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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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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플레니건

성경은 아주 적은 단어로 많은 것을 말하는 흥미로운 방법을 가진 것들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종종 그 방법은 그러한 단순한 언어로 그러한 심오한 진리가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잘 알려진 구절은 이러한 두 가지 특징의 완벽한 예이며 그 시작 절은 메시아 탄생의 심오함이 제시되는 간결함과 단순함을 모두 설명한다.

 

이사야 9:6의 아름다운 여덟 조항은 구유에서 천년왕국, 강보에서 왕권까지, 그리고 실제로 영원에서 영원에 이르는 메시아적인 전체 이야기의 사건 전개이다.

 

아이가 태어났다! 그러한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매일 매시간 수 천 번 반복됨에 틀림없다. 보통 그것은 기쁨의 때이고 구주께서 친히 말씀하셨듯이 어머니의 산고로 인한 슬픔과 격통을 따르는 기쁨을 가져다준다( 16:21). 계속해서 전 세계 곳곳의 수많은 언어로아이가 태어났다라는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사 9:6의 아이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며 그분의 탄생도 평범한 탄생이 아니다. 이 아이는 우리의 첫 조상이 죄를 범하고 구속자가 필요 하자마자 에덴에서 주어진 신성한 약속의 자녀이다. 그 약속은 그 뒤를 잇는 여러 세대에 걸쳐 반복되었고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된 출생에 관련한 많은 세부 사항들이 주어졌다.

 

구속주의 탄생의 본질은 유일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분은 처녀에게서 태어난 여자의 씨가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3:15). 그분은 아브라함의 자손( 17:19), 유다 지파( 49:10), 다윗 가문( 11:1) 자손이 될 것이다. 그분의 탄생지도 예언되었다(5:2). 그분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고, “에브라다로 추가된 이 예언은 매우 정확했다. 아이의 출생지를 갈릴리에 있는 다른 베들레헴과 구별하기 위해 이 베들레헴은 항상 유다의 베들레헴, 유다 땅에 있는 베들레헴 에브라다, 베들레헴으로 식별된다. 아이가 태어날 장소에 대한 불확실성이나 모호성이 없어야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갔다. 마침내 약속의 성취를 위해 정해진 때가 도래했다. 나사렛에 있는 미혼의 처녀에게 메시지를 전한 이는 가브리엘이었다. “크게 호의를 입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니네가 하나님께 호의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네 태에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리라”( 1:28,30-31). 마리아의 아이는 기적적으로 처녀 자궁에서 잉태될 것이며 9개월 후에 그녀는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곳에서 아들을 낳을 것이다. “이제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에 관하여 대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아이를 배어 아들을 낳을 것이요”( 7:14; 1:22-23).

 

그러나 명백한 인간적인 문제가 있었다. 마리아는 갈릴리에 있는 나사렛에서 살았지만 유대의 베들레헴은 70마일 정도 떨어져있고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5-6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 마리아의 처지에 있는 소녀가 힘들고 때로는 위험한 나라를 지나 유대 땅의 베들레헴까지 얼마나 많은 거리를 여행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수반되는 육체적 피로와는 별개로, 여행자들은 누가복음 10:30과 같은 영역에서 종종 도둑들 사이에 빠졌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나사렛의 연로한 여성들은 그러한 시기에 그러한 위험에 대해 어떻게 느꼈을까그것은 안전했는가현명했는가실용적이었는가그래야만 했지만 어떻게?

 

자주 인용되는 죤 다비의 표현하나님은 모든 장면 뒤에 계시고 그분은 자신이 뒤에 있는 모든 장면을 움직인다는 답을 제공한다. 약속된 메시아의 탄생에서 이 일이 얼마나 분명하게 증명되고 있는가? 로마에는 황제가 있었고 나사렛에는 목수가 있었는데, 여기는 일반적인 공통점은 거의 없었지만 둘 다 마리아가 아이를 낳을 때 나타났었고, 두 사람의 마음은 주권적인 주님의 손에 달려있었다. 카이사르는 그의 통치아래 있는 나라들에 세금을 부과시킬 것이라는 법령을 내렸다. 이를 위해서는 인구 조사를 위한 일반 등록이 있어야 하며 등록을 용이하게 하려면 모든 사람이 조상의 마을에 등록해야 했다. 황제 카이사르는 자신의 영역에서 주권을 가졌고 나사렛 목수 요셉은 순종해야 했다. 따라서 다윗의 가문과 혈통에 속하므로 그는 약혼한 아내 마리아와 함께 유대 베들레헴의 다윗의 동네로 가야 했다.

 

그들이 어떻게 여행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전통적인 당나귀나 노새에 의해서였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은 남쪽으로, 예루살렘까지 올라갔다가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아마도 요셉은 경건한 유대인으로서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여행했을 때 수년 동안 여러 번 여행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곧 첫 아이를 낳으려는 젊은 아내를 동반했다. 불안한 시기였음에 틀림없지만 마리아는당신의 말씀대로 그 일이 내게 이루어지리이다”( 1.38)라고 말한 경건한 처녀였다. 그녀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모본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결국 그들은 지정된 장소에 도착했지만 여관에는 자신들을 위한 공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별채, 아마도 실제로 마구간으로 향했고 그곳에서아이가 태어났다는 옛 예언이 성취되었다. 마리아는 강보로 아기를 감싸고 구유에 눕혔다. 그것은 하나님께 그토록 많은 기쁨을 가져다주는 사랑스러운 삶의 시작이었다.

 

아이가 태어났다! 그러나 우리가 관찰해야 할 것은 마리아의 자식의 탄생에는 신성한 위격의 성육신의 신비가 담겨 있다. 여기에는 구유의 단순함 속에 인간의 지성에 비해 너무 뛰어난 것들이 있다. 얼마나 경의를 갖고 말해야 하는가? 몇 파운드의 살과 피, 부드럽고 작은 새 생명이지만 이 작은 몸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깃들어 있다( 2:9). 옛적부터 늘 계신 이가 시간 안에 유아가 되었다. 우리는오 그 모든 것의 경이로움!”을 노래한다.

 

베들레헴에서 메시아의 탄생에 관한 이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참으로 실제적인 교훈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항상 성취될 것을 배우며 이 점에서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의 길에 있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유대 땅의 베들레헴에서 아이를 낳게 한 그 최고 주권자의 계획을 실행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적시 적소, 적절한 조건에 있는 특권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마리아가 했던 것처럼 그분의 뜻에 절하고, 우리가 그분을 기쁘게 할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만족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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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