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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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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13. 14:19 횃불/ 2000년

천사들(Angels)(5)

J. B. 커리 지음/대희 옮김

 

범죄한 천사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만큼이나 죄를 미워하시겠습니까? 베드로후서와 유다서에는 그 두려운 실례가 세 개씩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두 성경기자 중 어느 한쪽 편은 필경 다른 편의 문서에 의해 영향을 받은 이후에 자신의 서신(書信)을 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실은 어느 편도 단순하게 복제(複製)되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 짧은 두 서신서에는 닮은 점들이 몇 가지 있기는 하지만 상위점(相違点)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두 서신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거짓 교사에 대한 베드로와 유다의 관점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편지를 수신하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벧후 2:1)고 썼으나, 유다는 독자들에게 이미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 있음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19).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17)대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유다는 여기에서 편지를 쓰고 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편 베드로는 그 때로부터 나중에 일어나게 될 일을 미리 기록한 것입니다.

더욱이 베드로는 범죄한 천사들”, 노아의 옛 세상”, “소돔과 고모라등 세 가지 심판을 실례로 들고 있지만(2:4-6), 유다는 광야에서 멸망당한 불신적인 이스라엘 사람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등 세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5-7). 우리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주목하지 않으면 안되는 점은 천사들의 죄와 그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베드로도 유다도 전적으로 이 동일한 사항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불신했던 이스라엘 사람들, 자신의 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들, 간음을 행하며 색()을 따랐던 도시들이란, 유다의 편지 중에서 세 개의 조()를 이루고 있는 것들중의 하나로서, 이들은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의 성질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4). 이들 세 개의 실례가 잘 보여주고 있듯이 유다가 살고 있던 시대에 있어서 불경건한 자들의 특징은 불신앙과 반역과 부도덕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나타내고자 했던 것은 이와는 다릅니다. 죄를 범한 천사들, 노아의 옛 세상, 소돔과 고모라 등을 예로 든 베드로는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신다”(벧후 2:9)는 두 가지 사실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두 기자는 그 목적, 내용의 기록 순서, 실제의 예() 등에 있어서 여러 가지의 상위(相違)를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에 대해서 베드로와 유다는 세 가지 사항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베드로가 죄를 범한 천사들이라 부르며, 유다는 동일한 의미로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과 그의 천사들이 처음에 반역한 것 이외에 또 다른 죄를 범했다고는, 베드로나 유다는 조금도 암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자기 지위자기 처소가 부여되어져 있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은 그 천사들에게 권위와 더불어 떠나서는 안되는 거처를 부여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저버렸습니다. 사단이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니라”( 14:14)라는 야심을 품게 되었을 때 일부 천사들도 그 반역에 가담하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사단(아침의 아들)불의한 무역으로 자신의 성소를 더럽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28:18). 그와 동시에 일단의 천사들도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나게되었습니다. 천사들의 죄에 대한 베드로와 유다의 지적은 이사야 14장과 에스겔 28장에 명백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죄의 결과를 베드로와 유다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두 번째에 해당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6).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 2:4). 개역 한글판 성경에는 어두운 구덩이로 번역되어져 있으나, 다른 사본에는 어두움의 ()사슬이라고 하는 말이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유다가 사용하고 있는 결박(結縛)”이라고 하는 말은 바울이 빌립보서 1 7절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족쇄(足鎖)”라는 말로서, 비유적으로 갇힘”(NIV, be in chains)을 의미하기 위해 매임으로 번역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흑암에 가두셨다는 표현도 틀림없이 비유적 입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지셨다고 하는 베드로의 표현은, 지금까지의 설명과 모순되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지옥에 던졌다는 표현은 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헬라어 단어의 번역입니다. 이 단어 탈타로스는 부정과거(不定過去) 동사이지만, 명사로서는 그리스도 시대 이전부터 반역한 악령들이 투옥된 장소, 즉 하데스(음부)의 가장 깊은 장소를 나타냈습니다.

베드로의 글을 다음과 같이 바꿔서 표현해도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탈타로오해 버렸습니다”.

이어지는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다라는 말씀이 ““탈타로오되다라는 의미를 한층 분명히 해주고 있습니다.

만약 유다가 베드로후서의 내용을 알고 있었더라면 탈타로오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유다와 베드로의 가르침에는 상호 모순됨이 없습니다.

유다와 베드로가 기록한 세 번째 사항은 완전히 동일합니다. 유다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가두셨으며라고 기록하였고, 베드로는 범죄한 천사들을····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어두운 구덩이에 두었다라고 하는 비유적인 표현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여, 죄를 범한 천사들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준엄하신 심판이 조금이라도 경감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두움의 족쇄라고 하는 것은, 반역과 배교(背敎)의 죄를 범한 순간에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임하게 된 무서운 속박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들을 가두는 어두움은 한 줄기의 빛조차도, 최소한의 희망마저도, 추호도 허락되어지지 않는 칠흑의 절망 상태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영원한 운명이 결코 완화되어지지 않는 불못의 고통뿐임을 절감하면서 큰 날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있든 것입니다.

귀신이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8:”29)라고 소리지르며 공포에 질려 전율하던 모습을 주목해 보십시오.

관련기사인 누가복음 9 31절에서 “(귀신들이)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라는 내용도 전적으로 동일한 사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아무리 비참한 지경에 처해진다 해도 자신이 믿고 있는 신()을 의지할 수가 있다지만, 사단이 들어가게 되는 무저갱은 그것마저도 용납되지 않을 정도로 깊은 곳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최초로 죄를 범했을 당시, 그들에게 부여된 마나님의 은혜는 천사들이 죄를 범했을 때와는 커다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천사들의 경우에는 즉각적으로 심판에 처해졌지만 아담과 하와의 경우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는 서둘러 인류에 대한 아름다운 구원계획의 청사진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제물이 바쳐짐으로 가죽옷이 그들의 벌거벗은 몸 위에 덮여졌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구속사역에 대한 모형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모형으로 제시된 구원 사역은 갈보리의 십자가상에서 실제적으로 성취되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고난을 받으시기 위하여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되셨던 곳도 바로 이 장소였습니다. 예수님은 천사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기꺼이 이 놀라운 일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 사역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구원의 계획을 실현시키셨던 것입니다( 3:9,10), 이러한 계획안에서 구속받은 자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내 형제라고 불러주셨습니다( 2:916).

천사들은 많은 동료들이 어두움에 갇힌 것을 보았으나, 동시에 인생들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은혜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던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어떠한 천사들도 누릴 수 없었던 영광스러운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 위엄스러운 존재들은 거룩한 호기심을 지닌 채 하나님의 은혜의 어떠하심을 살펴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벧전 1:12).

그러나 그들 자신은 이 놀랄만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2000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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