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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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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의 교회의 진리

짐 커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성경을 읽고 생각하기 위해서 모였기 때문에 참으로 기쁩니다. 이번 말씀 집회가 여러분들에게 덕을 끼치게 되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어젯밤에 이어서 하나님의 교회 즉 지역교회에 대해서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고린도전서 3장을 봉독하겠습니다. 3장 전체입니다.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18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어젯밤에 하나님의 교회를 네가지 관점에서 보았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네가지 각각의 부분에서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교회는 구속받은 교회란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교회는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세번째는 정리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다음에 네번째는 모임은 책임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즉 지역교회가 있음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세가지가 있음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없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의 가르침에 순종합니다. 세번째는 모임이 성령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성령만이 모임의 덕을 위해서 은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가지는 어떠하든지 없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어젯밤에 말씀드린대로 교회라는 것은 주로 지역교회를 나타낸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신약성경에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말이 9번 정도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라고 할 때는 언제나 지역교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 1절에 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 쓰여졌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0장에도 한번 나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켜 나타내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고린도에 잇는 사람들은 세가지로 나뉘어져 버렸습니다. 유대인이 있습니다. 이방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 1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말이 모임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20장에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신약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교회하는 말이 나올 때 그것은 지역교회라는 말이라는 것을 잘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약성경의 교회에 대한 가르침은 대부분이 지역교회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오늘밤 우리가 보고자 하는 고린도전서 3장도 같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의하면 주님께서는 내 교회를 이 반석 위에 세우리니 하셨습니다. 주님이 반석이라는 말을 하실 때 그 반석은 주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 속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그랬습니다. 몸된교회의 건축가는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 의하면 여러 사람들이 교회를 세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역교회의 믿는 사람들이 그 지역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가지고 교회를 세우는지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시간을 가지고 세운다 건설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작은 것 하나 여러분에게 나타내 드리고자 합니다. 어제 고린도전서는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을 수신으로 해서 보내진 편지라고 소개를 드렸습니다. 그 고린도에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라 불림받고 있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성별되어서 여러 주변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있습니다. 각처에서라는 말처럼 다른 곳에서도 사람들이 성별되어서 모이고 있다는 그런 말입니다. 각처라고 해서 다른 성도들도 말하지마는 실제로는 고린도 성도들 수신으로 보낸 편지입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1 1절에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만 제한되어 있는 서신이 아닙니다. 그리스에 있는 아가야 지방의 모든 성도들에게 바울은 인사를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고린도전서의 문제는 고린도에 있는 문제뿐이었습니다. 이 고린도의 문제를 가지고 다른 지역에 수신자로 말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고린도 문제를 다른 교회에 써서 보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는 지역교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분열의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테네모임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테네에 있는 모임에 알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알리면 안됩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되겠습니까? 만약 부산 동래모임에 문제가 생기면 이것을 서울에 있는 모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를 서울에 있는 모임에 써 보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무언가를 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산 문제는 부산 모임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알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잘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현재 전화 특히 휴대전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문제를 다른 모임에 알릴 위험이 있습니다. 부산에 문제가 있으면 부산에 한정된 것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에 문제는 다릅니다. 아가야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헌금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아가야에 있는 전 성도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헌금을 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약속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1년 가량 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아가야 사람들의 헌금하는 문제를 아가야 사람에게 헌금한다고 바울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을 했습니다. 