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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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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모임을 세움

로빈 매키온

안녕하세요.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월요일 날에 영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부산에서의 마지막 집회인 오늘 저녁에는 모임의 기초적인 진리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린도전서 3:5~17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오늘 저녁 말씀드릴 제목을 말씀드린다면 하나님의 모임을 세움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 부분에서 세운다는 말이 4번 나옵니다. 이 작은 대목에서 모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9,10절에서 알기를 원하는 것은 모임을 집(건물=영어)이라고 했습니다. 9절에 보면, 하나님의 집, 즉 건물을 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밭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밭에 대한 측면에서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집(건물)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건축과도 관계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9 절과 10절입니다. 10절과 11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여기는 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터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 모든 건물은 하나님의 모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모든 터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리고 16절에서 발견되는 것은 이 건물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는데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지역모임은 우리가 아는대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17절을 보게 되면 이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기에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도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모임이 연결되기를, 여러분이 삼위일체와 연결되는 것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몇 구절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말을 봅니다. 11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고 16절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나오고 그래서 이 구절들에서는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이라는 삼위일체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두는 고린도 모임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삼위일체가 모든 지역교회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저녁 우리가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모임을 세우고자 함에 있어서는 충성스러움이 요구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아는대로 모세는 성막을 세울 때 식양을 따라서 세웠다고 했습니다. 모임에서 그 식양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기에 모임을 기술하는데 두 가지 용어가 채택되었습니다. 9절과 11절에서는 그리고 16절과 17절이 후반에 나오는 서술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전반부분과 후반 부분을 모임에 대해서 서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2~15절까지는 이 두 서술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임의 세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는 하나님의 모임에서 일한 것을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나타내는 것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것을 이렇게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하나님의 모임을 세우는데 가담을 한다고 할 것 같으면 여러분이 몇 몇가지를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첫번째 여러분이 이해해야 되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기본적인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모임이라는 것을 또 보겠습니다만 말씀을 드리는 요점은 이것입니다. 만약 모임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모임에 왔을 때 대단히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내 행동을 모임에서 매우 조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 문맥에서 보게 되면 모임을 세울 때 얼마나 조심해야 되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좀더 자세히 봅시다.

6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9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건물)이니라 이 구절 짧은 절에서 하나님이 세번 언급이 되는데, 왜 세번이나 언급됩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집이고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10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부산 명륜 모임은 이것이 하나님의 밭입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건물입니까? 또한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성전입니까? 부산 명륜 모임이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라고 말했습니다.

16,17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절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이 세번 언급이 되는 것을 주목하면, 왜 세번이나 언급됩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매우 명백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바울은 이 편지를 써 보냅니까? 고전 1:2을 보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모임 즉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10:32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이 하나님의 교회는 모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교회는 모두 다 모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유대인이 있습니다. 그들은 회당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의 성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에는 특별한 어떤 집단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모임입니다. 이것은 사람들로 되어 있는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 가운데 구원받고, 그리고 이방인 가운데서 구원받았는데 놀라운 현상입니다. 고린도에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모임이 세워지는 이것은 상황이나 사람들의 어떤 일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유대인의 회당도 아니요, 이방인의 우상의 전도 아닙니다.

여기에 복음이 들어오기 이전에 고린도에는 모임이 없었습니다. 11:16의 중요한 머리되심의 항목에서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교회도 그런 규례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고린도에 있는 모임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모임들이 이미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모임에 11장 마지막 부분에서 만찬에 있어서의 무질서를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여기서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모임을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11:22에서 되묻기를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느냐?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아느냐?라는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의 교회에서 술취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임을 세울 때 기초적이고 기본적으로 알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모임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로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모임을 건물로 비유해서 말씀을 드린다면 첫번째는 하나님의 건물이라는 것에 맞아야 합니다. 두번째는 여러분 자신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여러분 스스로가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예를 들어 말씀을 드린다면 모임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가르침은 하나님에 모임을 세움에 대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가르치는 자도 가르치면서 자신이 어떤 입장인가를 올바르게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진가를 보겠습니다. 2:3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주목할 것은 바울은 그들 가운데 거할 때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습니다. 여기에 교만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 스스로가 크다고 생각하는 모양새가 없습니다.

