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로이드 가인

이전 토론에서 아버지와 그의 아들은 모임 징계의 심각한 주제를 살펴보았지만 징계 대상자만을 다루었다. 이제 그들은 훈육의 목적과 훈육의 원리를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전에 아버지는 규율이 어느 정도 있다고 지적한다. 모든 죄가 하나님 보시기에 심각하고 비참하지만, 모든 죄가 모임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약간의 여담으로 그들은 개인적인 범죄자인 형제를 언급하는 구절을 읽었다(마 18:15-20). 분열을 일으키는 형제(롬 16:17-18); 잘못에 빠진 형제(갈 ​​6:1); 무질서하게 걷는 형제(살전 5:14, 살후 3:6-15); 그리고 헛된 말을 하는 형제(딛 1:9-14).

이제 관심을 끌었던 주제로 돌아가서 먼저 다음을 살펴본다.

모임 징계의 목적 :

아들은 어떤 사람이 고린도전서 5장의 범죄 중 하나를 범했을 때 모임에서 떼어 놓는 것과 같은 심각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 이유를 궁금해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하나님의 집의 거룩함을 보호하려면 :

모임에서 죄가 발생하면 집이 더럽혀진다. 모임에서 심판이 사람에게 맡겨졌으므로 “안에 있는 자들은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느냐?”는 바울의 말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고전 5:12).

범죄자의 회복을 위해 :

어떤 사람이 죄 때문에 내쫓아야 할 때, 그것은 결코 “그를 제거하는 것”의 관점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그의 회개와 주님과 모임에 대한 회복의 관점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많은 사람에게서 이같이 벌 받은 것이 충분하니라. 그런즉 너희가 오히려 반대로 그를 용서하고 위로함이 마땅하니”(고후 2:6-7).

죄의 누룩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

죄는 누룩에 비유된다. 판단하지 않고 제거하면 퍼진다. 그들은 회심할 때 유월절에 참석했다. 그들은 이제 무교절을 이행해야 했다. 이 새로운 삶의 행보는 그들의 성격이 될 것이다. 죄가 판단되지 않고 지나가도록 허용 될 때, 우리는 나머지 성도들에게 그 행동이 받아 들여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디로 연결되는가?

세상 앞에 모임을 정결하게 하려면 :

도덕적 실패가 일어나면 세상 앞에 모임의 증거가 영향을 받는 위치에 있게 된다. 나단은 밧세바와 함께 죄를 지은 후에 다윗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행동으로 인하여 왕이 주의 원수들에게 신성 모독의 큰 기회를 주었으니”(삼하 12:14).

다른 사람들도 두려워할 수 있다:

“죄짓는 자들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꾸짖어 다른 사람들도 두려워하게 하라”(딤전 5:20). 이것은 죄를 범한 장로에게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공적으로 죄를 범하는 모든 신자들이기 때문에 공개적인 책망을 받아야 한다. 모임 생활에 있어서 죄는 결과를 낳는다.

무익한 사역으로부터 보존하기 위해:

징계의 형태 중 하나로 수행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은 성도의 시간을 낭비하는 사역을 고집하는 사람의 침묵이다(딛 1:10-14). 이것은 파문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징계의 한 형태이다. 지역 모임에는 “한 사람”의 사역이 없으며 “어떤 사람”의 사역도 없다.

아들은 징계가 하나님께서 제정하시고 모임 생활에 필요한 부분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명예는 보존되어야 한다. 질서는 하나님의 집에서 보이도록 해야 한다.

모임 징계에 적용되는 원칙 :

징계를 받아야 하는 사람과 그 징계의 목적을 고려한 아들은 지역교회에서 거룩함을 유지하는 원칙이 무엇인지 묻는다.

아버지는 동기가 항상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말씀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그에게 말한다. 죄는 은폐될 수 없다. 무질서한 행위는 계속될 수 없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두 가지 원칙이 상충될 때 항상 “고등원칙의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설명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우정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원칙이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높은 원칙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예를 들어 다른 그리스도인이 모임 징계를 요구하는 죄를 알고 있다면 침묵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는 두세 명의 믿을만한 증인이 죄를 고백하거나 뒷받침하지 않는 한 어떠한 비난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딤전 5:19).

가족 내에서 범한 죄가 있다면, 가족 관계는 성경의 수행을 방해할 수 없다. 이 마지막이 더 높은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을 공정성이라는 주제로 이끈다. 아버지는 교회의 모든 심판이 자비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동정심이 성경의 길을 가로막을 수 없다고 아버지는 말한다.

아버지는 심판이 항상 회복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반복한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에 대한 일곱 가지 혐의 중 하나는 그들이 “쫓겨난 것을 다시 데려오지 아니하며”(에스겔 34:1-6).

아들은 징계를 받은 사람에게 모임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묻고, 모임의 각 사람이 모임에서 규정한 징계를 인식하고 따라야 한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강조하는 또 다른 원칙은 모임이 죄의 결과를 집단적으로 느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개인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아간의 경우처럼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다”(수 7:1-26). 이스라엘의 한 나병 집이 깨끗해질 때 모든 돌이 긁혔다.

마침내 아버지는 사무엘하 1:20을 보고 “가드에서 고하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서 알리지 말지어다”라는 말을 읽는다. 징계를 해야 할 때, 모임 외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주제가 나오면 안된다.

그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거룩함의 요구사항에 대한 논의로 시작된 이 주제를 마치면서 아들은 지역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얼마나 엄숙함인지, 우리 모두가 걸어가는 데 얼마나 주의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