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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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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 가인

아들은 아버지에게 또 다른 질문을 했다. “지역모임은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구별되는가 아니면 우리가 다른 신자들과 교제할 수 있는 또 다른 장소인가?”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가 하나님에게 중요한가? 그들은 성경을 가져다 놓고 함께 복습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오직 주 너희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실 곳 즉 그분의 처소를 찾아서 거기로 가서…”(신 12:4). 신 12:13에서 그들은 “너는 스스로 조심하여 네가 보는 모든 곳에서 네 번제 헌물을 드리지 말고”라며 명령하는 것을 본다.

그들은 함께 구절을 읽으면서 “처소”, “선택”, “이름”이라는 단어가 마치 굵은 글씨로 강조된 것처럼 돋보인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아들은 다른 모든 장소와 분리되는 원칙이 신약 성경에서 예전처럼 중요한지 궁금하다. 하나님께서 이 경륜의 시대에 택하신 장소가 있는가? 이름을 둔 장소가 있는가? 그리고 그곳이 존재한다면 신자가 갈 유일한 곳인가?

이것은 젊은 마음에 중요한 질문이며 항상 “성경이 무엇을 말했는가?”라는 질문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들은 신약 교회 진리를 배우기 위해 함께 출발했다. 그들은 마 16:15-19가 그분의 몸된교회의 진리를 소개하고 마 18:15-20이 지역적인 측면에서 교회를 소개한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들은 또한 에베소서가 몸의 측면에서 교회를 다루는 반면 고린도전서에서는 지역적인 측면에서 다룬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들은 신 12:5와 마 18:20 사이의 유사성에 의해 끌린다. 둘 다 이름을 다루고 둘 다 장소를 다룬다. 아버지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나도 거기에 그들의 한가운데에 있느니라”는 구절에서 “함께 모였다”라는 시제가 완전하고 모인 상태를 나타내며, 그가 말하는 것은 “친목회”나 “가끔 교제”에 대한 생각과는 다르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 목소리가 수동적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 모임이 다른 성령님에 의해 행해졌음을 의미한다. 아들의 머리는 긴장감과 목소리로 빙빙 돌지만 그는 기꺼이 그것들을 성경의 완전함과 탁월함의 일부로 인정하려고 한다.

그들은 장소를 찾았고 이름을 찾았다. 거기에서 그들은 지역교회의 독특한 성격에 대한 통찰력을 얻기 위해 고전 1:1-9로 향한다. 아들은 하나님의 어린양의 행로와 사역에 감명을 받은 침례 요한의 제자들이 “선생님, 어디에 거하시나이까?”라는 질문으로 그분을 따르는 것처럼 느낀다.

그들은 고린도전서 1:1-9를 읽고 “…각처에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그들은 다시 이름으로 불리는 곳을 본다. 그들은 구절을 반복해서 읽고 다음 제목 아래 하나님의 교회를 연구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의 특성, 중심, 구성, 친교, 고백, 능력 및 완성.

특성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교회”라고 불린다는 것을 발견한다. “교회”라는 단어가 원문에서 “ejkklhsiva(엑클레시아)”이고 유대인과 이방인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은 사귐 곧 부르심을 받은 무리를 형성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전에 고린도 성에 존재하지 않았던 실체를 본다. 그들은 'ejkklhsiva'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는데 세속적 의미에서 '공적 소환에 의해 그들의 거주지에서 소집된 시민들의 모임'을 가리킨다(행 19:39-41 참조). 그러나 이곳은 하나님의 교회로 세속적인 모임이 아니라 성소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표현을 숙고하고 그것이 주인 의식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교회’나 ‘우리 모임’이 아니라 그분의 것이기 때문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 전체를 쓴 이유를 알 수 있다. “네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네가 알게 하려 하노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5).

