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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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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너울과 하나님의 질서

짐 커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한국에 초청을 받고 서울 광주 그리고 부산에 와서 여러분들의 친절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돌봐주시는 분들의 사랑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사랑이 분명해졌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계속해서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오늘밤에도 고린도전서 11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12~16절입니다.

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6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 16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

오늘 질문 시간에 어떻게 몸된교회와 지역교회가 다르냐고 질문은 하셨습니다. 특히 에베소서는 몸된교회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의 편지는 지역교회를 잘 나타내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제1세기의 지역교회의 본 모습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편지를 통해서도 지역교회의 모습을 잘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디모데전서는 지역교회를 잘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편지에는 지역교회만 다루는 것이 아닐지 모르지만 여러 지역교회들의 모습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고린도후서에서는 고린도전서의 문제를 해결한 이후의 모습도 좀 나옵니다. 고린도전서의 헌금의 문제를 고린도후서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과 고린도 모임과의 관계가 고린도후서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는 지역교회의 문제를 매우 상세히 가르쳐주는 곳입니다. 방금 2~16절을 읽었는데 이것을 보면 금방 지역교회의 문제구나 하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고린도전서가 그들에게 쓰여진 이유는 세가지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 11절에 보면 글로에의 집에 있는 사람들이 바울에게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말한 것 같습니다. 글로에는 고린도에 있은 한 자매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글로에가 바울을 방문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글로에의 집사람들, 즉 친척들이 바울을 방문했을 것입니다. 1 11절에 의하면 바울은 글로에의 집 편으로 고린도에 있는 분쟁에 관해 들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을 보면 여러 방면으로 고린도교회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글로에의 집 편으로 고린도에 있는 분쟁에 관해 들은 사실을 어디로 들었는지 그 들은 원천을 자세히 드러냈습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형제 자매들에게 올바르게 바로 잡아 줄 때는 왜 바로 잡아야 되는 지를 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기를 고침받는 사람에게 자기가 고침 받는 것에 대해서 말해준 사람에 대해서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 말해준 사람을 이야기 하지 않고 나는 당신에 관해 잘못된 것을 들었다고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들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바울은 글로에의 집 편으로 들었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5 1절부터 나오는 그러한 문제는 여러 방면으로서 드러난 일이기 때문에 어디서 들었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말이 나온 것이기 때문에 어디서 들었는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5장의 문제는 그만큼 나쁜 문제였습니다. 이방인 중에도 없는 그러한 큰 문제였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어떤 문제는 지역교회가 그렇게 됩니다. 만약 장사 하다가 파산이 되어 버리면 아마 그것은 모임의 부끄러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도덕적으로 큰 죄를 범하게 되면 일반 사람으로부터 많은 말을 듣게 됩니다. 좋지 않습니다. 이런 널리 알려진 경우에는 모임에 말할 때 어디서 들었다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디에서나 이런 일들이 많이 되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7 1절에 보면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에게 여러가지 질문하는 편지를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밤 우리들이 보고자 하는 내용도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에게 질문하는 편지를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 1장부터 6장까지는 나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임 안에서 분쟁이 생기면 아주 안 좋습니다. 5장 같은 도덕적인 문제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으면 큰일입니다.

6장에 보면 서로간에 믿지 않는 재판관 앞에 가서 송사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형제간에는 믿지 않는 불신 재판관 앞에 가서 서로 송사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장사하다가 형제 때문에 손해를 보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손해난 것을 받기 위해서 재판관 앞에 가서 송사를 해야 되겠습니까? 바울은 그것은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손해 보는 그대로 있는 것이 좋습니다. 바울은 가른 형제를 속이는 것도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형제끼리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만약에 형제가 장사하다가 파산하면 그 다음에 남은 빚을 갚는데 최선을 다해야 될 것입니다. 지금 현재 선진국에는 파산자들이 법률적으로 많은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는 파산했을 경우에 그 빚을 변재 하도록 협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증거(간증)를 위한 것입니다. 1장부터 6장까지는 이러한 문제들이 다루어졌습니다. 어느 것이나 있으면 나쁜 것입니다.

