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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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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들

로빈 매키온

우리들에게 필요한 필요를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말씀 때문에 서 있습니다. 정말 제가 서 있지만 제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여러분의 머리에 하나님의 역량을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머리뿐만이 아니라 마음 속에도 그 말씀이 역량을 주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이 말씀이 뿌려지기를 바라며 먼저 저에게도 적용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모임의 다스림에 대해서 오늘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북아일랜드라 불리는 땅에서 왔습니다. 거기는 많은 모임들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서 말씀을 가르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때 성도님들이 저에게 우리는 하나님의 모임에 장로들에 관해서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주제는 장로들이 되겠습니다.

20:17,28,31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살전 5:12~14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딤전 3:1~7

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13:7,17,24

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24 너희를 인도하는 자와 및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벧전 5:1~4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오늘 제가 다루는 주제는 대단히 큰 주제입니다. 가능하면 여러분이 기억하기 쉬운 방법으로 접근을 하겠습니다. 먼저 구약에서 인용을 조금 하겠습니다.

27:23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 하는 권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은 그 무리에 부지런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부지런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말로서 사 40:11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은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아주 부드럽고 유순하게 어린 자들을 돌본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첫번째로 그 양들을 먹인다고 했기 때문에 이 말씀으로도 오늘 저녁 우리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 품에 어린 양들을 안고 옮긴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부드러운 목자의 마음입니다. 그들 어린 자들을 아주 부드럽게 인도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주 잘 돌본다는 것을 대단히 중요합니다. 장로에 관한 주제를 생각할 때 첫번째로 이런 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번째로 정의를 해 봐야겠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기술(記述)이 되겠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원칙적으로 세 용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유사한 말들이지만 첫번째로 장로들이란 말이 나옵니다. 두번째는 감독이란 말이 나옵니다. 세번째는 목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셋은 어떤 목자의 인격과 관계되는 말입니다. 장로, 목자, 감독은 동일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첫번째로 장로에 관한 개념입니다. 이것은 명백합니다. 이것은 나이 많은 사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디모데전서 3장에서 말하는 바와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말입니다만 다른 말로 하면 어리기 때문에 업신여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 디모데가 젊은 사람으로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처음에 그는 장로로 준비된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초보자였으며 경험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점점 배워 나갔는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또 다른 면을 보면 장로라는 말은 유대인이 쓰는 개념에서 왔습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에서 보게 되면 11번이나 이스라엘의 장로들이라는 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장로, 또는 장로들이라는 말에 매우 친숙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용어 장로들을 생각할 때 첫번째로 영적인 성숙을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장로를 생각할 때 먼저 영적인 성숙을 마음에 두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매우 흥미로운 용어 중에 하나는 감독이라고 하는 용어입니다. 이것을 좀 더 하위로 분류해 보면, 감독이라는 말을 영어로 말해서 분석해 본다면 영어로는 overseer이기 때문에 over seer 두 성분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영어에서 seer는 본다는 말이고 over~위에, ~대하여 이기 때문에 ~에 대하여 본다, 관찰한다는 의미로 분석이 가능합니다. 헬라어로는 ejpiskophv(에피스코페)라는 단어입니다만 이것도 두 요소로 형성이 되어 있습니다. 첫번째로 에피라는 접두어는 ‘~에 대하여’라는 말입니다. 스코페라는 다음 요소는 망원경이나 현미경처럼 무언가를 관찰한다는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독이라는 말은 헬라어나 영어에서는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관찰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양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 관찰해 보는 것입니다. 감독이라는 말의 배경은 유대인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그리스인들이 쓰던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감독이란 말은 어느 정도 이런 의미를 갖습니다. 이것은 감독 즉 관찰해서 그것을 관리하는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감독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목자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헬라어의 poimhvn(포이맨)에서 왔습니다. 이것은 양들을 먹인다는 의미에서 왔습니다. 오늘 저녁 성경을 통해서 보겠습니다만 이것은 양들을 친다는 의미에서 왔습니다. 또한 돌보고 먹인다는 의미에서 왔습니다. 제가 만약에 목자의 일을 생각한다면 특별히 돌봄이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조금 전에 이사야의 말씀에 양들을 목자같이 치시며 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린양을 품에 안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품에 안고 그들을 옮긴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젊은 양들을 아주 순하게 인도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기에 아주 순하게 돌본다는 말씀과 관계가 됩니다. 어린이 찬송가에 있듯이 “주님께서 양들을 돌본다” 라는 가사의 찬송이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대로 여러분이 기억하기를 원합니다만 이것은 다른 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한 장로가 있으면 그 사람은 목자이면서도 또한 감독인 것입니다. 20:17에서 바울이 에베소에서 장로들을 초청했습니다. 28절에서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17절에서 장로들이라고 불렀습니다. 28절에서는 동일한 사람을 감독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라고 했습니다. 치는 것은 목자가 하는 것입니다. 헬라말로 포이맨이라고 하는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장로들이나 감독들이 떼들을 치는 것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이 세 용어가 한 사람에 대해서 사용이 되었습니다. 벧전 5장에서도 1절에서 “너희 중에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2절에서는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먹이되)”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는 것은 목자가 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보니까 장로들이 바로 목자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베드로는 또 말하기를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베드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장로들은 목자들인데 또한 감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은 장로들의 다른 기능들을 나타내기 위해서 골라 썼습니다.