소유권은 또한 그분의 품성과 일관성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것은 우리의 개인적인 삶을 가리킨다(벧전 1:16). “거룩함이 주의 집에 영원히 합당하옵나이다”(시 93:5)는 교회에서 우리의 개인 생활과 기업 생활의 모든 측면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가 소유권뿐만 아니라 기원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인간 조직이 아니다. 그것은 신성하게 설계된 유기체다. 그들은 모세가 산에서 그에게 주어진 방식대로 만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집에 대한 방식이기 때문이다(출 25:40, 히 8:5). 설계에 간섭할 여지가 없었다. 그가 모든 일을 본대로 행했을 때 주님의 영광이 성막을 가득 채웠다(출 40:33-38).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시하기로 선택한 모본의 일부가 있다면 신약 교회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 사실처럼 보이지 않는가?

구성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히 구별되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 지역교회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지역교회는 지위적으로 성화(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구별됨)되고 따라서 성도인 사람들로만 구성된다. 종교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무리가 아니다. 신자들 사이에 ‘혼합된 무리’가 들어오지 않고 오직 신성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만 있도록 하기 위해 영접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중심

이 아홉 구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일곱 번 언급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님의 의미를 보여주지 않는가?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께서 탁월함을 가져야”(골 1:18)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침례 요한은 “그분은 반드시 흥하여야 하되 나는 반드시 쇠하여야 하리라”는 마음의 목적을 가지고 평생을 보냈다(요 3:30). 만일 요한이 지역교회에 있었다면, 그는 이 지역교회 서신에 있는 주제 중 하나에 일치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것은 어떤 육체도 자신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9). 그분이 그 가운데 계시고 그분이 무리의 현재와 미래의 중심(히 2:12)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그때 우리가 행하는 모든 움직임에서 우리 마음의 의도를 검토하여 우리의 것이 아닌 그분의 영광을 위해 확실히 할 것이다.

고백

“주 되신 분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는 이것이 그분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 중 하나라고 믿는다. 빌라델피아의 신자들은 “네가 적은 힘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계 3:8)라고 칭찬을 받았다. 고린도의 일부 사람들은 그분의 이름을 부인하고 그분이 아닌 다른 이름을 사용했다.

친교

“각처에서 …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도들의 교리의 실천으로 연합될 사람들(고전 4:17; 11:16)로서 함께 교제하는 유사하게 모인 신자들의 다른 무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능력

“너희가 어떤 선물에서도 뒤쳐지지 아니하고 …” 아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하나님 아래에서 기능할 수 있는 은사를 발전시켜 온 지역교회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아볼로와 같은 사람들의 방문(행 18:24-28, 고전 3:6)을 높이 평가하겠지만, 하나님의 양떼를 먹일 수 있는(행 20:28)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살전 1:8). 고린도전서 12-14장에 대한 연구는 교회에서 이러한 은사들이 실제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성경에서 “한 사람의 사역”이나 “어떤 사람의 사역”과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목사가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감독자에 의해 행한다는 생각은 말씀과는 전혀 다르다. 엡 4:1의 “목사 교사들” 또는 “가르치는 목사들”은 그들이 모든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 성도들이 은혜의 은사에 따라 성도들이 교회를 세우도록 사역할 수 있도록 준비시킬 수 있다.

그들은 왜 성직 체제가 발전하는지 궁금해하고 그것이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하고 싶어하거나 아무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결과 일 수 있다고 결정한다!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알고서 “상호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12:7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관련된 진리를 연구하는데 동의한다.

성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나니…” 공동으로 그리고 개별적으로 은혜의 선물을 행사하며 일하고 사람들은 또한 교회가 들림 받는 그날을 기대하며 지켜봐야 하고, 마지막 나팔에 죽은 자들이 부활할 때 산 자들이 변화하고 그분의 임재에 넋을 잃을 것이다.

아들은 주변에 있는 모든 교회와 비교할 때 참된 신약 교회의 특징을 보기 시작했는가? 예, 그는 이제 막 시작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