지난 번에 7장을 한번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결혼 문제입니다. 또한 개인개인의 순결의 문제입니다. 이혼과 재혼에 관한 문제입니다. 믿는 자가 결혼하는 것은 전혀 나쁜 일이 아닙니다. 어떤 형제와 자매에게는 결혼 않은 채가 좋겠지요. 바울은 이것을 인정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않는 것이 좋으나 했습니다. 이것은 미혼 생활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결혼 해도 죄짓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경우는 결혼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음행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어쨌던 7장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8장에는 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고기를 시장에서 사지요. 오늘날 같은 그런 정육점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 당시 우상을 섬겼던 고기들을 우상을 섬기던 장소 부근에서 판매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사서 먹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상을 아주 안 좋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아마 믿지 않을 때 우상을 섬겼는지도 모릅니다. 그 좋지 않은 관계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상에 관한 것은 조금도 용납할 수 없는 형제입니다. 아마 당신은 그 형제보다 양심적으로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의 양심은 아주 민감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우상 제물에 대해서 양심이 민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상제물에 드렸던 고기를 사 먹을 자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상제물에 민감한 양심을 가지고 있는 형제를 실족시킬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족시키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자기의 자유를 그 형제를 위해서 버리는 것이 좋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우상에 드린 제물을 사먹는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형제자매들을 실족케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족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마 여러분은 이것을 하는 것은 나의 자유입니다 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율법에 속박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형제자매들의 양심을 여러분은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들의 양심 때문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자기 양심은 괜찮지만 다른 사람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기를 먹고 안 먹고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형제를 실족시키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10장에 들어가면 또 고기에 관한 문제가 조금 나옵니다. 바울은 여기서 다시 한번 같은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우상 제물에 대해서 먹을 수 있지만 위험한 것은 이것입니다. 만약 고기를 사는 제물이 우상에게 드린 제물이었다면 우상과 교제할 가능성이 있겠지요? 하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믿지 않는 사람의 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우상에 드린 제물을 가지고 잔치에 쓰는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상숭배하는 것과 관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바울은 말하는 것입니다. 주의해 주십시오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주님의 상에 참예한다면 사탄의 상에 참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10장에 나오는 주의 상에 참여하는 것은 참된 믿는 자들의 특권입니다. 여기서는 시편 23편의 주의 상()과 같은 상일 것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결국 주님과 교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과 교제할 마음이 있다면 이 세상과 교제하는 상에 참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복된 교제를 위해서는 이 세상의 교제를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양쪽을 할 수가 없습니다.

10장은 또한 떡 떼는 것으로 말미암아 실현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상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만찬 상에는 잔이 하나 있습니다. 한 잔은 모든 믿는 자가 한 몸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믿는 자들이 주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동일하게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늘로부터 내려진 생명의 떡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떡에 참여하는 것이죠. 동일하게 상 위에는 떡이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10장은 주님의 만찬에 특별한 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만찬에서는 고린도전서 10장을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일날 한 떡과 한 잔을 가지고 믿는 사람들이 하나라는 것을 발표합니다. 10장의 순서는 11장의 순서와 다릅니다. 10장의 순서는 먼저 잔이 나오고 그 다음에 떡이 나옵니다. 이것은 물론 집회의 순서가 아닙니다. 모임에서 실제로 행하는 만찬의 순서는 11장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11장대로 실제 행할 때는 떡을 먼저 떼고 잔을 나누는 것입니다. 10장은 주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같은 생명에 동참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동일하게 하늘로부터 주어진 영적인 양식에 참여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린도전서 10장까지 나타나 있는 개요입니다.