여기 또 중요한 것은 복수성에 대해서 주목하기 바랍니다. 저는 한 사람이 무리들을 돌보는 그런 종교적인 체제에서 자랐습니다. 많은 친척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만 저에게 목사가 되라고 권면했습니다. 양들을 치는 목자가 되라고 친척들이 권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성경에 따르면 한 사람이 치는 것은 필요 없습니다. 지난 밤에 디오드레베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우두머리가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자기 외에는 아무도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신약성경을 조사해보게 되면 늘 장로들이 복수로 표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돌보는데 안전하지 않습니까? 너는 이것이 한국에서는 어떤 균형을 이루는지 잘 모릅니다만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무어라 말씀합니까? 이미 행전 20:17을 말씀드렸는데 이 말씀에 주목해보기 바랍니다.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이것은 명백합니다. 14장에도 보게 되면 23절에 “각 성에 장로들을”이라는 말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이것을 받아들였습니까?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를 바울이 쓸 때에 1:1에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여기서는 또한 돌보는 사람들입니다. 감독들과 장로들이라는 말을(모든 성도들, 감독들과 집사들과 더불어=영어) 했기 때문에 모든 성도 속에 들어 있다는 것에 주의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돌볼 필요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모임 가운데 계급적으로 높이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임은 전부 성도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 성도들 속에 장로들이 있고 집사들이 있습니다. 딤전 5:17에서 “잘 다스리는 장로들”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장로가 아니라 장로들입니다. 1:5에 “각 성에 장로들을”이라고 썼습니다. 동시에 성경에서 복수 장로를 분명히 말하는 것입니다. 각성에는 분명히 모임이 있고 모임에는 반드시 복수 장로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행전 15:36에 의하면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어떻게 보면 각 성에 다니면서 뭔가를 충고하는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는 어떻게 교제하며 지내는지를 바울은 보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대단히 즐거운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 온 것은 대단히 기쁜 일입니다. 제가 처음에 왔을 때 사랑하는 성도님들을 대했던 분들이 어떻게 지내는가를 보는 것이 즐겁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서 진보되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젊은 형제자매들이 거기에 포함되지 않은 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젊은 형제 자매들 때문에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장로들의 복수에 대해서 좀 더 말씀을 드리면 히 13:7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이라고 했는데 “인도하던 ”가 아니라 인도하던 자들입니다. 17절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24절 “너희를 인도하는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개정개역). 장로들의 복수성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벧전 5:1에서 베드로가 말한 이유와도 연관이 됩니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라고 복수로 권면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모임에는 복수의 장로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신중하게 더 생각을 해봅시다. 복수뿐만 아니라 장로들의 자질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봅시다. 동서 사회를 불문하고 증가하고 있는 어떤 사회 현상들이 있을 것입니다. 자질이 증가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어떤 높은 일을 하게 될 때에 특히 하나님의 모임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될 때에 자질이 확인이 되어야 합니다. 최소한의 자질로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선택적인 자질이 아니며 없어서는 안되는 자질입니다. 장로들의 자질에 대해서 성경은 두 부분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딤전 3:1~7에서 다루고 있으며, 두번째는 딛 1:5~9절에서 다루고 있는데 이 양쪽을 다 조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가지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 ~ 할찌니라고 당위성을 가지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빠질 수 없는 의미입니다. 첫번째로 요 3장에서 거듭나야 한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아들이 반드시 들려야 한다. 세번째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이 세가지는 당위성이 들어 있는 표현입니다. 장로들의 일에서 이런 당위성이 왜 중요한고 하니 딤전 3:1에서 장로들의 일을 말하기를 선한 일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선한 일이라는 말을 여러분의 머리 속에 붙잡아 두기 바랍니다. 선한 일은 선한 사람을 요구한다는 단순한 논리가 먼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자질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와 디도서가 갖고 있는 항목들이 자질에 서로 관련이 됩니다.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라고 디모데서와 디도서에서 말했습니다. 책망할 것이 없다는 것은 어떤 비난 받을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느 모임에 한 장로라고 할 것 같으면 ‘나에게 일만 달러나 빌려놓고 3개월이나 갚지 않았소!’ 이런 말을 들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요약해드릴 것 같으면 이런 식으로 책망을 들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즉 그 빚을 지불하지도 않는 장로가 하나님의 모임에서 의롭게 행해야 된다고 어떻게 가르치겠습니까? 초기에 나오는 자질 중에 하나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이것은 그 장로의 도덕적인 기준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극단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장로는 일평생동안 한 아내만을 취해야 된다는 극단적인 견해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장로가 때로는 홀아비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장로가 되려면 그 홀아비인 상태로 있어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말이 안됩니다. 성경은 명백하게 말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홀아비나 과부가 되었으면 남녀를 불문하고 믿는 사람이라면 고전 7장에 말함 같이 주 안에서 재혼을 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핵심적임 요점은 장로의 도덕적인 기준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선한 행위”가 나와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만약 그 자신이 선한 행위를 갖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선한 행위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이 자질들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이 유사한 용어들이 디모데서와 디도서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순종하는 자녀를 둘지니”라는 말을 양쪽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는 가족을 거느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장로의 집을 방문하게 되면 그 아이들에 대해서 어떻게 다루는가를 볼 것입니다. 만약에 그때에 아버지가 자녀에 대해서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딤전 3:5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그 자신의 집이 있고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모임이 아닙니다. 만약에 자기 집에서 올바르게 다스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돌아보겠느냐 라고 말한 것입니다. 모임은 하나님의 집이지 장로의 집이 아닙니다.

