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5. 7. 13. 14:16 횃불/ 2000년

그리스도의 선물

(에베소서 4: 7-l 3)

 H. A. 아이언사이드-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4:7-13)

 

이 부분에서 우리의 관심은 특별히 교회의 설립과 덕을 위하여 교회에 주어진 그리스도의 선물(은사)에게로 모아집니다. 첫째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선물들(은사들)-“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이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우리가 공인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어떤 분명한 은사들이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들은 그가 전체의 몸(주님의 몸된 교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어떤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연약해 보이고 보잘것없어 보이고 또 비교적 그가 잘 모르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는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하여 주님으로부터 어떤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에는 그 활동의 증거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몸을 지탱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 매우 요긴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지체가 있듯이, 모든 신자들도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그의 자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어떤 면에 있어서 그는 전체 몸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역할을 감당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몸 전체에 큰 유익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은사들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우리의 복되신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은 사도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들은 다음 세대, 즉 영광스런 천년왕국 시대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다스리는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위로 올라가시면서 그분은 그분의 몸된 교회에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그분이 땅에 계실 때에 택하신 바로 그 사도들이었지만 그들을 교회에 주어진 은사로 생각하게 된 것은 오순절에 그들에게 성령을 주진 이후였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구절은 시편 68편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끌고.”

다소 독특한 이 표현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히브리 사상을 문자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시편 68 18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높은 곳에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끌고 선물을 인간에게서 또는 패역자 중에서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려 하심이로다. “

에베소서 4장의 사로잡힌 자라는 표현이 사로잡힌 무리들로 번역되어질 수 있다는 시사를 우리는 흠정역의 난외주에서 보게 됩니다. 이것은 다소 독특한 어법으로 표현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시편에 나오는 어떤 표현에 대한 단순한 하나의 번역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면 그 히브리어 단어가 사로잡힌 무리들로 번역될 수 있는지 아닌지를 우리가 검증해 볼 수 있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어떤 히브리학자도 그것이 그렇게 번역될 수 없음을 인정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 표현이 나타나는 유일한 곳이 아닙니다.

사사기 5장에서 우리는 동일한 표현을 보게 됩니다. 드보라는 가나안에 대한 큰 승리로 인하여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여기 이 표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의 사실(“네가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가라”)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시편 68 18절의 의미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에베소서의 이 인용문의 의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사야 14장에서 우리는 이 용어에 대한 적합한 해석이라고 보여지는 비슷한 표현을 보게 됩니다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를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를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를 주관하리라”( 14:2).

이것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우리가 이 본문에서 교훈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 죽음을 이기신 우리의 복되신 주님은 그 때까지 사망의 권세를 가지고 있던 자를 사로잡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2:IS) 놓아주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대적 사단은 이제 패배당한 원수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전차 바퀴에 포로가 되었으며 그리고 이제 우리 주님은 높이 올리우셔서 하늘의 주권의 보좌에 앉아 계시면서 그 영광 중의 높은 자리에서 교회의덕과 복을 위하여 그분의 교회에게 이러한 은사들을 주십니다. 다른 어떤 인간보다도 더 높이 올리우신 그분은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다른 누구보다도 한 때 더 낮아지셨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게 됩니다.

올라가셨다 하셨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 라.”

그분은 우리와 같은 분이며, 그러면서도 영화롭고 무죄하시며 거룩하시고 또 지금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인간의 마음이 그분의 가슴을 울린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분의 백성에게는 슬픔이 없고 오히려 그분이 그들에게 동정적으로 또 다정하게 찾아오신다는 사실을 우리의 영혼이 실제로 납득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4:l5,16).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계신 그분이 이 땅을 살아가는 자기 백성들의 필요를 위해 간구하신다는 복된 확신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갖게 되었습니다. 역경의 순간에는 그분께 나아가 볼의 일부분이 아닌, 전체를 말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동정적으로 들으시고 그분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당신을 위해 일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항상 놀라운 방법으로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십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자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사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우리는 이교와의 싸움을 벌이며 유대교에 대하여 진리를 증거하던 교회를 위한 성령의 특별한 사역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은사들은 교회의 덕과 유지를 위한 것들인데, 그것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로 하여금 세상에 대해 복음을 증거하도록 하며 그리스도의 지식 안에서 교회에 속한 모든 구성원들을 세우기 위해 교회에 주신 것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그 기초가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 20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우리는 매 층마다 기초를 놓지 아니하고, 그 기초는 단 한번 놓습니다. 그리고 나서 상부구조가 세워집니다. 아주 오래 전, 19세기 전에,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그들의 사역을 완성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사도들이나 선지자들을 찾지 아니합니다.

