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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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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 길리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본

 누가복음 3:21-22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오늘을 포함해서 말씀 집회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모본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신약 성경 서신서를 읽으시게 되면 베드로든 바울이든 오늘 아침에 묵상했던 히브리서 저자이든 간에, 또한 서신서 중에 실제적인 행함을 권장하는 서신을 읽을 때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하는 것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모본으로 제시합니다

개인적인 삶을 권장하는 서신을 읽을 때 예수 그리스도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를 가르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의 주제는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라는 것을 주제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방금 예수 그리스도의 침례를 읽었는데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실 때 기도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태로 임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소리가 났습니다. 다비(JND)의 번역본에서는 “내가 너 안에서 기뻐한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30세 전후였다고 보여집니다. 대부분의 예수님의 삶은 나사렛에서 보내셨습니다. 여러분은 나다나엘이 나사렛에 대해서 어떻게 말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나사렛은 아주 낮은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이방의 갈릴리여”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죠. 유대 사람들은 나사렛 사람들을 비하하고 업신여겼습니다.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는 성장했습니다.

나사렛에서 기적 행하신 것은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사렛에서는 말씀을 전한 기록도 없습니다. 그 아들을 보실 때 아버지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그 나사렛에서 아무런 기적도 아무런 말씀을 가르침도 없으셨지만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아버지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바울은 데살로니가 모임을 향해 데살로니가전서 4장 1절에서 이렇게 바울은 썼습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원하시는지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남기신 우리의 대한 모본은 어떻게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하는 모본을 남기셨습니다.

지금 현재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부활한 그 몸을 가지시고 하늘에 계십니다.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부활한 몸을 가지고 생활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몸의 일부로서 육체를 갖고 이 땅에 있는 가운데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이 땅에 남겨졌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을 어떻게 기쁘시게 한 삶을 살았는가를 좀 보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 어떤 것이었습니까? 무엇이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까?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장이었습니다.

이사야가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자람, 즉 성장을 이사야가 어떻게 예언했습니까?

이사야 53장 2절에서 이사야는 “그는 주(아버지)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라고  예언했습니다.

사랑하는 의사였던 누가는 의사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성장을 잘 관찰한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복음 2장 40절에서 누가가 관찰은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52절에서는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라고 기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장 과정이 기록돼 있습니다.

처음에 어린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소년기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청년보다 조금 더 자라고 그리고 자라면서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계속 자라갔습니다. 육체적으로 예수님이 자라신 것만 아니라 지혜에도 자라갔고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사랑스러워 같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의 삶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보시겠습니까 그리고 내가 자라가는 것을 아버지 하나님이 보시고 계십니까? 물론 육체적으로 자라는 것을 보는 것도 기쁜 일입니다. 또한 영적으로 자라는 것도 기쁘게 보실 것입니다.

만약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어떻게 자라가는 것을 보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자라는 것을 바라면서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믿는 사람들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기를 바울이 말했습니다. 갈라디아 지방에 있는 모임들에 관한 기록을 우리는 봅니다. 마치 여인이 자기 자식을 돌보는 것처럼 바울이 돌본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말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자란다고 하는 것은 그 그리스도인이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자라고 있습니까? 자라는 데는 반드시 양식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육체적으로 자랄 때 그 아이가 자라는 것은 그 어머니가 그 아이를 어떻게 먹이냐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겁니다. ‘당신의 먹는 것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말이 있듯이 말이죠. 만약에 너무 많이 먹으면 점점 살이 찌고 뚱뚱해질 겁니다. 좋은 의미로 살찐다는 의미를 생각하면 영적으로도 영적인 양식을 먹을 때 좋은 의미로 살이 찐 것입니다.

 

어떻게 자라는지를 베드로전서 2장 2절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을 때 자란다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저는 아들 한 명에, 딸 셋이 있습니다. 나는 그 생일 때마다 그 아이들에게 선물을 줬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있는 것들을 보게 했습니다. 이제 그 아이가 그걸 보면서 자랐습니다. 집에 오면 그 아이가 뭔가를 먹고자 해서 계속 욕구를 표출하는 그런 것들을 봤습니다. 아버지로서 내가 그 아이를 보았습니다. 저는 아들을 통해 아버지를 본 게 아니라 어머니를 봤습니다. 엄마는 그 아이의 젖을 줍니다. 그것은 그 아이가 생명이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젖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순전한 젖을 말입니다. 거기에 순전하지 않은 것은 주면 안됩니다. 말씀을 내더라도 잡것이 섞이지 않는 순전한 말씀의 제공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욕구가 결코 충족되지 않는 상태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구원받은 지 57년 됐습니다마는 첫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접합니다. 성경을 읽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는 훈련을 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서 시간을 내야 합니다. 하루에 시간을 내서 양식을 섭취해야 하는데 여러분은 성경을 읽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십니까?