또 양쪽 다 술에 관한 언급이 있습니다.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로 되어 있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저는 이것을 한국과 일본에서 어떻게 다루는지를 모릅니다만, 아마 이것이 큰 문제가 안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성경은 늘 옳습니다. 그 장로들의 집은 누구든지 접근하고자 한다면 접근하기가 쉬워야 합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나그네를 대접하며”라는 말을 썼습니다. 또한 디도에게도 손 대접에 관한 말씀을 썼습니다.

“가르치기를 잘하며”라는 말도 합니다. 이것은 전국에서 가장 말을 잘 한다는 그런 의미로 여기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임에서 그 사람이 말씀을 가지고 성경을 펴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것을 열어서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디도서의 말은 아주 강력합니다. 아마 디도가 분명히 경험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디도서에서는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라고 강력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실한 말씀으로서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만약에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책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왜냐하면 양쪽 다 비방하는 사람이 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방하는 사람들은 반대하는 사람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또한 모임의 질서를 흐트러트리려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서 이것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은 앞에서 유창하게 말을 잘해 가르치기를 잘한다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장로의 자질 가운데 또 흥미로운 것은 디모데에게 “참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디도에게는 “쉽게 화내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이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임의 장로로서 아주 성질이 급한 사람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금방 화를 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곤란해 합니다. 쉽게 화를 내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에서는 인내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저는 농촌에서 자랐습니다. 동물을 키웠는데 그 속에 양도 있었습니다. 양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양을 돌보려면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양을 치다 보면 많은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다른 논밭으로 양들이 가려고 합니다. 그 양들을 잘 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계속 돌보고 참아야 합니다. 그래서 장로들은 인내를 해야 합니다. 물론 급해서는 안됩니다. 디도서에서 “급히 분내지 않는다”는 말을 저는 좋아합니다. 여기에 있는 무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다면 여기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두드러지게 보일 것입니다. 만약에 다른 인격을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으며, 영적으로라도 다른 수준이며 일에 관한 다른 수준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면, 그 가운데서 장로는 거기에 알맞게 일을 할 것입니다. 장로는 각각 다르다는 조건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참아야 합니다. 화를 금방 내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실제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저에게 전하신 것인데 제가 태어나기 전에 한 젊은 어머니와 5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 남편이 갑자기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분이나 그 어머니나 구원받지 않은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 때는 사회보장제도도 잘 되어 있지 않은 때였습니다. 정부의 도움을 어떻게 청해야 될지 이 부인은 잘 몰랐습니다. 5명의 자녀를 키워야 되는데 그때 저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그녀에게 방문하고 싶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 가족이 있는데 그 여자에 대해서 뭔가를 도와 주고 싶다. 돼지를 거래하는 모양인데 내가 두배의 값을 주고 그 사람과 거래하겠다. 아버지가 생각하기를 그녀는 돈이 필요할 것 같다. 시장 가격보다 두배의 가격을 주고 싶다. 아버지는 그녀의 집을 찾았습니다. 안부 인사를 한 후에 내가 당신의 돼지를 사러 왔는데 아주 좋은 값으로 쳐 주겠소라고 했습니다. 이미 그 과부는 이미 돼지를 팔았습니다. 묻기를 ‘누가 샀으며 얼마의 값을 쳐 주었습니까?’ 들어보니 그 사람은 시장 가격의 반 값을 주고 사갔다고 합니다. 저의 아버지는 구원받기 전이었지만 그 값의 두배를 주기를 원했습니다. 이미 그 돼지를 사 간 사람은 시장 가격의 반 값을 주고 사갔습니다. 만약에 지역 모임의 장로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에 시장 가격의 반 값을 주고 사간 사람이 장로였다면 외인에게 선한 증거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머지 않아 그 소문이 사회에 퍼질 것입니다. 반값에 사간 사람은 그 과부를 그만 이용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 돼지 값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은 외인들에 대해서 그 증거를 잃어서는 안됩니다.

