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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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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메칼리스트

우리는 과거와 현재에 걸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분을 믿은 사람들에게 미칠 결과를 생각해 왔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이 글에서는 그분의 죽음과 우리의 미래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몇 가지 성경 구절을 인용하겠습니다.

 

그분을 통한 우리의 보존

로마서 5:9절에서 우리는 그분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가 무엇을 보존받았는지 읽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이것은 죄인들이 불못에서 영원히 겪게 될 진노를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이 땅에서 받게 될 환난의 진노를 말하는 것입니까?” 이에 대해 필자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복된 진리는 하나님의 진노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부어지더라도 우리는 그 모든 표현에서 구원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보존의 근거는 우리가 그분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분 앞에 우리를 세움

앞의 말씀이 부정적인 측면, 즉 그분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보여 주었다면, 다음 말씀인 골로새서 1:21-22절은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 줍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죽음을 통해 육신의 몸으로행하신 일은 영광스러운 결론을 향한 것입니다: “그분 앞에서 거룩하고 책망할 것이 없고 책망할 수 없는 자로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라.” 많은 성경에서 우리는 현재에 거룩하고 책망할 수 없는 삶을 살도록 권면받지만, 여기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울은 우리가 영광스럽게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죄 없고 영광스러운 몸, 완전하고 거룩하며 흠이 없는 몸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될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과 함께하는 우리의 존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궁전에 초대되어 지상의 주권자에게 소개되는 것을 특권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사는 몇 초 만에 모든 것이 끝나는 짧은 시간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께 드려질 때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니 이것은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 자신과 함께 살게 하려 하심이라”(5:10)고 말한 것처럼 그분과 영원히 함께 하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깨다' '자다'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 우리가 육체적으로 살아있거나 죽어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아니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상태(또는 깨어 있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어떤 관점을 취하든, 둘 다 사실이라는 것은 복된 현실입니다. 신자들에게 주님과 영원히 함께한다는 것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가 살아 있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얼마나 깨어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무한히 더 안전한 토대, 즉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그분께 중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 달려 있습니다. “부분 휴거는 없을 것입니다. 현 시대의 모든 참된 신자들은 그분이 오실 때 그분을 만나러 일어날 것이며, 아무도 무덤에 남지 않을 것이며 이 땅에 살아 있는 채로 남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진리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가 그분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분과 함께 있고 그분과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그분과 함께하는 우리의 권세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5:9-10). 여기서 우리는 그분이 죽임을 당하셨다는 사실에서 흘러나오는 많은 복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마지막 복입니다: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휴거와 환난 사이에 교회 시대의 신자들(, 우리 자신)이 천국에 있으며 그분의 천년 통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할 것을 고대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 외에는 이 모든 것이 무엇을 포함하는지에 대해 많은 페이지를 쓸 수 있고, 실제로도 썼습니다. 그분 앞에 나아가 그분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과 동일시되어 그분의 현현된 영광과 그분의 통치 안에서 그분과 함께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는 이 구절에 대한 다른 번역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노래하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 노래하는 천사의 존재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메시지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노래하든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노래하든 진실은 동일합니다. 그분이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과 함께 왕 노릇할 것입니다. 이 책(20:6)을 포함하여 다른 신약 성경에서도 이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의 소유

그분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그분이 이 땅에서 통치하시는 기간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9:15). 우리는 이 영원한 상속에 관련된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것을 확신합니다. 회심할 때 우리 각자는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1:13-14)입니다. 그것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며, 이 모든 것은 “[그분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