 

성경을 읽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성경을 망원경처럼 넓게 보는 방법이 하나가 있는데 성경 전체를 표면적으로 넓게 보는 방법이 하나가 있습니다. 이것은 말씀은 물처럼 여러분을 깨끗하게 해줄 겁니다.

두 번째는 현미경처럼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대단히 근접해서 가까이에서 말씀을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단어에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보는 관점이며 우리를 돕는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해석하는 책이 있고 그리고 의미집이 있고 그리고 성경을 설명하는 구체적인 어떤 도움이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학생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학생으로서 읽으면서 이해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아침 식사하기 전에 하루에 세 장 1장 2장 3장 같은 세 장을 읽으시게 되면 1년에 한 번 통독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시간을 더 내서 더 현미경처럼 구체적으로 보는 것도 또한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하루 일을 끝내고 식사한 다음에 다시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습니다.

그 말씀을 읽고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니라 순종하고자 읽고 순종하면 성장할 것입니다. 머리로만 읽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귀로 듣고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로 읽은 말씀이 마음으로 들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에 들어간 말씀이 더 풍성해지면 여러분을 성장하게 할 겁니다. 그러면 더 예수님을 닮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한 것이고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합니다.

 

고린도 모임을 바울이 기술한 기술을 보면 대단히 슬픕니다. 고린도서 3장 시작하는 절에서 아이에 관한 말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전서 3장 1절에서 말하기를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라는 말씀을 읽으면 슬픕니다. 2절에는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이 모임은 성장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숫적으로는 교제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만 영적으로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젖으로 먹였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딱딱한 음식을 먹을 상태가 아니라고 바울이 말합니다. 그들은 자라야 하는데 자라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대단히 슬픈 일입니다.

 

지금 현재 주님나라에 가신 분이 계신데 대단히 경건한 부부였습니다. 그에게는 3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딸 하나에 아들 둘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아들이 자라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성장해야 되는데 계속 아이로 남아 있는 육체적으로 정말로 아이로 남아 있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21년 동안 어린 아이로 있다가 그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 유전병을 타고났고 성장의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 자녀를 보는데 자라지 않으니까 부모가 슬퍼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얼마나 더 영적인 자녀가 자라지 않는다면, 만약에 모임이 자라지 않는다면, 만약에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자라지 않는다면 얼마나 아버지 하나님께서 슬퍼하시겠습니까?

저는 제 자신에게 제가 질문을 합니다. 내가 지금 현재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 있어야 되는데 만약에 이전에 올바르게 성장을 했다면… 라는 생각을 한번 질문을 해 봅니다. 이런 면에서 주님께서 더욱 더 잘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나사렛에 계신 독생자를 아버지 하나님 보실 때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왜냐하면 자라고 계시기 때문에 말이죠. 그 겸손한 가운데서, 그 낮은 가운데서, 나사렛에서 목수의 일을 하시면서 말이죠. 우주를 만든 그분께서 말이죠. 아주 천하디 천박한 것처럼 보이는 목수로 계시면서 말이죠.

이사야 53장 2절에서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기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겉으로 화려한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외형이 아니었습니다. 나사렛에서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이 왔습니다. 예수님을 조롱할 때 사람들이 ‘네가 왕이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낮은 가운데 겸손하게 오셨습니다. 그 백성들 가운데 겸손한 독생자를 아버지 하나님이 주목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명성을 얻고자 억지로 고집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오히려 비웠습니다.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을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구속을 위해서 대속물로 자신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첫 번째 사람들이 범한 죄는 마귀가 죄를 범하게 했습니다. 계명성이라 불리는 루시퍼 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나는 하늘까지 높아지리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가장 높은 곳에 좌정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높였으나 하나님은 그를 내쳤습니다.

 

베드로는 권면합니다. “능하신 손길 아래 겸손하라 때가 되면 하나님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기를 높이는 것이 자기를 낮아지게 만드는 여러분이 정말로 크게 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낮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더 작아져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더 좋아지고 나아지기 위해서는 낮아져야 합니다. 나 자신보다도 형제 자매들이 더 낫다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렇게 겸손한 자를 보십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낮췄을 뿐 아니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하셨습니다. 오늘 아침에 이것을 잠시 다루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후에 갓난 아기에서 아기로 그리고 아이에서 소년 청년으로 자라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완전히 의지하는 가운데 삶을 사셨습니다.

