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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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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녹스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부정하셨나요? 우리는 히브리서 1:8-9의 기사에서 이 반대를 처음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요한복음을 통해 이 문제를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반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유일하신 참 하나님”(요 17:3),[1] 아버지가 자기보다 크신 분이라고 가르쳤습니다(요 14:28). 그러므로 한 하나님 안에 있는 세 위격의 교리는 그리스도의 분명한 가르침과 모순됩니다. 참 하나님은 아버지 한 분이시며 예수님은 참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십니다(요 20:31).

 

이 반론은 우리 주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고, 성경이 우리를 삼위일체 교리로 얼마나 강력하게 이끌고 있는지를 씨름하는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명확합니다.

 

우리의 반응은 주님께서 가르치는 모든 것을 믿으려는 새로운 결심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분이 아버지를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부르신다면(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셨고) 아버지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아버지가 아들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그분이 의도하신 의미에서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말씀은 일부 성경 역본들의 붉은 글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요한복음의 나머지 부분과 신약 전체에서 그분이 직접 증언한 것은 요한복음 14:28; 17:3절에 있는 말씀만큼 권위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위대하시다는 말씀을 믿어야 하고 그분이 아버지와 동등하시다는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요 5:18, 10:30, 빌 2:6). 한 곳에서는 아버지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그분이 말씀하시고 다른 곳에서는 아들이 참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요일 5:20).[2] 우리는 두 진리를 모두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성경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고백하도록 우리를 밀어붙이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맥에서 읽기

요한복음 14:28; 17:3은 문맥에서 읽어야 합니다. 요한복음은 다음에 나오는 모든 것에 대해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고안된 머리말로 시작합니다(요 1:1-18). 요한 이 그의 서문을 시작하는 수수께끼(이전 기사 참조)는 끝 부분에서 반복됩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적이 없지만, 그 자신이 하나님이며 아버지와 가장 가까운 사이인 하나뿐인 아들이 하나님을 알게 해주었습니다”(1:18, NIV, 나의 강조).[3] ”난제”는 예수님이 둘 다라는 것입니다. 두 번이나 18절의 공간에서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과 구별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분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계시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계시하기에 무한한 자격이 있습니다. 머레이 해리스는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을 보여주셨고 아버지의 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4]

 

다시 말해서, 우리가 둘 다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요한의 충실한 독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누구입니까 - 아버지인가요 아들인가요? 둘 다입니다 (계 1:8,17; 22:13).[5] 예수 그리스도는 물로 임하셨습니까, 피로 임하셨습니까? 둘 다입니다 (요일 5:6-8).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셨습니까? 둘 다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입니까, 사람입니까? 그분은 둘 다입니다(요 1:14). 유일하신 참 하나님은 아버지입니까, 아들입니까?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와 동등합니까, 아니면 아버지가 더 크십니까? 이 글과 후속 글에서 나는 정답이 둘 다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내가 있느니라”

전체 책의 맥락에서 요한복음 14:28; 17:3절을 계속 살펴보면서 중간쯤에서 멈춰보겠습니다. 독자들은 예수님이 아버지를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부르시는 것을 듣기 전에 먼저 그분이 자신을 “내가 있느니라(ejgw eijmi,에고 에이미) 라고 밝히시는 것을 듣습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8:58). 이것은 이사야서 40-55장에서 에고 에이미에 대한 야훼의 자기 선언을 반영하는 말입니다.[6] 중요한 것은 이사야서의 이 부분은 일신론의 보루라는 점입니다. “나 곧 나는 주니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 43:11). 반복적으로 야훼는 자신이 “내가 있느니라”라고 주장하며 “유일하고 배타적인 신성”(사 41:4; 43:10; 46:9)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요약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요한복음 8:58절에서 이러한 주장을 반복하신다면, 그분은 “자신을 유일하신 하나님, 야훼,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분명하게 동일시하고 계십니다.”[7]

 

그러므로 반삼위일체론자들은 예수님이 야훼의 말씀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해야 합니다. 그들은 다음 장에 나오는 소경이 에고 에이미(egō eimi )라고 말하지만 아무도 그가 야훼라고 주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다는 점에 주목함으로써 그렇게 합니다(요 9:9). 그리고 유대 종교 권위자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 한 이유는 그가 야훼라고 주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 이전 사람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요 8:59).

 

이러한 견해는 문제점이 많습니다. 성경에서 “내가 있느니라”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신성에 대한 주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빌론 때처럼 그런 말을 했을 특정 상황에서는 그렇습니다(사 47:8,10).[8] 요한복음 8:58절의 경우, 많은 문맥적 지표들은 예수님이 단지 선재를 주장하시는 것이 아니라 야훼의 말씀을 반복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1)그분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9] (2)요한과 이사야서에 있는 다른 “내가 있느니라” 본문 사이의 밀접한 일치; [10] (3)유대인들의 적대적인 반응은 그분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면 더 이해가 됩니다. 보컴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옳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내가 그니라'가 참 하나님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요약하듯이 요한복음에서도 예수님을 완전한 의미에서 참 하나님으로 식별합니다.”[11]

 

다음 글에서 우리는 요한복음의 끝 부분을 고려하여 요한복음 14:28; 17:3절의 전반적인 문맥을 검토한 다음 이 두 본문 자체를 살펴볼 것입니다. 이제 나는 아버지를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부르신 분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셨다는 것을 다시 강조합니다. 우리는 둘 다 믿어야 합니다.

 

[1]  이 번역 글의 모든 성경 인용문은 달리 명시되지 않는 한 흠정역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2]  나의 입장은 그리스도를 언급하는 요한일서 5:20의 마지막 절에 의존하지 않지만,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는 Gregory R. Lanier,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인가? 를 참조하십시오. 성경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르치는 방법 (Wheaton, IL: Crossway, 2020).

[3]  이 번역에 대한 확고한 변론은 머레이 J. 해리스,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 신약성경이 예수님에 대한 참조에서 하나님의 사용(Eugene, OR: Wipf & Stock, 2008), 73-103을 참조하십시오.

[4]  해리스, 102.

[5]  Robert M. Bowman과 J. Ed Komoszewski, Putting Jesus in His Place: Case for the Deity of Christ (Grand Rapids, MI: Kregel Publications, 2007), 177-81.

[6]  출애굽기 3:14의 내용이 아닙니다. 영원한 삼위일체: 신약성경의 기초와 실제적 관련성, ed.에서 Richard Bauckham, “삼위일체와 요한복음” 참조. Brandon D. Crowe 및 Carl R. Trueman(Phillipsburg, NJ: P&R Publishing, 2017), 107.

[7]  Bauckham, 107.

[8]  데이비드 구딩, “주님은 ejgw eijmi,(내가 있느니라)를 사용하여 신성을 주장하시는가요?”, 2003, https://www.myrtlefieldhouse.com/david-gooding-answers/ego-eimi-deity.

[9]  다니엘 B. 월레스, 그리스어 문법의 기초를 넘어: 신약의 주석적 구문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530-31.

[10]  Bowman과 Komoszewski, 예수님을 그분의 자리에 두는 것, 176-78.

[11]  Bauckham, “삼위일체와 요한복음”, 108쪽.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