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22. 12. 26. 19:48 말씀 안으로/영원한 안전

페터슨, 데이비드

 이 제목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결정할 수 있는지 보라. “당신은 결코 이런 서투른 문법으로 이 기사를 마무리 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당신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았다고 확신한다. 기본 수학에서 두 음수를 곱하면 최종 결과는 양수이다. 그러나 기본 영어에서는 두 개의 부정적인 단어가 합쳐질 때 문법적인 오류가 바로 일어났다.

 

이중 부정의 사용은 영어 말에서는 눈살을 찌푸리지만 표준 헬라어에는 완전히 허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 oujmhv(우메) 표현은 거의 100번 나타난다. 두 oujmh는 “않다, 아니다, 없다, 결코 등”을 뜻하는 말이다. 이들 두 가지 부정적인 단어를 합하면 그 결과는 부정적인 면의 강화된 형태이다.

 

테이어는 oujmh를 결합하여 사용할 때, 그 의미는 “전혀 현명하지 않고 결코 현명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의 영원한 안전이라는 주제에 관한 이 이중의 부정적인 면의 가장 적절한 용도는 요한복음에서 주 예수님의 말씀에서 발견된다. 많은 성경 번역본들은 “결코… 아니하리라”라는 작은 문구로 번역한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이중 부정적인 말을 사용하는 요한복음의 세 구절을 살펴보며 매우 긍정적인 진리를 확인하는데 이 구절을 사용할 것이다.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주 예수님은 요 4:13-14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려니와 누구든지 내가 줄 물을 마시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첫째, 그분은 영적인 물과 물리적인 물을 대조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라.

 

둘째, 같은 동사와의 시제에서 앞 뒤 구절을 주목하라. 예수님께서 이런 변화를 말씀하신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신다”는 동사의 현재 시제는 물리적 물을 언급할 때 13절에서 사용된다. 종종(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이 시제는 연속 행동을 묘사하는데 여기서 이치에 맞는다. 사람은 물리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실제 물을 마셔야 한다. 그러나 영적 음료를 언급할 때 14절에서 “마신다” 동사의 시제는 부정과거이며, 이는 과거의 단 한번의 마시는 행위를 강조한다. 이 시제의 변화를 설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향해 돌아서고 그분이 제공하는 “생수”를 받아들이면 영원한 어떤 일이 일어난다. 즉, 개인은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만 만족을 발견했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고 다시 영적 갈증을 겪지 않을 것이다. 셋째, 이중 부정에 따르는 중요한 헬라어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aijwvn(아이온)(종종 “영원히”로 번역됨)이라는 단어이다. 이 말을 종합해 보면 다비는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그 구절을 번역했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 마르지 않을 것이다.” 이 영원한 생명의 음료는 한 번 마시면 한 번에 영원히 만족하므로 결코 반복될 필요가 없다.

 

결코 주리지 아니하리니

주 예수님께서는 요 6:35에서 이중 부정을 두 번 사용하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곧 생명의 빵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oujmh)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결코(oujmh)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조건부 안전 추종자들에 의해 여기와 다른 관련 본문들에 “믿는 자”에 대한 동사 시제가 존재한다는 것이 현재 지속적인 행동을 암시하고 있다고 지적되었다. 그들은 구원의 복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계속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오는 자”에 대한 시제는 역시 현재이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을 위해 계속해서 그리스도께 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또한 이것은 51절에 동일한 논의에서 “먹으면” 동사의 시제가 예수님 안에 있는 부정과거이다.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니 사람이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또한 53절에는 두 가지 더 관련되는 부정과거 시제가 있다. 구주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부정과거) 아니하고 그의 피를 마시지(부정과거)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이것들은 모두 영생을 받는 결과를 가져오는 과거, 단 하나의 행동을 암시한다. 이전 기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왜 “믿는다”의 현재 시제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의 이유는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믿음을 나타내는 것이 진정한 신자의 정상적인 실행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과거 시제에서 “믿음”을 사용하는 많은 본문들이 있으며(요 20:31; 행 16:31; 롬 10:9), 따라서 영원한 생명을 계속 소유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성육신처럼 현재의 시제 동사가 일회성 사건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요 6:33 “내려와”). 현재 시제는 심지어 중단되었던 행동들을 사용하기도 한다(마 2:20 - “찾던”; 요 9:8 - “앉아서 구걸”; 갈 1:23 - “핍박하던”). 실재는 우리가 “살아있는 빵”을 받아들이면서 그리스도를 받은 후에는 우리의 영적 굶주림은 영원히 만족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니

요 11:26에서 주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부정과거)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살아서”라는 말은 육체적인 생명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이나 영원한 생명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D.A 카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살다'라는 동사가 참을 수 없을 그 진부함으로 ‘살아 있다’(육체적으로)의 단순한 의미라 할 수 없으며 분명히 살아 있는 사람들만이 믿을 수 있다!”

 

요한은 약 98번이나 그의 글에서 동사와 명사 형태의 “생명”(zwhv, 조에)을 사용한다. 그것들 중 적어도 92번은 영적 생명, 영원한 생명 또는 하나님의 생명에 대한 언급이다. 만약 그렇다면 요한은 단순히 육체적인 존재를 강조하기 위해 “생명”을 강조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는 육체적인 죽음을 의미할 수 없다. 주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은 육체적인 죽음을 경험한다. 따라서, 여기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영생을 얻으면 영적으로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부정과거)는 것을 나타낸다. “누구든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살아서 나를 믿는 자”라고 그분께서 덧붙인다는 사실은 영원한 생명을 지속하기 위해 반드시 행해져야 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이 생명을 얻는 방법은 단순히 그분을 믿는 것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다(요 3:15-16,36; 5:24; 6:40,47; 20:31). “누구든지 살아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한 변화를 강조하고, “나를 믿는 자”는 그 변화가 이루어진 방식을 강조한다. 여기에 예수님의 이중 부정은 다시 한 번 긍정적인 진리를 선언하고 있다. 주 예수님을 믿는 자들로서 우리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안전하고 영원히 안전하다.

'말씀 안으로 > 영원한 안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나는 얼마나 안전한가?  (0) 2022.12.26
2. 선물  (0) 2022.12.26
3. 봉인  (0) 2022.12.26
5. 나는 좋은 변호사를 알고 있다  (0) 2022.12.26
6. 금단의 열매?  (0) 2022.12.26
7. 1세기의 문제점들  (0) 2022.12.26
8. 죄에 대한 희생물은 없는가?  (0) 2022.12.26
9. 자유로운 타락  (0) 2022.12.26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