제 손자 중에 하나가 다섯 살 때부터 구원받아서 자라는 것을 제가 보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45살이며 그는 모임의 교재 가운데 있습니다. 5살 때부터 45살까지 계속 그리스도를 의지하면서 자라는 것을 제가 관찰합니다. 믿음은 점점 장성하도록 자랍니다. 이 생명의 믿음은 젊은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성장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복음에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어떻게 자라는 것을 봅니까? 누가는 의사이기 때문에 완전한 몸을 가진 사람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를 완전히 의지하는 가운데 성장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를 의사인 누가가 관찰하며 기록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의탁된 존재로 살았기 때문에 그래서 다른 어떤 복음서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에 관한 기록이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만 예수님이 침례받을 때 기도했다는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이제 공적인 사역을 위한 경계선에 서 계실 때였습니다. 그 공적인 사역의 섬김을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계속 진행이 됩니다. 이제 더 어느 시점에 성장할 때가 있어 광야로 나아갈 때가 있었으며 거기서도 기도했습니다.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그분의 공생애의 삶을 끝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마지막 기도를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사람으로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도하는 데 쓰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루 시작 전에 기도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삶을 살면서 기도하는 태도로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기도로 그날의 삶을 끝마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늘 기도하는 가운데 삶을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밤낮으로 그 손으로 직접 일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자족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바울이 일을 했습니다. 그는 천막 만드는 일에 늘 바빴습니다만 늘 기도했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간구하며’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기도하는 여성입니까? 우리의 기도 생활을 주님께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 헌신하셨습니다.

 

바울은 경건한 헌신에 관한 모본 중에 하나입니다.

3 4 5에서 14절부터 시작해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고 썼습니다.이 세 절을 연결시키면 하나님의 집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를 가르치기 위해서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삶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헌신에 관한 삶의 샘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헌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경건한 헌신의 태도의 발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바울은 여기서도 그 가장 중요한 모본인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6절에서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요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라고 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본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비밀이 무엇입니까? 비밀이라는 것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고 감추어진 무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경건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충성이며 경건이며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헌신이 경건의 비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경건하게 그리고 충성스럽게 전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분의 마음은 늘 아버지 하나님께로만 가 있었습니다. 경건의 마음에서 그리고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께로 솟아나는 헌신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12살쯤 되는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는 멀리 집으로 귀향하는 중이었습니다. 12살 때 이스라엘 남자들은 예루살렘으로 처음으로 여행을 가는 그런 나이였습니다. 부모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아들 예수님이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3일 동안 찾았다가 성전에서 발견했습니다. 예루살렘이 있는 지혜자들 사이에 앉아 있었습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이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아이는 지혜가 자랐습니다. 그리고 대답을 하는 걸 듣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지혜 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답할 수 없는 질문도 하셨습니다.

마리아가 12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불평함을 들으셨을 겁니다.

‘나와 너희 아버지 요셉이 얼마나 너를 찾았는지 아느냐?’라고 질문했습니다. 말하기를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 알지 못하나이까” 영어에서는 집이 아니라 ‘아버지 일을’ 이라고 했습니다. 12살 난 소년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향한 헌신이 영어 표현은 그 손에 하나님 아버지의 일이 가득한 상태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여러분의 삶과 저의 삶을 보고 계십니다. 마치 예수님처럼 그 손에 하나님의 일이 가득한지 어떤지 말이죠.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거룩과 헌신이 어떤 것을 보고 계십니다.

 

다섯 번째로 그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 곧 복종입니다. 누가가 하는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누가복음 2장 51절입니다.

“예수께서 한 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으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12살 소년은 “한 가지로 나사렛으로 내려가서 순종하여 받드시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가정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보이는 하나의 모본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젊은이들은 연장자에게 더 이상 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젊은이뿐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도 서로 간에 더 이상 순종하려고 들지를 않습니다.

베드로는 서로 순복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순복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준비를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아내들은 남편들에게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바울은 대답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한에 있어서 “주 안에서”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순전함이 나사렛에서 자라나셨습니다. 그 죄가 가득한 나사렛이었으며 도덕적으로 부패한 그 나사렛에서 거의 30년을 생활하셨습니다.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을 그때에도 여전히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그대로 거룩하고 순전한 상태였습니다. 요한의 침례는 회계의 침례입니다.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자기 죄를 자백했습니다.  한 사람이 접근했습니다. 더 이상 고백할 죄가 없는 한 분이 침례 요한에게 접근했습니다. 30년 동안 나사렛에서 사신 다음에 어떤 죄도 범하지 않은 가운데서 왔습니다. 행동파인 베드로는 그가 죄를 범지 아니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락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품 속에 기댔던 요한은 말하기를 예수님의 품에 기대서 예수님의 심장 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던 그 요한이 하는 말은 “그에게는 죄가 없다”고 했습니다. 행동파인 베드로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예수님의 심장 소리를 직접 귀를 대고 들었던 요한은 “그에게는 죄가 없다”고 증거했습니다.

