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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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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플레니건

이 “Wonderful” 단어는 다른 형태로 구약에서 80번 이상 등장한다. 그것은 “놀라운, 비밀, 경이로움”으로 다양하게 번역되고 히브리어 사전은 그것을 “탁월하다, 불가해하다, 비범하다”로 정의한다. 태어난 아이와 주신 아들의 이름이 이러하다. 그분의 어깨에는 언젠가 사람들에게 너무나 위대한 정권을 짊어질 것이다.

 

이사야 9:6의 “놀라우신 이” 단어는 명사이며 명사가 실제로 형용사로 사용될 수 있지만 여기서는 “놀라우신 이” 뒤에 쉼표를 붙이고 “놀라운 조언자”를 읽기 위해 쉼표를 붙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놀라운 이”는 그 자체로 완전한 이름이고 “조언자”라는 사랑스러운 직함도 마찬가지다. 우리 주님이 지상에 계실 때 신약에서 여러 번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길은 그분을 아는 사람들의 놀라움을 이끌어냈다.

 

베들레헴에서 그분의 탄생에 놀라움( 2:18)

“그것을 들은 자들은 다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말한 그 일들을 이상히 여기되.” 목자들은 처음부터 이야기를 자세히 말했는가그들은 천사 같은 사자들에게, 그들 주위에 비친 영광, 베들레헴으로의 여행과 천사들이 말한대로 구유에 누인 아기를 발견한 것에 대해 말했는가그들은 “주 그리스도”가 강보에 싸여 있는 것을 보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놀라움을 이끌어냈다.

 

나사렛에서 그분의 사역에 놀라움(4:22)

“모두가 그분에 대해 증언하고 그분의 입에서 나온 은혜로운 말씀들에 놀라서 이르되,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분의 사역 초기에 우리 주님은 그가 자라난 마을로 돌아오셨다. 지역 회당에 참석하는 것이 그분의 관습이었으며 이제 그 관습에 따라 그분은 다시 회당에 가서 그 안식일에 대한 부분을 읽으시려고 일어나셨다. 그렇게 하는 것은 모든 유대인 성인 남성의 권리였다. 수행원으로부터 두루마리를 받으신 그분은 우리가 지금 이사야 61장으로 알고 있는 곳을 침착하게 찾으셨다. 그분은 자신이 그 구절의 주제이기 때문에 그들이 랍비들에게서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것처럼 그들에게 설명했다. 그분은 약속된 메시아였고 예언은 이제 그들의 귀에 성취되고 있었다. 그들은 놀라워했다!

 

갈릴리 바다에서 그분의 능력의 경이( 8:25)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의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라며 서로 이르되, 이분이 어떤 분이시냐! 그분께서 심지어 바람과 물에게 명령하신즉 그것들이 그분께 순종하는도다” 비록 경험이 많은 어부들이었고 갈릴리 바다의 많은 변덕스러움을 알고 있었지만 폭풍의 맹렬함에 놀랐다. 그들의 주인은 배의 뒤편에 있는 받침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고 그들은 그분을 깨웠다. 그분은 작은 배의 갑판에 태연하게 서서 “잠잠하라. 고요하라”라는 거센 파도에 잘 알려진 명령을 하셨다. 그것들은 즉시 복종했고 아주 고요했다. 아마 그들은 놀라워했을 것이다!

 

악마에 대한 그분의 권위에 경이(9:42-43)

“예수님께서 그 부정한 영을 꾸짖으시고 그 아이를 낫게 하사 그의 아버지에게 도로 넘겨주시니라.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강력한 권능에 놀라거늘 그들이 저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에 놀랄 때에.” 다시, “그분께서 마귀를 내쫓으셨는데 그것은 말을 못하더라. 그 마귀가 나가매 말 못하는 자가 말을 하므로 사람들이 놀랐으나”( 11:14). 그분의 사역 초기에 마귀들이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것을 알아챘다는 것, 나사렛 목수인 예수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심을 인식하고 두려워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가버나움에서 그분은 부정한 영에 사로 잡혔던 사람을 구하셨다. 악마는 외쳤다. “나는 당신이 누구신 줄 아노니 곧 하나님의 거룩한 이시니이다”( 1:24; 4:34). 귀신들은 목수의 모습을 넘어서 그분을 보았고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았으며 그분이 그들을 쫓아내자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그분의 고난 중의 놀라움( 52:14)

“그의 얼굴이 누구보다도 더 상하였고(히브리어, 놀라워했다) 그의 모습이 사람들의 아들들보다 더 상하였으므로.” 고통받는 메시아의 모습이 놀라움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가시 면류관,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며 손과 발에 못을 박히며 오랫동안 조롱과 모독, 고통과 침 뱉음을 당한 후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놀랐다”. 그것은 놀라움과 경이로움으로 무감각해졌다는 뜻의 옛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사람들이 증오하던 그분을 사랑하도록 이끌어낸 광경이다. 고난 당하신 분은 성도와 죄인 모두에게 놀라움을 선사하셨다.

 

그 얼굴은 망가졌고 그 슬픔은 깊어져
가시관, 채찍질, 담즙;
이것들은 사랑의 금 사슬이었다
그분의 포로가 되도록.

(R.C 채프먼)

 

그분의 죽음에 놀라움( 15:44)

“빌라도는 그분께서 벌써 죽으셨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빌라도의 경이는 예수님께서 곧 죽으리라는 놀라움과 감탄이 뒤섞인 것이었다. 빌라도는 총독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가지고도 모르는 것이 많았다. 그는 이전에 예수님이 자신의 삶에 대해 “아무도 그것을 내게서 빼앗지 아니하며 내가 스스로 그것을 버리노라. 내게는 그것을 버릴 권능도 있고 그것을 다시 취할 권능도 있노라”( 10:18)고 말씀하셨던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이 악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즉각적인 죽음을 가져오기 위해 그분의 거룩한 팔다리를 부러뜨릴 필요가 없었다. 복되신 우리의 주님은 자신의 때에 운명하셨고, 그 슬픈 오후에 큰 소리로 부르짖으시고 자발적으로 그분의 영을 버리셨다. 지금까지 이런 죄수는 없었다. 이교도 로마 총독이 의아해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분의 부활의 놀라움( 24:12,41)

“그 뒤 베드로가 일어나 돌무덤에 달려가서 몸을 구부리고 보니 아마포만 따로 놓여 있더라. 그가 그 일어난 일로 인해 속으로 놀라며 떠나가니라.” 베드로와 요한은 그 무덤에서 기적의 증거를 보았다. 무덤은 옷을 제외하고는 비어 있었다. 그들은 주님의 몸을 감싸고 있었을 때처럼 여전히 접힌 채 개여져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떠났다. 옷은 기적적으로 비워졌다. 그들은 의아해하면서 거기를 떠났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놀라웠다. 옷의 상태는 구주께서 살아 계시다는 증거였지만 이제 어떻게 되는가그들은 놀라워했다.

 

“그들이 기뻐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랄 때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여기에 너희에게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호숫가에서 그분은 그들을 기다리셨고 그들과 함께 먹고자 하는 그분의 열망으로 그것이 바로 그분 자신이라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분은 살아 있었으며 그들이 알고 사랑했던 구주였다. 그분은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주시며 그분을 만지도록 그들에게 부탁하셨다. 이것은 영이 아니었다. 그분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놀라워했다!

 

베들레헴과 나사렛에서 놀라움; 가버나움과 호수에서 놀라움; 십자가와 무덤에서 놀라움. 참으로 그분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라고 불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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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