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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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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2. 26. 19:46 말씀 안으로/영원한 안전

페터슨, 데이비드

아마도 신자들에게 영원히 안전하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인용하는 구절 중 하나는 요한복음 15:6에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그는 가지처럼 버려져서 시드나니 사람들이 그것들을 모아 불 속에 던져 태우느니라.” 여기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무엇인가? 그분은 누구에게 말씀하시는가?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태우는 것”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금단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창세기 2:17에서 말씀하셨던 것을 말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거기에 열매를 먹는 것은 허락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과일이 결실을 맺을 충분한 기회를 주지 않으신 것은 아니다. 결국 이것은 가꾸는 자의 소망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지속적으로 거부한 후, 신자가 더 이상 열매를 기대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를 수 있는가? 먼저 몇 가지 필요한 세부 사항을 검토한 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본문에 대해 이러한 해석을 통해 연구할 것이다.

 

가지 확인

감사하게도 예수님께서는 가지가 누구인지 말씀해주신다. 그분은 “나는 포도나무 요 너희는 가지니라”(5절)고 말씀하신다. 가지들은 그리스도를 진실로 따르는 사람들이며 단순한 신앙고백자가 아니다. 유다는 여기에 없었다(그는 13:30에서 떠남). 그분이 말씀하신 11명은 주 예수님 안에서 진정으로 믿는 자들이었다. 10절에서 그분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다는 아니니라”(유다가 없었기 때문에 13:30)고 덧붙이지 않고 깨끗하다고 ​​말씀하신다.

 

순종하는 친교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모든 참된 신자들이 그리스도안에 거하고 그들의 진실함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자신의 진정한 제자들에게 어쨌든 그들이 할 일을 하라고 권하셨을까? 그 의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그분 안에 거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일서 3:24에서,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 자는 그분 안에 거하고”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순종은 우리 본문의 주제이다(요 15:10,12,14,17). 그리스도 안에서 거한다는 것이 그분께 순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신자가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격려가 필요하다

주 예수님은 “내 안에서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모든 가지는 그분께서 제거하시고”(2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또한 해석하기 어려운 언급이다. 요한복음에서 16번 사용된 “내 안에”라는 구절은 각각의 경우에 단순히 공공연한 교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교제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가지가 “내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또한 “열매 맺는”(2절)라는 단어는 현재분사이며, “열매 맺지 못하는”(다비, YLT) 또는 “열매 맺지 못한다”로 번역될 수 있다.

 

“제거하시고”로 번역된 단어는 ai[rw(아이로)(이 복음서에서 26번 사용됨)이며 “올리거나 들어올리기”(요 5:8-9,11-12; 8:59)로 번역된다. R.K 해리슨은 신 국제 표준 성경 백과사전에서 그들이 치유되고 결국 열매를 생산할 수 있도록 떨어진 덩굴 가지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들어올리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분명히 ai[rw(아이로)가 “제거하거나 가져가기 위해”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곳의 문맥을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오늘날 필요는 무엇인가? 그분은 방금 14:28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던 그분이 아버지께 가기 위해 그들을 떠난다는 것이다. 며칠 안에 그들은 인도자를 잃고 그들의 세상은 뒤집어질 것이다. 그들의 필요는 비난의 위협이 아니라 격려였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어떤 격려를 베푸셨는가? 그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농부인 아버지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어떤 열매를 맺지 않은 제자를 들어올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있는 모든 가지”(2절)를 위해 이 일을 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느 농부가 열매가 없다고 모든 가지를 제거할 것인가? 우리 아버지의 성품을 더욱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가지를 제거하는 대신 먼저 그것들을 들어올려서 열매를 맺도록 북돋우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몇 주 동안 제자들은 분명히 낙담할 것이지만 격려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부활하신 주님을 볼 것이고 그들의 삶에서 열매가 풍성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잃어버린 기회

가장 어려운 본문은 6절이다. 여기 가지는 특별히 “내 안에 거하지” 않는 그 가지를 말씀하셨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내 안에 있는 가지”였던 2절과 대조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분은 두 개의 다른 결과를 가진 두 가지에 관해 말씀하고 있다. 2절의 가지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교제하는 자이었지만 반드시 당시에 열매를 맺지 않았다. 열매를 맺도록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격려가 주어질 것이다. 6절의 가지는 그리스도와의 교제에 거하지 않는 신자로서 “들어올리는 것”과는 반대로 “버려져서” 그리고 “태워지는” 신자이다. 첫 번째 가지에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반면 마지막 가지는 지금 그 기회를 잃고 있다.

 

만약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순종적인 교제를 의미한다면, 그분을 따르지 않는 것은(6절) 불순종하고 그분과의 교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생생한 이미지에 분명히 암시되는 것은 불순종한 신자가 아버지를 위해 열매를 맺을 기회가 상실되는 삶의 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직 우리의 농부만이 가지를 잘 알고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다.

 

이 해석은 전체 포도나무의 목적에 적합하다. 만약 우리의 농부가 계속해서 열매가 없고 영양분이 낭비되는 것을 본다면, 이러한 영양소가 생산적인 가지들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가지를 제거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농부는 더 많은 과일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 가지는 농부에게 아무런 결실도 없고 쓸모가 없는 것이다.

 

이 나뭇가지들이 “불태워졌다”는 이 언급은 이들 신자들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본문의 주제는 구원이 아니라 거룩함이다. 그렇다면 왜 그분은 가지가 “태워지는” 것을 언급하시는가? 부러지고 버려진 가지는 여전히 접붙여져서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가지가 불에 던져져 불에 태워졌을 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것이 신자의 삶에서 어떻게 달성되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다. 우리 아버지는 죽음에 의해 우리를 집으로 데려가실 수도 있고(고전 11:30), 우리가 남은 날 동안 비생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도록 허락할지도 모른다. 이 해석은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징벌적 손길에 영향을 받지 않는 개심의 확실한 증거를 제공하는 진정한 신자들을 의미할 수 있으며 그리고 그 후에는 거의 또는 전혀 구별되지 않은 채 개종하지 않은 사람들 틈에서 살았다. 이러한 각각의 경우에 개인들이 처음부터 결코 구원받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열매 맺는 것은 아버지의 바램일 뿐만 아니라 어쩌면 잃어버릴 수도 있는 특권이다.

 

우리의 바램이 우리 주 예수님의 바램과 일치하기를 바란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는 것,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나니 이로써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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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