나타날 모습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원수들은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고, 복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마지막 한마디, 창세기 9장 끝에서 우리는 이러한 대목을 읽는다.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 오십 년을 지냈고, 향년이 구백 오십 세에 죽었더라.” 이 얼마나 놀라운 기록인가!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람인가! 그는 그토록 위대한 발자국을 뒤에 남기고 잘 죽을 수 있었다. 그는 그가 그토록 열정적이며 신실하고 온전히 섬겼던 하나임 존전에 당당하게 죽음으로 들어갔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노아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이제 세상은 곧 심판으로 들어갈 것이기에, 노아와 같은 진지한 많은 이들이 일어나기를 기도드린다. <연재 끝>

 

2000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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