딤전 3장에서 선한 증거를 말씀하고 있으며 또한 장로는 선한 행위가 있어야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디도서에서는 선한 것을 사랑하는 자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외인에 대해서 선한 증거를 얻어야 된다는 것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른 또 하나는 장로가 해야 되는 정확한 일이 무엇이 되겠습니까? 이 자리에 장로들이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와 같이 강조를 해 드립니다. 이와 같이 말하는 것도 일입니다. 조금전에 3번이나 선한 일에 대해서 강조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일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로는 선한 일을 하는 것이지 계급이 높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지위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구원받기 전에는 종교 체계에 속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종교 체계에서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주변에서 여러가지 그런 일을 했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데 그것이 어떤 계급적인 체계인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을 더 가르치기를 원한다면 오늘 저녁 우리는 성경을 가르칩니다만 살전 5:12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수고하고 일을 합니다. 수고이기 때문에 힘든 일인데 왜 일을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을 하되 그 일을 선한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그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장로가 하는 일에 대해서 4가지로 지금부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모임을 다스립니다. 13:7에서 “너희를 다스리던 자들을 생각하며”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17절에서도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이라고 말씀했습니다. 24절에서도 “너희를 인도하는 자()(영어에서 다스리는 자로 되어 있음) 양들을 다스리는 것과 관련이 됩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살전 5:12에서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성경은 명백하게 ‘너희를 다스리며’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오해 하지 말 것은 그들 가운데서 다스리는 것이지 바깥에서 다스리는 개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높이 올라가서 그 위에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무리 안에서 다스린다는 것에 주의하기 바랍니다. 이것은 분명하게 그 가운데서 다스립니다. 베드로는 두 가지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 장로들에게”라고 말을 하면서 “너희 가운데 있는 양무리를 치되”라고 합니다. 성도님들! 이 표현이 정말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장로가 너희 가운데 장로이고 그 다음에 양들이 너희 가운데 있는 양들이기 때문에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입니까? 만약에 감독이 궁궐에 있다면 얼마나 말이 안되겠습니까? 영국 성공회는 그 감독들이 궁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양들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다스린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의할 것은 ‘너희 가운데서’ 라는 말을 염두에 두기 바랍니다. 이중(二中)의 안전이 있습니다. 장로들에 대해서 권위가 있고 또한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린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을 돌보기 위해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양들 가운데서 여러분들을 다스릴 뿐 아니라 다른 말로 하면 주권을 가지고 그 양들을 다스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디오드레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는 주 안에서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디오드레베 안에서 모임을 다스렸습니다. 특히 장로와 감독은 다스림에 책임이 있습니다. 특히 주의 할 것은 살전 5:12에서 “주 안에서 다스린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베드로도 동일한 개념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5:3에서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교만하고 뽐내면서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주의할 것은 하나님의 모임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모임은 하나님의 건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장로들은 늘 이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두번째로 경계하는 것입니다. 경계한다는 것은 자지 않고 지키는 것입니다. 13:17에서 본대로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너희 영혼을 위하여 “깨어”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장로들은 모임에서 늘 깨어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양들의 위험을 주의해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2장에 아주 아름다운 그림이 나옵니다. 