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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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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로빈 매키온

여러분은 아주 일을 많이 부리는 주인이십니다. 너무 많이 일을 시킵니다. 그러나 여기 있는 것이 저는 기쁩니다.

저는 이전에 복음집회에 가던 것을 거절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관계도 복음집회와 갖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서 아일랜드에서 럭비 여행을 좋아했으며 그 일에 열중했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매우 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계속 럭비투어를 하기 원했습니다. 저는 구원받고자 하는 열심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복음집회에 두번째 참여할 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가 구원받은 지 3일 만에 저의 아래 동생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동생 하나는 지금 베네주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믿고 난 열흘 이후에 그 동생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제 아버지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때의 연세가 61세였습니다. 몇 달 사이에 하나님의 모임에서 전부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복된 그리스도인입니다. 오늘 이 놀라운 날에 이 모임에서 만약에 구원을 받는다면 이 날이 놀라운 날일 것입니다. 이미 그렇게 되기를 저는 기도를 했습니다. 구원받지 않는 것은 매우 엄위한 일입니다. 저는 복음 시간을 오래 갖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선 짧은 네 곳을 먼저 읽겠습니다.

16:17,30,31

17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30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고후 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19: 3~10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이 복음집회에서 제 마음가운데 떠오르는 주제는 구원인데 신 구약 전체 성경에서 엄청난 말입니다. 사도행전 16 17절에서 우리는 구원받지 않은 어떤 여자를 보았습니다. 거기에서 전도자가 한 말이 흥미롭습니다. 여자가 하는 말이 하나님의 거룩한 종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들에게 구원의 길을 보인다고 믿지 않는 여자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말씀해 드리고자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전서 1:9에서 여러분의 영혼의 구원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여러분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는 여러분의 영혼의 구원입니다. 이것은 치명적입니다. 영혼이 잃게 되는 것은 대단히 슬픈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막 8:36에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아무도 세상을 다 얻을지라도 그 영혼을 잃으면 유익이 없습니다. 그 자신을 잃게 되면 그것보다 더 많이 잃는 것은 없습니다. 가룟유다를 생각해 보십시오. 30을 가지고도 그 은을 하나도 쓰지 못했습니다. 그의 영혼이 은 30에 팔렸습니다. 구원의 길을 말씀드리를 원합니다. 첫번째 이해하기를 원하는 것은 매우 명백합니다만 이 구원은 주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출 14:13에 따르면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이것은 여호와 즉 주의 구원인 것입니다. 3:8도 매우 명백합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 왜 주님을 믿어야 되는가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명백하게 썼습니다. 1:13에서 다른 사람들이 구원받은 것을 되돌아보면서 하는 말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먼저 믿었노니라고 말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이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는 에베소서에서 또 쓰기를 너희들도 진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주님을 믿어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여러분의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이 나와있습니다.

잠시 제가 구원받은 것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제가 구원받은 것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필립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그는 매우 유명한 찬송가를 작사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 기쁜 날이라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내가 선택을 한 그날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 여러분은 그러한 복된 날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만약에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면 그렇게 될텐데 저는 매우 복된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어느 주일날 복음집회에서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한 집회였는데 여러분 이 자리에 아직 구원받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이 세상에 어떤 것보다도 여러분이 구원받기를 저는 원합니다. 저는 그날 밤에 구원받기를 원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구원받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저는 전도자가 말하는 모든 말을 놓치지 않고 자세히 들었습니다. 여기 보니까 구원의 길이라고 와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전도자가 하는 말을 잘 들으면 좋습니다. 그 전도자는 저에게 핵심을 말해주었습니다. 저에게 그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도자의 말을 잘 들었습니다. 그에게 전도자가 하는 말의 핵심을 들었습니다. 젊은이여! 여러분이 일어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했습니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섯 마디 말만 생각을 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영어로는 다섯 단어가 됨). 저는 그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때 믿음을 그분에게 놓았습니다. 제가 한 모든 것은 저의 믿음을 그분에게 모두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바로 한 그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내가 구원받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아주 엄청난 날이었습니다.