3:5 바울은 무엇이냐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면서 내가 여기 있노라고 주장하는 전도자들이 있습니다. 그 자신은 잘못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바울은 무엇이뇨라고 했습니다. 6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5절에서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물었습니다. 그래서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바울은 정확하게 자기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바울이 믿는 바는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10절에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그래서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자신에 대해서 3:8에서 말하기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놀라운 말이 아닙니까? 그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성도보다 작다고 말하지 않고 가장 작은 성도보다 더 작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요점을 내고자 하는 것은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건물을 세우도록 쓰시는 그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편지를 보시면 15:9,10절에서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까지 말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모임을 세우는데 쓰시는 사람이 바로 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를 쓸 때 6:3에서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는 자에 대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자신이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임에 많은 경우에 자기가 뭔가 된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데도, 저는 어떻습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기를 죄인이었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에 불과합니다. 이 사람 바울은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평가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 아주 무서운 대비를 볼 수 있습니다.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이 있는데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임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임을 세우는데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모임을 세우기는커녕 모임을 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사도 요한에게 접근해 갈 때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을 데리고 모임 밖으로 나갔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높아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임을 세우는 사람이기는커녕 모임을 허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 하나님의 모임을 세우는 사람인지 어떤지를 생각합니다. 이 구절의 매우 흥미로운 구절로 가겠습니다. 이미 9절에서 마지막 부분에 하나님의 집(건물)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집(건물)의 이면에 있는 것은 건축물이라는 뜻입니다. 여기는 설계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모임을 설계한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10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이 건축자라는 말의 영어성경에는 건축물을 짓는데 실제로 일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모임은 이와 같이 건축물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건축물에 합당한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라는 말 중 여기의 지혜로운 이라는 형용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저는 고린도전서 전반의 부분을 통해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모임을 세우는 사람들은 지혜로운 이라는 이 말을 이해해야 합니다.

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여기의 말의 지혜를 주목하십시오. 2: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1:17에는 말의 지혜였습니다. 19절에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17절은 말의 지혜이고 19절은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인데, 이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20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17절에는 말의 지혜가 있고 19절에는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가 있습니다. 20절에 세상의 지혜가 있습니다. 21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잠시 무신론자들을 생각을 해 봅시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깊은 지혜를 가졌고 총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따르면 그들은 어리석습니다.

21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22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4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1절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보았습니다. 24절에서도 또한 하나님의 지혜를 봅니다. 25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26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27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30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셨느니라

2:3 그 안에는 모든 지혜가 감취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지혜와 보화가 감취어진 비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모임의 터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는 모든 감취어져 있는 지혜의 보화였습니다.

2:4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5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6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7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3:18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이제 질문으로 돌아가서 10절에서 나오는 이 지혜로운 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슨 의미입니까? 바울은 지혜로운 건축자였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그 이치의 대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지혜가 사람의 지혜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니라고 한 것의 첫번째가 세상의 지혜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사람의 지혜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이 세상의 지혜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건축물()이다. 이 사람 바울은 이 건축물을 짓는데 쓰임을 받습니다. 그는 지혜로운 건축자였습니다. 이것을 실제 이렇게 설명을 해봅시다. 이 세상의 지혜를 쓰는 모임을 예로 들어봅시다. 여러분 이 세상의 지혜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임의 장로들이 있는데 민주주의 방식으로 투표하자 이것은 세상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이 세상의 지혜는 쓰임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설계하신 그 원본대로 하나님의 모임을 세울 것입니다.

세상이 오늘 저녁 이렇게 모여 있는 모임을 본다고 할 것 같으면 자매들의 너울 쓴 것을 보고 그들이 무어라고 말하겠습니까? 이상하구나, 남자들도 쓰지 그래. 이건 성차별이 아니냐? 이것은 이 세상의 지혜이며 하나님의 지혜가 아닙니다. 만약 기도집회를 그들이 보았다면 남자들이 기도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또한 남자가 강단에 서는데 여자는 왜 못 서느냐? 이 세상 지혜는 여자도 말을 해야 되지 않느냐고 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영국 성공회에서 여자 감독을 인정했습니다.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공회는 세상 지혜로 지배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바울은 지혜로운 건축자로서 그 터를 놓았습니다. 물론 그 터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겠다고 바울은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말했습니다.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장사 지낸바 되시고 성경대로 살아나셨다고 바울은 기록했습니다. 모든 모임의 터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 아는대로 모든 건물의 터는 매우 중요합니다. 부산에 있는 어떤 일을 가지고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아침식사를 한 후에 성경을 읽었습니다. 아마 11 15분쯤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을 제쳐 놓고 제 건강을 위해서 산책하러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부산은 산책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입니다. 한화 리조트에서 ---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아일랜드도 아주 아름답습니다. 오늘 건설 현장에 큰 크레인이 있었습니다. 보니까 안전책이 쳐져 있었습니다. 오늘은 거기에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땅을 매우 깊이 판 것을 보았습니다. 옆에는 아주 높은 빌딩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거기에 뭔가가 잘못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문제는 바로 그 기초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 많은 복합빌딩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좋은 건물들은 대부분이 좋은 기초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건물들은 이 터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의 터를 아십니까? 욥기 38: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하나님께서 당의 기초, 즉 터를 놓았다는 것은 흥미롭지 않습니까? 28:16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요긴한 기초돌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모임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기초돌입니다. 바울은 딤후 2:19에서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일렀으되라고 말했습니다. 2:20에서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라고 했는데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여러분 아실 것입니다. 이것은 에베소 모임이 사람을 터로 해서 세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받아서 세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에 대해서 히 11:10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터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을 다시 봅시다.