언젠가 몰몬교의 젊은 장로 한 사람이 내게 찾아와서 당신은 어느 교회에 속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즉각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도들과 선지자들 위에 세워진 하나의 참된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 당신은 말일성도(몰몬교도를 지칭함)임이 틀림 없군요.”

아닙니다. 나는 초대 성도입니다. “

그러나 우리들의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지니고 있는 유일한 교회입니다.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속해 있는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들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이 교회의 일원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땅 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홍수를 통과하여 하늘에 있는 큰 무리의 일원이며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존전에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대에도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알다시피,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터를 세우기 위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이 놀라운 교회, 즉 살아 계신 하나님의 복되신 성전은 1900년 동안이나 지어져 오고 있으며 이제 막 완성되려고 합니다. 당신은 지붕 위에다가 기초를 놓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은 1900년 전에 저 아래층에서 이뤄졌고 또 오랜 세월 동안 그 기초 위에 성전이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지붕만 손질하여 끝내면 됩니다. 우리는 여기 저기서 함께 모인 어리석은 죄인들입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오는 자들은 그 지붕을 이루게 되며 그리고 그것이 완성되어 우리 모두가 하늘나라로 가게 될 날이 그렇게 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는 은사들이 있습니다. 복음 전하는 은사가 그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기쁜 소식을 지닌 사람입니다. 복음전하는 자의 사역은 특별히 바깥 세상을 향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자의 은사를 주신다면 하나님은 잃어버린 세상을 향한 사랑으로 그의 가슴을 채우실 것이며 신선하고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할 능력을 그에게 주실 것입니다. 복음 전도자, 그 얼마나 놀라운 은사입니까! 우리는 가지고 싶은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일과 성도들을 세우는 것은 하나의 특권입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고 보내신 능력 있는 분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면 나는 그 은사를 갈망하게 됩니다. 당신이 젊은 설교자이며 또 복음전도의 은사를 지니고 있다면, 그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그것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나는 어떤 사람들처럼 성경을 가르치고 싶고, 하나님의 어떤 사람들처럼 남에게 권면하는 일을 하고 싶고, 또 어떤 이가 할 수 있는 것처럼 성경을 강해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어떤 은사를 주신다면 그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인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보다는 불쌍한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하나님의 쓰임을 받고 싶습니다.

언젠가 던컨 마데슨(Duncan Matheson)이 많은 신자들이 모인 어떤 큰 집회에서 복음을 전한 것에 대해 어떤 사람이 그를 비난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듣도록 그들을 한 시간 동안이나 여기 앉아 있게 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진리가 놀랍게 증거되는 것을 들으러 여기에 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기엔 죄인이 없습니까?”

, 많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됐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내가 실수한 것은 아니군요. 알다시피,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들이 다른 것을 배우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하늘에 있는 집으로 가는 배의 노는 저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쌍한 죄인들은 구원받게 되거나 아니면 지옥으로 가고 말 것입니다.”

그것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만약 당신이 오늘 불쌍한 죄인이라면, 당신은 그리스도도 없고 소망도 없는 잃어버린 자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이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냐, 아니면 지옥이냐? 입니다. 하나를 무시하는 것은 다른 하나를 선택하는 것일 뿐입니다. 나는 죽어 가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이것을 외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들음은 믿음을 가져오고, 다가올 진노를 피하게 해 줍니다. 그것은 복음 전하는 자의 특별한 직무입니다. 그는 온 세상에 다니며 영혼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하나님의 교회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또한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진지하게 그의 사랑을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은 베드로를 그의 양떼의 목자로 세우셨습니다. 이 얼마나 복된 은사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자가 광야에서 방황하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 양떼에게로 데리고 오면, 목자는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의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고, 그들이 아플 때 도움을 베풀고, 그들이 세상을 떠날 때 함께 있어주고, 믿음이 약해질 때 그들을 십자가로 인도하며, 그리고 그들의 슬음에 같이 참여합니다. 이것들은 참으로 귀한 목자의 사역입니다.

다음으로는 교사의 은사가 있습니다. 목자와 교사의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고린도전서 12 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어떤 의미에서 목자는 지혜의 말씀을 가졌고, 교사는 지식의 말씀을 가졌다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분명하고도 적절하게 밝혀내는 것은 교사의 특별한 직무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말씀을 알고 그것으로부터 유익을 얻게 되고,또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며, 그 진리를 자기에게 적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진리가 양심에 새겨지도록 하는 것은 목자의 책임입니다.