아가야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헌금하겠다고 약속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자랑 삼아 다른 성도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가지고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방문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약속한 헌금을 아가야 사람들이 하지 않았습니다. 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헌금을 안 했는데 방문하게 되면 바울이 부끄러움을 당하겠죠. 바울은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고린도후서를 썼습니다. 이것은 고린도에 있는 모임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아가야에 잇는 여러 모임들에도 권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이제 아시겠죠. 만약 문제가 있으면 그 모임에 문제입니다. 다른 모임과 다른 모임의 성도들에게 알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전국으로 확산되어갈 것입니다. 어떤 문제는 전국에 알리면 좋은 것도 있습니다. 전국에 알리는 것은 지역모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고린도전후서의 앞부분을 통해서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세가지 비유를 사용했습니다. 고린도교인들에게 바울은 장성한 어른에게처럼 말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1,2장에서는 그들의 분열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뽐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볼로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아볼로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근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볼로가 말을 잘하기 때문에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습니다고 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형제들은 게바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게바인 베드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친하게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의 토대를 주님이 말씀하실 때 베드로의 놀라운 고백을 사용했습니다. 베드로가 제일 훌륭한 것이 아닌가 하고 사람들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베드로에게 속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에게 속했다. 그 사람들은 바울이 고린도에 개척전도를 하러 온 것이 아니냐? 바울이 고린도에 오지 않았으면 고린도 모임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리들은 사랑하는 바울에게 속했습니다.라고 했겠지요. 어떤 사람들은 우리들은 아볼로도 아니고, 게바도 아니고, 바울도 아니고, 그리스도게 속했습니다. 라고 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께 속했다고 말하기 때문에 그들이 옳지요? 그러나 옳지 않습니다. 아볼로, 게바, 바울에게 속한 자와 똑 같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내가 여러분보다 옳습니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그들이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아볼로, 게바, 바울의 이름을 가지고 사용한 사람과 완전히 같은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지역모임 내에 문제입니다. 아시는 대로 기독교계 안에서는 오늘날까지 이 문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는 루터에게 속해 있습니다. 아니 우리들은 웨슬레에게 속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니오. 우리들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느 것이나 다 안됩니다. 그러나 모임에 있는 우리들이 충분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가능하면 성경말씀을 단순하게 순종하고 싶지요. 완전할 정도로 어느 모임이나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진지하게 단순하게 순종할 마음이 있는 것은 좋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다른 그리스도인들보다 우리가 뛰어났습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나 말씀을 순종하면 할수록 순종할 것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경멸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부숴지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순종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나쁜 것은 지역모임 내에서 분열이 일어나는 것이 나쁩니다. 여러분 시편 133 1절에 나오는 것처럼 형제 자매들이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하나님 눈 앞에도 그것이 아름답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지역교회는 일치를 나타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몸된교회의 특징과 같은 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역교회의 일치는 우연히 생겨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인 지역교회가 일치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른 일을 위해서 나쁘게 말하는 것은 안됩니다. 다른 분들을 향해서 나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다른 형제 자매들에게 실족하게 하는 것은 안됩니다. 일치가 있게 하기 위해서 모두가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만약 형제자매들을 실족하게 했다면 한시라도 빨리 그것을 사과해야 합니다. 만약 욕을 했다면 한시라도 빨리 용서받아야 합니다. 욕을 했다면 고개를 숙이고 미안합니다 하는 것은 쉽습니다. 만약 교만이나 자랑이 없다면 말이죠. 아마 상대방에게 정말로 미안합니다 하면 용서해 줄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함께 일치를 지켜야 합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몇가지 문제가 다루어졌습니다. 바울은 첫번째 문제로서 이 분열을 다루었습니다. 1장부터 4장까지 이 분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분열이 있기 때문에 고린도 성도들을 어린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깊은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젖을 먹고 있는 어린아이입니다. 이 어린이라는 말은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전혀 성장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그러한 어른이 되어야 할 텐데 그러나 여전히 젖을 먹고 있는 어린이일 따름이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들은 사람들이 하는 방식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사람 죄인들이 하는 방식을 모임 안에서 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지도자는 당신들보다 좋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바울은 게바보다 좋다. 게바는 바울보다 좋다. 이리해서 분열이 모임 안에서 발생했습니다. 바울은 그것은 참으로 나쁩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역자들이다. 바울은 여러분 가운데서 씨를 뿌렸다. 이 씨에 물을 준 것은 아볼로였다. 부산 동래모임에 처음에 누가 씨를 뿌렸는지 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여러분 가운데 어떤 형제님들이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여기에 물을 주러 왔습니다. 지금까지 가르침 받은 것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 제가 왔습니다. 수확할 때에 누구의 일을 칭찬해야 되겠습니까? 씨뿌린 사람. 물로 그것은 좋습니다. 함께 물을 준 사람도 그러하겠지요. 그들은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교회는 밭인 것입니다.