그 동일한 지역에 양들이 들에 있었는데 밤에 그들의 양들을 돌보며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한 좋은 목자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밤중에 양들에게 위험이 도래하기 때문입니다. 그 지역이 어떤 입장인지는 모르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양들에게 문제가 없었는지 양들을 점검합니다. 밤에 짐승들이 와서 양들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그것을 돌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저의 실수가 됩니다. 우리는 그와 같이 깨어서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깨어서 살펴봅니다.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會計, account)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깨어서 살핀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좀 더 보겠습니다. 이것은 헬라어에서 왔는데 자지 않고 돌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예를 들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권면하기를 행 20:28,31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모임 외부에서 오는 위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구절에서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이중 교훈입니다. 위험이 하나는 외부에서 오고 또 하나는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말씀은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목자들은 그 모임의 위험에 대해서 깨어 있어야 됩니다. 깨어 있다는 말은 경고하는 말과도 연관이 되어 있는데 깨어 있는 말을 먼저 말하고 경고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장로는 모임을 다스리고 깨어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양들을 치는 것 즉 먹이는 것입니다. 벧전 5:2에서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친다고 했습니다. 행전 20:28에 의하면 장로이면서 감독들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라고 말했습니다. 바울과 베드로의 말에서 치되 즉 먹이다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양 무리를 먹이는 것이며 이것은 일하는 것 중에도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양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먹는 것입니다. 때때로 먹는 문제에 양들은 직면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그러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먹여야 되는 데 먹이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돌보아야 하는데 돌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먹이는 것은 돌보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다스리고, 깨어서 살피고, 먹이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먹인다는 또 다른 의미 중에 하나는 바울은 디모데서에서 종종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3:2에서 근신하여 돌본다는 말을 씁니다. 하나님의 모임에서 때때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돌봄을 받아야 하는데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네번째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떤 의제 하나가 그 모임 전체를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행전 20:32에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어떤 말로 마감을 하는고 하니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라고 말했습니다. 가르치기를 잘하며라는 말씀을 설명을 드렸습니다. 딤전 5:17에서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라고 권면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이라고 했습니다. 선한 일을 말씀 드렸습니다만 선한 일은 힘든 일입니다. 아마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회계, 즉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정산에 관한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3:17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감독이면서 장로이면서 목자인 이 사람들이 회계할 자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이 어떻게 주님 앞에서 책임을 행했는가를 회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라 했습니다. 바울은 고전 4:2에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디도서에서는 하나님의 청지기는 비난 받을 일이 없어야 된다고 자질을 말했습니다. 한번은 청지기는 주인 앞에서 회계를 해야 합니다. 16장 초반에 청지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그 주인에게 주인의 물건을 허비한다고 청지기를 송사했습니다. 주인이 곧 회계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회계입니다. 그 인정이 어떠합니까? 이것은 그 장로의 책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양 무리에 대한 책임과 관련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모임이 주님 앞에서 장로들이 어떠한 책임을 가져야 하는 것과 관련이 됩니다.