 

당신은 이와 같은 것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아마도 어떤 특별한 역경과 시련을 거치면서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이는 곳에 가서 문제를 해결해 봐야 되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무거운 짐을 지고 거기에 참여했습니다. 집회는 계속되었으며 어떤 이가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러 일어났습니다. 그는 성경의 어떤 부분을 펴서 그것을 분명하고도 훌륭하게 강해했고 또 당신에게 유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떠나면서 당신은 그런데, 그 설교가 내 문제를 전혀 다루지는 못했어. 올 때보다 내 문제는 별로 나아지지를 않았어. 그러나 오기를 잘한 것 같아. 왜냐하면 복된 자리였거든. 성경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될거야. 거기 참석하기를 참으로 잘했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문제를 안고, 짐을 지고 그리고 어려움을 가진 채 그곳을 떠났습니다. 다른 경우에 당신은 다시 한번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을 펴고 강해를 시작하려 하는데, 당신은 아니, 그는 내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잖아. 나의 고민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 내가 필요한 바로 그것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펼쳐지게 되자, 당신의 영혼은 은혜를 받고 당신의 심령은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주님이시여,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런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나의 문제가 해결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첫 번째 경우에는 교사로부터, 그 다음에는 목자로부터 말씀을 들었습니다. 한 사람은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은 지혜의 말씀을 가졌습니다. 지혜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특정하고도 한정적인 경우에 적용되는 지식입니다.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가 왜 사도들, 선지자들, 복음 전하는 자들, 목자들, 그리고 교사들을 주셨습니까?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하심이라.”

이 말씀대로 우리는 이런 특별한 은사들의 사역을 이해해야 할 것인가요? 그들의 사역은 삼중적입니까? 주께서 목자들과 교사들에게 세 가지 목적, 즉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맡겼습니까? 그리고 당신은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까?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일과 봉사의 일,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 목자들과 교사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속한 일입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도달한 결론입니다. 사람들은 강단에서 말씀 전하는 사람들을 의지하기를 좋아하면서 봉사의 일을 하기 위해 우리가 그를 고용하지 않았습니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그는 하고 있습니까?”라고 말합니다. 11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자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어떤 다른 점을 발견하셨습니까? 목자들과 교사들은 이 모든 일들을 하기 위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어떤 단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목자로서 혹은 교사로서의 은사를 주실 때, 그것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고 그들을 개발시켜 그들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어떤 젊은 동역자가 나를 찾아와서 형제님의 설교들은 저작권을 지니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고 나는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왜냐하면 제가 일주일 전에 형제님의 설교를 듣고 돌아가서 어떤 전도 집회에서 그것으로 설교를 했거든요. 저는 그 설교가 어떤 저작권을 지니고 있지는 아니한가 하고 염려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엇인가 당신의 심령에 은혜가 되었다면 당신은 그것을 다른 누구에게 전할 수 있고 그것은 또 그들에게 축복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만약 당신이 어떤 회심자를 얻게 된다면, 당신은 영적 아버지가 될 것이며 저는 할아버지가 될 것이 아닙니까?”

나는 무디(Moody)의 전기를 읽었는데, 여러 해 전 어느 주일 아침에 그는 여러 설교자들의 서로 다른 설교를 들으려고 갔으며 오후와 저녁에는 길 어귀에서 열리는 전도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그 설교자들 중의 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박사님, 저는 지난 주간에 당신의 설교를 가지고 다섯 번 설교해서 40여명의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했습니다.”

그 설교자는 이상하다는 듯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몇 주간 혹은 몇 달 동안 회개하는 사람을 하나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사도의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목자의 은사를, 다른 이에게는 교사의 은사를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 인하여 유익을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나 영적 스폰지처럼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충만하게 채우십시오. 그리고 나서는 주님으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하시도록 하십시오.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사역의 참 원리를 실행하게 될 것입니다. 언제까지 이것을 계속할 것인가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결국 완전한 교회는 하늘에서 이뤄지게 될 것이며 그 때에 그리스도가 우리들 각자에게 완전하게 드러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충만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1 2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그리스도는 영광 가운데 계시는 머리이시며 우리는 그 몸의 지체들이고 또한 새 사람으로 그의 완전함을 이룹니다. 이윽고 우리가 하늘에 있는 집으로 가게 될 때, 우리의 수고의 나날이 끝이 날 때, 그리고 우리가 그분과 같이 완전함에 이르게 될 때, 그 때 우리의 이러한 사역은 끝나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는 목자도, 교사도, 복음 전하는 자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서의 우리는 모두 똑같이 우리의 복되신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찬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0 7,8월호    

 

'횃불 > 2000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능한 인간과 전능한 하나님  (0) 2015.07.13
천사들(Angels)(5)  (0) 2015.07.13
죄와 벌  (0) 2015.07.13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0) 2015.07.13
철학과 예수님  (0) 2015.06.22
회심(Conversion)  (0) 2015.06.22
주님의 지상 명령-복음을 전파하라  (0) 2015.06.22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  (0) 2015.06.22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