구원의 길을 말할 때 여러분은 사도행전 16장의 말을 기억하십니까? 빌립보 간수가 그는 아주 험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진을 일으키셨는데 그 옥터가 흔들렸을 뿐만 아니라 그 간수도 흔들렸습니다. 이 사람이 구원을 찾았습니다. 전도자에게 묻기를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이것이 오늘 여러분의 질문입니까?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2,000년 전에 빌립보 간수가 이 질문을 한 대답은 지금도 똑 같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것은 복음 메시지의 중심에 서 있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아주 엄청난 진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성경에 의하면 장사 지낸바 되셨다. 그리고 성경에 따라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그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여러분이 만약에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셔야만 합니다. 구원의 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한분이신데 십자가에 돌아가신 바로 그분입니다. 바로 그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그리고 그 이상을 말씀하셨는데 내게 오라고 하셨습니다. 왜 여러분은 그리스도에게 가지 안 가십니까? 왜냐하면 그분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는데 왜 그분께 안 가십니까? 이 하늘과 땅에 그 이름 외에는 구원받을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이름은 구원의 길로서 그 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후 6:2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길만 읽었을 뿐만 아니라 구원의 날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6:2에서 두 번이나 구원의 날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 말씀을 읽습니다.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을만하다고 하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용납하시는 때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구원받는 그 시점은 하나님께서도 받으실만한 때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사람이 구원받았는지 그것을 잘 모르지만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지금 받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에 구원받지 않고 죽는다면 그때는 우리가 정하는 때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모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지옥을 향해 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때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시기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입니다. 여러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27:1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내일에 무슨 일이 날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 내일이라고 말합니다. 누가 옳습니까? 하나님은 늘 옳습니다. 3:7, 4:7에 보면 여러분은 오늘날이라는 말을 5번 볼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의해서 듣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내일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에 서겠습니까? 구절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십시오. 보라 이 말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주의를 끄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아주 전적인 주의를 기울이기를 하나님은 원하셔서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구원받는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삭개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무 밑에 주님이 서셔서 나무 위의 삭개오를 올려다 보시며 그 이름을 언급 하셨습니다. 여러분 구원은 매우 개인적입니다. 삭개오야 급히 내려오라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9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것은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삭개오는 매우 지혜롭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셨다고 나오시는 중인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이 때가 바로 마지막 때였습니다. 다시 주님은 이쪽으로 돌아 오지 않으십니다. 삭개오는 그것을 알았는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삭개오는 마치 기회가 마지막인 듯이 행동했습니다. 12년전 쯤에 제가 발리모니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로마 카톨릭 신자가 그는 일평생에 복음집회에서 한번도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39살 되는 사람이었는데 복음집회에 올려고 그의 차를 탔습니다. 그 때 어떤 홀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매일 밤 홀이 가득찼습니다. 그때 모이든 사람들이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 아닌 사람들도 많이 왔습니다. 그가 자동차를 주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전하는 장소로 들어오지 않고 집으로 그만 갔습니다. 두번째 날에는 그가 복음집회에 참석을 하려다가 집으로 또 가버렸습니다. 그 다음날 밤에 동일한 일을 했습니다. 그는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네번째 날에 차에서 내려서 홀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그냥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를 보았습니다.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는데 죄인보고 오라고 하는 가사내용의 찬송이었습니다. 구원은 모두 거저라는 가사였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부름을 받는 마지막 때라는 가사였습니다. 그 사람은 평생에 한번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매일 밤 왔습니다. 9일째 되는 날 밤에 그는 차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차 안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그의 눈에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 기뻐서 내 눈에서 눈물이 났다고 그는 나중에 말했습니다. 그가 모임 안으로 들어왔을 때 모두가 성경을 열고 있었습니다. 말씀이 그에게 다다랐습니다. 그는 이 부름을 받지 않으면 내가 마지막 기회가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구원의 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것을 인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19장을 읽었습니다. 매우 놀라운 표현입니다. 19:6에는 삭개오가 서둘러 나무에서 내려왔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또 하나의 모양이지 않습니까? 그리스도를 그는 영접했습니다.