11 2절에서 바울은 또 한가지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일하게 12장부터 14장까지 옳지마는 악용되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방금 읽은 것은 자매들의 너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너울을 쓰는 것은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여기에 관해서는 고린도 교인들은 많이 잘못한 것 같습니다. 다음에 나오지만 떡을 떼는 것도 고린도 교인들이 많이 잘못한 것 같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열심히 만찬을 지켰습니다. 바울은 2절에서 어느 정도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서 칭찬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만찬에 그들의 잘못이 분명했습니다. 가능하면 내일 밤에 11장 후반을 구체적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모임 장소는 다르지만 가능하면 꼭 오시기 바랍니다. 12장과 14장도 같습니다. 12장과 14장의 주제는 영적인 은사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은사들이 여럿 기능을 해야 됩니다. 이것은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이러한 것들을 잘못 사용한 것 같습니다. 서로간에 덕을 세우기 위해서 이 은사들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기가 다른 형제자매들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이 은사를 사용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11장부터 14장까지는 옳은 것이지만 악용하는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럼 11 2절부터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것은 결국 남녀의 행동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지역교회에서는 남녀의 구별이 있습니다. 2절부터 16절까지는 남녀의 행동에 관한 것이 설명되어졌습니다. 17~21절까지는 주님의 만찬이 무시되고 있는, 경시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만찬을 아주 가볍게 여긴 태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이 만찬을 보통 식사처럼 여겨버렸습니다. 부한 자는 많이 가져와서 많이 먹어버렸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조금 가져와서 시장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나쁩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모임에서 음식을 가지고 교제하는 것 같습니다만 이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같은 것을 드시고 또한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것이죠. 어떤 사람들은 배가 부르고 어떤 사람들은 시장한 채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러한 교제의 식사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만찬의 목적은 그것이 아닙니다. 17~22절까지를 형제자매들이 잘 생각하지 않으면 그리고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된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23~34절까지 주님의 만찬을 더럽힌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 2~16절까지는 복종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7~22절까지는 동정도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습니다. 23~34절까지는 역시 존경의 마음이 없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님의 만찬을 엄숙하게 행하지 않았습니다. 2~16절까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은 세가지 면에서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 바울은 창조의 질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천사들에게 보이는 천사들을 훈련하는 문제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번째는 교회의 습관 즉 교회의 유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후반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 보십시다. 너울의 근본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역시 남녀가 처음에 창조된 것에 있습니다. 너울로 말미암아 가르쳐지는 것은 우리들의 유전 곧 교회의 유전과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좋은 유전도 있고 나쁜 유전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여러분들이 바닥에 앉습니다. 아마 이것은 전통이겠지요. 아마 모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그렇게 시작했겠지요? 어떤 형제가 우리가 의자를 사용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권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떤 형제는 우리는 처음부터 마루에 앉았으니까 의자는 전혀 안됩니다.라고 말하겠지요. 아마 어떤 형제는 그렇게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도 나쁘지 않습니다. 의자를 사용합시다 하는 것도 전혀 나쁘지 않습니다. 물론 모임은 자유입니다. 물론 우리는 처음부터 마루에 앉았습니다. 그래서 의자는 전혀 사용하면 안됩니다라고 말하면 나쁩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든 유전인 것입니다. 저는 마루에 앉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자에 앉는 것이 좋다고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다만 실 예로써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어떤 유전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물론 어떤 유전은 성경적입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무런 자유가 없습니다. 성경적인 유전이라는 것은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바울을 2절에서 그러한 것들을 권했습니다. 고린도 형제자매들은 그 전해준 유전을 잘 지켰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식이 아직도 모자랐던 것 같습니다. 아마 이들이 이방인 세계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에 너울의 의미를 충분히 잘 몰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에도 여러 곳에서는 같습니다. 자매들이 너울을 잘 쓰지만 왜 쓰는지를 잘 모르는 분들이 계신 것 같습니다. 다른 교회 사람들이 너울은 이미 낡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아마 대답을 잘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11장을 잘 다루어서 여러분들이 충분하게 말할 수 있도록 교제를 드리고자 합니다. 왜 자매들이 너울을 쓰느냐 질문을 받으면 처음에 대답은 3절이었습니다. 창조의 질서 때문입니다. 