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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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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메칼리스트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죽으신 결과, 그분을 믿는 순간 우리가 받은 축복부터 시작하여 몇 가지 결과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달에는 구속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달에는 의로움을 살펴보겠습니다.

 

의로움

로마서 5:9절에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의롭다고 인정받았으므로 더욱더 그분을 통해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분의 피로라는 구절은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 것이 그분의 죽음이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명사(“와 같은), 동사(“의롭다와 같은), 형용사(“의로운과 같은) 모두 의로움에 대한 생각을 포함하며, 실제로 의로운것은 의롭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형용사 divkaio"(디카이오스)는 흠정역 신약성경에서 (righteous) 41, “의로운(just) 33번 번역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전서 3:18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해 한번 고난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들을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해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 데려가려 하심이라.” “불의한 자를 위한 의인이라는 구절에는 정관사가 없으며, “불의한 자를 의롭게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 의로우신 그분이 불의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의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었음은 다음 달에 보게 될 그분의 뜻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달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서기 위한 목적도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글의 서두에 이미 인용한 구절( 5:9)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못했고, 아직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만한 우리 자신의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제 신자가 된 우리는 그분의 아들의 죽음을 근거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선언받았습니다.

 

로마서 5장 후반부(12-21)에서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이 사실을 영광스럽게 자세히 설명합니다. 아담은 아담은 오셔야 할 분의 모형”(14)이라고 언급됩니다. 비교의 요소는 아담과 그리스도 모두에 대해 하나라는 단어가 구절 전체에 걸쳐 반복되고(12,15-19), “... 그래서...”(12,15,18-19,21)가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게 될 것처럼, 유사성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구별입니다. 아담은 참으로 그리스도의 형상 또는 유형이지만, 그것은 비교의 방식이 아니라 대조의 방식입니다.

 

바울은 아담”(14)으로 식별되는 한 사람”(12)예수 그리스도”(15)로 식별되는 한 사람”(15)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또한 그는 독자들 앞에 각자가 취한 중요한 행동 하나를 소개합니다. 18절에서 아담의 행위는 한 번의 범죄, 그리스도의 행위는 한 번의 의로운 행위로 묘사됩니다(둘 다 RV). 아담의 행위는 에덴에서 타락했을 때 그가 한 일로, “아담의 범죄”(14)로도 묘사되며, 바울은 그를 범죄한 자”(16)로 기록합니다. 그리스도의 한 가지 행위는 바울이 6절에서 11절까지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아담의 행위는 불순종”(19)이었지만, 그리스도의 행위는 순종”(19)이었습니다.

 

바울은 단순히 두 사람의 행동을 대조하기 위해 이러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목적은 모두”(12,18)많은”(15-16,19)이라는 단어의 사용에서 볼 수 있듯이 각 행동의 광범위한 효과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각각의 경우에서 한 사람이 한 행동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담의 불순종 행위는 심판”(16)을 초래한 반면, 그리스도의 순종 행위는 거저 주는 선물”(15-16)을 초래했습니다. 아담의 행위로 인한 심판은 정죄”(16, 18)였고, 그리스도의 행위로 인한 거저 주는 선물은 ”(17), 칭의”(18)였습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아담의 한 번의 불순종 행위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는”(19) 결과가 초래된 반면, 그리스도의 위대한 순종 행위는 많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19) 결과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아담의 죄는 율법이 들어오기 전에도 역사적으로 사망이 통치”(14)했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해 영광스러운 것이 들어왔습니다. 아담으로 인해 죄가 사망으로 왕 노릇했던 것처럼, 이제는 은혜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로 말미암아 영생으로 왕 노릇”(21)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은혜가 통치하는 것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은혜의 선함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생명 안에서 통치”(17)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아담의 불의한 행위로 인해 인류에게 닥친 그 엄청난 문제는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해 죽으시고”(6) “우리를 위해 죽으신”(8) 위대한 의로운 행위인 그분의 아들의 죽음”(10)에서 해결되었습니다. 단지 그분께서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아니, 이 장에서 다섯 번(9-10,15,17,20) 바울은 훨씬 더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그분이 하신 일이 아담이 한 일을 훨씬 능가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20절에서 죄가 넘친 곳에 은혜가 더욱더 넘쳤나니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잃은 것보다 그분의 순종 행위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이 장의 첫 구절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 의로우신 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때 그분이 행하신 단 한 번의 의로운 행동에 근거하여 사람이 의롭다고 선언되는 것은 믿음으로이루어집니다.

 

이 구절은 또한 또 다른 결과는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음 달에 살펴볼 또 다른 주제인 화해로 이어집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