19장에서 구원의 기쁨에 대해서 잠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말입니다. 6절에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도 슬퍼하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을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슬퍼하면서 영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은 즐거워하며 영접하는 것입니다. 제가 구원받은 순간을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제 마음에 즐거움이 넘쳤습니다. 제 죄가 전부 용서된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절대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저의 삶이 만약에 경건치 못한다 할지라도 저는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제 마음 속에 어떻게 즐거움이 찼는지를 모르지만 계속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결코 지옥에 가지 않기 때문에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제가 시골에 있어도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확실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구원을 받지 않으면 이 즐거움을 갖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아직도 믿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이 이 즐거움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실 때만 얻을 수 있습니다. 삭개오는 즐거워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여러분은 부자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슬퍼하면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외에는 길이 없는데도 그리스도를 버리고 가버렸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즐거워하며 영접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의 길을 가게 되면 그 길을 슬프게 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부자청년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그리스도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하게 된다면, 사실은 그가 그리스도에게 돌아왔어야 되는데 이것은 정말로 엄숙한 일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믿지 않고 죄가운데서 죽게 되다면.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는 밤중에 기도하며 찬송했다고 했습니다. 등에는 채찍을 맞았는데 찬송하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아마 육체적인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칠게 감옥 안에 넣어졌습니다. 손과 발은 착고에 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해서 찬송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원의 즐거움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죄수들도 듣더라 하는 그 이유인 것입니다. 이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그 감옥 속에서 그 죄수들이 그런 일을 이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경우에 감옥에서는 저주하고 이를 가는 경우는 있어도 찬송하는 소리는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 밤중에 사람들이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 죄수들이 듣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바울과 실라는 구원의 즐거움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구원받지 않는다면 그럼 오늘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이 즐거움을 갖지 않고 있음을 정직하게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기자는 나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이 기뻐하노니. 여러분이 만약에 오늘 구원을 받게 된다면 어떤 것이 뒤따를 것입니다. 구원을 받게 된다면 즐거움의 구원이기 때문에 기쁨이 따를 것입니다. 만약에 이것을 묶음이라고 표현한다면 여러분이 구원을 얻는다면 구원의 즐거움도 함께 얻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히 2:3절을 읽었습니다.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것은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데 대한 경고입니다. 한국의 서울에 사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어찌 피하리요?라는 것이 질문입니다. 이 큰 구원을라고 한 것처럼 구원은 이같이 큰 구원인 것입니다. 어찌 피하리요? 즉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등한히 여기는 문제는 이것입니다. 너무 쉽다는 것입니다. 등한히 여기기가 너무 쉽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구원은 이같이 큰데 그리고 등한히 여기는 것은 쉽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거기다가 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결과에 대해서 좀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경에 매우 흥미로운 것이 있습니다. 저는 놀라운 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준비한 구원은 이같이 큰 구원입니다. 여러분은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려고 하십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부디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어떻게 피하려고 등한히 여기십니까? 사도 베드로는 아주 거친 질문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벧전 4:17에서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그 종말은 어떠하겠느냐? 2:3의 질문은 어찌 피하리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큰 구원을 여러분이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옥이 여러분의 몫이 될 것입니다. 복음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을 오늘 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옥에 가기 전에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옥에 가게 되면 복음이 절대로 그곳에서 여러분을 끄집어 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면 지옥으로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만약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신다면 여러분은 지옥에 있게 될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여러분을 복음이 절대로 그곳에서 끄집어 낼 수 없습니다. 8:21~24에서 너희들이 나를 찾으나 찾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가는 거기에 너희들이 오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찾게 되면 보통 발견하게 되는데 주님은 찾아도 나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찾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님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너희들이 나를 찾겠지만 이미 그 때는 늦을 것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찾지만 나를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들 죄가운데서 죽으면 천국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땅에 살아 있을 때 믿어야만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이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신다면 어떻게 피하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제가 답을 드리겠습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없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의 길에 관심이 있습니까? 내가 지금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됩니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오늘 이 자리에서 어떤 분들이 구원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이 구원의 때인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마음에 복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9 2 15()복음집회_강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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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