10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경고를 보면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12만일 누구든지 . 이 터 위에 세우면 세운다는 말씀이 4번 나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바울은 터를 닦아두었고 이것은 바로 모임의 출발입니다. 바울은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위에 다른 사람들이 세우기 시작합니다. 이 표현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10절 후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것은 경고이며 교리이기도 합니다. 조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러분 두 가지를 주목하기 바랍니다. 모든 건물은 모임에 적용이 되었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특성이 나타나야 하며 하나님이 설계하신 원형대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건축자가 하나님이고 설계자도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하나님의 모임에서 가르치는 여러분의 가르침이 원래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설계인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첫번째를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신 그 설계인지를 주의하고 두번째는 그 건물에 터를 주의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서 있는 모임의 그 터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임에 다른 가르침이 들어오게 해서는 안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지 않는 가르침은 들어와서는 안됩니다.

제가 10대일 때 시골에 있는 큰 집에서 아버지가 살았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건축 보존물에 해당하는 건물이었습니다. 거기는 거주하는 자들에게 건축보존을 위한 어떤 조건이 있었는데 우리 집을 어떤 사람이 샀습니다. 그는 그 집에 새로운 지붕을 얹기를 원했습니다. 이전의 지붕을 걷어내고 새로운 지붕을 얹으려 했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살던 그 집은 매우 역사적인 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건물 보존하는 당국에서 이 지붕을 원래 설계한 대로 그대로 되돌리시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것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교훈입니까? 그 사람은 그 건물의 원 설계자가 했던 그 원형을 보존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대로 그 지붕을 얹으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임에 대한 교훈을 받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원래 계획했던 그 설계대로 말이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모임을 세울 때 반드시 완전하게 하나님이 설계하신 그 원형 그대로를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부분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임에 대한 두 가지(둘 이상이지만) 언급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9~11에서 보면 모임에 대한 서술이 나와있습니다. 16,17절도 모임에 대한 서술이요, 기술입니다. 이 사이에 하나님의 모임을 세우는 일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받는 상급과 관계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받을 상급을 위해서 모임 안에서 세우는 일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기를 하나님의 모임은 모임에 속한 지체들이 모임에 대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데 물론 그것은 중요합니다. 영접을 확인하기 위해서 서로 인터뷰를 할 때 영접을 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양쪽 다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이 장로의 아들이라고 해서 영적으로 점검하지 않고 그대로 모임으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임의 건물은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임에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런 절차없이 모임에 바로 영접해서는 안됩니다.