그때 가장 위대한 베드로와 함께 했던 지성파로써 교사 중의 하나인 바울이 말하기를, 가말리엘 문화에서 자랐던 그 바울이 말하기를, 여러 외국어를 말할 수 있는 그 지성파인 바울이 말하기를 그는 매우 지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는 죄를 알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는 한 번도 죄 생각이 스친 적이 없다고 말이죠. 디모데전서 5장 22절에서 바울은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하라”

 

우리는 타락하고 퇴폐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남한도 스코틀랜드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도덕적인 타락과 부패로 감사하지 않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은 이 말씀대로 정결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는 것이 무엇인지 주의해야 됩니다. 내가 듣는 것이 혹시 부족한 것이 아닌가 주의해야 됩니다. 내가 무엇을 보는지 주의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여기에 있는 것 중에 넷플릭스나 유튜브에서 필요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보고 있는가를 주의해야 하고 무엇을 듣고 있는가를 주의해야 합니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제가 이 타락한 세상에 그대로 노출되면 저는 죄를 범할 겁니다. 이것은 놀라운 도움을 줍니다. 이것은 사용하면 유익한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유익 이것을 잘 통제되도록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육이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적을 우리 속에 갖고 있습니다. 나는 57년 동안 내 속에 나의 대적을 갖고 삽니다. 내 속에 있는 이 육이 57년 동안 계속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와 육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야 합니다. 따라서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

 

일곱 번째는 습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쁜 습관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언제나 좋은 습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6절에서 이렇게 누가는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라고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언제나 안식일에 하나님의 백성이 모여 있는 회당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규례 즉 습관을 갖고 있습니까? 모임이 모이는 모든 집회에 내가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까 이러한 습관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이 모이는 것을 사랑합니까? 우리는 구원받기 전에 토요일이나 일요일날 어딘가에 모든 것을 좋아하는 습성을 가졌었습니다. 그때 저는 세상 즐거움을 쾌락을 즐기는 쪽에 습관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춤추러 가기도 했습니다. 클럽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파티에 가기도 했습니다. 구원받고 난 이후에는 토요일날 기도 집회에 참여하는 기획, 즉 습관을 가졌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나셨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을 만든 주 예수님을 생각하십니까? 이제 보면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을 내가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에 모이는 모임에 대해서 계속 할 수 있습니다.

 

여덟 번째로 그분의 일을 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목수였습니다. 성경의 목수라는 말은 ‘정교한 기능을 가진 기능’ 이런 뜻이 포함돼 있습니다. 목수로서 섬세한 기술을 가진 기술을 익히셨습니다. 매일 열심히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서 일을 하셨습니다. 육체적인 노동에 일을 함으로 그의 삶을 거룩하게 했습니다.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몸으로 하는 일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멸시했어요. 예수 그리스도는 전 우주를 만드신 분이시며 정말 가말리엘 어떤 문화생들의 가르침보다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일정 시간 동안은 목수의 일을 택해서 일을 하셨습니다. 몸으로 하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사렛에서 돌아오셨을 때 어느 30세쯤 되셨을 때 요단을 바라보셨습니다.

이제 공적인 사역을 위해서 공적인 생활을 시작할 즈음에 나사렛에서 살던 그 어떤 사람도 예수님의 도덕적인 결함이나 예수님의 흠결을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 목수의 일에 정직했습니다. 언제나 그분의 하는 말은 진실했습니다. 내가 당신 집을 수리할 때 10시까지 가겠다고 말하면 반드시 10시에 가시는 정직한 분으로써 일하는데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고용되어 있거나 일을 할 때 말이죠. 저는 제 일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그렇지 못한 것을 생각합니다. 만약에 예수님처럼 한다면 놀라운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어떨 때 기술자들이 건물을 디자인하는 기술자가 일을 위해서 설계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거기에 구체적인 어떤 점 같은 경우를 표시를 합니다. 그 일을 계속할 때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 지겨울 건데요. 어느 한 날 이걸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 일을 하면서 내가 이 일을 주님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기쁨이 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어떤 직장이나 어떤 일에 고용되어 일할 때 예수님처럼 이렇게 일하게 되면 여러분 마음속에 기쁨이 있을 겁니다.

만약에 서울에 어느 거리를 청소하는 일을 한다고 한다든지 어떤 일을 여러분이 일을 맡아서 할 때 여러분이 마음으로 하나님께 하듯 한다면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쁨을 갖다 드리는 결과가 될 겁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전업 주부라면 집에서 일을 하실 때,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할 때, 아이들을 어디가 데려다 주고 데리고 갈 때, 이것을 주님을 향해서 한다고 여러분이 생각을 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2023. 4. 30 강서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