에덴에 있던 아담과 하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처음 나온 것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다 3절의 세가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하나님 보다 못하다고 결론 내릴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우주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위하여 지배하시는 분으로 계십니다. 우주의 처음 하나님의 뜻은 바로 그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그 아들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사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이 창조되었습니다. 이 피조물들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골로새서에서 분명히 하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지배하시고 모든 것을 지키십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머리이십니다. 그러면 모든 여자의 머리는 남자입니다. 그럼 남자는 여자보다 위대한 자로 창조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가 특별한 이유 때문에 창조되었습니다. 남자는 그리스도의 대리인으로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스리는 계획 즉 뜻이 있죠. 에덴에서는 아담이 그리스도의 대리인으로서 이 지상을 지배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지배는 이 지구에 한정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전 우주를 지배하십니다. 그러나 이 지구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인은 아담이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그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좋지 않다고 보셨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여자를 배필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입니다. 이것은 우주의 질서라는 관점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보다 위대하다. 남자가 여자보다 위대하다 이런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주의 질서는 그대로 지켜져야 했을 터였습니다. 아시는 대로 이 질서가 에덴동산에서 깨어졌습니다. 하와는 배필의 입장을 버리고 남편보다 앞서갔습니다. 그녀는 사탄에게 속아서 열매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우주에는 혼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보거나 기도할 때에 남자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면 자기의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남자가 머리에 너울을 쓰면 하나님이 우주에 놓아두신 그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버립니다. 우주에 있는 물질세계에서 사람보다 높은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머리에 너울을 쓰면 안됩니다.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감추어서는 안됩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는 여자의 머리는 남자, 여자의 머리인 남자에게서는 여러가지 부끄러운 점들이 있지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여자는 머리에 너울을 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주의 질서관계뿐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예언하거나 기도할 때는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자매들이 너울을 쓰기는커녕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예언하거나 기도할 때는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11장에서는 기도나 예언 할 대는 머리에 너울을 써야 한다고 말했지마는 14장에서는 여자는 공적으로 목소리를 내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해서 두가지 잘못을 바로 잡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잘못은 여자가 머리에 너울을 쓰지 않고 말을 했습니다. 첫째는 너울을 써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14장에 들어가면 여자가 교회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 하면서 말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어쨌던 기도할 때에 너울을 안 쓰면 자매들이 머리카락을 잘라버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7절에 의하면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를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말이죠. 그 형상과 영광에 너울로 가리우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이 경우는 쓰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 양쪽 다 다른 관점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임에서는 자매님들도 기도하시죠. 목소리는 안내지만 기도를 잘 하시는 것이죠. 모임에서도 말씀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머리에는 그 표시를 나타내야 합니다. 동일하게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매들에게 긴머리를 영광으로 주셨습니다. 자매님들이여 얼마나 길게 길러야 됩니까? 라고 묻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묻지 마시고 자연스럽게 자라는 데로 길이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좋겠지요. 머리카락이 여자의 영광이라면 길면 길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오늘밤 집에 가셔서 11장을 자세히 읽으시면서 제가 말씀드린 것이 옳은지 아닌지 분별해보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는 10절입니다. 천사들을 인하여 입니다. 권세아래 있는 표로서 그 머리에 너울을 보여야 합니다. 천사들은 실제로 하나님의 교회의 질서를 잘 보고 있습니다. 계시록 2,3장 일곱교회는 각각 천시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계시록을 해석할 때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요한 계시록은 비교적 쉬워집니다. 하늘의 별이라고 나오면 하늘의 별 그대로 보시기 바랍니다. 태양, , 떨어지는 우박 같은 것이 나올 때도 말이죠. 이 문자 그대로 그 의미를 취해 주시기 바랍니다. 천사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계시록 2,3 장에 나오는 천사(우리 성경에는 사자)가 천사가 아니라면 다른 부분도 아닐 가능성이 있습니다. 4장부터 21장까지 천사가 나오는 곳은 늘 천사 그대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2,3장에 나오는 천사도 저는 천사로 해석해야 된다고 봅니다. 나중에 이형제님에게 전도출판사에 나온 천사라는 책을 가지고 계신지 물어보겠습니다만 그것을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틀림없이 옳은 책입니다. 