이 제3장에는 세가지 비유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는 밭이었습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집 즉 건물입니다. 세번째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밭과 하나님의 집(건물) 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6절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세가지를 생각해 보십시다. 밭에서 일하는 형제들은 그저 하나님의 아래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밭에는 어떤 것들이 필요합니까? 농부의 수고입니다. 옛날처럼 소를 통해서 밭을 간다면 대단히 큰 일이었습니다. 바울의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간 것입니다. 거기다가 씨를 뿌렸습니다. 그러나 금방 싹이 나지 않았습니다. 수확 때까지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수확기가 올 때까지 농부는 여러가지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역시 잡초 같은 것을 뽑아야 합니다. 새들이 먹으러 오지 않도록 잘 주의해야 합니다. 어쨌던 수확기가 올 때까지 이 농사일은 계속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이 밭에 농사일하는 사람이 혼자가 아닙니다. 그 계절에 따라 몇 사람이 밭에서 일을 했습니다. 수확을 하게 될 때 누가 그 수확을 받습니까? 일한 사람 모두가 일부씩을 받는 것입니다. 밭이라는 비유는 일하는 사람들의 수고입니다. 수고하는 것이 강조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수고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시간도 걸리고, 어떤 때는 재산도 돈도 들어갑니다. 밤에는 자지 않고 여러가지 마음을 씁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밭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군은 이것 때문에 충분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건물)이라면 조금 관점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집을 세울 때는 그 재료를 충분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떠한 재료를 사용하는지를 잘 음미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바울만이 건축가가 아닙니다. 틀림없이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토대를 놓았습니다. 이미 놓여진 토대 위에 다른 형제들이 세우러 왔습니다. 물론 고린도 형제들도 세웠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무슨 재료로 세울지 충분히 주의하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부산도 같지요? 상당히 오래 전에 이미 토대가 놓여졌습니다. 이 토대는 올바르게 놓아졌겠지요? 물론 지역교회의 토대는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은 11절에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라면 틀림없이 그 놓여진 토대는 그리스도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 토대가 놓여졌습니까? 역시 올바른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놓여졌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복음이라는 것이 교회의 토대가 되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이 인도받았습니다. 다른 말은 전할 이유가 없습니다. 특별하게 어떤 교회에 관한 것을 전해 온 것이 아닙니다. 또한 자기 일에 제자를 만들기 위해서 온 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자기 제자들을 전혀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야 말로 모임의 토대입니다. 그대로 고린도에는 토대가 놓여졌습니다. 바울 이후에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되었겠습니까? 놓여진 토대 위에 말씀을 올바르게 말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단순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왔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교회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관해서 올바르게 말한다면 그것은 좋은 재료입니다. 이 교회는 금, 은 그리고 보석으로 세워지는 교회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복됩니다. 처음에 올바르게 말씀을 전한 분이 나중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오는 사람들이 올바른 재료를 세우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무나 초대해서는 안됩니다. 이 토대 위에 올바르게 세우도록 형제를 초청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물론 3장은 초청받은 형제에 관한 문제만은 아닙니다. 고린도에 있는 형제들도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부산에 있는 교회들도 하나님의 교회를 무슨 재료로 세우는지 잘 음미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무 풀 짚은 좋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기 제자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의 가르침입니다. 또한 모임의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제자를 삼아 자기에게로 끄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이것은 나무 풀 짚과 같은 것입니다. 영원을 위해서 이것들은 다 불태워집니다. 주님의 심판자리 앞에 설 때에 이것은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금은 보석은 계속 될 것입니다. 물론 그 수고한 사람들은 상급을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건물)에는 건축에 관한 것을 주의하도록 말하고 있습니다.

