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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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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6. 22. 07:47 횃불/ 2000년

철학과 예수님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2:8-15).

 

사도 바울은 복음전도뿐 아니라 성도들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성도들을 섬기면서 배우는 것은 세상에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위험이 상당히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동물의 세계를 관찰해 보면 동물들도 대적에게 먹힐까 봐 한 순간도 마음을 놓지 않고 경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미는 곤충을 잡고자 여기 저기 거미줄을 쳐 놓고 있습니다.

영적인 것에 있어서도 이 세상에는 순수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을 무너뜨리고자 수많은 곳에 파놓은 잘못된 함정의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진리가운데 거하다가 잘못된 교리에 빠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전 교회가 잘못된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적도 있었는가 하면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잘 성장하지 못하고 진리를 떠나갔던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가끔 교회에 나오다가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 떠나가는 자들이 있는데, 최근에도 한 불신자가 그렇게 떠나갔습니다. 몹시 마음 아픈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세가 가까울수록 그러한 사람들이 늘어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8)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정신차리지 않으면 온전한 믿음을 유지하면서 믿음이 경주를 끝까지 마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 골로새 교회는 율법주의의 위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해야 한다든지, 소득의 십일조를 바치되,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매일 새벽에 기도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기도는 해야 하며 또 기도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신비주의인데, 주님으로 숨쉬지 않으면 초보자라느니, 성경은 실체가 아니라느니 하는 가르침입니다. 침체되어 생활에 기쁨이 없는 때에, 주님과 좋은 교제 가운데 있지 않을 때에 그러한 것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 다음은 금욕주의인데, 음식을 가리고,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순수하고 거룩하다는 생각이 그것입니다(딤전 4:3). 입에서는 온갖 추한 말을 내는 사람이 술 담배만 안한다고 어찌 거룩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철학은 ‘필로’(사랑한다는 뜻)라는 단어와 ‘소피’(지혜라는 뜻)라는 단어가 합해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지혜를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이 철학은 초기에 희랍에서 시작되었는데, 자연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희랍사람들은 물질의 근원에 대하여 생각하였고, 자연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러한 철학이 고상해 보이지만 성경말씀에 비추어 볼 때 초등학문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러한 철학은 모든 것은 진화된 것으로, 한국 사람들을 곰의 후손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5세기 이후에는 철학의 연구의 대상은 주로 인간이었습니다. 사람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며 잘못된 개념들을 갖게 되었으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이 철학의 유혹에 빠져 있었습니다.

중세 이후로는 철학자들은 또 ()은 존재하는가?”라는 주제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서구에서는 사람들이 기독교 대신 동양종교에 매료되어 있고, 호주에서는 불교가 인기 있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이 어떻게 신과 접촉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차라리 총칼로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한다면 순수한 믿음은 살아남겠으나, 물질이 풍부하며 거짓 가르침이 도처에 있어 믿음을 지키기에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다녀왔다고, 예수님과 전도작전을 세웠다고, 모세를 만났다고 말합니다. 또 방언이나 신유은사와 같은 체험을 추구합니다. 마태복음 7 15-18절은 거짓 선지자를 조심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양의 옷을 입은 이리와 같이 거짓 목자는 점잖고 진리 가운데 있어 보입니다. 또 주님은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는데( 16:6), 그들의 형식주의와 율법주의를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장로들에게 이리가 들어오는 것을 경계할 것과 자신들도 삼가 주의하라 하였습니다( 20:29,30). 교회 안에서 주님이 아니라 자기를 좇도록 가르치는 자들이 많이 있으며, 이것이 말세에 대한 징조들입니다. 베드로도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고 했습니다(벧후 3:17).

마라톤 경주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출발은 하지만 완주하는 자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말이 위대합니다. “내가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나의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 “ 주님 오실 때까지 건전한 신앙을 지키며 마음을 지켜 잘못에 빠지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경고를 하고, 등불을 켜고 서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짓교사들은, 무엇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속일까요?

첫째, “철학입니다. 그것은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아주 기초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만물이 어디로부터 왔는가 하는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만드셨다고 하십니다. 골로새서 말씀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온전해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들은 불완전한 가운데서 완전한 것을 찾으려 장님이 문고리 잡는 식이지만, 우리는 눈을 뜨고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둘째는 헛된 속임수입니다. 자신이 교주니 신이니 하는 곳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리 가운데 굳게 서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너희 자유를 약탈당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양심에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자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사 갈 때 날이나 방향을 보지도 않고, 죄악으로 인한 심판의 두려움에 떨지 않습니다

주님은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는 우리에게 주신 평강을 빼앗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구원받기 전에는 율법을 지킬수록 짐이 무거웠고, 탄식 가운데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무거운 짐 가운데 있다가 주님께서 저를 자유롭게 하셨고 평강이 저의 마음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열심을 다해야 하늘나라에 간다는 가르침에 이 평강을 빼앗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믿는 자로서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 오실 것을 생각할 때 마음이 기쁜 것은 그가 주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 유전과 전통을 조심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장로들의 유전을 요구했는데 이 유전은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안식일에 병을 낫게 해도 일하는 것이요, 무화과 열매보다 무거운 것을 들면 일한다고 정죄하며 선진들이 전해준 유전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러한 유전으로 성경과 맞서고, 메시아를 못박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안 한다고 이단시합니다. 교파가 없다고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전통보다 권위가 없어진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좇는 것이 아닙니다. 의자에 앉아 예배드린다고 덜 신령하다거나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만 신령하다고 하는 것 등은 성경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기도의 자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마음입니다.

성경은 장로들을 세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유전에 따라 지금까지 세우지 않고 있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조상의 유전과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받은(벧전 1:8) 우리는 조상의 유전이나 명절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했습니다. 분명히 보고 믿는 자(10)는 철학자에 비교할 수 없으며, 우리의 믿음이 올바른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과 믿음 가운데 분명히 서 있지 않고, 믿는 것에 확신이 없으면 말씀 듣는 것이 숙제가 되고 성도들과 교제가 멀어지고 말씀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면서 잘못된 가르침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성도들과 교제에 힘쓰고 말씀공부에 자신을 투자할 때 진리 가운데 굳게 서 있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갈수록 잘못된 가르침이 난무하고, 성도들의 신앙이 점점 더 희미해져 가고, 성도들의 사랑이 식어져 가고, 올바른 신앙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때 여러분은 어떻게 신앙을 지키겠습니까? 말씀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이 악한 날에 어둠의 세력을 대항하기 위해서는, 무장한 군인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의 신앙을 지키십시다.

 

2000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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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