제가 썼으니까 제가 잘 압니다. 아마 그 천사라는 책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천사가 왜 천사인지가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악의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기가 쉽습니다. 그 악과 싸우는 싸움을 우리들의 힘으로 싸워야 되겠습니까? 정말 그렇다면 큰 일입니다. 그러나 각각 모임에는 천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천사들이 교회의 영적인 면에 책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니엘서 9장에는 이스라엘을 지키는 천사가 있었습니다. 또한 다른 나라들도 하늘에는 천사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 의하면 믿는 어린아이를 위해서도 하늘에는 그들의 천사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계시록에도 세계 정치를 관장한다든지 일기를 관장하는 천사들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지역교회와 관련되는 천사가 없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모임의 질서를 잘 보고 있습니다. 자매들의 너울과 긴머리를 볼 때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을 통해서 연약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질서를 그 천사들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놀라운 결과를 그들이 보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결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경험이 없습니다. 이전에 사탄과 그 사자들이 죄를 범하는 순간에 심판으로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흑암의 사슬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흑암의 사슬에 묶여져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어두운 흑암 속에 조그만 빛도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 흑암에 갇혀 있는 것은 큰 심판대에까지 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와 유다서에 이것들이 자세히 기록되어있습니다. 지금 말씀드리고 깊은 것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천사들입니다. 이 죄를 짓지 아니한 천사들도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지 않은 것입니다. 죄를 범한 천사는 바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구원의 기회가 없습니다. 죄를 범하지 않은 천사는 구원의 필요가 없지요. 어느 경우든 하나님의 구원의 경험이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이 자주 부르는 구원의 노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았습니다라는 노래는 그들의 입에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입에는 합당합니다. 우리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질서를 지키면 천사들은 그것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결과를 이로 말미암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10절의 의미입니다. 여러분 잘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임에서 자매들이 너울을 쓰고 긴머리를 가지며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천사들에게 큰 가르침인 것입니다. 동일하게 형제들은 머리를 짧게 하고 머리에 쓰지 않고 기도할 때 말씀을 통해서 말할 대 천사들이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너울은 창조의 질서와 천사들의 가르침을 위해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의미를 잘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16절도 봐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16절을 가지고 변론을 하려고 한다면 잘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 들은 말씀을 반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설명을 해줘도 2002년 현 시점에서는 좀 낡은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50,60년 된 모임의 어느 모임에서나 자매들이 너울을 썼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교회당에서 결혼식이 있으면 여자들은 머리에 쓰는 것을 쓰고 왔습니다. 그 때 저의 어머니는 믿는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소위 교회에 속해 있었지만 참으로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간다면 머리에 무언가를 써야 한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어느 교회든지 5,60년 전에는 다 그러했습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너울은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1900년 동안 참으로 믿는 사람들은 이것을 지켰습니다. 최근에는 이것을 지키는 데가 없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모임에서 너울이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16절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모든 교회가 동일한 것을 지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과 다른 습관은 제 1세기에는 없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단순하게 말씀을 지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때대로 제가 말씀 속에 단순히 말씀을 지킨다. 단순히 모임에서 행한다는 말을 많이 하죠? 단순히 순종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교회에 관한 것, 믿는 사람들의 행동에 관한 것, 특히 신약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그대로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조건을 붙이지 않습니다.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만약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으면 머리를 숙이면서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너울을 쓰는 자매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형제들도 동일하게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단순히 말씀을 순종하게 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모임으로서 참으로 그렇게 된다면 복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02 1 27 부산 동래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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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