장로들의 일에 4가지 측면을 간단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장로들에 관해서 4중의 인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살전 5:12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라고 권면합니다.

첫번째 우리는 장로들에 대해서 성도들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은 그 장로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 수고하는 장로를 알겠습니까? 우리는 가슴에 장로라는 뺏지를 달기 원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장로를 알겠습니까? 장로에 대해서 기록한 것을 보고서 알겠습니까? 그것은 요점이 아닙니다. 어떻게 알겠습니까? 게시판에다 장로 ㅇㅇㅇ라고 써놓아야 알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름은 있는데 그 장로가 자질이 없다면 얼마나 문제가 되겠습니까? 이 구절이 말하는 바를 잘 보기 바랍니다.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는 자들을 알고 13:7에도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여기의 장로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하늘에 갔는데 어떻게 성경을 여러분에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지금은 일을 하지 않지만 그 일들을 통해서 압니다.

다음 구절에서 살전 5:13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첫번째 일 때문에 알고는 수고와 그 일을 통해서 장로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왜 귀히 여기는가 하면 그들이 하는 일 때문에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위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은 명백하게 말을 합니다.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되 그들이 하는 일 때문에 귀히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이어지는 말 너희끼리 화목하라는 말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왜 이 말이 여기 소개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모임에서 장로들에게 대적하게 되면 그 모임은 화평이 없습니다. 아마 거기는 분열과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첫번째는 수고하는 자들을 아는 것이고,

두번째는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것이며

세번째는 그들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13:17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모임에 어떤 사랑스런 젊은 자매님이 있는데 매우 흥미로운 분입니다. 그녀에게 끌려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모임에 어떤 자매에게 마음이 끌리는데 자매는 그 사람에게 끌리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문제가 발생하는데 남자가 구원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장로들에게 가지고 옵니다. 아마 두 세 장로가 그 일에 대해서 말을 할 것입니다. 그녀에게 충고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때 이 자매는 장로들의 권면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장로들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장로들도 민감하게 말씀을 가지고 대처를 해야 됩니다. 최 하한선의 관리가 잘못되면 안됩니다.

네번째 장로를 인정하는 부분은 순종을 넘어서 복종입니다. 이것은 순종과 깊이 관련이 되겠지마는 전체적인 요점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모임을 돌보는 것은 하나님이 정한 것입니다. 장로와 감독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일으킴을 받았습니다(20:28).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양들 가운데서 있는데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서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마음 속에 두십시오. 왜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해야 되는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보호를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 이 지킴이라는 보호는 무슨 의미입니까? 딤전 5:19에 보면 장로들을 대적하는 일이 있습니다. 두 세 증인이 없으면 장로를 송사하는 일을 쉽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합니다. 왜 장로들은 이와 같이 보호를 받습니까? 모임에서 장로들이 그 역할을 하며 책임을 수행하게 될 때에 비판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비판에 직면하게 될 때에 장로들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장로들에 대해서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여긴 성도들은 쉽게 장로들을 비판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두 세 증인이 없으면 장로들에 대한 송사에 관여해서는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장로들은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양무리를 치라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목자장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한 목자라고 언급되는 것을 알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렸습니다. 여기 목자장이 있습니다. 또한 대목자장이시기도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 목자장이 되십니다. 대목자장이 되십니다. 양들을 돌보는 목자장입니다. 대목자장 밑에 목자장이 있고 목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안다면 얼마나 목자들이 격려를 받게 되겠습니까? 여기에 계신 분들 모두에게 이 말씀이 유익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9 2 14() 강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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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