세번째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성전이라는 단어는 매우 재미있습니다. 이 성전이라는 말은 사용했지만 성전의 지성소라는 의미입니다. 성전의 가장 안에 있는 곳, 가장 거룩한 곳, 아시는 대로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매년 한번씩 들어갑니다. 구약성경의 좋은 왕이었던 웃시야 왕은 들어가서는 안되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웃시야 왕은 좋은 왕이었습니다. 어느 한때 매우 교만해져 버렸습니다. 제사장이 아닌 나도 성소에 들어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들어가자 마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문둥병자가 되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성소와 지성소는 그렇게 거룩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하나님의 지역교회가 지성소와 같은 곳입니다. 이미 우리가 상고했습니다만 이 땅에서는 실제적인 지성소라는 장소나 건물은 없습니다. 우리들의 대제사장은 이미 지성소에 나타나 계십니다. 그 대제사장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지성소는 천국에 있습니다. 영적인 예배를 늘 거기서 드리는 것입니다. 이 지상에는 지성소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모임 장소를 모임장소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 장소는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모임의 장소로 부르는 것은 적당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 앞에 지성소라는 본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밭이라는 것은 일하는 자들의 수고, 즉 일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건물)은 건물의 재료를 강조했습니다. 성전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교회의 거룩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교회로서 이미 성별되었습니다. 한 분 한 분 믿는 사람들은 성별되었습니다. 성도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 말은 거룩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입은 우리는 이미 거룩한 자라고 정해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임으로 모일 때 모임은 하나님의 지성소 같은 것입니다. 거룩한 것입니다. 거기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다가가는 특권도 받았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 나아가는 특권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구약성경 레위기 여기저기를 읽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아침 제가 레위기를 읽었습니다. 년초부터 창세기를 읽어 왔는데 오늘은 레위기 중반쯤 읽었습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을 여러 번 여러 번 모세가 그들을 씻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몸만 씻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옷도 씻은 곳이 나옵니다.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은 단지 그림자이죠. 그러나 이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엄숙한 것입니다. 거룩한 자로서 들어가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또 하나의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늘밤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내일 밤에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 3절에 의하면 지역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난 밤에 몸된교회와 지역교회가 다르다고 잘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2 27절에는 너희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육체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을 나타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틀리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주로 몸을 사용한 것은 실제적인 몸을 가지고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면 27절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한 사람 한 사람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에 기관입니다. 모임으로 모일 때에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한번 생각해 봐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만약 밀감을 가지고 있으면 껍데기를 벗깁니다. 그 밀감을 나눕니다. 여러분들에게 작은 한 부분을 드립니다.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밀감입니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것의 본질은 밀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밀감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것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본질적으로 밀감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인 지역교회는 몸된교회의 전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본질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사용하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시간이 있으면 내일 12장과 14장을 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주제가 매우 크기 때문에 14장까지 될지 안될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모임에 가서도 이 주제를 가지고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12장에 몸이라고 하는 실 예는 어떤 것입니까? 역시 모임의 일치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체가 여럿 있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여러 지체들은 여러가지 기능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과 14장에는 여러가지 은사가 나와 있습니다. 은사의 각각의 기능들이 있습니다. 눈의 기능과 손의 기능은 상당히 다릅니다. 그러나 몸은 하나입니다. 바울은 12장과 14장에서 이 중요성을 매우 강조했습니다. 내일 모레도 이에 대해서 계속하고자 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또 한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지상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기능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지역교회입니다. 각 처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일치를 보존해가면서 멸망해 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이는 그리스도인들은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표현해야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첫째는 일치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에 이어서 서로간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이에 이어서 믿는 자들의 매일의 생활의 거룩을 또한 나타냅니다. 대체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그들이 읽고 있는 성경은 바로 여러분과 제가 성경인 것입니다. 때대로 우리들은 성경 번역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어떤 성경번역은 종종 신용할 수 없다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에 의해서 번역된 성경은 어떻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에 의해서 번역된 성경을 신용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멸망해 가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생활을 통해서 성경을 표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라는 데는 정말로 중요한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임에 있는 형제자매들 한 분 한 분의 책임입니다.

간단한 예로 하나님의 교회를 나타내 보면서 말씀을 줄이겠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마지막 부분에 의하면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것은 믿는 자들의 행동 행위에 관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첫 부분에 의하면 지역교회는 하나님의 무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그 무리를 돌보는 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는 것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전반 부분에 의하면 지역교회는 하나님의 편지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모임을 통해서 나타난 편지를 읽을 터입니다. 물론 이것은 증거 즉 간증의 문제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첫 부분에는 또 다른 것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인 지역교회는 정결한 처녀로 나와있습니다. 역시 그리스도를 위해서 헌신되어진 사람들입니다. 이 하나님의 교회는 배타적으로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마치 신랑을 위해서 헌신되고 준비된 신부처럼 말이죠. 이 더러운 세상 가운데서 말이죠. 이것이 지역교회의 특징입니다. 계시록 2,3장에는 일곱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있습니다. 각각 지역교회는 순금 금촛대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들을 합쳐보면 하나님의 지역교회가 어떤 것인지 대체로 아시겠지요? 성도들의 모임을 하나님 앞에서 이와 같이 소중히 여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고맙습니다.

2002 1 26 부산동래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