12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여기 보면 여섯가지 재료가 있는데 두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첫번째는 금, , 보석입니다. 그 다음에는 나무, , 짚입니다. 건물도 중요하지만 그 건물에 쓰이는 재료도 중요합니다. 이 건물이 잘못 설명되는 것들을 많이 봅니다. 어떤 사람은 금은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성의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은은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보석은 그 아름다운 성질이라고 어떤 사람들은 설명합니다. 물론 그것은 좋지만 그것 말고 또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나무, , 짚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 보석은 첫번째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것은 가치가 없습니다. 첫번째는 값이 나가면서 오랫동안 견딘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세 가지는 나무, , 짚인데 이것은 거의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덩치가 크고 많은 부피가 있습니다. 그러나 금은 보석과 그 질을 비교해보십시오. 이 문맥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나중에 시험을 받아서 분명하게 조사를 받아야 되는데 이것은 또한 없어집니다. 공력이 나타나는데 불로서 시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금은 보석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이 하나님의 모임에 있는 것은 정말 가치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금을 취하려고 한다면 땅을 파야 합니다. 은도 보석도 그렇습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은 지표면(地表面)에 있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모임을 세우는 사람일 것 같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금과 은과 보석을 캐듯이 말씀을 캐는데 시간을 많이 드릴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깊이 파면 팔수록 그것은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주님께서 오셔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를 생각하고 말이죠. 계속 이것을 추구해 봅시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일어날 일을 세 가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3절을 다시 보면 각각 공력이 나타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날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지난번에 봤던 악한 날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특별한 날입니다. 1:8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그리스도의 날이 나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날입니다. 이것은 주의 날이 아닙니다. 주의 날은 거의 대부분이 이 땅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 날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오시는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주 짧은 시간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모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두번째는 밝히리니 했으며, 세번째는 나타내고라고 했습니다. 불로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불이 무언지를 질문을 해 봐야 합니다. 성경에서 이 불이 뭔지 답을 드리겠습니다. 이 세 말을 보면 첫번째는 나타나는 것이고, 이것은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공개되는 측면을 말하는 것이며 시각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개인적으로 하는 모든 일이 볼 수 있게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번째를 보면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것은 헬라어로 명백하게 의도적으로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매우 흥미로운 것으로 봅니다. 하나님의 모임이 건물로 언급되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도님들이 정직하게 생각을 한다고 할 것 같으면, 저것은 의심스럽다라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이것을 원하실까? 라는 일들을 볼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저것을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한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것이 명백해질 것입니다. 분명해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린이의 일 같은 경우를 말이죠. 주일학교 일이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린아이들에게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일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의심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에서 본다면 그것이 어떤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것을 가르치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그 면에 대해서 큰 물음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는 분명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말을 보면 불로 나타내고 나타낸다는 말은 매우 흥미로운 말입니다. 이것은 덮었던 것을 거둔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덮여 있는 것을 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통해 사용하시기를 마 10:26에서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때로 모임에서 알 것입니다만 어떤 경우는 감추인채로 모임에서 진행되거나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모임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그것을 덮어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덮여져 있던 것, 그것이 걷혀질 것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요점은 모두 이것이 드러난다는 관점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은 이는 불로 나타내고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립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큰 불이 있겠습니까? 저는 전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불로 나타낸다는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이겠습니까? 성경을 통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2:29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대에 앉아 있는 것은 기억하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임을 기억하십시오. 여기는 하나님의 모임이었습니다. 분명히 명백하게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여기서 나무 풀은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3: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하나님의 모임에서 한 우리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 의해서 평가가 될 것입니다.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일곱 금촛대가 나오는 그 상황에서는 어떻습니까? 1:14에 의하면 그의 눈은 불꽃 같고 두아디라 교회에 대한 기록에서 계 2:18에 예수 그리스도를 그 지역모임에 소개하는 대목에서 그의 눈은 불꽃 같고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 주님께서는 그 눈이 불꽃 같습니다. 저는 불이 뭔지에 대한 대답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것을 기억하기 바라는 것은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가를 시험할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이 문맥에서 보면 이 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 , 보석, , 나무, , 불은 무엇인지를 말씀드렸는데 어떠한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기서 어떠한 것이라는 이 용어는 질을 측정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을 측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금부터 마지막 짚까지 차례로 보면 여기에 질이 점점 달라지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심판대에서 그 공력의 질을 심판 당할 것입니다. 19장의 므나의 비유에서 먼 나라에서 돌아올 때 그 주인이 종들을 불렀습니다. 무엇을 알기 원했는지 여러분은 알 것입니다. 얼마나 남겼느냐를 물었습니다. 여기는 얼마나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양을 측정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직접 관련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의 한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 두 개를 가지고서 교훈을 얻는다면 한편은 질을 측정하고 한편은 양을 측정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나무나 풀이나 짚을 가졌다고 가정을 해보면 나무나 풀이나 짚은 양이 많고 덩치가 큽니다. 양이 많습니다. 그러나 질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질을 먼저 강조해야 합니다. 동시에 또한 양도 강조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질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만약에 전체가 양만 있고 질이 없다면 문제가 됩니다.

14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그대로 있다는 것은 불로 시험을 했는데 그대로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은 거기에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이 상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받는 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15절에 아주 엄하게 말씀이 나오기를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이것은 그 사람 자체가 해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문맥에서 설명을 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잃으리니-영어)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상급을 잃는 것이지 그 사람 자체가 해를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상을 받으려면 반드시 질을 확인해야 합니다. 성경은 매우 주의깊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그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그 사람 자체는 구원을 얻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요이 8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저는 이 성경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을 받으라고! 모임에 대해서 우리가 경고 받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 일생동안 한 어떤 것으로 말미암아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제가 바라기는 하나님의 교회가 참으로 귀하다는 것을 평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맥 없이는 함부로 평가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올바르게 평가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9 2 11() 부산명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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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